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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56화 (15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56.

“우리보다 앞서간 자들이 있다는 말이야?”

우린 이제 막 도착한 참이었다. 게다가 녹스 역시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고. 그럼 누군가 천랑과 녹스보다 빠르게 진입한 자들이 있다는 말인데…….

“여기 S급들이 몇인데 선두를 따져?”

황당하게 묻자 어느새 눈치채고 다가온 임단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네가 채집한다고 돌아다닌 시간만 모아도 한 층은 더 올라갔겠다.”

“너도 포션 잘만 마셔 놓고 왜 딴소리야?”

“그, 그건 나중에 갚겠다고 했잖아…!”

또 와서 시비를 거는 임단과 투닥거리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성산하가 손을 털며 말했다.

“아주 치밀해. 이것 외에는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몇 명인지 얼마나 머물렀는지조차 미지수니.”

“후, 16층을 오를 때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게 수치다. ……다음 층부터는 동굴이지 아마? 습격당하기 딱 좋겠네.”

“속력을 내기보다는 의진이를 안전히 보호하며 20층까지 가는 게 중요하겠어. 뭐, 일단 녹스도 이용할 수 있을 테니.”

임단과 성산하의 대화를 가만히 듣다 물었다.

“사이비들이 벌써 따라온 걸까?”

“이렇게까지 할 놈들은 하나뿐이겠지. ……다음 층부터는 야영도 위험할 테니 오늘은 16층에서 머무르는 게 좋겠어. 이르지만 자리 펴도록 하자.”

사이비가 따라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헌터들의 표정에 경계심이 어렸다. 웃기게도 이 중 제일 태평한 사람은 나였다. 목표는 나와 하말일 걸 아는데도 놈들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적이 없어 그런지 두려운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마 제일 두려운 건 따로 있어서 그럴지도.

소식이 벌써 퍼질 리가 없는 데도 벌써부터 야영 준비를 하는 녹스 새끼들을 돌아봤다. 세모눈을 뜬 임단이 구시렁댔다.

“저 새끼들, 여기 사람 심어 놓은 거 맞다니까.”

***

베이스캠프는 결국 먼저 발을 디딘 헌터들이 설치하는 것이라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부실해지는 게 당연했다. 천막등은 경량화됐고 집기 수도 줄어 이제는 야영에 필수적인 것들만 남았다.

바로 전인 15층에서는 간이 침대와 베개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워야 한다. 그나마 모두의 관심이 쏠린 탑이라 하늘을 가릴 천막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대충 상자를 줄지어 늘어놓고 포션을 만드는데 밖에서 음식 냄새가 흘러들어 왔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구이 냄새다! 홀린 듯 천막을 나온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냄새가 풍기는 곳을 향해 걸었다. 버터도 바르고 새우도 함께 구웠나 봐. 향이 진해질수록 침이 새어 나왔다. 터벅터벅 걷던 중 강한 힘에 어깨가 붙잡혔다.

“야! 어디가?”

“사장님.”

뒤를 돌아보자 임단과 청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혼자 어디 가는 거야? 저쪽은 녹스 방향이잖아.”

“뭐라고?”

임단의 말대로 어느새 녹스와의 경계선이 코앞이었다. 신선식품이 다 떨어져 요 며칠 건량으로 배를 채우다보니 잠시 홀린 게 분명했다.

당황해 눈을 굴리다 입에 고여 있던 침을 꿀꺽 삼키는데 임단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너 설마 소고기 때문에?”

“무슨 소리야? 내가 그깟 소고기 따위에…….”

“……입에 침이나 닦고 말해.”

임단의 말에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자 청이가 말없이 작은 손수건을 건넸다. 머쓱하게 그를 받는데 앞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우리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임단이 질색하며 팔을 잡았다.

“태제헌의 개잖아? 돌아가자.”

“아니야. 태제헌 여기 없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건…….”

금방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표정의 루트와 내겐 관심 없는 척 고갤 돌리고 있지만 귀를 쫑긋대며 이쪽을 신경 쓰는 게 티 나는 룬.

다른 말 할 것 없이 둘이 꼬리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조금 나사 빠진 루트면 몰라도 룬은 똑똑해서 제 주인 앞에선 절대 다른 사람에게 정신을 팔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러고 있다는 건 적어도 시야가 닿는 곳에는 태제헌이 없단 소리다.

뭐, 그렇다고 개들과 놀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만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개들이 나무 뒤로 가더니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물고 왔다. 갑자기 풍기는 맛있는 냄새에 주춤하는데 눈은 내게 고정한 채 보란 듯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챱챱 소리까지 내며 고기를 먹기 모습에 뒤늦게야 놈들이 나를 놀리는 중이란 것을 알아챘다.

“이씨, 왜 왔나 했더니…. 야!!”

“월!”

“하나도 안 부럽거든? 생고기 더 좋아하면서 맛있는 척하지 마.”

룬이 콧방귀 뀌며 고기로 시선을 돌렸다. 터지는 육즙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자 임단이 날 잡고 흔들었다.

“야, 야! 정신 차려. 아메바도 아니고, 저딴 거에 넘어가면 안 돼!”

“안 넘어가. ……이만 돌아가자.”

