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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60화 (160/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60.

몇 달간 잠잠하던 메인 퀘스트가 드디어 활성화되었지만 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시스템창에 적힌 문장.

“뭘…, 뭘 올려 보내?”

바보도 아니고 시스템창이 말하는 ‘별’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좆 까!”

구름이를 꼭 껴안으며 뒷걸음질 쳤다. 내가 제단에 발을 들여서 활성화된 게 분명한데, 물러났음에도 시스템창은 나를 졸졸 따라왔다.

성산하가 내게 손을 뻗었다. 팔에 닿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 놈의 팔을 내쳤다.

“의진아…?”

“안 돼. 구름이는…. 구름이는…….”

제대로 완성된 문장이 아님에도 단번에 알아챘는지 성산하가 내 어깨를 감싸 뒤로 끌어당겼다.

“괜찮아. 진정하고 일단 뒤로 나와.”

“씨발…. 자꾸 따라온다고.”

이제는 시스템창이 경고하듯 위험한 붉은색으로 깜빡거리기까지 했다.

「별을 올려보내시겠습니까?」

「별을 올려보내시겠습니까?」

「별을 올려보내시겠습니까?」

“기, 길드장님! 제단이……!”

사람들의 비명과 동시에 제단에서 검은빛이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검은 빛줄기들은 꼭 자아를 가진 촉수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다 한꺼번에 날 향해 쇄도했다. 성산하가 급히 내 앞을 막아섰지만 쉴드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침입한 촉수들이 내 품 안의 구름이를 덮치는 게 먼저였다.

“월! 월월!”

어디선가 달려온 룬이 온몸으로 부딪혀 나를 쓰러트렸다. 구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자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위협적이게 내리꽂히는 검은 덩어리들이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구름이가 무사한지 확인하려던 때, 구름이의 이마 위에 거머리처럼 늘어진 검지손가락만 한 검은 덩어리를 보고 기겁해 소리쳤다.

“구름아!!”

“메에에에!”

떼어 내려 했지만 내 손이 닿기도 전에 빛으로 화하며 구름이와 제단을 연결했다. 구름이에게 꽂힌 빨대 같은 것을 잡아 빼내려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빛으로 만들어진 것이 잡힐 리가 없었다.

「별을 올려 보내시겠습니까?」

“안 돼. 안 돼, 씨발!! 구름아. 다시 들어가. 어? 너 할 수 있잖아.”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구름이의 형체가 점점 흐려졌다. 품 안의 무게감이 줄어드는 좆같은 기분에 얼어붙어 구름이의 눈만 바라보는데 갑자기 우레와 같은 찢어지는 소리가 대기를 울리더니 모두의 눈앞에 같은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제물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종속을 해지해 주세요.」

다시 묵직하게 품에 안겨 오는 구름이를 꼭 껴안는데 붕 뜨는 기분과 함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큭!”

“아야야…….”

“나와! 내 다리를 깔고 앉았잖아!”

사방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는 다시 20층으로 올라가기 전 문 앞으로 튕겨져 나온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물이라니? 또 제물을 준비해 와야 하는 거였어?”

헌터들 사이에서 불만과 의아한 의문들이 터졌다. 성산하가 작게 속삭이며 지나갔다.

“하말 숨겨.”

성산하의 말에 급히 가방을 여며 구름이를 감췄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며 제물과 제단에 대한 조사를 선행한 후 재진입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었다. 혹시 다른 헌터들이 제물과 구름이를 연관 짓기라도 할까 봐 구름이를 품에 안은 채 꼭꼭 감추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가 확 밝아지는가 싶더니 정수리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천장으로 고개를 드니 우리 쪽을 향해 날아오는 여러 개의 불덩어리들이 보였다.

“큭, 공격이다!!”

사방에서 방어 스킬들이 펼쳐졌고 내 머리 위에도 익숙한 쉴드가 보였다. 불덩어리는 쉴드에 닿자마자 쾅 하는 소리를 내며 터져 산산이 흩어졌다.

