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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68화 (168/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68.

중간에 성산하가 깨어나는 건 예상에 없던 일이다.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성산하의 위에서 내려가려 했으나 허리를 잡은 손이 놓아주질 안았다.

“…묶이는 건 또 새로운 걸.”

“너, 너 무슨 일 있었는지 기억은 해?”

황급히 말을 돌리자 성산하는 뭐 그런 걸 묻냐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의진이랑 키스했지.”

“씹…! 야! 그거 말고! 너 사이비들한테 쫓기다가 이상한 힘 한 번에 확 터트리고 기절했잖아!”

“아아, 그랬었나.”

“엄청 깨웠는데 어떻게 해도 안 일어났다고! 각성향을 맡게 해도 안 일어나고 존나 무겁고! 놈들이 또 언제 올지 몰라서 그대로 들쳐 업고…….”

성산하의 정신을 교란시키기 위해 아까 있었던 일을 존나 과장해 말했다. 하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인 성산하는 오히려 눈을 빛내며 내게 되물었다.

“그래서 그 틈을 타 무력하게 잠든 내 입술을 빼앗은 건가? 이렇게 옴짝달싹 못하도록 묶어 둔 채로?”

“무슨 개소리야! 틈을 노린 게 아니라, 정말 치료 목적으로…. 퀘스트가, 네 저주, 내 스킬이 접촉을……. 아이 씨발.”

찔리는 게 있어 그런지 명확한 이유가 존재하는데도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우다닥 뱉다 짜증스레 손을 뿌리쳤다.

“난 결백해! 난 게이도 아니라고.”

성산하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얼굴이 붉어진 채 씩씩대는 내 볼에 놈의 손이 와 닿았다. 손에 난 둥근 잇자국에 성산하의 시선이 잠시 닿았다 떨어졌다.

“어쭈, 물기까지 했어요?”

“그건…. 다 이유가 있어.”

결국 새어 나온 웃음에 실실 쪼개던 성산하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고마워. 의진아.”

“……뭐 벌써 고마워. 아직 제대로 끝난 것도 없는데.”

“그럼 하던 거 마저 할까? 나 아직 아파. 묶인 것도 좀 풀어 줬으면 좋겠는데. 답답하거든.”

“지랄 마.”

“월월월! 월! 월월!”

얼굴을 가까이 하는 성산하를 밀치고 아래로 내려가는데 옆에서 루트가 미친 듯이 짖어 댔다. 루트를 본 성산하의 미간이 좁아졌다.

“저건… 태제헌의……?”

“다쳐서 주워 왔어. 태제헌은 제 개도 안 챙기고 뭘 하는 거야. 야, 루트. 조용히 해. 누구 오면 어쩌려고 그래. 쉿! 쉿!”

시선을 고정한 채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짖어 대는 루트를 진정시키는데 옆으로 시선을 돌린 성산하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여긴…….”

몸을 묶은 끈들이 저절로 끊어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난 성산하가 한 발 두 발 석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길 어떻게…….”

충격에 말을 잃었는지 석상들을 바라본 채 가만히 멈춰 선 성산하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놀라는 게 당연하지. 사나도 알던 애들일 텐데.’

움직임이 없는 등을 바라보다 나도 발을 떼 성산하에게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그나마 희망적인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

“너랑 같은 저주가 걸려 있더라. 석상에 걸린 저주도 풀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 저주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

“야, 성산하…….”

다가가 놈의 어깨를 잡는데 성산하가 쓰게 웃었다.

“소용없어. ……이건 풀 수 있는 저주가 아니야.”

“해 보지도 않고 무슨 그딴 소리야.”

치기 어린 소리로 들렸는지 성산하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 해 봤겠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 다 동원해 봤어. 아무 차도도 없었고.”

“세계 유일의 S급 포션 마스터가 도와준 적은 없잖아.”

놈의 손을 짜증스레 내던지며 투덜댔다.

성산하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둡던 얼굴에 그제야 그늘이 거둬졌다.

“……든든한데.”

말이 나온 김에, 저주를 확인하려 성산하의 손을 잡아 올렸다.

‘곧바로 깨어난 걸 보면 효과가 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우연……?’

대충 걸친 옷을 걷어 팔을 확인하는데 팔 전체를 덮고 있던 저주가 팔꿈치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눈이 커다래졌다.

“이거 봐! 호전됐잖아!”

“전과 같은데.”

“아니야. 아까는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고! 여기, 여기까지.”

손으로 짚어 주며 말하자 성산하 역시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제 팔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능력을 썼는데도 악화되지 않았어. 혹시 독을 먹였나?”

“아니. 새로운 스킬이 생겼거든.”

“새로운 스킬?”

“잠깐 진단 좀 한다?”

