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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58화 (158/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58.

“돌아오셨다는 뉴스를 봤어요,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때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요.”

“감사는 무슨…….”

물론 그때 그 팀이 돌아가란 말도 듣지 않고 따라와서 사람을 존나 피곤하게 만들긴 했지만 애초에 실력이 없던 놈들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파동의 변화 때문에 던전의 난이도가 변해 화를 입은 거지.

둘의 뒤로 보이는 헌터들을 흘깃 바라봤다. 저번에 본 그 녀석들이다. 놈들을 턱짓하며 물었다.

“도토리 들어갔다면서 왜 아직도 같이 다녀?”

“퀘스트를 같이 하는 중이에요. 아직 저희 길드가 소규모라 함께하게 되었는데…….”

아까의 마찰이 떠올랐는지 효영이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이재아 역시 작은 목소리로 죄송해요, 하고 속삭였다.

“뭐, 상관없어. 여기서나 조심하라고.”

“걱정 마세요! 그날 사건 이후로 인벤토리에 생존 아이템들을 가득 들고 다닌다구요.”

“무리해서 좋은 포션도 많이 사 뒀어요. 요즘 유명한 건데, 비상 포션 세트 12종…….”

“뭐? 포션 세트?”

“아, 물론 의진 님 포션만큼이란 소리는 아니지만…….”

포션 세트면 같은 종류끼리 어떻게 묶는다고 해도 인벤토리를 몇 칸이나 차지할 텐데. 일상용도 아니고 쓸지 안 쓸지도 모르는 비상 포션을 몇 개씩이나 들고 다니다니 완전히 호구잖아?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둘이 안절부절못했다. 잠시 고민하다 풀썩 주저앉아 말했다.

“던전에서 재료 구한 것 좀 있어?”

“네? 있긴 한데 그건 왜…….”

“다 꺼내 놔 봐.”

손을 까딱이자 효영과 이재아가 인벤토리에서 잡다한 재료들을 주춤주춤 꺼내 앞에 늘어놓았다. 이해 못할 표정으로 바라보던 둘의 눈이 내가 이동식 제작 도구들을 꺼내 펼치자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건 왜……. 서, 설마.”

“이게 다야? 너무 적어서 몇 개 만들지도 못하겠다.”

투덜대며 앞의 재료들 중 필요한 걸 몇 개 골라 가져갔다.

위험한 곳이니 자질구레한 옵션들은 필요 없겠지. 저 둘은 약하니까 포션에 스왈론의 포자를 좀 넣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 대충대충 재료를 넣고 휘젓다 ‘황금 솥’을 사용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각각 세 병씩, 두 가지 종류의 포션이 완성됐다.

효영에게 셋, 이재아에게 두 개를 슥 밀자 여태껏 눈을 떼지 못하던 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걸 다 저희 주시는 거예요?”

“너는 이거 둘, 나머지 둘은 이재아…. 근데 둘이 몇 살이야?”

나이는 잘 맞추는 편인데 이번엔 유독 가늠이 가지 않아 의아하게 묻자 이재아가 살포시 웃으며 답했다.

“서른셋이요. 효영이랑 저랑 열두 살 때부터 친구예요.”

“……이쪽 둘은 누나 거.”

“어머.”

***

효영과 이재아가 떠나고 다시 바위에 걸터앉자 종이학이 하나 날아왔다. 팔랑팔랑 날아오는 것을 향해 손을 뻗자 내 손바닥 위에 안착하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의아하게 펼쳐 보자 소름 끼치는 문구가 써 있었다.

「저도 서른셋인데 ^^ 후후후….」

“아, 씨발.”

손안의 종이를 와작 구겨서 바닥에 던졌다. 어둠 속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제로와 성산하와 같이 있다고 생각하니 저 칠흑 같은 어둠도 불안하진 않았다. 단도를 허공에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며 놀다 보니 교대 시간이 됐는지 두 명의 헌터가 올라왔다.

인사를 하고 아래로 내려가자 곤히 잠에 든 성산하의 모습이 보였다. 놓고 갈까 하다 재워 버린 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놈을 번쩍 들쳐 멨다. 번쩍이라기엔 발이 질질 끌리긴 하지만…….

“…윽, 존나 무겁네.”

아래 밟히는 놈들을 대강 발로 밀어 내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누가 왔다 간 건지 아래에 까는 담요가 구겨져 있었다. 옆에 성산하를 대충 기대 앉혀 놓고 아래를 정리하고 성산하 옆으로 갔다.

기상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불침번을 서고 와서 그런가 딱딱한 바닥에서도 이젠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하품을 하고 눈을 감는데 어깨 위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하아아암…… 어?”

눈을 뜨니 성산하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내 쪽에서 내려다보니 유독 높은 콧대와 색이 밝은 촘촘한 속눈썹이 잘 내려다보였다.

나도 모르게 움찔대던 손을 들어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속눈썹을 건드렸다. 내가 만지고도 놀라 흠칫 손을 거두다 깊게 잠든 놈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손을 뻗었다.

