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59.
“메에-”
“야…! 구름이, 너 나오면 어떻게 해?!”
지금 여길 보는 눈이 수십인데……! 당황해 구름이에게 손을 뻗는데 등 뒤에서 헌터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저건 뭐지? 소환수인가?”
“세상에, 너무 귀여워-!”
“강의진의 소환수면, 스킬이 아니라 아이템이겠지?”
이미 늦었다. 모두 구름이를 보고야 말았다. 구름이가 나올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터라 더 당황스러웠다. 내 마음도 모르고 구름이는 귀여운 눈으로 멀뚱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
“메에에!”
“어서, 이리 와. 응?”
‘저 문에 관심이 있나.’
나와 앞의 문을 번갈아 보는 구름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어서 들어오라 손짓하는데 눈을 꿈뻑이던 구름이가 그대로 문을 향해 돌진했다.
“안 돼! 구름아!!”
다급히 붙잡았지만 구름이가 문에 앞발을 척 올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파동이 느껴졌다. 웅- 웅- 하는 진동음이 동굴을 울리고 발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비해! 또 튕겨 나간다!!”
“젠장, 다들 이리로 모여!”
혼비백산한 헌터들의 비명에도 나는 그대로 멈춰 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이의 발이 닿은 곳에서부터 푸른 빛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돌에 새겨진 문자들이 푸르게 빛나며 서서히 박동하기 시작했다. 마법진이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성산하가 신기한 표정으로 문을 매만졌다.
“정말 하말일 줄이야…….”
“구름이가 답이 맞았나 봐.”
“생각보다 과격하던걸.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긴장할 정도였어.”
“나도 존나 놀랐다고.”
심장 떨어질 듯한 느낌이 잊히질 않아 한숨 쉬며 답하자 구름이가 문에 발을 댄 채 나를 돌아봤다.
“메.”
그저 당당한 표정에 결국 웃음이 터져 무릎을 꿇고 앉아 구름이를 마구 쓰다듬어 줬다.
한껏 긴장하고 있던 헌터들은 시간이 지나도 던전에서 튕겨 나가지 않자 이상함을 느끼고 이쪽을 바라봤다. 문 전체가 빛나며 가동된 워프를 그제야 발견했는지 흥분해 우르르 몰려왔다.
“문, 문이 열렸어!”
“드디어……! 빨리 가자!”
“멈추세요! 대열 정비하고 진입하겠습니다!”
진입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다 구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구름아. 수고했어. 이제 들어와. 또 함부로 나오면 그땐 진짜 혼난다.”
“메에, 메.”
구름이가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발목에 머리를 콩 박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구름이는 바깥에 선 채로 있었다. 구름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금 내 문양에 머리를 갖다 댔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그대로였다.
“메……?”
구름이가 갸우뚱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나라고 별다른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문양은 그대론데, 갑자기 왜 이러지?’
흘깃 뒤를 본 성산하가 말했다.
“우리만 있다면 모를까, 오래 지체하긴 힘들 것 같은데.”
“젠장, 위험한데…….”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수도 없고, 이대로 날 따라오게 두기엔 너무 위험해 결국 구름이를 들어 안았다. 내 품 안의 구름이에게 꽂히는 시선들이 따가웠다. 저들끼리 소곤대는 목소리 중 ‘하말’, ‘성좌’ 등의 단어들이 들려왔다.
“금방 돌아가니까 조금만 참자. 구름아.”
20층으로 올라가, 일반 헌터들의 진입이 가능한 것만 확인하면 내 역할은 끝난다. 성산하가 공방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으니까…….워프가 가동된 것을 보고 일행들이 다가왔다. 청이가 신기한 표정으로 구름이와 눈을 마주하며 중얼거렸다.
“이게 하말인가 보군요.”
“응. 귀엽지. 쓰다듬어 볼래?”
“청이한테 위험한 거 권유하지 말아 줄래? 물기라도 하면 어떡해.”
임단의 헛소리에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야. 우리 청이 S급이야.”
“누가 ‘우리’ 청이야? 사장 주제에.”
투덜대는 임단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곤 아까부터 구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던 청이에게 다가갔다.
“구름이 진짜 착해. 안아 봐도 돼.”
“아, 아닙니다. 너무 작아서 부셔질…. 다치기라도 할까 봐…….”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치는 청이에 반해 제로는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다가왔다.
“신기하네요. 하말의 정체가 이런 조그만 동물이었다니.”
제로가 구름이의 폭신한 털을 콕콕 찌르며 중얼거렸다. 구름이가 귀찮다는 듯 귀를 펄럭이다 하지 말라며 이를 딱딱대기까지 했다.
구름이를 다시 안으며 말했다.
“혹시……. 혹시 모르지만, 놈들이 성좌를 노리고 습격한다면 구름이도 보호해야 해. 알겠지?”
“네. 사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후후. 우리는 들기 번거로울 것 같고, 슬링 백이라도 좀 드릴까요?”
제로가 제 인벤토리에서 가방 같은 것을 꺼내 건넸다. 구름이를 안느라 두 팔을 못 쓰는 것 보단 낫겠지만 대체 이딴 걸 왜 들고 다니는지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어, 뭐. 고맙다.”
