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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65화 (165/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65.

황급히 구름이의 뒤를 쫓아가는데 점점 주위가 밝아지더니 어느새 넓은 공동이 펼쳐졌다. 암벽 이곳저곳에 박힌 야광석들이 동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구름이는 저 멀리, 아까 본 것과 꼭 같은 검보랏빛 꽃 옆에 당당히 서 있었다.

“메에에에!”

자기가 찾은 걸 보라는 듯 크게 우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왕 떨어지기까지 한 거, 재료라도 가져가야 수지에 맞지. ……그나저나 대체 여긴 어디야?”

꼭 누군가 인위적으로 깎기라도 한 것처럼 반구 형태로 패인 동굴 천장을 올려다보며 걷는데 발에 뭔가가 걸렸다. 의아하게 시선을 내리자 내 허벅지까지 오는 길쭉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한 발 옆으로 비켜서면 그만이었지만 이 이상한 바위들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충 봐도 수십 개가 늘어선 모습에 구름이가 대체 어떻게 이것들을 다 피해 저 멀리까지 갈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둥그런 천장에 기괴하게 생긴 수십 개의 바위들.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도 되지만 왜인지 섬뜩한 느낌이 들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제 보니 바위의 생김새도 이상하고…….

‘설마 몬스터 둥지, 이딴 곳에 들어온 건 아니겠지?’

자연적으로 발광하는 야광석의 불빛이 너무 옅어 시야가 어두웠다. 더듬대며 허리춤에 꽂아 놨던 야광등을 펼쳤다.

한순간 내 주위가 확 밝아지며 수십 쌍의 눈이 나를 바라봤다. 흠칫 놀라 한 발 뒷걸음질 치다 잘못 봤겠지 하며 다시 다가갔다. 무릎을 굽혀 앉아 야광등을 가까이하자 선명해지는 바위의 형태에 심장이 아래로 쿵 떨어졌다.

“씨발…….”

바위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어린 꼬마 아이의 모습을. 양 갈래로 묶은 머리나 입고 있는 캐릭터 티셔츠 등이 매우 세밀했다.

‘누군가 조각이라도 한 건가? 그런데 대체 왜 이딴 곳에 어린아이 조각을…….’

누군진 몰라도 악취미가 분명하다. 이 기분 나쁜 공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저 꽃만 채집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생각으로 발을 옮기는데 들고 있던 야광등의 불빛이 퍼지며 내 앞에 있던 여자아이 석상 옆에 있는 다른 석상의 얼굴을 밝혔다. 내 발을 붙잡은 것은 방금 지나친 그 석상의 생김새가 매우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얼어붙어 걸음을 멈췄다.

“……에이, 잘못 본 거겠지.”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 얼굴이 왜 여기에 있어?

말도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손끝이 떨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손에 쥐고 있는 야광등을 석상에 가까이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불빛에 점차 석상의 얼굴이 밝아졌다.

“김…선재……?”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쥐고 있던 야광등이 데구르 굴러가며 뒤에 늘어선 석상들의 얼굴을 차례로 비췄다. 몇몇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내 기억 속에 선명히 존재하는 얼굴들이었다. 김선재, 정수진, 임지원, 정재준, 양태오…….

석상 40개 모두가 알파룸 아이들이었다.

“씨발, 뭐야 이거……. 으악!!”

“메에에.”

다리를 톡톡 건드리는 기척에 놀라 펄쩍 뛰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구름이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가만히 멈춰서 오지 않자 제가 내려온 거였다.

“아, 구름. 구름아.”

목이 메어 몇 번을 가다듬었다. 석상을 보고 머리가 백지가 됐었는데 그래도 구름이를 보자 정신이 조금 들었다.

예전에 여기서 죽었다는 아이들이 왜 이곳에 단체로 이렇게 되어 있는 건지.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조각을 가져다 놓았든 이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쩌지. 아직 던전에 고립된 상태인데. 태제헌 새끼가 협조할 리도 없고.’

고민하던 때, 할짝이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다 구름이가 날름거리며 선재 석상을 핥고 있었다.

“어어? 구름아. 안 돼. 먹는 거 아니야.”

“메이이이….”

발에 힘을 주고 버티는 구름이를 번쩍 들어 안는데 구름이가 핥던 부분이 잠깐이나마 색이 변했다 금세 돌아왔다.

‘방금 그거, 돌이 아니라 사람 피부 같았어.’

눈을 의심하다 찰나 스치는 생각에 천천히 석상으로 손을 뻗었다.

<■■■■■의 저주받은 석상>

■■■■■■■를 깨워 버린 아이들은 ■■■■의 ■■■■■로 인해 그대로 돌로 변해 버렸다.

■■■■의 ■■■■■■■■는…….

또다, 검붉은 기운이 일렁이며 여러 형태로 변화하는 글자들.

눈앞에 보이는 시스템창을 읽고 또 읽었다. 예상이 맞았다. 이 석상들은 누가 조각하거나 한 게 아니다. 아이들 그 자체로 돌로 변한 것이었다.

“…….”

