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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62화 (16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62.

“뭐야, 다쳤어? 어디 봐 봐.”

후다닥 달려가 살피자 찢어진 바지 사이로 만신창이가 된 상처가 보였다. 관통당한 건 아니라 다행이다만 억지로 화살을 빼내느라 상처를 헤집어 피가 많이 나고 있었다.

혼자 엉엉 울던 게 언제였냐는 듯 서둘러 눈물을 닦은 이재아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지혈하고 포션 먹으면 돼요. 포션 가진 것 있어요.”

“그딴 쓰레기 바르면 덧나.”

인벤토리에서 중급과 하급 포션들을 꺼내 늘어놓던 이재아가 멈칫했다. 말없이 다친 상처에 정제수를 들이붓자 몸을 크게 움찔하더니 빠르게 아무는 상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렇게 빨리…. 사, 상태 이상까지 해제됐어요!”

“당연하지. 이건 비매품이라고.”

“대체 어떻게…. 바르는 포션으로 체력이랑 마나까지 오를 수가 있는 거예요?”

“영업 비밀. 그나저나 최소치만 회복됐을 텐데? 마저 채워둬. 마나포션 남은 거 있어?”

“네, 네.”

고개를 끄덕인 이재아가 인벤토리에서 마나포션을 꺼내 마셨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주위를 둘러봤다.

진동과 소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아직 근처까진 오지 못한 것 같지만 이대로라면 곧 놈들과 맞닥뜨릴 게 분명하다.

“감사해요.”

자리에서 일어난 이재아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완벽히 나은 다리를 확인한 뒤 말했다.

“그럼 난 갈게. 다치지 말고 꼭 탈출해. 나중에 공방 놀러 와.”

“네…. 네?! 같이 안 가고요?”

“응.”

고개를 끄덕이자 이재아가 당황해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의진 님, 지금 혼자시잖아요?”

“응.”

“그리고 포션 메이커시잖아요.”

“그냥 포션 메이커가 아니라 세계 최초 유일무이 S급 포션 마스터.”

“앗, 죄송합니다. 세계 최초 유일무…… 그게 아니라요! 여기 던전이고 게다가 웬 미친놈들까지 돌아다니는데 의진 님 혼자 계시면 위험할 거란 말이었어요.”

“나랑 같이 다니면 더 위험할걸. 놈들이 찾는 게 나거든.”

“네에?”

이재아는 잠시 놀란 듯했으나 되레 황당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의진 님을 왜…. 아니, 그렇다고 혼자 다녀요? 그러면 더 함께 다녀야죠! 제가 지켜 드릴게요.”

“누가 누굴 지켜. 누나 지원형이잖아.”

“그래도 전투 스킬은 있어요. 의진 님은요?”

“……없어.”

“거봐요.”

전투 스킬은 없다. 던전 들어오기 전에 장비를 맞추고 오긴 했지만 이상한 힘을 쓰는 놈들 수십 명을 상대하기엔 무리고.

흘깃 이재아를 바라봤다. 두 눈에 빛나는 결심. 이미 나와 함께 가겠다고 마음속으로 혼자 결정을 내린 듯했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 그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다. 다른 헌터라면 모를까 겨우 B급, 게다가 지원계잖아.

괜히 나랑 같이 있어서 더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지원계인 이재아를 여기 혼자 남겨 놓고 가기도 불안한데.

두 가지 불안을 놓고 저울질하는 내게 이재아가 다시금 졸라 댔다.

“그러지 말고 같이 다녀요. 네?”

“……B급에게 호위받는 건 처음인데.”

“아잇, 의진 님!”

미친 사이비 새끼들이 나만 쫓는 것도 아니고, 가는 길에 보이는 헌터들마저 공격하는 중이라 여기서 갈라진대도 특별히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기척을 숨겨 주는 구름이와 함께 다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에 결국 이재아의 동행 요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

“헉, 헉…. 의진 님 이쪽이요!”

“누나! 앞에 조심해!”

이재아가 앞의 구덩이를 펄쩍 뛰어넘었다. 나 역시 달랑거리는 가방을 끌어안고 훌쩍 따라 뛰었다. 뒤를 돌아보자 바짝 붙어 따라오는 사이비와 눈이 마주쳤다.

“젠장…….”

“거기 서!!”

서란다고 서겠냐? 이를 악물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귀 옆으로 검은 촉수가 가까워졌다.

우릴 가장 처음으로 발견한 놈이 스킬이 좀 딸리는 놈이라 다행이었다. 제가 공적을 독차지할 생각인지 다른 놈들을 부르지 않고 혼자 추격 중이었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우리에게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듯했다. 저 새끼가 지원을 부르기 전에 따돌려야 했다.

아까부터 띄워 놓은 인벤토리 안의 포션과 저 멀리 흔들리는 암벽을 번갈아 봤다. 어떻게든 저기까지만 가면…….

“씨팔, 멈추라고 했…지!!”

“아악!”

“의진 님!!”

날카로운 채찍이 등을 가로질렀다. 그대로 땅에 뒹군 나는 겨우 구름이를 끌어안고 타는 듯한 아픔에 몸부림쳤다.

“큭, 씹…. 으아, 흐…….”

“존나 피곤하게 만드네. 넌 편하겐 못 갈 줄 알아라.”

이 씨발 새끼가……. 고통에 차오른 눈물로 눈앞이 흐렸다. 손 아래 둥그스름한 포션병을 꽉 쥔 채 놈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내게 점점 가까워지는 인영을 향해 던지려던 순간 놈이 반으로 갈라졌다.

‘어……?’

멍청한 표정을 한 내 얼굴 위로 뜨끈한 피가 흩뿌려졌다. 털썩 쓰러진 놈 뒤로 태제헌이 서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씨발.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굴로 들어왔다.

