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71.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뚱뚱한…. 말? 새?
“삐이. 삐삐삐.”
“뭐야? 저건.”
“그리폰 새끼군. 저게 어떻게…….”
그리폰이라니. 몬스터잖아! 이제 보니 몸은 사자처럼 생긴 주제에 머리나 날개 등이 독수리처럼 생기긴 했다. 그래 봤자 구름이보다 조금 큰 게 털은 부들부들해 갓 태어난 티가 물씬 났다.
“어쩌다 새끼가 혼자 돌아다니는 거지? 탑의 몬스터 같진 않은데……. 아, 혹시 천지심연 던전의 몬스터인가? 여기 그리폰도 자생했어?”
“아니. 희귀한 몬스터라 험준한 산악지대나 천공성에서야 발견되지 이런 동굴에선 살지 않아.”
“진짜 이상한 일이네. 공격 의사도 없어 보이는데……. 야! 너 어디서 왔냐?”
“삐이?”
성산하의 말대로 그리폰은 몬스터들 중에서도 희귀한 편이었다. 대충 보기만 해도 그리폰 한 마리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의 견적이 쫙 나왔다. 그리폰의 눈물과 머리 쪽의 흰 털, 그리폰의 날개와 발톱, 꽁지깃까지. 마력이 약한 새끼인 게 아쉬울 정도였다.
‘깃털 조금만 뽑아 가면……. 아니, 아예 통째로 데려다 성체로 만들까?’
테이밍 스킬이 없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군침을 삼키는데 루트와 구름이가 내 곁에 찰싹 붙어 그리폰을 경계해 댔다.
“월! 월월! 월! 아우우우!”
“메에에에에에!”
이를 드러내고 발을 구르고 아주 난리가 났다. 그리폰의 눈빛이 매서워지더니 귀청이 떨어질 듯한 목소리로 울어 대기 시작했다.
“끼애애애액!!!”
“크윽……!”
머릿속까지 침투하는 초음파에 두 귀를 막고 몸을 움츠렸다. 쉴드를 펼친 성산하가 나를 감싸 안았다.
“의진아! 너 괜찮아?”
“아오. 고막 찢어질 뻔했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신이 난 그리폰은 빽빽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구름이와 루트는 다행히 그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지 맞서 울어 대고 있었다. 아주 개판이다.
“일단 재워야지 안 되겠다.”
인벤토리에서 수면향을 꺼내려는데 저 멀리 동굴 어두운 곳에 불빛이 일렁였다. 멈칫해 그쪽을 바라보는데 옅던 불빛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폰이 그쪽을 향해 포르르 날아갔다. 곧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길이 나 있다! 그리폰도 발견했어!”
내 어깨를 잡은 성산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구름이와 루트가 눈치껏 내 곁으로 다가와 숨었다. 여차하면 도망갈 작정으로 구름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사이비일까?”
“글쎄.”
앞쪽은 확연히 밝아져 있었다. 아군일지 적군일지 가늠하는데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인 사람이 우리를 발견하곤 뒤를 향해 소리쳤다.
“찾았다! 찾았습니다!! 길드장님과 의진 님이 함께 계십니다!!”
이쪽까지 들리는 외침에 그제야 바짝 긴장해 있던 몸의 힘이 풀렸다. 하얀 제복을 입은 천랑 길드원들 사이로 청이와 제로도 보였다.
“사장님!”
“청아!! 제로!”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공동 내로 발을 들였다. 중앙의 석상들에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에 흠칫 놀라 성산하를 돌아봤다.
“성산하, 석상들이!!”
“쓸데없이 빠르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밟거나 부딪혀 석상을 훼손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됐다. 다행히 혀를 찬 성산하가 앞으로 나서 길드원들이 그 이상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물론 청이와 제로는 예외였다. 가까워진 그들에게 달려가 한 번에 와락 껴안았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얼마나 걱정 많이 했다고! 무사했구나!!”
“그럼요.”
“사장님께선 다치신 곳 없습니까?”
“당연하지. 너희는 포션 필요 없어?”
내 물음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으로 다가온 성산하가 넌지시 물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아까까지는 감도 못 잡고 있던데.”
“후후. 그러게 말입니다. 이쪽인가 싶어 가다 보면 길이 뚝 끊겨 있고, 던전 전체를 훑어도 꼭 누가 숨기기라도 한 듯 기척이 느껴지질 않으니……. 아주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죠. 누군가 일부러 훼방을 놓은 것처럼요.”
“…….”
미소 지은 성산하의 입꼬리가 굳었다. 음침하게 웃은 제로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돌렸다.
“하하하. 그래도 우리 이글 덕분에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답니다.”
“이글?”
의아하게 되묻자 제로가 엄지와 검지를 물더니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푸드덕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로의 뒤에서 그리폰 두 마리가 나타났다.
“어…? 네 그리폰이었어?”
“의진 님이 구해다 주신 알이 그사이 부화했습니다.”
“그 알들이 얘네가 됐다고?”
녹스에서 슬쩍 했던 그리폰의 알. 짝을 이뤄 부화한다는 말까지 들었음에도 태어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신기하게 바라보는데 품에 안긴 구름이가 심기 불편한 듯 머리를 까딱거렸다.
“아주 귀엽지 않습니까? 제게 각인까지 했답니다. 후후후…….”
“나중에 크면 깃털 하나만.”
“네. 알겠습니다.”