아무 말이 나오질 않았다. 손 아래 석상은 차갑고 딱딱했다. 어린 시절 같이 웃고 싸우던 놈이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렇게 돌이 된 것을 마주하는 기분은…… 더럽게 좆같았다.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지금까지 저 글자를 본 것은 성산하의 손을 보았을 때, 탑과 천지 심연 던전의 ‘저주받은’재료들을 보았을 때, 그리고 지금 석상을 보았을 때. 세 번이었다. 셋은 연관이 없지 않다. 게다가 구름이는 ‘저주받은’재료를 정화할 수 있었고 -물론 정화된 재료들은 다시 돌아오는 일 없이, 구름이의 에너지로 쓰여 버렸지만-…….

‘저주로 인해 돌이 되어 버린 거라면, 어쩌면 저주를 풀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눈을 번뜩였다. 꿈같은 생각이었지만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일단은……. 여기서 나가야 해.”

“메에에에.”

“가자. 구름아!”

내 공방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열심히 채집해 모아 놨던 ‘저주받은’재료들을 모두, 섬유 줄기 하나까지도 모조리 분석하고 조사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 석상들을 옮길 순 없으니 다른 해결법을 찾을 때까진 이 공간을 숨기는 게 최선이었다.

가장 먼저 속여야 하는 게 태제헌이다. 이미 오랜 시간을 지체해 버린 것을 알아 구름이를 안고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목적이 생겨 그런지 움직임이 빨라졌다. 내 키의 세 배 높이인 구덩이도 겨우 두 번 만에 기어 올라갔다. 서둘러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바깥이 이상하게 소란스러웠다.

“뭐지……?”

검지를 들어 구름이에게 쉿, 속삭이고 들고 있던 야광등을 접었다. 살금살금 걸어가 밖을 내다보자 전투가 일어난 상태였다. 구름이 덕분인지 아무도 이쪽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들켰다가는 곧바로 공격당할 게 분명했다. 녹스나 천랑 길드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얼핏 봐도 처음 습격할 때만큼 많은 수였다. 저 멀리 성산하의 것으로 추정되는 스킬이 보였다. 다들 어딜 가고 성산하가 혼자 남아 상대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미스틱이 혼자다! 미스틱을 먼저 처리하고 쫓아간다!”

로브를 덮어쓴 놈들이 성산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성산하 혼자 싸우는데 내가 인질로 잡혔다간 좆될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다시 숨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용히 등을 돌리는데 뒤에서 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날아왔다.

‘루트!!’

크랙 입구 쪽에 검은 개가 쓰러져 있었다. 날아와 부딪힌 건지 다리뼈가 성치 못해 보였다. 일어나려 버둥대는데 오히려 피가 샘솟는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그늘에 몸을 숨긴 채 타이밍을 노렸다. 주위에서 싸우던 놈들이 모두 한곳으로 몰려갔을 때, 팔을 뻗어 루트의 목덜미를 잡고 안으로 주욱 끌고 왔다. 목덜미를 움켜쥐자마자 눈빛이 변해 물어뜯으려던 루트는 내 냄새를 맡더니 다쳐 쓰러진 상태에서도 꼬리를 살랑댔다. 하울링을 하려는 모습에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쉿, 쉿!”

루트를 업어 메고 크랙 안쪽 구덩이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낑낑대는 루트의 몸에 조금 손 본 포션을 발라 주고 남은 걸 먹였다. 제대로 치료된 건가 싶어 손으로 다리를 움직여 보다 한숨을 쉬었다.

“태제헌이랑 룬은 어딜 가고 너 혼자야.”

“끼잉, 낑…….”

“일단 나랑 있자. 짖지 말고. 이거 먹고 있어.”

육포를 입에 물려 줬다. 옆에서 불만스럽게 발을 구르는 구름이에게도 재료를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산하가 걱정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려올 때 묶어 놓은 로프를 잡고 구덩이 위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막 머리를 내미는 순간, 빛이 번쩍이며 누가 불을 켜기라도 한 듯 크랙 내부까지 환하게 밝아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붙은 나는 다시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오고 나서야 하얗게 질려 황급히 달려갔다.

‘방금 그건 뭐지? 성산하는 어떻게…….’

주변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조심스럽게 크랙 바깥으로 발을 딛었다. 바로 앞의 바위 뒤에 숨어 바깥을 내다봤지만 한번 밝아졌다 다시 찾아온 어둠은 유독 새카맸다. 천천히 어둠에 익숙해지자 사방에 쓰러진 사이비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성산하 역시 쓰러져 있었다.

“서, 성산하……!”

황급히 성산하를 향해 달려가 놈을 안아 들었다. 정신을 잃은 놈의 팔이 꿈틀꿈틀거리고 있어 장갑을 벗겨 보니 손과 팔뚝까지 모두 새카맣게 타들어 가 있었다.

“젠장…….”

주위를 둘러봤지만 쓰러진 사이비들 외에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무력해진 놈과 이대로 있을 순 없어 결국 성산하를 들쳐 메고 크랙 안으로 끌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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