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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63화 (163/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63.

바닥이 훅 꺼지는 느낌이 들다 곧 두 발이 단단한 땅을 디뎠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운 것이, 여전히 동굴 안이었다. 워프가 오작동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뒤이어 태제헌과 이재아까지 따라 들어왔다. 여기가 어딘지 궁금하지도 않은지 태제헌이 삐딱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시선을 피하며 툴툴댔다.

‘욕 한 번 더 하면 사람 죽이겠네.’

“…잘못했어요.”

“쯧, 어디서 더러운 버릇만 들어 와선.”

고개를 저은 태제헌이 손을 튕겨 룬과 루트를 불렀다. 그 등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데 이재아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 하하…. 워프가 이쪽으로 통할 줄은 몰랐네요.”

“그냥 똑같은 동굴 아니야?”

층이라도 다른가 싶어 의아하게 묻자 이재아가 주위를 크게 둘러보며 말했다.

“아뇨. 같은 동굴이여도 탑은 던전 그 자체였다면 여기는 뭐랄까……. 조금 더 자연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요?”

“뭐, 좀 더 음침하긴 하네.”

이재아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긴 했다. 탑은 이상적인 동굴의 형태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느낌이 났다면 여긴 좀 더 거칠고 천연적이었다. 한쪽에 졸졸 흐르는 시내며 곳곳에 재료들도 넘쳤고…….

“어? 잠깐,”

동굴 내부가 어두워 바로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저 버섯, 색이 달랐다. 저번에 발견했던 저주받은 웡져의 버섯이 분명했다. 검붉은 빛의 갓이며 포자로 인한 연기까지.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군락 전체가 그랬다!

웡져의 버섯은 이미 채집해 두었지만 어쩌다 하나 나오던 것이 무더기로 발견된 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다가가려던 때, 이재아가 발랄하게 외쳤다.

“아! 여기 위치석이 있네요.”

“위치석?”

위치석은 던전 중간중간에 세워진 표지석이었다. 보통 응급 상황에 위치를 알리거나 던전 주파를 인증하는 데 쓰이는 일종의 표지판 역할을 하는 돌인데, 탑은 새로 생겨난 던전이라 아직 위치석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위치석을 발견했다니, 정말 다른 곳으로 워프한 건가?

무릎을 꿇은 이재아 곁으로 다가가 위치석 위를 덮은 토사물을 치우는 것을 도왔다. 돌덩이들을 던져 버리고 흙을 털어 내자 깊이 음각된 글자가 드러났다.

「천지심연 던전 - 3p 58˚」

“천지심연 던전?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이재아가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이 왜인지 익숙하게 느껴져 던전명이 적힌 위치석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뭐지? 뭐였지? 분명 들어본 적 있어. 천지심연, 천지심연…….’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네요. 다른 던전과 연결된 워프라니. 저희가 처음 발견한 걸까요? 여기서 나가면….”

“……아!”

“왜, 왜요? 의진 님?”

이재아가 화들짝 놀라 나를 돌아봤다. 그러나 이재아에게 설명할 정신이 없었다. 언젠가 보았던 종이의 내용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알파룸 테스트 결과}

- 생존 0, 사망 41

천지심연 던전. 알파룸 1차 실험 도중 전원 사망. 원인 불명, 던전 폐쇄

김선재 : 1차 실험 중 사망.

신하늘 : 1차 실험 중 사망.」

‘여기, 여기 설마…….’

실험 중 알파룸 아이들이 전멸했다는 던전이 천지심연 던전이었다. 내가 거길 와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등 뒤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천지심연 던전?”

태제헌이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여유로운 목소리를 듣자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 주먹을 꽉 쥐었다. 손 아래 흙이 부서져 내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물었다.

“……왜요. 아는 데에요?”

“알지. 예전에 폐쇄된 던전일 텐데. 어쩌다 여기로 넘어온 건지 모르겠군.”

태제헌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내가 원했던 대답은 그딴 게 아니었지만 이 이상 티 냈다간 놈이 눈치챌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태제헌에게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이상함을 느꼈는지 태제헌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강의진, 일어나.”

“……왜요.”

“강의진.”

앞에서 내 표정을 모두 지켜보던 이재아가 안절부절못하더니 결국 어색한 표정으로 아! 하며 소리쳤다.

“처, 천지심연, 천지연! 이름이 비슷하네요? 탑이 생기기 전,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던전이 천지심연 던전인가 봐요?”

“……누나?”

눈썹을 치켜올린 태제헌이 이재아를 마뜩잖게 바라봤다. 나도 궁금해 돌아보자 결국 태제헌이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원래 천지연 폭포 내부에 있던 것이 천지심연 던전, 오래전에 폐쇄되었고 그 근방을 모두 덮으며 생겨난 게 제주 탑이지.”

원래 있던 던전과 공간이 겹쳐서 내부 워프들이 드러난 건가…….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녹스가 알파룸 애들로 실험을 하다 모두 죽게 만든 곳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태제헌과 함께 여길 왔다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털며 말했다.

“다시 탑으로 돌아가요.”

“안돼. 여기서 던전 리셋을 기다리는 게 안전해.”

“싫어요. 난 돌아갈 테니 그쪽은 여기서 기다리던가.”