“쟤는 이름이 뭔데?”
아까 봤던 그리폰보다 색이 좀 더 연하고 예쁘게 생긴 걸 보니 수컷인 게 분명했다. 제로가 그리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라이언이요.”
“쟤는 이글이라며. 얜 라이언이야?”
그리폰은 사자의 하반신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몬스터다. 그걸 그대로 이름으로 갖다 붙이다니…….
“이름이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냐?”
“다른 누구도 아닌 사장님께 그런 혹평을 듣다니 너무 자존심 상하는데요.”
제로의 시선이 내 품에 안긴 구름이에게 꽂혔다. 구름이를 품에 꼭 껴안으며 구시렁댔다.
흥, 구름이가 뭐 어때서.
폐쇄되었던 천지심연 던전의 입구를 다시 복원해 탑을 통하지 않고도 밖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천지심연 던전은 스테이지형 던전이 아니었기에 헌터들과 함께 하니 금세 던전 초입에 다다랐다.
“태……, 녹스 놈들은 먼저 나갔다고?”
“네. 혹시 잠복이 있을지 모르니 누군가는 나가서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의진 님을 녹스에게 맡길 순 없으니…….”
“그래도 다들 멀쩡하니 다행이네.”
온 던전을 뒤흔들었던 습격의 규모에 비해 헌터들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몰래 나를 따라온 S급들 덕도 있겠지만 애초에 천랑에서도 엘리트들만 따라와서 공격에 당한 놈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 큰부상을 입은 헌터들이 있기야 했지만 성산하가 손을 대자마자 싹 나아 버려서 나는 포션을 꺼낼 틈도 없었다.
“공방 돌아가면 사용한 포션 목록들 알려 줘. 자주 쓰는 것들 위주로 좀 더 효과 좋게 만들어 줄게.”
“여기서 더 좋게 만들 수가 있다고요? 대단한걸요.”
“당연하지.”
“혹시 몬스터 용 포션도 제작하십니까?”
“그건 왜? 얘네 먹이게?”
제로의 뒤를 통통거리며 따라오는 이글과 라이언을 턱짓하며 묻자 제로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였어? 무슨 주인이 그래!”
“저도 새끼 그리폰은 처음이라서요. 그렇다고 성체들처럼 먹이로 사람을 줄 순 없잖습니까……. 뭐, 무리는 아니지만. 후후….”
음침한 웃음을 흘리는 제로의 안경이 희번득 빛을 반사했다. 싸이코 같은 모습에 질색해 그를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
“일단 공방 가서 감정해 볼게. 좀만 참아.”
“네. 감사합니다. 후후후후…….”
섬뜩한 생각이 들어 구름이를 안은 채 후다닥 청이 옆으로 피신했다. 흘깃 나를 바라본 청이가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뭔데?”
“사장님께서 용병들에게 배급한 포션 중 하나를 임단 헌터에게 줬습니다.”
“어엉?”
별일도 아닌 걸 고해성사하듯 말하는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누가 제 얘기 하는 건 귀신같이 알았는지 저 멀리서 임단이 후다닥 달려와 소리쳤다.
“임청! 넌 무슨 그런 것까지 허락을 맡아? 그리고 지금 언니한테 임-단- 헌터라고 했니?”
“사장님께서 공방 용병을 위해 특별히 제작하셨다고 말한 포션인데 함부로 외부인인 언니에게…….”
“내가 외부인이니? 청이 너 정말!!”
자매 싸움을 구경하는데 불똥이 내게까지 튀었다.
“너 치사하게 용병들한테 협박했니? 다른 사람들 주면 포션 다신 안 주겠다고?”
“갑자기 왜 시비야.”
머리를 긁적이다 궁금함을 못 참고 물었다.
“청이 네게 준 거니 누구한테 쓰든 네 마음이지. 괜찮아. 그나저나 어떤 포션 줬는데? 임단 너 설마 부상 입었었냐?”
풉 비웃으며 묻자 임단이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니? 내가 뭘 썼는지 네가 알 거 없…….”
“파란색 병, 붉은 마정석이 달려 있고 밀랍으로 봉인된 포션이었습니다.”
“임청!!”
“아아. 스킬 쓰려는데 숙련도라도 부족했나 보지?”
“…….”
임단이 고개를 홱 돌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며 물었다.
“그래서 효과는 어땠어? 최고지. 다시 마시고 싶지. 어? 어땠는데?”
“그만 좀 따라와!”
“이건 일종의 고객 조사……. 그래! 고객 만족도 조사 차원에서 묻는 거야.”
“고객 만족도 조사는 무슨, 그냥 칭송 듣고 싶은 거면서.”
입을 다물고 노려보던 임단이 뱉듯이 툭 말했다.
“……실력은 있더라. 너.”
“으하하하! 당연하지!! 나는 세계 유일의…….”
“그래! 그래. S급 포션 마스터 강의진!”
임단을 쫓아 오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일행의 선두에 와 있었다. 이동을 멈춘 우리 앞에는 워프가 생겨나 있었다.
성산하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그럼 갈까?”
“응. 잠깐만……. 루트! 이리 와.”
저 뒤에서 그리폰을 견제하고 있던 루트가 후다닥 달려왔다. 루트와 구름이까지 챙긴 뒤 성산하와 함께 워프를 통과했다.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동굴이 아닌 야외의 신선한 공기가 맡아졌다. 한 달만의 바깥 공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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