옆으로 매는 흐물흐물한 가방은 유연해 구름이가 들어가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구름이가 자리 잡는 것을 돕는데 앞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20층으로 가는 문이 열린 것이다. 문 안쪽으로는 파동이 소용돌이치는 새카만 어둠이 보였다.
성산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갈까?”
콧방귀 뀌고 발을 내디뎠다, 물론 어떤 위험이 우리를 기다릴지 모르니 임단을 앞세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온몸을 감싸는 파동의 흐름을 통과하자 눈앞에 전혀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으엥? 이게 다야?”
여태껏 던전을 주파하며 20층은 과연 어떤 공간일지. 산, 평원…. 아니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특이한 공간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20층은…… 그저 거대한 홀이었다.
우리 뒤로 속속들이 도착하는 타 헌터들 역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여기는? 몬스터도, 아이템도 없는데?”
“중간 지점인 건가……. 어차피 잘됐어. 다른 층으로 넘어가면 돼.”
놀람도 잠시, 몬스터가 없는 던전은 드물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 다들 익숙하게 다음 층으로 통하는 워프를 찾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20층이 허탕일 게 뭐람. 다음 층까지 확인해야 하잖아.’
그저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인 나는 한쪽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축구장 몇 개는 들어갈 정도로 뻥 뚫린 거대한 공동은 기괴한 조각과 이해하기 어려운 고어들, 마법진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여전히 암벽들로 둘러싸인 것으로 보아 이곳 또한 동굴로 이어진 던전인 듯했다. 하나 이상한 점은 중앙에 커다랗고 높은 제단이 있다는 건데…….
누군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내려다보자 구름이가 내 옷자락을 물고 있었다.
“구름이, 왜. 불편해?”
“메에…….”
힘없는 울음소리에 걱정스레 바라보자 구름이가 흐물흐물한 가방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댔다. 꺼내 품에 안자 그제야 잠잠해진 구름이는 내 가슴에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그래, 너도 피곤했겠지. 좀 자라.”
허공에 뜬 발을 흔들며 누군가 워프를 찾았다 외치기를 기다렸다. 방해물도, 몬스터도 없으니 워프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한 시간, 세 시간. 반나절이 지나도록 워프를 찾았단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헌터 수십이 온 수단을 동원해, 심지어 녹스 길드원 놈들까지 돌아다니며 20층의 쥐구멍 하나까지 다 훑었는데도 워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임시로 천막을 치고 간이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 나는 내 복귀가 늦어진단 소리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못 찾았다고? 혹시 여기가 마지막인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습니다. 보스 몬스터가 나오거나, 보상을 주지도 않았잖아요. 스테이지형 던전의 마지막이라기엔 너무…….”
천랑 놈 하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저었다.
온 사방을 다 훑었기에 더 이상의 조사는 의미가 없었다. 남은 건 제단과 동굴 곳곳에 새겨진 고어들.
성산하 역시 제단 근처에서 함께 왔었던 학자와 탐험가들이 고어를 해석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구름이를 가방에 넣고 일어나 성산하에게 다가갔다.
“어때, 진척은 좀 있어?”
“알아보는 중이야.”
고개를 저은 성산하가 피식 웃으며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미안. 빨리 돌아가고 싶을 텐데. 답답하지.”
“……뭐, 워프가 없는 걸 어떡하냐.”
툴툴대며 돋보기로 문자를 해석하는 학자들과 탐험가들을 돌아봤다. 스킬을 쓰는지 탐험가의 손 아래 글자들이 은은하게 빛났다. 그 탓인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글자들이 또 익숙하게 느껴졌다. 대체 어디서 본 건지 곰곰이 생각하던 때, 저 반대편에 있던 학자가 종이를 들고 달려왔다.
“이쪽 라인 해석 마쳤습니다. 몰락, 별. 그리고 완성된 하나의 존재입니다.”
“별…의 몰락?”
“북서쪽 고어들도 해석 마쳤습니다. 다만 모두 저주에 관한 내용이라 워프와 관련이 있을지는…….”
각자 자기가 맡은 구역을 해석한 학자들이 가지고 온 내용은 모두 껄끄러운 내용이었다. 인간에 대한 짙은 저주심이라든가, 몰락과 파괴. 재생성 이딴 내용들뿐이었다. 특히나 자주 나오는 ‘별’과 관련된 단어들에 나도 모르게 옆구리에 매고 있던 구름이를 꼭 껴안았다.
그런데 우리 아래쪽에서 스킬을 사용해 제단을 읽던 탐험가가 벌떡 일어났다. 구름이가 부딪히지 않게 하려다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는 것을 성산하가 손을 뻗어 잡아 줬다.
“어엇.”
“제물! 제물입니다. 뭘 바쳐야 하나 본데요?”
그때 눈앞에 황금빛 퀘스트창과 시스템창이 동시에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 }
별을 올려보내시겠습니까?
넘어지지 않으려 급히 버텨선 곳이 제단의 계단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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