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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57화 (157/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57.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성산하가 피식 웃으며 내 손에서 국자를 가져갔다.

“귀한 손인데, 요리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다치면 포션 바르면 되지.”

“나만 먹고 싶다는 소리였는데, 다르게 말했어야 했나?”

“그게 무슨 소리…….”

뒤늦게야 놈의 말을 이해하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개, 개소리 하지 마! 네 앞에선 요리 다신 안 할 테니까!”

“그것 참 아쉬운걸.”

실실 웃는 얼굴을 노려보다 홱 등을 돌렸다. 결국 저녁은 먹지 못했으니 대충 건량으로 배나 채워야겠다.

돌아가는데 뒤를 졸졸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우뚝 발을 멈추니 뒤따르던 발걸음 역시 따라 멈췄다.

“왜.”

까칠하게 물으며 돌아보자 뒤에서 휙 뭔가가 날아왔다. 얼떨결에 낚아챈 것은 작은 종이 봉투였다. 접힌 입구를 펼쳐 내부를 확인하니 사과와 바나나, 빵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저녁 안 먹었잖아. 가져가라고.”

“고맙다, 근데 이걸 어떻게….”

던전에 들어온 지 오래 지나 이런 식료품이 남아 있을 리가 없는데. 혹시나 하고 종이봉투를 살펴보자 중간에 작게 새겨진 글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워낙 효율성이 떨어져 보급화되지 않은 일회성 보관 아이템이었다. 따자마자 상하는 아주 귀한 재료들이나 전투 중 절단된 신체를 잠시 보관하는 용도로나 사용하지 누가 이 비싼 아이템에 사과 같은걸…….

황당하게 입을 열려던 때, 성산하의 뒤로 다급히 달려오는 천랑 길드원이 보였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무슨 일이지?”

“16층에 새로 진입한 헌터 무리가 있습니다. 9인 파티로 추정됩니다.”

성산하의 미간이 좁혀졌다. 손에 쥐고 있던 종이 봉투를 인벤토리에 급히 집어넣고 성산하에게 다가갔다.

“사이비일까?”

“보면 알겠지. ……지금 어디쯤 왔는지는 알아냈나?”

“계곡을 지나고 있다고 합니다.”

“김여진 헌터 보내서 이쪽으로 인도해.”

“네!”

그들이 올 때까지 베이스캠프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대놓고 모습을 드러냈으니 사이비가 아닐 거라는 의견이 우세했으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을 데리러 간 김여진 헌터가 돌아왔다. 그 뒤로 투덜대는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러니까 우리가 왜 천랑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냐고. 여기 전세라도 냈습니까?”

“입장도 막더니 중간층도 점거라니…….”

“점거라뇨…. 문제가 있어서 잠시 협조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문제냐고요.”

“뻔하지. 17층부터는 고속도로잖냐. 자기들이 먼저 20층 뚫으려고. 안 그래?”

한껏 이죽거리는 목소리들이 재수 없어 거칠게 귀를 털어 냈다.

“예상했지만, 아무래도 사이비는 아닌 것 같지.”

“……다행인 일이지만 사이비들이 무슨 짓을 해 뒀을지 몰라 위험하니 20층까지는 함께 움직여야겠어.”

“지금도 존나 투덜대는데, 과연 순순히 합류할까.”

저놈들에겐 내 요리 안 줘야지.

역시나 나무 뒤에서 얼굴에 한껏 불만을 그린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짱 낀 채 놈들을 바라보는데 무리에 섞인 두 여자의 얼굴이 익숙했다.

“어?”

예전에 대청호 던전에서 만난 적 있던 헌터들이었다. 이름이 효영과 이재아였던가.

그만하라며 투덜대는 남자의 발을 꾹 지르밟던 효영이 착잡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 당신! ……강의진!”

하긴, 지금쯤 바깥에는 ‘강의진’이 탑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졌겠지만 우리와 같은 시기에 탑에 들어온 헌터들에게까진 닿지 못했을 거다.

효영이 이재아의 팔을 잡아 흔들어 나를 손가락질했다. 이재아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을 들어 인사하려던 때, 헌터 등록증을 내밀었던 헌터가 도로 빼앗아 가며 쏘아붙였다.

“여기, 헌터 등록증 확인했으면 됐죠. 저희는 이만 갑니다.”

“17층부터는 동굴 지형이 이어집니다. 16층에서 채비하고 가는 게 나을 텐데요. 이후부터는 저희와 함께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천랑 길드원의 말에 헌터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요? 우리가 왜 천랑이랑 움직여요?”

“그건 권유입니까, 강요입니까.”

“우리가 먼저 20층에 갈까 봐 견제하는 거라니까?”

“설마요. 그저 서로의 안전을 위해 드린 제안일 뿐입니다. 거부하신대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이후로 계속 마주칠 텐데,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은 만들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이런 씨…. 협박 맞잖아!! ”

아무래도 인사를 나눌 분위기는 아니네.

저 헌터들이야 먼저 가든 합류하든 알 바 아니었지만 소란이 잠재워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 옆에 서 있던 성산하의 팔을 툭 치고 말했다.

“나 먼저 들어간다.”

“그래. 저녁 챙겨 먹고 있어.”