“그쪽?”

태제헌의 입술이 삐뚜름히 올라갔다. 그를 못 본 체하고 워프로 향하는데 우악스러운 손길이 어깨를 잡아 세웠다.

“으윽….”

어깨뼈를 부러트릴 정도로 강한 세기에 인상을 찌푸리는데 워프의 파동이 일렁이더니 세 명의 인영이 모습을 보였다. 순식간에 나를 제 뒤로 끌어당긴 태제헌이 내 앞을 막아섰다.

‘놈들이 벌써 따라왔나?’

룬과 루트가 이빨을 보이며 놈들을 경계하는데 정작 나타난 놈들은 녹스 따까리들이었다.

“어엇, 길드장 님! 여기 계셨군요!”

“휴, 다행이다. 애들한테 워프 안전하다고 연락 돌려.”

뒤이어 녹스 새끼들 여럿이 더 넘어오고 거기엔 이재아의 팀원들도 몇 섞여 있었다. 헌터들이 이재아를 보고 놀라 달려왔다.

“재아 씨!”

“민우 님! 효영이는요? 효영이는 같이 안 왔어요?”

“네…. 효영 씨는 진형이랑 함께 있을 겁니다. 그나저나 재아 씨 다친 곳은 괜찮으십니까? 아까 분명 다리에…….”

“의진 님께서 도와주셔서 다 치료했어요.”

태제헌 역시 따까리들에게 탑 상황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놈들이 또 난리를 쳐서 18층으로 가는 워프 지대가 반파됐습니다. 리셋되더라도 놈들이 또다시 워프를 부술 가능성도 있고요.”

“죽을 때까지 가 보자는 거군.”

“일단 연락이 닿는 길드원들은 모두 이쪽으로 넘어오라고 명했습니다.”

“워프들?”

“네. 지금까지 보고된 바로 19층에서만 폐쇄된 워프가 세 개 이상 발견되었습니다. 다만 놈들에게도 워프의 존재가 알려져 아마 곧…….”

녹스끼리는 연락이 닿은 것 같은데 천랑은, 청이와 제로는 어떻게 되었을지. 녹스와 사이비까지 아는 사실을 천랑이 모를 리는 없었다. 멍청한 놈들은 아니니 곧 워프로 넘어올 게 분명했다.

‘발견된 것만 세 곳이라고…….’

확률은 33.3%. 제발 이쪽으로 넘어오길 빌며 태제헌이 정신 팔린 사이 슬금슬금 워프가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룬이 그를 알아채고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흘깃 나를 돌아본 태제헌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저거 묶어.”

“씨발…….”

고갯짓한 곳을 돌아본 녹스 놈이 태제헌이 말한 ‘저거’가 나라는 것을 알고 잠시 입을 벌리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 아아……. 넵!”

씨발, 씨발. 결국 로프로 오른손이 묶였다. 손목에 칭칭 감긴 로프의 끝은 태제헌이 쥐고 있었다.

두 손을 결박하려는 것을 기를 쓰고 막아 내 결국 한 손은 사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씨발, 내가 개새끼냐고. 진짜 개들도 안 차는 목줄을 왜 사람한테 채우는데.”

“입마개까지 채워 줬어야 했나?”

“혼잣말을 왜 듣는데요. 엿들은 사람이 잘못 아닌가?”

태제헌이 발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아차 싶었지만 녹스 따까리들과 일반 헌터들 앞에서 개처럼 끌려간다는 수치심과 분함이 더 커 입을 다물고 놈을 노려봤다.

“저……. 길드장님.”

“따라가지.”

태제헌이 턱짓해 헌터들을 먼저 보냈다. 둘만 남자 놈은 손에 잡고 있던 로프를 한 번에 휘감아 잡아당겼다. 버틸 수 없는 힘에 결국 놈의 앞까지 끌려가 멈춰 서자 태제헌이 차갑게 말했다.

“정말 개처럼 끌려갈래.”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요.”

“두 발로 걷는데 이게 어떻게 끌려가는 거야. 사지 힘줄도 다 붙어 있잖아.”

“…….”

또라이 새끼. 미친 새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모멸감에 주먹이 쥐어졌다. 그걸 빤히 보고도 비웃은 태제헌이 내 볼을 툭툭 치며 말했다.

“천랑 믿고 이러는 꼴이 귀엽긴 한데, 형 화나게 하지 마.”

‘형은 씨발 개뿔이. 종신형이나 사형 받아서 콱 뒈져 버려라.’

“알아들었으면 대답.”

“……아, 알겠다고요.”

“그거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한 마디 뱉는 게 싫어서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말없이 놈을 노려봤지만 내가 말하기 전까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단 표정에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짓씹듯 말했다.

“……잘못했어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태제헌이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렸다. 한 손은 묶이고 다른 한 손은 구름이를 가방째로 안은 채 터덜터덜 따라 걷는데 한참을 말없이 걷던 태제헌이 툭 말했다.

“떼어 냈을 때 포기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지.”

“또 무슨 소린데요.”

“알잖아. 다음은 남산이야.”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자 태제헌이 나를 돌아봤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걸 알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남산의 제물은 뭐일 것 같은데.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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