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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66화 (16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66.

“아오 존나 무겁네!”

겨우 구덩이 앞까지 끌고 왔지만 이제는 이 덩치를 어떻게 아래로 데리고 가느냐가 문제였다. 가진 건 가느다란 로프 한 개. 쓰러진 성산하를 앞으로 뒤로, 가로세로 이리저리 묶어 봤지만 영 각이 나오질 않았다.

‘어차피 잠든 거, 확 밀어 버려……? 깨기 전에 치료해 놓으면 되잖아.’

유혹에 잠시 흔들렸지만 결국 하는 수 없이 털썩 자리에 앉았다. 구덩이 아래를 보자 이쪽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구름이와 루트가 보였다. 손을 내저어 비키게 한 뒤 바닥에 눕혀 놓은 성산하를 끌어안았다.

“씨… 비행 스킬만 있었어도.”

눈을 질끈 감고 몸을 굴려 아래로 몸을 던졌다. 등부터 떨어져 지면에 부딪히자 나의 무게에 성산하의 무게까지 합쳐져 전보다 더한 충격이 온몸을 엄습했다.

“크윽…….”

안고 있던 몸도 놓친 채 몸을 둥글게 말았다. 고통에 몸부림치자 구름이와 루트가 걱정스럽게 다가와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포션을 꺼낼 정신도 없어 한참을 웅크린 채 고통을 삭이다 조금 나아지자마자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혈관 사이사이로 퍼지는 포션의 기운에 아픔이 가시기 시작했다.

역시 내 포션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데 시야에 구름이의 분홍빛 코와 루트의 헥헥 대는 혓바닥이 들어왔다. 곧 축축하고 부드러운 혀들이 나를 마구 핥기 시작했다.

“으하하. 그만, 그만! 간지럽다고!!”

“월월!”

“메에에에!”

“아하하하!”

한참을 씨름하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느른한 한숨을 뱉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

사이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구름이와 태제헌이 아끼는 개, 루트. 성산하는 다쳐서 정신을 잃은 데다 놈의 한쪽 팔은 아직도 기괴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묵직하고 커다란 -구름이는 작고 귀엽지만-짐 덩어리다.

그나마 내가 세계 유일의 S급 포션 마스터이기에 망정이지 일반 헌터였다면 이들을 데리고 어떡해야 할지 몰랐을 거다.

“흥. 내가 제대로 보호해 주지. 구름이, 루트. 따라와.”

벌떡 일어나 성산하를 들쳐 멨다. 성산하는 아래로 떨어질 때 혹시 모를 골절을 대비해 꽁꽁 묶어 놓은 상태였는데 이러니 막상 업을 때에도 긴 팔다리가 휘적거리지 않아 좋았다. 루트와 구름이를 데리고 안쪽으로 걸었다.

성산하와 루트를 살피고 포션을 만들기 위해선 밝고 널찍한 장소가 필요했기에 공동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막상 성산하와 석상들을 한 장소에 두니 묘하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긴 했다.

애써 석상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평평한 바위 위에 눕혀 놓은 성산하에게로 다가가 놈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대체 어디까지인 거야?”

볼 때마다 심해지고 있다. 팔꿈치 위까지 걷어도 끝이 보이질 않는 환부에 결국 성산하의 옷을 벗길 수밖에 없었다. 끈을 풀고 상의를 풀어 헤치자 드러나는 복근과 흉근에 입을 떡 벌렸다.

“워…….”

기절한 상태라 힘 하나 안 들어갔는데도 이런 건 반칙 아닌가? 이 새끼 몰래 힘주고 있는 거 아니야?

슬쩍 티셔츠를 들어 내 복근을 확인했다. 요새 일이 바빠 운동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에 반해 성산하는…….