“어어. 고맙다.”

손을 흔들고 등을 돌렸다.

***

어떻게 설득을 했는진 몰라도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헌터들은 후미에 합류한 상태였다. 천랑과 소수의 S급들을 포함한 우리 일행 뒤로 개인 파티, 녹스가 줄줄이 소세지처럼 따라붙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산자락에 있는 워프를 통해 17층으로 넘어가자 온 사방에 기암괴석이 드리운 동굴이 나타났다.

“17층부터 20층까지는 계속 동굴 내부야. 몬스터들의 세기가 강한 대신 워프 간 거리는 멀지 않아 전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 거야.”

하루 만에 6층을 주파한 첫날과 달리 탑을 오를수록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었기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벌써 탑에 들어온 지 이주가 지난 시점이라 하루빨리 20층 문을 열어 내고 공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설마 문 여는데 좆같은 퀘스트 같은 게 뜨진 않겠지? 그땐 내 알 바 아니라고 하고 공방으로 튀어야지.’

동굴 내는 지형도 험한데다 몬스터들이 강해 베이스 캠프를 설치할 만한 곳이 없었다. 서로 불침번을 세우고 얇디얇은 담요 한 장에 의지해 잠을 자야 했다.

딱딱한 돌바닥에 누우니 잠도 오지 않고 내 침대 생각이 간절해졌다.

‘으으……. 불편해.’

몸을 뒤척이다 옆을 돌아봤다.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앉아서 잠에 든 성산하가 보였다.

잠도 오지 않는 거, 그냥 자지 않을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앞의 바위 위에 앉아 정체 모를 가죽을 다듬던 제로와 눈이 마주쳤다.

“이 야밤에 어디 가십니까? 혹시 녹스 길드장을 독살하려고…….”

“개소리 마.”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덮고 있던 담요를 성산하 위에 덮어 주자 놈이 슬며시 눈을 떴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 가.”

“잠 안 와서 미리 교대하려고. 더 자. 아직 우리 순번 아니야.”

옷에 묻은 흙을 털고 바깥에서 교대하던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툭툭 치자 둘이 놀라 돌아봤다.

“누구…. 아, 의진 님. 벌써 오셨습니까?”

“이만 가서 자. 내가 볼 테니까.”

“아닙니다. 아직 의진 님 순번도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의진 님은 S급 헌터분들과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지시가 있어서요.”

“나 혼자 아니…….”

“들어가 봐도 좋아.”

“아…! 길드장님!”

더 자라니까 굳이 따라 나온 성산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천랑 놈들은 성산하가 말하자 곧바로 꾸벅 인사하고 돌아갔다.

“더 자라니까 뭘 따라 나오냐.”

“혼자 두기 싫어서.”

“쳇, 혼자는 무슨. 제로 안 자고 있는 거 너도 알았잖아.”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을 제로를 가리켜 말하자 성산하가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래. 아는데, 혼자 두기 싫어서. 여긴 어둡고 춥잖아.”

“난 그딴 거 안 무서워하거든.”

“…멋진데.”

“……졸리면 뒤에서 좀 쉬고 있던가.”

왜 따라 나와서 헛소리야.

억지로 성산하를 눕힌 채 나도 옆에 주저앉았다. 인벤토리에서 피로회복 포션을 꺼내다 흘깃 성산하를 바라봤다. 눈은 감고 있으나 자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요즘 잠을 설치는 것 같아 보이긴 했지.’

피로회복 포션은 몸에 쌓인 피로를 날리고 활력을 돌게 만드는 물약이었다. 일종의 각성제나 다름없어 잠을 잘 수 있는 상태라면 그냥 잠을 자는 게 나았다. 고민하다 성산하 몰래 주위에 안정제를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든 성산하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성산하가 잠에 든 이후에야 나는 피로회복 포션을 꺼내 그대로 쭉 들이켰다. 역시 내가 만든 포션이라 그런지 먹자마자 정신이 또렷해지고 전신에 힘이 넘쳐흘렀다.

“좋아 보이십니다. 사장님. 저도 복지 없습니까?”

“……받아.”

제로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에 포션을 홱 던졌다.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름 불침번이긴 하니까 주위 경계를 해 볼까.

단도를 꺼내 쥐고 말똥말똥 어둠 속을 바라보는데 제로의 속삭임이 들렸다.

“사장님. 손님이네요.”

“손님?”

뒤를 돌아보자 잠든 사람들 틈에서 일어난 효영과 이재아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니 더욱 속력을 내 다가왔다.

“저, 아… 안녕하세요.”

“다른 때는 틈이 없어서 인사를 못 드렸어요. 혹시 저희 기억하세요? 저는…….”

“알아. 사이덴 길드의 효영이랑 무소속 이재아.”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하자 둘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기억하실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저희 다른 길드로 이적했어요. 이제는 사이덴이 아니라 도토리 길드예요.”

“엑, 도토리? ……흠흠, 미안. 이름 귀엽네.”

표정 관리를 실패해 오만상을 찌푸렸다가 급히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둘이 작게 웃다 이재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때 저희에게 도움 주신 분이 포션 마스터 강의진인 줄은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당연하지. 그때는 비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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