성산하의 손을 잡고 의신의 손길을 사용했다. 황금빛 빛이 터져 나오며 서로 맞잡은 손부터 성산하를 감싸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 성산하 - 헌터 >

-속성 : 선/빛

-■■■■■■■■

-■■■■■의 저주로 인해 부패 진행 중

-■■■■■의 저주로 인한 제약으로 신성력 20% 감소, 체력 20% 감소, 마나 20% 감소, 레저렉션(EX) 사용 불가

-■■■■■의 저주로 인해 받아 들이는 모든 힐 효과 96.4% 감소, 모든 포션 효과 90% 감소, 본인에게 주신의 손길(S) 사용 불가

-치사율 : 99.9%

<치료법>

►별의 정화(EX)

-진행률 0.8%

►저주 주체의 소멸

전과 달리 가려진 부분 없이 정보가 거의 들여다보였다. 다만 저주를 건 새끼 이름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역시 다른 ‘저주받은’ 것들과 똑같았다.

‘씨발 무슨 디버프가……. 저주가 알차게도 걸렸네. 저건 또 뭐야? 치사율 99.9%?’

온갖 나쁜 건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힐이나 포션이 잘 들지 않는 체질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막상 눈으로 확인하자 더 심각했다. 독을 먹어서라도 살아남았다는 게 대견할 지경이다.

의신의 손길이 알려 준 치료법은 단 둘이었다. 정화 스킬과 저주 주체의 소멸. 아쉽게도 포션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아까의 접촉이 성공적이었는지 0.8% 정화가 되어 있었다. 한 번에 0.8이라면 괜찮은 수치였다. 대장장이들은 하루 종일 단련해도 숙련도 0.1 오르기가 힘들다는데 짧은 키스 한 번에 0.8이면……. 잠깐, 그럼 몇 번을 해야 한다는 거지?

잠시 멈칫해 계산하는데 앞에서 성산하가 훌쩍 다가왔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웃었다, 찡그렸다. 뭘 그렇게 재미있게 보고 있어. 나도 알고 싶은데.”

“재밌는 거 아니야. 멍청아.”

치사율 99.9%의 저주에 걸린 주제에 태연한 척은.

잡고 있던 성산하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잘하면 네 저주 풀 수 있을 것 같아.”

“…….”

또 믿지 않는 표정에 내 손바닥을 보이며 말했다.

“카스토르 때문인진 몰라도 내게 새로운 스킬이 생겼거든. 조금 정화도 됐는데, 너는 뭐 느껴지는 거 없어?”

“아까부터 몸이 조금 가볍긴 한데, 이것 가지고 속단하긴…….”

“그럼 맞네! 지금 내 S급 스킬인 ‘의신의 손길’ 무시하는 거냐?”

“뭐라고? 의진이 손길?”

“의-신-의-손-길!! 거기 네 치료법은 정화 아니면 저주를 건 주체를 죽여야 한다고 나와 있다고. 심지어 새로 생긴 스킬은 엑스트라 급이야!”

엑스트라 급이란 소리에 성산하의 눈빛이 변했다.

“성좌로 인해 스킬이 생겼다는 건가. 신기한데.”

“그치? 너 정화도가 0.8퍼센트나 올랐어.”

“124번 키스 더 하면 된다는 소리군.”

“그렇지…… 아니! 은근슬쩍 개소리 하지 마라.”

아까야 급했으니 접촉이란 수단을 선택한 거지만, 잠겨 있는 스킬이 열린다면 구태여 키스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하루 종일 마나 포션을 빨며 성산하에게 방사로 정화하면 되니까! 그리고 저 석상들도…….

성산하와 함께 적혀 있던 이름들을 떠올리며 고민하는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성산하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의진아.”

“응?”

“기억은 언제부터 돌아왔어?”

예상치도 못한 말에 몸이 굳었다. 끼긱거리는 목을 돌려 옆을 바라보자 성산하가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 잃었다며.”

“어? 아, 아… 어?”

떡 벌어진 입에선 고장 난 듯 ‘어?’ 하는 소리만 튀어나왔다. 성산하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모른 척했나 보네.”

성산하가 내게 다가왔다. 나 역시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지만 순식간에 뻗어진 손에 허리를 잡혀 성산하의 몸에 바짝 붙었다.

“내가 사나라는 거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왜 모른 척했는지……. 대답 아직 못 들었는데.”

“노, 녹스에서 봤다. 왜.”

“녹스? 최근 그때?”

되묻는 성산하를 밀어 품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 인사하게 될 줄은 몰랐었는데. 이딴 식으로 허무하게 들킬 줄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당황과 민망함이 섞여 언성이 높아졌다.

“왜 모른 척했냐고? 너, 넌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냐?”

성산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날 바라봤다. 그 모습이 과거 사나와 겹쳐 보여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씨발, 너 몇 살이야!”

“스물 여섯.”

“으엥?”

호기롭게 손가락질 하며 소리친 것과 달리 답은 금세 나왔다. 당황해 눈을 뜨고 성산하를 바라봤다.

“뭐, 뭐…. 뭐? 스물 뭐?”

“형이라고 했잖아. 의진아.”

“하지만 너, 우리 사나는…….”

키가 이 정도, 그런데 지금 성산하는……. 손으로 둘을 가늠하다 충격에 다리 힘이 풀렸다. 무릎이 꺾여 휘청이는 걸 성산하가 달려와 냅다 받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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