“습격이야!”

“이 치사한 새끼들! 동굴에서 범위 스킬을 써?”

열받은 표정을 한 임단이 허공으로 도약했다. 살을 에는 듯한 냉기와 함께 솟아오르는 얼음을 밟고 뛰는 모습이 야차 같았다. 곧 임단이 사라진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존나 세네.’

무기를 꺼내든 청이가 내 앞을 막아서며 경고했다.

“사장님. 놈들입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차 공격이 이어지고 이번엔 쉴드가 박살 났다.

“강의진!!”

성산하가 제게 달려들던 적을 로드로 후려치고는 내게 달려왔다. 성산하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해. 내가 엄호할 테니 둘과 함께 아래로 내려가. 4개 층만 내려가면 10층까지 일방향 워프 지점이 있으니까 곧장 그리로…….”

“성산하 너는?”

“놈들만 처리하고 바로 따라갈게. 지금은 너와 하말이 표적이니까. ……응? 어서.”

S급인 놈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허리를 두드리는 성산하를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다쳐서 오면 죽는다.”

“그럼 우리 의진이가 포션 만들어 주면 되겠다.”

“지랄. 직접 치료해.”

“사장님, 지금입니다!”

제로의 외침에 서둘러 앞의 헌터들이 열어 준 길을 향해 뛰었다. 남은 성산하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뒤에서 동굴 전체를 밝힐 정도로 밝은 빛이 크게 번쩍였다.

청이가 길을 뚫고 제로의 엄호를 받으며 18층으로 내려가는 워프를 향해 달리는데 옆에서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검은 로브로 얼굴을 가린 놈들이 처음 보는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저게 뭐야……?”

아까 제단에서 나왔던 검은 촉수와 꼭 같은 모양의 기운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발을 멈추고 좀 더 자세히 보는데 청이가 다급히 내 팔을 잡아끌었다.

“사장님! 가야 합니다!”

“아, 응!!”

시선을 돌리던 차 저 멀리에 있던 태제헌과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얼굴로 무기를 휘두르던 태제헌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 들어 나와 눈을 맞췄다.

먼저 시선을 돌린 건 나였다. 바삐 달려 워프 앞에 다다른 순간 발아래 땅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곧 머리 위로 커다란 바위가 떨어졌다.

내 팔을 잡아끈 제로 덕에 바위에 압사당하는 건 면했지만 코앞으로 스친 바위에 절로 몸이 굳었다.

‘씨발. 이래서 던전이 싫다니까.’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장님. 무사하십니까?”

“응. 괜찮아. 빨리 가자……. 어? 어어?”

내가 서 있던 자리. 그러니까 정확히 워프 위로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져 있었다. 바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진 워프 조각이 처량했다.

“뭐야, 이거. 워, 워프가……. 이거 어떻게 해?”

바위틈을 살피던 제로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던전 리셋 전까지는 어림도 없겠어요.”

“그럼 우리 여기 갇힌 거냐?”

커다란 바위들이 떨어지는 천장을 바라보며 구름이를 껴안았다. 던전 리셋이고 뭐고, 그 전에 압사당하겠는데.

“여기는 복잡하니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피하죠.”

“안전한 곳이 있긴 있냐고!”

“흠, 그렇네요. 정정하겠습니다.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피하죠.”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바위들이 떨어지며 일으킨 진동을 타고 또다시 동굴 천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결대로 갈라진 암석들이 아래로 추락했다.

“피해!!”

굉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천장에서 추락한 것이 그대로 벽이 되어 공간을 갈랐다. 비명을 지르는 헌터들이 이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퇴로는 하나뿐입니다. 직진하시죠.”

