엑스트라 파업 선언 155.
급히 손을 뻗었지만 구름이가 후다닥 구석으로 도망쳤다. 아작,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막을 틈도 없이 저주받은 꿈꾸는 가지는 구름이의 입으로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괜…찮은 건가?’
멀쩡한 구름이의 모습에 마음을 놓으려던 때, 구름이의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 사이로 검은 연기들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구, 구름아!”
“메?”
작게 벌린 귀여운 입에서도 검은 구름이 퐁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까맣게 변한 구름이에게 달려가려는데 뒤에서 팔이 잡혔다.
“성산하, 지금 구름이가…….”
“안 돼. 위험해.”
“빨리 토하게 하면 돼! 구름아! 이리 들어와, 어서!”
“이미 늦었어. 저 기운에 닿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어느새 기다란 로드를 꺼내든 성산하는 내가 달려가지 못하게 꽉 붙잡은 채로 구름이의 위로 쉴드를 덮어씌웠다.
“안 돼!”
이미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찬 쉴드 내부를 보며 아연했다.
늦었다니, 인정할 수 없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을 거다. 구름이를 이대로 둘 순 없어 성산하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려는 순간 구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메에에!”
연기 속에서 구름이가 힘차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연기들이 소용돌이치며 순식간에 허공으로 빨려 들어갔다. 털에 엮인 조금의 검은 기운마저 구름이가 푸르르 몸을 털자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그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내 팔을 잡고 있던 성산하의 손이 툭 떨어졌다. 옆을 돌아보자 성산하 역시 놀란 표정으로 구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저걸…….”
“메에에에!”
구름이가 자랑스럽게 펄쩍펄쩍 뛰며 고개를 쳐들었다. 성산하가 쉴드를 거두자 와다다 달려 나오는 구름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곧바로 플라멜의 현안을 사용해 구름이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맞다. 감정 안 되지…. 구름이 너 괜찮아?”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니 답답했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이상이 없나 확인하는데 구름이는 그저 태평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성산하 역시 신기했는지 조심스러운 손길로 구름이의 턱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돌려봤다.
“직접 정화를 한 건가.”
“미에.”
구름이가 귀찮다는 듯 귀를 포드닥댔다. 뭔가 고민하는 듯하던 성산하는 손을 거두며 작게 중얼거렸다.
“무사해서 다행이군. 앞으로 이런 것 주워 먹는 일 없게 잘 관리해.”
“무슨 소리야, 앞으로 계속 먹을 건데. 그치, 구름아?”
“……뭐?”
성산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안고 있던 구름이를 땅에 내려 주며 말했다.
“‘저주받은’ 수식언을 정화했잖아. 구름이의 속성은 신성계야. 분명 연구에 도움이 될 거야.”
“연구라니, 생각보다 냉정한데.”
“구름이가 뭔지 잊은 건 아니지?”
답지 않게 왜 저래. 이상하게 바라보며 탁자로 다가갔다. 구름이가 테이블 아래서 호시탐탐 재료들을 노리고 있었다. 또 아무거나 주워 먹기 전에 빨리 정리해야지.
구름이가 저걸 집어먹었을 땐 존나 놀랐지만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와 버렸다.
‘정화, 정화라…….’
실마리가 잡힐 듯 말 듯 했다. 어쩌면 성산하의 손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순 없었다.
***
저 멀리 보이는 태제헌의 형체를 흘깃 바라봤다.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눈이 마주쳤다는 게 느껴졌다.
‘저 새끼 대체 무슨 생각이지.’
녹스 새끼들은 목표는 오직 나라는 것을 티 내기라도 하려는지 던전 토벌에는 관심 없이 우리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검은 개 두 마리가 근처를 떠돌고, 적이 분명한 놈들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뒤를 따라오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헌터들 사이에서 간간히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젠장, 버스 탔나. 우리가 굴러서 뚫어 놓은 길 편하게 걸어오는 것 좀 보라지.”
“저 뻔뻔한 새끼들, 뒤에 숨어서 뭘 하는 거야?”
사방에서 들려오는 녹스 욕을 즐겁게 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처음 보는 재료라면 닥치고 줍던 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목표가 명확했다. 평범한 재료들 사이에 숨어 있을 저주받은 재료들 찾아야 했다.
“제로, 나 저쪽!”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제로가 앞서 나갔다. 설렁설렁 손을 휘저으며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제로의 뒤를 따라 목표했던 커다란 바위에 도착했다. 무릎을 꿇고 바위틈에 작게 핀 꽃을 조심히 캐내 감정했다.
“……씨, 이번에도 아니네.”
“아까부터 대체 뭘 찾으시는 겁니까?”
허리를 숙인 제로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캐낸 재료를 집어넣으며 대충 답했다.
“있어, 돌연변이 같은 거.”
여태껏 인지하지 못했을 뿐, 색도 특이하고 기운도 남다르니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부터 몇 번을 허탕이다.
워프 지점이 아닌데도 멈추는 것을 반복하니 녹스에서도 상황을 파악하려 은근슬쩍 길드원을 보낼 정도였다.