아니야, 저 새끼는 전투 스킬도 있는 헌터잖아. 전투계와 비전투계는 차이가 크다고. 입을 삐죽대다 성산하가 깊이 잠든 걸 확인하고 놈의 가슴을 쿡 찔러 봤다. 단단한 흉근과 복근, 하물며 저주로 검게 물든 전완근과 팔뚝까지도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설마 하체도 이러려나? 그럼 너무 불공평하잖아!!’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실험을 하다 보면 한 자리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게 일상이라 자신 있는 상체에 비해 하체는 조금, 조금 신경이 쓰이는 편이었다. 성산하는 어떨지 궁금했다. 생각해 보니 성산하의 하체는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궁금하기만 했지 뭘 어쩌려는 생각은 맹세코 없었다! 그저 사실을,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나도 모르게 손이 복근을 지나 벨트에 다다른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순간 앞에서 푸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펄쩍 뛴 나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봤다. 구름이와 루트가 앞쪽에 엎드려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꼭 한심하게 보는 것만 같아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미에에에.”

“아니라니까? 성산하 다쳤는지 보려고, 치료해 주려고 그런 거야.”

“워웅월워월월-.”

루트가 내 말을 따라하듯 얄밉게 웡웡 댔다. 얼굴이 새빨개져 성산하의 팔만 빼내고 그 위에 옷을 다시 덮었다. 그러나 쓸데없이 재질 좋은 옷이 자꾸 흘러내리고 성산의 긴 다리도 바위 아래로 툭툭 떨어지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대충 옷을 덮은 상태 그대로 다시 로프를 이용해 성산하를 칭칭 동여맸다.

“휴, 다 됐다. 어디 한번 볼까.”

이제야 다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막상 성산하의 팔을 자세히 보자 상태가 심각했다. 튀어나와 박동하는 푸른 핏줄들과 새카맣게 죽은 피부. 신경이 제멋대로 움직이는지 팔은 쉴 새 없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한쪽 팔 전체를 뒤덮은 검은 기운은 어깨와 쇄골까지 올라와 목 주위를 넘실대고 있었다.

의신의 손길을 사용해 봤지만 역시나 알 수 없는 언어들로 인해 해석이 불가능했다.

“하아, 무슨 저주인지만 알아도 좋을 텐데.”

중독이면 모를까 저주는 내 전문이 아니다. 각성 효과가 있는 향을 맡게 해 봤지만 미동도 없는 것이 아무래도 전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은데…….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다 구름이를 불렀다.

“구름아. 이리 와.”

“메.”

구름이가 올라가 있던 바위에서 펄쩍펄쩍 뛰어내려 내게 다가왔다. 구름이와 내 사이에 적당한 재료들을 꺼내 늘어놓기 시작했다. 재료를 본 구름이가 코를 씰룩대다 달려들려는 것을 잡아 멈췄다.

“어어, 구름이. 잠깐. 금방 먹게 해 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메에에에에!”

“뭐가 그렇게 서러운데, 어차피 먹기 싫어도 도와줘야 해.”

안 되겠다, 구름이를 품에 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으며 앞의 재료들을 바라봤다.

저주받은 꿈꾸는 가지, 저주받은 웡져의 버섯, 저주받은 작은 돌, 저주받은 푸른 자락, 저주받은 코스모 가루, 그 밖의 저주받은 어쩌고 이십 종.

“구름아 이거 한 번 먹어 봐.”

저주받은 윙져의 버섯을 주자 구름이가 덥썩 물었다. 넓은 버섯갓에 둥그렇고 작은 이빨 모양으로 자국이 남고 구름이가 열심히 오물대기 시작했다. 곧 구름이가 작게 콜록 하며 검은 연기를 조금 토해 냈다. 정화를 성공해 낸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으음, 저주나 독만 흡수해야 하는데.”

성산하를 구름이 밥으로 줄 순 없으니 말이다. 고민하다 구름이에게 다시 저주받은 웡져의 버섯을 내밀었다. 구름이가 고개를 갸웃하다 다시 웡져의 버섯을 베어 물었다. 엉덩이까지 흔들며 맛있게 씹는 것을 보다 돌연 다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구름아! 이리 줘!”

“미에에?”

퍼뜩 고개를 들고 황당하게 바라보는 구름이에게 손을 까딱였다.

“뱉어, 뱉어 봐.”

절레절레. 구름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더욱 빠르게 씹는 것이 빨리 먹고 삼켜 버리려는 속셈이 보여 황급히 숨겨 놓았던 ‘저주받은 악령 뼈다귀’를 흔들며 외쳤다.