이후는 정신없는 달리기의 연속이었다. 길이 한 방향밖에 없으니 우르르 같은 곳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놈들이 노리는 것은 나와 구름이였기 때문에 아무리 달려도 내 뒤만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함께 달리던 헌터들이 점점 사라지고 어느새 주변엔 제로와 청이, 그리고 처음 보는 두 명의 헌터만이 남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지치지도 않고 뒤를 쫓는 검은 촉수들을 돌아보며 짜증스레 소리쳤다.

“대체 저건 뭐야?”

“죄다 같은 힘을 쓰는 걸 봐선 어디서 불법으로 습득한 공용 스킬이나 아이템 같은데요.”

일반적인 몬스터들과 달라 그런지 S급들의 공격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질긴 놈들이었다. 동굴이 무너지면 죄다 죽은 목숨인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범위가 넓고 위력이 강한 공격들을 남발해 대 막아 내기 까다롭기도 했다.

결국 앞장서 달리던 한 헌터가 멈춰 서더니 우리에게 소리쳤다.

“저 새끼들은 내게 맡기고 먼저 가!”

“고맙다.”

청이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지나쳐 갔다. 헌터가 뒤를 향해 손을 뻗자 순식간에 사방에서 가시 돋힌 식물들이 자라나 벽을 만들었다.

역시나, 아까부터 예상했지만 보통 헌터가 아니라 날 따라왔다던 S급들인 게 분명했다.

그러나 거머리처럼 집요한 추격과 처음 보는 기이한 힘. 정면승부라면 모를까 나와 구름이를 보호하며 그것들을 완전히 따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긴 우리가 막을 테니 왼쪽 길로 달려!”

“이번엔 제가 나서 보죠.”

“……사장님 제대로 보호해라.”

결국 청이까지 사라지고 제로와 둘이 남은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존나 넓네. 숨을 곳은 많아 다행인 건가.”

“지금까진 워프 사이 최단 거리로만 이동했으니까요.”

제로와 나, 둘 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청이는 무사할까, 성산하와 임단, 다른 헌터들과 태제헌까지. 죄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 죽겠다. 지금 남 걱정할 때는 아니다만…….

가방 안에 축 늘어진 구름이를 다시 단단히 껴안는데 제로가 흐음…. 하며 의미심장한 소릴 내더니 갑자기 전에 봤던 종이학들을 허공에 여러 개 날렸다.

한참 후, 다시 돌아온 종이학은 단 하나 뿐이었다.

“이런, 절망적이네요.”

“뭔데 그래?”

“잠시 손 좀 주시겠습니까?”

내 손을 가져가는 제로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제로가 고개를 숙인다 싶더니 가운데 손끝에서 따끔한 감촉이 느껴졌다.

“앗, ……씨발, 뭐 하는 거야!”

손가락 끝마디를 빨아 들이는 뜨겁고 질척한 감각에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빼냈다. 좆같은 감각에 서둘러 정제수를 들이부으며 벅벅 닦는데 고개를 든 제로의 얼굴이 나로 변해 있었다.

“너 진짜 정체가 뭐냐…….”

“후후후. 그저 잡기 중 하나일 뿐이랍니다.”

목소리는 제로 그대로였다. 심지어 체구도. 그저 얼굴만 변한 모습이 영 어색해 떨떠름하게 바라보는데 제로가 빠르게 말했다.

“여기서 갈 수 있는 길이 다섯 방향, 그중 세 곳에서 놈들이 쫓아오는 중입니다. 제가 흔적을 흘리며 오른쪽으로 갈 테니 사장님은 왼쪽으로 가세요.”

“여기서 갈라지자고?”

“네. 모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셔야 합니다.”

“언제까지?”

“계속이요.”

당황해 제로를 바라봤다. 놈이 내 얼굴로 재수 없게 웃으며 내 등을 떠밀었다.

“후후, 시간이 없습니다만.”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뗐다. 왼쪽 통로로 들어가기 전, 뒤를 돌아보자 이쪽을 바라보는 제로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절대 잡히지 마세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다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구름이를 껴안은 채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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