루트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등을 돌렸다.

태제헌이 설마 나를 놀리라고 보낸 건 아니겠지만 여 보란 듯 개들에게 소고기를 준 게 아니꼬웠다.

내가 소고기가 없지, 포션이 없나. 소고기보다 훨씬 더 맛있고 멋진 요리를 만들어 주지.

그 길로 천막으로 돌아온 나는 양손에 한 아름 재료들을 들고 한창 요리 중인 중앙의 화롯가로 향했다.

“앗, 의진 님. 거의 다 됐습니다.”

“아니야. 나도 뭐 좀 만들어 보려고.”

“의진 님께서 직접이요?”

오늘 당번인지 국자를 들고 있던 헌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한 발 뒤로 비켜섰다.

“여기, 재료랑 도구들은 이것들 사용하시면 됩니다.”

“고마워.”

빈 냄비에 물을 채우고 뻑뻑하기로 유명한 몬스터 고기를 풍덩 빠트렸다.

‘아무래도 풀보다는 과일을 넣는 게 맛있겠지?’

불에 냄비를 올려놓은 채 어떤 재료를 넣을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구경 중이던 헌터가 주춤대며 내게 다가왔다.

“저녁을 직접 만드시는 겁니까?”

“응.”

“혹시 저희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준비와 재료 수급도 저희가 할 테니 의진 님은 주도만 해주시면…….”

“의진 님의 손길이 닿은 음식을 먹는다면 정말 영광일 거예요.”

“부탁드립니다!”

다들 지켜보고 있던 건지 우르르 몰려와 부탁하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커다란 솥과 주걱까지 맡아 버린 나는 내 앞에 구름처럼 몰린 헌터들을 보며 씩 웃음 지었다.

“그래, 나만 믿어!”

“와아아아!”

“강의진! 강의진!”

탑을 오르며 모아 놓은 재료도 많겠다, 능력 발휘를 할 생각으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사람이 많아졌으니 고기도 많이 넣고, 과일도 많이…. 아, 기왕 먹는 거 포션 효과도 나면 좋지 않을까?

기발한 생각에 손뼉을 짝 치고 인벤토리에서 이것저것 재료들을 꺼냈다.

회색 오크의 체액과 라이칸아카모프의 털 한 줌, 바위 버섯의 포자를 갠 잼과 동굴 이끼까지 넣으면 괜찮은 추가 옵션들이 나올 거다.

맛이 조금 쓸 수도 있으니 단맛을 내는 분홍 슬라임도 서너 개 넣어 주고…….

요리는 처음인데 이제 보니 포션 제작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처음 해 보는 거라 어쩌면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재능 있나 봐. 공방에서 음식도 팔아 볼까.’

즐거운 상상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냄비를 저었다. 암녹색 걸쭉한 스튜가 섞이면서 별 가루를 톡톡 튀겼다.

***

차례로 제로와 임단, 성산하가 그릇을 내려다보며 침음을 삼켰다.

“이건 뭘까요. 이런 게 제 그릇 안에 담겨 있다니 누군가의 음해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걸 설마 먹으라고 준 거냐…? 왜 이래, 장난치지 말고 밥 줘.”

“음…….”

“내가 만들었어. 빨리 먹어 봐!”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때 청이가 숟가락을 들고 첫입을 들었다. 특제 스튜를 입에 넣은 청이가 크게 움찔했다.

“……!”

“임청! 먹지 마, 이리 내!”

임단이 화들짝 놀라 그릇을 빼앗아 가려고 했지만 그릇을 사수한 청이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역시 사장님이 만드신 거라 그런지 맛……. 효과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나 애들한테도 주고 올게!”

뒤에 내 요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셋이 먹는 건 보지 못하고 서둘러 배급소로 돌아갔다. 나선 용기가 가상해 직접 배급해 주고 싶었다.

“이런 음식은 난생처음입니다….”

“와, 와……. 이건…….”

“…감사합니다. 의진 님.”

역시나 먼저 식사를 시작한 헌터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허억! 큭.”

“버프다……. 음식을 먹었더니 버프가 걸렸……. 우욱.”

“이건 음식이 아니야!!”

의아하게 돌아보자 절규하던 놈이 그대로 굳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응? 뭐라고?”

“그, 그게. 이건 음식의 한계를 뛰어넘은 대단한 작품이라는 뜻에서…….”

듣기 좋은 소리에 입꼬리가 씰룩였다.

거봐, 소고기보다 내가 만든 음식이 더 좋다니까.

“너, 다 먹으면 이리 와. 한 그릇 또 줄게.”

“아닙니다! 제발…….”

처음 해 본 요리라 양을 가늠 못해 몇 명을 앞두고 특제 스튜가 동나 버렸다. 제 앞에서 스튜가 끊기자 한 헌터는 눈물까지 보일 정도였다.

“…행이다…….”

“미안. 내일은 꼭 넉넉히 만들어서 너희는 두 그릇씩 줄게!”

다들 미친 듯이 스튜를 들이켜고 빈 그릇을 반납했다.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왜인지 조금 피곤해 보이는 성산하가 빈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멍멍아. 내일부턴 화로에 출입 금지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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