“……성산하.”

속삭이듯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며 손을 내렸다. 반듯하고 높다란 콧대를 지나 일자로 다물린 놈의 입술이 손끝에 닿았다.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다. 키스까지 했는데도…….

씨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 자신이 황당해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다 성산하의, 사나의 얼굴에 홀린 탓이다. 놈의 매끈한 얼굴에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성산하에게서 사나를 겹쳐 보는 일도 그만해야 해.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결심했다. 성산하에게 보육원 일을 밝히지 않기로. 대신 그 답은 태제헌에게 들을 생각이다.

언젠가 놈의 모든 걸 빼앗고 내 발밑에 꿇려 놓은 채 애들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봐야지. 뭐, 어떻게 복수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그 새끼는 죽지도 않고 100살까지 살 테니 시간은 많은 셈이었다.

‘이제 진짜 자야지.’

손을 거두려던 때 덥썩 손목이 잡혔다. 생각도 못했던 상황에 돌아보자 나를 빤히 바라보는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더 하지. 왜.”

“…무, 무슨 개소리야? 언제부터 일어난 거야?”

“글쎄, 처음부터? 이런 류의 약효는 거의 들지 않거든.”

성산하가 가볍게 목을 풀며

“그래도 살짝 잠들 뻔했어. 마스터의 칭호가 괜히 붙은 건 아니군.”

“씨발, 깨 있었으면서 자는 척은 왜 한 건데?”

내가 또 뭘 했더라? 사나라고 부른 건 아니겠지.

흔들리는 동공으로 성산하를 바라보며 소리치는데 시끄러웠는지 주위 헌터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길드장님? 왜 안 주무시고…….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 일 없다고 손을 내젓곤 내 머리 위로 담요를 덮어 씌운 성산하가 고개 숙여 말했다.

“돌아가서 보자.”

“지랄, 돌아가면 너는 공방 출입 금지야. 너도 티켓팅해서…….”

툴툴대던 목소리는 입가에 꾹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 더 이어지지 못하고 쏙 들어갔다. 성산하의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 빛났다. 호선을 그린 입술이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속삭였다.

“돌아가서, 보자.”

***

해도 들어오지 않는 동굴 내부에서 며칠이나 보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짜증 나고 힘든 일이었다. 빨리 끝내고 아늑한 공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모두들 마찬가지였는지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헌터들의 손길이 전보다 훨씬 거칠어졌다.

워프 간 거리가 짧기도 했지만 다들 속도를 낸 덕에 예상보다 하루빨리 19층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또 실수했다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한 번 당해 봐서 그런가 던전 리셋을 두려워하는 헌터들이 주춤대며 눈치만 봤다.

19층의 끝에는 고개를 한껏 쳐들어도 한눈에 담기지 않는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석문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빼곡했다. 보기에는 마법진 같은데, 아무런 파동도 느껴지지 않고 빛나지도 않는 것이 오면서 몇 번이나 발견했던 폐쇄된 워프와 닮아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문자들을 노려봤다.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저 글자들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지. 단순히 내가 똑똑할 뿐인 건가?

“이게 워프라고? 작동하는 건 맞아?”

“저길 봐.”

의심스럽게 묻자 성산하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끝이 향한 곳에는 이상한 문양들 사이로 흐릿하게 새겨진 하말의 문양이 보였다. 성산하가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못 찾았을 거다.

“와…. 저걸 어떻게 찾았냐?”

“밤눈이 밝은 편이라.”

성산하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후로 카스토르나 다른 별자리들의 문양이 있는지 한참을 더 찾아보다 포기했다. 뭐, 있었다면 눈 좋은 성산하가 찾았겠지.

하말의 문양은 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문을 열면 되는 건가?

성산하에게 방법을 묻자 그 역시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고어 해석에 특화된 학자들과 탐험가들을 몇 데려왔어. 숨겨진 퀘스트나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안 되면 네가 열어 봐야겠지.”

“뭐? 하지만 그러다가 또 튕기면?”

“다른 방법이 없잖아.”

20층까지 오는 데 거의 삼 주가 걸렸다. 그 짓을 다시 한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눈앞이 노래졌다.

‘제발 진입 퀘스트 떠라, 제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문 근처를 수색하는 놈들을 노려봤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도 없었다.

“길드장님. 어떠한 파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다가와 보고하던 김여진 헌터가 흘깃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나는 욕을 짓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프 앞에 이리저리 퍼져 대기하던 헌터들의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젠장……. 존나 부담스럽네.”

“부담 갖지 마. 다시 하면 되니까.”

“위로랍시고 하는 소리냐? 다시 오는 게 좆같다고.”

똥 씹은 표정으로 문으로 다가갔다. 눈 감았다 뜨면 던전 밖이어도 놀라지 말자고 다짐하며 손을 뻗는데 다리 근처에서 푹신한 감각이 느껴졌다.

“으엥?”

아래를 내려다보자 구름이가 맑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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