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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73화 (173/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73.

“의진 님!!”

공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뉴스를 보고 있던 승연이가 벌떡 일어났다. 와다다 달려와 품에 안기는 승연이를 안고 웃으며 물었다.

“공방 잘 지키고 있었어?”

“네…! 네. 의진 님.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준비한 포션이 다 떨어지면 공방 문을 닫기로 했는데, 복귀 일정이 늦어진 탓에 벌써 휴무 일주일째였다.

울먹거리는 승연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로비를 둘러봤다. 손님은 없었지만 깨끗하고 깔끔하게 관리된 것이 내가 떠났을 때와 똑같았다.

다른 팔에 안고 있던 구름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승연이가 의아하게 물었다.

“밖에 꺼내 두셔도 되는 건가요?”

“응. 던전에서 일이 있어서……. 이젠 문양에 못 들어가.”

오랜만에 온 공방이 마음에 드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구름이를 바라보다 로비 한편에 틀어져 있던 티브이로 시선을 돌렸다. 뉴스는 제주도 탑과 십여 년 만에 다시 열린 천지심연 던전을 대서 특보하고 있었다. 이분할되어 비쳐지는 성산하와 태제헌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곧 화면이 바뀌더니 태제헌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잡혔다.

“윽.”

옛 동료와의 반가운 재회라니, 미친 거 아니야? 함께 뜨는 헤드라인들이 아주 가관이었다. 배경 음악은 또 왜 저래?

태제헌을 불렀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알았지만 막상 보게 되니 눈을 찌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채널로 돌리려 리모콘을 찾는데 공방 문이 열렸다. 한서진이었다.

품에 안긴 승연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 한서진이 문을 활짝 열더니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로 들어오는 루트의 모습에 승연이가 놀라 펄쩍 뛰었다.

“…흐아악! 모, 모모몬스터가!!”

태제헌 그 개쓰레기 새끼는 진짜 루트를 버리고 갔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확 두고 와 버리고 싶었지만 멍청하게 생긴 주제에 저래 봬도 상급 몬스터라서 두고 오는 즉시 ‘포션 마스터 강의진, 제주도에 S급 위험 몬스터 방사. 일반인 피해 막심’ 따위의 기사들이 난무할 게 뻔했다. 하는 수 없이 루트를 공방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나와 함께 성산하의 전용기를 타려 했으나 루트가 천랑 길드원들이 가득한 전용기에는 절대 올라타려 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한서진이 루트를 맡아 데려다주기로 했다. 룬보다는 덜 사납긴 했으나 태제헌 외에는 말을 듣지 않아 잘 데려올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의외로 한서진 곁의 루트는 얌전했다.

한서진이 건네는 목줄을 받아 들었다. 능력 제어용 목줄에 입마개, 눈가리개까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고맙다. 서진아.”

무릎을 굽히고 앉아 루트를 묶은 구속구를 하나씩 벗겨 냈다. 안대와 입마개를 풀어 준 뒤 마지막으로 목줄이 남았을 땐 조금 고민하다 물었다.

“사고 안 치겠다고 약속해. 구름이랑 계속 같이 있고, 사람은 절대 물면 안 돼. 알겠지? 말 안 들으면 태제헌한테 복수한다.”

“워월웅…….”

루트가 알겠다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한숨 쉬며 루트의 목줄을 풀어 줬다. 뒤에서 승연이가 기겁해 헛숨을 삼켰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목줄로 제어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애초에 말이나 잘 듣게 기분 좋을 때 풀어 주는 게 훨씬 나았다.

자유를 되찾은 루트는 한서진을 빤히 바라보다 구름이가 있는 쪽으로 떠났다. 구속구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상하게 네 말은 잘 듣네. 원래 저렇게 차분한 놈이 아닌데.”

“이능 썼어요.”

“아 그렇구……. 뭐?”

뒤늦게 이해한 말에 황당하게 한서진을 바라봤다.

“이능을 썼다고? 몬스터한테도 쓸 수 있는 거였어? 아니, 그보다 너 그럼 제주도에서부터 여기까지 계속……. 가이딩 수치 괜찮아?”

“몬스터가 강해서 조금 애쓰긴 했어요. 그래도……. 형이 데려와 달라고 했잖아요.”

한서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가이딩도 부족해 보인다. 상태를 보려고 손을 뻗는데 뒤에서 승연이가 다급히 말했다.

“창고에 가이딩 포션 있는데 가져올까요?!”

한서진이 서늘한 눈으로 승연이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몸을 움츠린 승연이가 눈을 내리깔며 한마디 덧붙였다.

“마, 많이 있습니다.”

“남은 게 있었어? 다행이다. 그럼 부탁해 승연아. 넌 좀 앉아서 쉬어.”

“하아…….”

한서진이 짜증스레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

공방에 돌아왔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잠시, 돌아보니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떠나기 전에 만들어 둔 포션은 이미 동난 지 오래였고 탑에서부터 이고 지고 온 재료들만 이백 종이 훌쩍 넘었다.

저주받은 탐욕자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신재료들에 승연이의 입이 벌어졌다.

“이, 이렇게나 많이……!”

