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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81화 (181/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81.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모호한 미소가 재수 없었다. 입만 열면 개소리라 더 이상 말을 섞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았지만…….

‘대체 내가 자살했던 걸 어떻게 아는 거지?’

사이비란 이유만으로 무시하기엔 걸리는 점들이 많았다. 탑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은 것 같고, 특히 저 여잔 조금만 긁으면 욱해서 뭐라도 뱉을 것 같은데.

‘이 새끼만 없었어도…….’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웃는 얼굴로 올려다보던 알렌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딴 제안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성좌의 운명을 타고난 이상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언제까지고 숨기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고요.”

“그놈의 성좌의 운명. 대체 그게 뭔데.”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분의 뜻 어쩌고 하며 이리저리 빠져나가길래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내 투덜거림에 알렌은 눈을 빛내더니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제단을 보신 적 있습니까?”

“봤다면?”

“그렇다면…….”

못마땅한 반문에도 알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묘한 웃음만 흘렸다.

어차피 교단 따까리들에게 제주 탑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 들었을 거면서 뭘 묻는….

순간 스치는 생각에 다급히 물었다.

“제단에 써 있기라도 하단 소리야?”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쳇, 죽을 때 알아봤자 그게 무슨 소용인데.”

“이제 결정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알렌이 답을 재촉했다. 그를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봤다.

설령 놈들이 진실만을 말했고 결국 내가 죽어야 하는 거래도 놈들과 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것을 티 내면 안 된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피차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요. 오래 기다리긴 힘듭니다.”

“가면 죽는다며. 인수인계하는 데에만도 한 달은 필요하다고. 어쨌든 지금 당장은 절대 못 가. 마지막 인사도 해야 하고 주위 정리에,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어 두고, 버킷리스트라도…….”

“지금 소풍 갑니까?”

손가락을 꼽으며 말하자 참다못한 여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작게 한숨 쉰 알렌이 선심 쓰듯 말했다.

“일주일 후에는 결정하셔야 할 겁니다.”

“일주일? 너무 짧아!”

“그분의 결정은 미룰 수 없습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놈들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미친 새끼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퀘스트 창을 열었다.

{ 메인 퀘스트 }

#5.5 ZODIAC SYSTEM 재건

조건 : 온전한 성좌를 완성해 제 자리로 돌려보내야 함.

보유 조각 : 하말♈, 카스토르♊

난이도 : S

제한 시간 : ∞

보상 : 마지막 소원, 성좌의 힘

실패 시 퀘스트 영구 삭제

※ 거부 불가능

눈앞에 뜬 메인 퀘스트 창을 보며 입을 삐죽였다.

“조디악 시스템 재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알려 줘야 할 거 아니야.

뭘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퀘스트의 의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명확했다. 성좌를 보호하라는 것. 성좌를 제물 삼아 탑을 없애자는 폰투스 교단 놈들의 제안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더 믿음이 가는 건 당연히 퀘스트창이었다. 물론, 메인 퀘스트 초반엔 내 스킬을 빌미로 협박을 일삼긴 했지만 존나 수상한 사이비 새끼들과 비할 바 없었다.

“온전한 성좌를 완성하라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대답 좀 해 봐. 서브 퀘스트라도, 아니면 돌발 퀘스트라도 내놔 봐. 어?”

잡히지 않는 퀘스트 창 위로 손을 허우적대며 한탄했지만 시스템은 아무 답이 없었다.

***

“의진 님 괜찮으세요?”

“사장님 안녕하세……. 어라, 무슨 일 있습니까?”

“형. 얼굴이 왜 그래.”

“오늘따라 유독 표정이 어둡습니다?”

시위대를 뚫고 공방에 찾아온 사람들마다 내 얼굴을 보고 한마디씩 내뱉었다. 밤 늦게 찾아온 성산하까지 나를 보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어 손을 까딱였다.

“강의진. 이리 와 봐.”

“뭐. 나 바빠.”

무슨 말을 할지 뻔했다. 하루종일 이유 모를 핀잔을 듣다 보니 짜증이 나 성산하의 부름에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포션 연구에 집중하는데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주인님이 ‘이리 온’을 하셨습니다. 서둘러 주인님께 달려갑니다.」

“아, 씨!!”

분노해 소리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발은 저절로 움직여 성산하 앞에 멈춰 섰다. 양손에 재료와 플라스크를 든 채 놈을 노려봤다.

“뭐 하는데.”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뭐. 잘생기기만 하고만.”

“주인 잃은 강아지 같잖아.”

“개소리.”