“의진 님. 괜찮아요? 세상에, 피가……!”

이재아가 혼비백산해 달려왔다. 내 곁을 맴돌며 킁킁대는 룬과 루트 탓에 멈춰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태제헌이 늘어진 내 가방을 발로 툭 치며 중얼거렸다.

“이것 때문이었군. 도통 보이질 않아 룬과 루트가 애 좀 썼어.”

“씨발, 건들지… 하윽!”

놈의 발을 쳐내려다 등을 가르는 화끈한 통증에 숨을 들이켰다. 머리 위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태제헌이 날 번쩍 들어 옆의 바위에 앉혔다.

“벗어.”

“필요 없어요. 내가 하면 돼요.”

“그 꼴로 직접 하겠다고?”

사실 자신 없다. 팔을 뒤로 젖히는 순간 예견된 고통이 찾아올 게 뻔해 상상만 해도 땀이 삐질 나왔다. 태제헌의 뒤로 룬과 루트를 피해 한 걸음씩 다가오는 이재아가 보였다. 그를 보고 눈을 빛냈다.

“아! 누나한테 해 달라고 하면…….”

“시체 하나 더 치울래?”

개씨발 또라이 새끼.

결국 투덜대며 포켓과 조끼까지 벗어 내자 태제헌이 내 뒤로 돌아갔다. 옷을 걷어 올리는데 피가 엉겨 붙었는지 살을 뜯어내는 고통이 느껴졌다. 이를 악물어 참으며 경고했다.

“내 포션 쓸 거예요. ……크윽.”

태제헌에게 포션을 넘기자마자 등에 포션이 부어졌다. 아무는 건 순식간이었지만 상처가 포션에 닿는 그 잠시가 미칠 듯 아팠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어깨를 잡고 있는 팔을 붙들었다. 그러자 몸이 어딘가에 기대졌다.

‘존나 아파. 씨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이렇게 큰 외상을 입은 게 처음이라 포션 치료가 이렇게 아픈지 처음 알았다. 여태까진 치료만 잘 되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며 치료 후 효능에만 집중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아까 치료한 이재아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 존나 아프네, 다음엔 치료할 때 마취 성분이라도 넣어야지.’

모두 치료됐는지 더 이상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는데 내가 붙잡고 있던 게 태제헌의 허리였단 걸 알고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아, 뭔데요!”

저 뒤에서 이재아와 개들이 토끼 눈을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 누나도 있는데 약해 보이게!! 분함에 노려보자 태제헌이 코웃음 치며 내게 새하얀 천 쪼가리를 던졌다.

“몸이나 닦아. 더러워서 못 봐 주겠군.”

***

내게 몸을 치대는 루트를 다리로 툭툭 밀며 걸었다. 네 주인에게 가라는 뜻이었는데 놀아주는 줄 알았는지 이제는 오히려 내 다리를 장애물 삼아 저 혼자 어질리티를 하기 시작했다.

“이 똥개가…….”

“월!”

우리는 워프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일행은 나와 이재아, 태제헌과 그 휘하 두 똥개.

이상한 그림이었다. 동행으로 삼기 좆같은 사람 1위에 랭크된 놈과 함께 다니려니 영 껄끄러웠지만 사이비 놈들을 피하려면 다른 수가 없었다.

스킬을 써서 주위를 탐색하던 이재아가 내게 말했다.

“다행이에요. 던전 리셋이 다섯 시간 정도 남았어요. 워프로 가서 리셋되길 기다리면 되겠어요.”

“18층으로 가는 워프는 부서져 있었는데.”

헌터, 사이비를 불문하고 머리가 달려 있는 놈들은 죄다 워프가 있는 쪽으로 향할 게 분명했다.

‘안전하진 않을 것 같은데. ……어쨌든 태제헌과 함께인 것보단 나으려나.’

그나마 믿는 구석이라곤 성좌 지도와 라이라프스의 목줄이었다. 어디에 있든 성산하는 날 찾으러 올 테니. 그보다도 제로나 청이가 무사할지 그게 걱정이 됐다.

역시나 걱정대로 워프로 향하는 길목마다 사이비를 마주쳤다. 태제헌이 보는 족족 처리하긴 했으나 점점 그 수가 많아져 이재아와 구름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대로 멈춰서 말했다.

“던전 리셋 되면 그때 움직이는 게 낫겠는데요.”

태제헌이 고민하듯 워프가 있는 방향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를 맴돌던 룬이 코를 킁킁대다 어디론가로 달려갔다. 룬이 달려가자 루트도 그 뒤를 따라갔는데, 문제는 루트의 등에 내 짐-30칸짜리 인벤토리 기능이 있는 A급 벨트를 비롯해 성산하가 준, 새로운 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는 저주받은 탐욕자의 입까지!-을 올려놓은 상태였다는 거다.

“야, 어디 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장 루트를 따라 달려갔다. 좁은 틈에 머리를 박고 있는 두 개들을 겨우 따라잡았다. 루트가 가지고 있던 짐들을 다시 빼앗아 가는데 개들의 발밑 땅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뒤따라온 이재아와 태제헌 역시 그를 발견했는지 이리로 다가왔다.

“이건…….”

“워프네요?”

“워프군.”

“멍멍!”

룬이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20층까지 오며 몇 번이고 봤던 폐쇄된 워프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워프에는 전과 다르게 미약한 파동이 일렁이고 있었다. 활성화되었단 소리였다.

흥미롭게 그를 살피는 태제헌을 보다 설마 하며 물었다.

“……들어갈 건 아니죠?”

“왜 아니겠어.”

귀를 의심할 때, 먼저 뛰어드는 룬과 루트가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 내 등 뒤를 힘껏 밀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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