‘구름이를 풀어놓으면 바로 찾아내겠지?’
실속 없는 생각을 하며 자리서 일어나는데 바위 뒤쪽에서 검붉은 연기가 언뜻 스쳤다.
“어? 잠깐!!”
바위 뒤로 돌아 후다닥 달려가자 그곳엔 작은 버섯들이 다닥다닥 돋아 있었다. 방금 봤던 것의 정체는 버섯에게서 흘러나온 포자였다. 청록빛 버섯들 중 가운데의 검붉은 버섯을 다치지 않게 채집했다.
플라멜의 현안을 사용하자 아이템창이 떠올랐다.
<저주받은 웡져의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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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하루 하고도 몇 시간 만의 쾌거였다.
“이렇게, 혼자 색이 다른 애들이 돌연변이…… 제로?”
제로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워프가 있었다.
“이상하네요. 다른 길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요.”
주변의 입구가 무너져 황폐한데다 빛이 나지 않는 워프였다. 당장은 사용할 수 없을 테지만 뭔가 관련된 퀘스트가 숨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혹시 지름길 아닐까? 가령, 저길 통과하면 바로 21층으로 보내 준다든지…….”
“글쎄요? 다만 이거 하나는 알고 있습니다. 던전에선 행운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걸요. 후후후”
“칫.”
던전에 숨겨진 비밀 공간에는 희귀한 재료들과 아이템, 특별한 몬스터가 있는 것이 보편적 법칙이었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설렘에 나는 그 길로 성산하에게 달려가 새로 발견한 워프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성산하의 반응은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거긴 금지구역이야.”
“하지만 아무 표지판도 없었는데.”
“몬스터가 지나가기라도 했나 보지. 폐쇄된 워프일 뿐이니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조금 당황해 성산하의 팔을 잡아 나무 뒤로 끌고 왔다.
“지름길일 수도 있어! 아마 살피면 진입 퀘스트도 분명히 뜰걸? 생각해 봐. 아무도 안 가 본 곳이야. 잠깐만 갔다 오자.”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지. 그곳보다는 다음 층이 더 가치 있어.”
“하루 정도 지체한다고 무슨 일 나진 않잖아?”
비밀 장소의 재료들을 포기할 수 없어 최선을 다해 성산하를 꼬드기는데 놈은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성산하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 본 적 있어.”
“뭐? 가 본 적 있다고? 언제!”
“그래. 네가 기대하는 것들 따위 없으니 이만 신경 꺼.”
“쳇, 뭐야. 시시해.”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다. 입술이 삐죽 나온 채로 다시 무리에 합류했다. 큰 바위를 지나치면서도 못내 아쉬워 폐쇄된 워프가 있던 곳을 돌아봤다.
***
탑을 오르는 동안 폐쇄된 워프의 흔적들이 가끔씩 나타났다. 겉보기에 비슷한 것이 모두 같은 공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 보고 싶었으나 성산하는 처음에 그랬듯 별거 아니라 일축하고는 꿋꿋이 다음 층을 향해 제 갈 길을 갔다. 몇 번을 그렇게 지나치니 나 역시 아쉬웠던 마음이 희미해져 이제는 코앞에 나타나도 그냥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
“해저 던전은 한번 가 보고 싶긴 해. 헌터들이 안 가서 그런지 재료가 많이 안 들어오거든.”
“제주가 딱이네요. 사면이 바다니까요. 근처에도 세네 개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럼 뭐 해, 탑에 박혀서 바다도 못 보고 있는데.”
투덜대자 청이의 표정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옆에서 팔짱 낀 임단이 이죽거렸다.
“태평한 소리 한다. 해저 던전이 얼마나 까다로운 곳인데. 그렇게 원하면 내가 데려다줄게. 가서 무섭다고 울지나 마.”
임단이 웬일이지? 저런 소리를 다 하고. 며칠 함께 지내다 보니 드디어 마스터의 위상을 인정하기로 한 건가?
“뭐, 그렇게 사정하니 너도 내 팀에 끼워 줄게. 하지만 네가 제일 막내야. 제로랑 청이가 먼저 들어왔으니 네 선배고.”
“그 말이 아니잖아! 아오!!”
흡족하게 바라보자 임단은 마구 열을 내더니 홱 뒤돌아 떠나 버렸다.
청이의 후배가 되기 싫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 룰은 룰이지.
머리를 긁적이곤 청이, 제로와 떠들며 걷는데 앞서 가던 헌터들이 발을 멈췄다.
“무슨 일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야영할 시간은 아닌데…….”
앞을 내다보자 다들 어느 한곳에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성산하에게 곧바로 다가갔다.
“뭔데 그래?”
“테이머의 새가 여길 발견했어.”
“여기가 왜?”
나무로 둘러쌓인 숲일 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성산하가 무릎을 꿇고 바닥의 흙을 모았다. 이상하게 성산하의 장갑 아래의 흙들만 유독 곱고 색이 짙었다. 익숙한 모습에 혹시나 하고 물었다.
“……설마 그거 재냐?”
“누군가 여기 머물렀어. 아주 최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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