“죄다 아카이브에 등록되지 않은 새로운 재료들이야. 보관법부터 싹 다 알아내야 해.”

“네, 넵!”

“아, 그리고 이쪽에 검붉은 재료들은 건들지 마. ‘저주받은’ 수식언이 붙은 재료들인데 따로 정화 과정 거쳐야 해. 이건 내가 맡을게.”

승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벤토리들을 죄다 털자 중형 창고 세 개가 가득 찼다. 파일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비슷한 재료들끼리 분류하는 승연이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 못다 찾은 내 스킬에 대한 아쉬움을 삼켰다. 특히나 ‘선산의 주인’이 제일 아까웠다. 내 약산이 있는 이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특성 탓에 태제헌이 존나 싫어하는 스킬 중 하나였다. 그래서 전결서약을 맺고 봉인돼 버렸지. 녹스에서 벗어나니 이제 스킬이 사라져 버렸고.

‘나머지 스킬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번 퀘스트 보상에도 없던데’

“정리하고 있어. 난 잠깐 올라갔다 올게.”

“네. 의진 님.”

던전에서 한 달을 구르느라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장비 수리를 맡겨야 한다. 근처 대장간에서 조수를 보내기로 해 시간 맞춰 위로 올라갔다.

“뭐 더 맡길 거 없나…….”

듣기로는 꽤나 실력 좋은 대장장이라 예약을 잡기가 힘들어 맡길 수 있을 때 한 번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 대장장이들 특성상 포션에도 목매지 않아 내게 아쉬울 게 없기도 했고.

책상에 앉아 설렁설렁 서랍을 열어 보는데 가장 위 서랍을 열자 은색 체인에 연결된 반지 하나가 데구르 굴러왔다.

“엇, 이건…….”

처음 인벤토리를 열었을 때 발견했던 주호현의 반지다. 류수윤과 나눠 꼈던 우정반지……. 아니 커플링인가.

체인은 싸구려에 재질도 그다지 좋은 금속이 아니었다. 서랍을 다시 닫아 버리려다 멈칫했다.

잠시 고민하다 반지를 꺼내 체인을 풀어 목에 찼다. 목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반지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

「남산 던전 진입 난관. 길드들의 이권 다툼 때문? 정부, 세계적 재난에 사사로운 이권 다툼은 이기적이라며 조속한 해결을…….」

「녹스의 개입에 천랑 나몰라라……. 남산 던전 진입 시작부터 ‘삐걱’」

「조웰 “던전 리셋 후 플릭. 재앙의 열쇠.” 미국 인도 이집트 이탈리아에 이어 일본까지 플릭 성공. 반면 남산은 43일째 32층…….」

탑의 특정 층에 다다르면 던전 리셋 후 모든 헌터들이 튕겨 나가는 현상에 새로운 명칭이 붙었다. 일명 플릭.

두 번째로 플릭을 겪은 미국이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성좌가 필요하다는 것까지 발표해 버려 탑을 가진 나라들은 눈에 불을 켜고 성좌의 흔적을 찾아다니기 바빴다.

전 세계 헌터들이 플릭 후 다음 층으로 넘어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궁금해했지만 천랑과 녹스가-둘이 합심해 짠 건지, 아니면 짜지 않았는데도 뜻이 통한 건지는 모르겠다-이를 극비에 붙여 아직 제주 던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퍼져 나가지 않았다.

제주 던전에서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다른 나라들이 순조롭게 탑을 오르는 와중에 남산 던전의 다툼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매층마다 워프를 점거하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플릭은커녕 마지막으로 보고받았던 32층에서 조금도 전진하지 못한 상태였다.

처음엔 천랑이 나서서 해결해 주겠지, 언젠간 해결되겠지 여기던 사람들은 천랑이 손을 놓고 바라보자 도리어 그를 탓하기 바빴다.

그러나 나는 천랑이 단순히 손을 놓은 게 아니라 일부러 싸움을 붙여 훼방까지 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산 탑의 제물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했을 때 잠시 침묵하던 성산하가 말했다.

-꼭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정확해지기 전까지는 남산 쪽엔 진입하지 않는 쪽으로…….

-시간이 없잖아. 몇 층 남지도 않았어. 버텨 봤자 남산 던전이 리셋되어서 헌터들 다 튕기면 그땐 문을 열기 위해 성좌가 필요하다는 거 다 알 텐데.

-……지연시키면 돼.

-뭐라고?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

성산하는 나를 공항에 내려 주고는 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어제 이탈리아라는 전화가 마지막이었는데 지금쯤은…….

“사장님! 저희 왔어요!!”

“아저씨- 강아지 어디 있어요? 강아지!!”

“의진 님 어디 계세요?”

아래서 들리는 소란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탑에 관한 뉴스가 이어지던 티브이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려갈게!!”

사무실에서 나와 로비로 내려가는 계단에 들어서자 펑 하고 폭죽이 터졌다.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아래를 바라보자 고깔모자를 쓴 사람들이 환히 웃으며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뒤에는 커다랗게 ‘(경)포션 마스터 강의진, 공방 복귀(축)’이라는 글자가 적힌 플랜 카드도 걸려 있었다.

“사장님 복귀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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