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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79화 (17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79.

탑을 없앨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고 내가 성좌라는 것이 아예 확실시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둘로 나뉘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탑을 없애야 한다는 쪽과 아무리 그래도 인신 공양은 옳지 않다는 쪽으로.

어느 한쪽도 굽히지 않고 팽팽히 맞서는 국면에 이미 탑이 사라진 미국에선 자국 헌터들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O4 중 하나인 이탈리아에서는 빠른 진입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어떤 것이 정의인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

“월! 월월!”

“메에에에!”

바깥에서 뛰어노는 구름이와 루트의 소리를 배경 삼아 칼을 움직였다. 설해의 삼 뿌리를 덮은 껍질이 칼날 아래 사각거리며 깎여 나갔다.

올 손님도 없겠다, 정원에서 뛰노는 루트와 구름이도 지켜볼 겸 넓은 로비로 나와 재료를 다듬는 중이었다. 앞에서 조인의 깃꽃을 하나하나 펼쳐 압화시키던 승연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맞다, 진명이가 오늘은 새벽에 재료 가지고 온다고 연락 왔습니다.”

“새벽에 온대?”

“네. 그때가 사람들도 없으니까요……. 의진 님은 주무세요. 제가 받아 정리해 둘게요.”

“아니야. 같이 해.”

휴업을 했지만 마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동안 쌓아 뒀던 의뢰 연구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재료도 많이 필요했는데, 공방 거리를 완전히 뒤덮은 시위대 탓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재료를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진명이와 웃기지도 않는 비밀 작전을 벌이며 근근이 재료를 수급받는 중이었다.

자다가 진명이가 올 때를 맞춰 일어날지, 아니면 진명이를 보고 아예 늦게 잘지 따위를 고민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의진 님. 전화…….”

“여보세요.”

[형님! 접니다. 무일이.]

어라? 분명히 한서진 번호였는데.

나도 모르게 화면에 뜬 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뭐냐. 서진이는 어디 가고.”

[아이- 그게 중요합니까? 저희 사이에.]

“우리가 무슨 사인데.”

[갑자기 그렇게 물으시니까 당황스럽네요. 흠흠, 그러니까 말이죠. 서로 오해가 있을 뻔! 했지만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 내고 안정권에 들어선 그런 사이라고 할 수…….]

“끊는다.”

[아! 잠깐, 잠깐! 끊지 마세요. 서진인 지금 심문 중입니다.]

“심문이라니? 누구?”

[기밀이라 알려 드릴 수 없는데요. 혹시라도 다시 들어오고 싶으시면…….]

“됐어. 안 궁금해. 근데 왜 전화했는데? 그것도 한서진 휴대폰으로.”

한서진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앞에서 움찔움찔거리는 승연을 흘깃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며 묻자 반대편에서 억울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야 형님이 제 번호 차단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랬나? 기억 안 나. 용건은?”

[뉴스 보셨습니까?]

“아니. 나 뉴스 안 보는데.”

틀었다 하면 내 욕이 나오는데 보고 싶을 리가 없었다. 이초가 말한 대로 공방으로 직접적인 위해가 가해지진 않았지만 난무하는 뉴스와 입을 타고 흘러들어 오는 소문까지 막는 건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어젠 점점 더 거세지는 몬스터들의 행패에 남산과 제주, 두 탑의 특정 층들이 임시적으로 제한됐는데 그 탓에 시위가 더 격해졌다. 하다 하다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공방 앞에서 다 같이 머리띠를 두르고 춤을 추는 게 아닌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해서 쪽문을 조금 열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개새끼의! 강! 의리 없는! 의! 진실 숨긴 진! 아~ 나가! 나가! 나가 나가 나가!!]

“윽……!”

귀청이 떨어질 듯한 노랫소리에 화들짝 놀라 1초 만에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씨발, 뭐야……?”

소름까지 돋아 부르르 떨며 공방으로 돌아왔지만 뉴스에서도 시위 장면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 후로 티브이 전원까지 뽑고 다신 켜지 않았는데.

[끙……. 뉴스 한번 보시는 게 좋을 건데요.]

“왜, 뭐길래.”

직접 봐야 한다는 박무일의 성화에 어디 던져 놨는지도 잊은 리모컨을 찾아 티브이를 켰다.

틀자마자 나를 이기적이라 욕하는 시민의 인터뷰가 나와 기분이 확 상한 채로 띠껍게 물었다.

“뭐. 똑같은데.”

[재방송 보는 건 아니고요? 1번 틀어 보세요.]

박무일의 말대로 채널을 돌렸다. 생방송 중인 채널을 틀자마자 화면 아래 붉은 글씨로 속보가 지나갔다.

「속보! 금일 5시경, 일본 교토의 탑 제거 성공. 드러난 형상은…….」

“젠장…….”

이초가 민심을 흔들 가장 큰 변수로 예측했던 것이 일본의 탑이었는데. 좆됐다. 속보도 속보였지만 왜 박무일이 수많은 채널 중 1번을 틀어 보라 했는지 알았다.