“그거 뱉으면 이거 줄게!”

“……멧!”

잠시 고민하던 구름이가 내 손에 씹던 윙져의 버섯을 뱉었다. 저주받은 악령 뼈다귀를 물려준 채 황급히 버섯이었던…… 것을 감정했다.

“플라멜의 현안!”

<거의 정화된 웡져의■버섯>

윙져라는 이름의 요정이 특■ 좋아하는 ■식으로

바위 틈 ■이에 무리를 지어 ■란다.

˚

우주의 신성한 기운이 감돕니다.

더 이상 ■■■■■의 저주에 영향을 입지 않습니다.

“됐다!”

웡져의 버섯은 반쯤 묵사발 난 데다, 완전히 정화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건 상태창을 가리던 이상한 문자도 거둬졌고 저주에 영향을 입지 않는다고도 했다.

신이 나 구름이가 쭙쭙 빨던 저주받은 악령 뼈다귀도 가져가 감정하자 역시나 효과가 있었다.

<조금 정화된 악■ ■다귀>

무■지어 ■■■■는 악령을 조심■라.

■■이 피와 ■을 취■■ 떠난 자리■■ 백골■이 남■■■■.

˚

우주의 신성한 기운이 감돕니다.

더 이상 ■■■■■의 저주에 영향을 입지 않습니다.

버섯과 달리 뼈다귀는 씹지 못해서인지 침으로 젖은 것 외에는 멀쩡했다. 대신 감돌던 검붉은 기운이 옅어진 상태였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신성한 기운’이라는 것이 핵심인 것 같은데…….

혹시 몰라 구름이의 침을 감정해 봤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결국 저주를 정화하는 것은 구름이 자체라는 소리였다.

‘으음…… 존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이긴 한데.’

군침을 뚝뚝 흘리는 루트 옆에서 뼈를 맛있게 핥고 있는 구름이를 바라봤다.

“구름아.”

하도 이상한 일을 많이 시켜서인지 구름이의 눈에 불손함이 감돌았다. 애써 친절하게 웃으며 잡고 있던 성산하의 손을 흔들었다.

“구름아, 그…… 한 번 먹어 볼래? 씹진 말고 핥기만…….”

“메에에에에!!”

“싫어? 그래도 한 번만. 응?”

구름이가 질색한 표정으로 도망갔다. 석상 사이사이를 피해 도망가는 구름이를 뒤쫓아 달리며 사정했다.

“구름아. 성산하 일어나야 여기서 탈출해. 어?”

“메에!”

“구름이 너밖에 못 하는 일이라고! 너 웡져의 버섯도 정화하고 뼈다귀도 정화했잖아. 마음 같아서는 내가 해 주고 싶은데…….”

해답이 아니더라도 한 번 확인은 해 봐야 했다. 구름이를 설득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뱉는데 내 말에 달려서 도망가던 구름이가 우뚝 멈춰서 나를 돌아봤다.

구름이가 놀라지 않도록 그 자리에 앉아 손을 뻗었다.

“구름아. 착하지?”

“메에에.”

내게 다가온 구름이가 손을 툭 쳤다. 쓰다듬어 주려는데 그게 아니라는 듯 내 손을 살짝 물어 뭔갈 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왜, 어떻게 해 줘. 재료? 아니야? 그럼 뭐.”

아무것도 없다는 듯 손을 펼치자 구름이가 내 손을 툭 건드렸다. 먹을 걸 달란 소린가 싶어 재료를 꺼내려니 또 아니라며 발버둥 치고 손바닥을 보이자 다시 톡톡 건드렸다.

이해하지 못해 의아하게 바라보자 답답하다는 듯 펄쩍 뛰더니 왼 발목과 내 손바닥을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 두 번을 반복하고서야 알아챘다. 구름이가 가리키는 게 내 손바닥에 있는 카스토르의 문양이라는 것을.

“……카스토르가 왜?”

구름이가 나와 성산하를 차례로 턱짓했다. 말하는 게 꼭…….

“내가… 해?”

“메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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