「단독) S급 헌터 서설원. 그날의 진실을 밝히다.」

1번 채널에는 한 남자가 앵커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20층으로 가는 문에 도달했을 때, 이미 플릭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다들 긴장했죠. 그런데 강의진이 다가가자 문이 열린 거예요.]

[워프가 아닌 문이라. 그것부터가 달랐네요. 네. 그러면 문이 열리고 그 너머에 어떤 공간이 펼쳐졌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다들 알다시피, 제단이요. 천랑이 데려온 탐험가들이 문구를 해석했는데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물을 바쳤나요? 그 안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강의진이 도망쳤어요.]

“저 개새끼가……!”

누군가 했더니 제주 탑에 진입하기 전 봤던 S급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사이비들에게 쫓겨 도망칠 땐 보이지 않았는데.

‘그땐 혼자 튀어 놓고 이제 와서 이딴 인터뷰를 해?’

서설원의 답이 이어짐에 따라 속보 문구가 바뀌었다.

「속보! 강의진, ‘성좌’를 가진 채 제주 탑 제단 앞에서 도주.」

“의, 의진 님…….”

“구름이랑 루트 들어오라고 해.”

“네, 넵!”

승연이가 후다닥 정원으로 나갔다.

[형님, 형님?]

휴대폰 너머에서 박무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끊어 버렸다.

***

큰 사건이 두 개나 터져 그런지 기사가 쉴 틈 없이 쏟아졌다. 서설원은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인 데다 S급이기 까지 해 천랑에서도 손을 쓰지 못한 듯했다.

제주도의 탑을 일찌감치 없앨 수 있었는데 내가 도망쳐 무산됐다는 듯이 이야기가 퍼져 강의진 책임론이 거세졌고 당연하게도 공방 앞을 뒤덮은 시위대들도 부피를 늘렸다.

이웃 주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호소해 경찰과 에스퍼들까지 소환돼 시위를 진압했지만 공방 앞은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야 조용해졌다.

“지독한 새끼들…….”

한숨 쉬며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 멀리서 조그만 트럭이 덜덜대며 다가왔다. 뒷문 앞에 멈춘 트럭에서 진명이가 내렸다.

“사장님!”

“어. 진명아.”

“……괜찮으십니까?”

진명이도 일련의 사건들을 알았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다며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뭐, 언젠간 밝혀질 일이었으니까.”

“작은 사장님은 안 계시네요? 아까 보자고 하셨는데.”

“응. 먼저 재웠어. 오늘은 나랑 같이하자.”

“넵. 그럼 저는 정제수 먼저 채울 테니 사장님은 물건 검수 부탁드립니다.”

흰 목장갑을 건넨 진명이가 물통을 번쩍 들고 저장고로 향했다.

혼자 남은 나는 대충 목록을 훑고는 목장갑을 꼈다.

‘내리면서 확인하면 되겠지.’

기억 속의 목록과 맞는지 머리로 대조해 보며 트럭 뒤편의 상자를 뒷문 앞에 내려놓았다. 상자가 내 키만큼 높아졌을 때, 정제수를 채운 진명이가 돌아왔다.

“사장님. 재료 창고로 내릴까요?”

“응. 이쪽은 다 확인 한 거야. 두 번째 창고에 넣어 줘. 계단 조심해라.”

“넵.”

나는 두 개씩 옮기던 상자를 한 번에 네 개 들어 올린 진명이가 씩씩하게 지하로 내려갔다.

“……저거 일반인 아니라니까.”

혀를 내두르며 뒤를 돌았다. 어느덧 짐을 다 옮겨 트럭 문을 닫으러 가는데 내부에 작은 상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다 옮긴 줄 알았는데?’

트럭 문을 닫으며 상자를 집어 올렸다. 농구공만 한 상자는 부피에 비해 매우 가벼웠다.

“옮기다 떨어진 건가…….”

목록과 대조해 봐도 뭔지 모르겠어 상자 뚜껑을 열자 작게 접힌 종이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별생각 없이 쪽지를 펼쳤다.

「안녕. 카스토르?」

흠칫 놀라 잡고 있던 상자를 떨어트렸다. 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방으로 달려 들어가자 막 지하에서 올라오던 진명이가 의문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사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진명아. 오늘 가져온 물건 중에 작은 상자도 있었어?”

“작은 상자요?”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상자를 가리키자 진명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희 가게에서 쓰는 상자가 아닌데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아니야.”

애써 굳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마저 정리하자며 말을 돌린 뒤 진명이가 아래로 먼저 내려간 사이 손안에서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다시 펼쳐 봤다.

「안녕. 카스토르?」

아직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성좌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어떻게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제주 탑으로 난리 난 이상 하말인 줄 알아야 하는데, 콕 집어 카스토르라니. 이걸 보낸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언뜻 종이 뒤로 비치는 글자가 있어 종이를 뒤집어봤다. 아무것도 써지지 않은 빈 면. 하지만 특유의 달콤한 향이 풍겼다.

“지랄하고 있네. 별 장난질을…….”

욕을 짓씹으며 달을 향해 종이를 들어 올리자 그전까진 보이지 않던 글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내일 밤 9시, 같은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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