옆의 유리에 얼굴을 비춰 봤지만 딱히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다들 왜 이러는 건지.

턱가를 더듬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내게 성산하가 손을 뻗었다. 장갑 낀 손이 인상 쓴 미간을 꾹꾹 눌러 폈다. 그러곤 입꼬릴 옆으로 주욱 당겨 억지로 웃게 만들었다. 짜증스레 손을 쳐 내자 팔짱 낀 성산하가 거 보란 듯이 혀를 찼다.

“지금까지 네가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알아? 그렇게 좋아하는 포션 만지면서도 웃지도 않고 이렇게나 딱딱한 표정이라니. 대체 무슨 일인데.”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는 시선에 순간 걱정거리를 털어놓을 뻔했다. 입술만 달싹이다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 없었어.”

“……의진아.”

물론 성산하는 믿는 눈치가 아니었지만 섣불리 폰투스 교단 놈들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을 순 없었다. 놈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성산하 역시 딱히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겸연쩍어 시선을 피하며 아무것도 없는 목을 긁어내렸다.

“그나저나 이거나 좀 풀어 줘. 대체 언제까지 이대로 둘 건데?”

“…….”

“야! 성산하!!”

소리쳐 부르자 그제야 굳은 입매가 풀렸다. 깊은 한숨과 함께 표정을 숨긴 성산하가 옅은 웃음을 지어 냈다.

“내 도움 없이도 풀어낼 방법 많다며.”

“그거야…, 그땐! ……씹, 그럼 키워드라도 알려 줘. 대비라도 하게.”

“으음, 그럼 이렇게 할까. 키워드가 뭔지 맞추면 풀어 줄게.”

“정말이지?”

쉬워 보이는 조건에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성산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격자의 권리로 라이라프스의 목줄에 해지 조건이 생긴 것까지 확인하고는 신나서 키워드를 생각나는 대로 뱉었다.

“멍멍아! 강아지! 의진아! 강의진, 형아! 동생?”

“미안하지만 모두 틀렸어.”

“고양이! 토끼! 호랑이! 늑대! 사자!”

“의진아. 여기가 동물농장이야?”

쉬울 줄로만 알았는데 은근히 어려웠다. 막상 맞추려니 생각나는 것도 없어 겨우 짜내 스무 개가량을 더 불러 봤지만 성산하는 고개를 저었다. 고민하다 넌지시 물었다.

“……설마 개새끼?”

“그럴 리가.”

“그럼 뭔데!!”

“네가 맞춰야지. 오늘은 이쯤 하고, 다음에 더 고민해 봐.”

설핏 웃는 놈의 얼굴을 노려보다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연구하고 있던 작업대를 훑은 성산하가 물었다.

“그때부터 계속 정화 연구 중이야?”

“다른 연구랑 병행하는 중이야. 석상들을 그대로 둘 순 없잖아. ……석상들은 아직 공개 안 된 것 같던데.”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악의적으로 떠들어대는 방송사에서도 아직 보지 못한 걸 보면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짐작이 맞았는지 성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상이 있는 공동은 우리 길드원이 몰래 가서 지키고 있어.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 오게 해 뒀어. 애초에 천지심연 던전 소유권을 매수하려고 했지만……. 탑과 연결되어 있어 그런지 일이 조금 꼬였거든.”

“하지만 천랑이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의심할 수도 있어.”

석상이 부서지기도 한다는 걸 알아 걱정스레 중얼거리자 성산하가 피식 웃으며 머리를 헝클였다.

“그럴까봐 소송 걸었으니 걱정하지 마.”

“갑자기 웬 소송?”

“국유든 사유든. 던전의 소유권이 처리될 때까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할 거야.”

그제야 왜 성산하가 천랑 길드원들을 ‘몰래’ 들여보냈다고 했는지 깨달았다.

-제단을 보신 적 있습니까?

어젯밤 알렌이 흘렸던 단서가 머리를 스쳤다.

‘제단. 제단을 봐야 해.’

천지심연 던전은 탑과 이어져 있다. 던전을 통한다면 탑의 20층까지 하루 만에 다다를 수 있다. 어차피 사람들의 진입이 막힌 상태라면……

“어때. 진척은 잘 되어 가고 있어?”

“순조로워. 조금만 손 보면 테스트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성산하의 물음에 답하며 타이밍을 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아- 내일은 제주도 탑에나 가 봐야지.”

“뭐?”

성산하가 곧바로 나를 돌아봤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왜, 안 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헛웃음을 흘린 성산하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갑자기 제주 탑을 가겠다고? 꼭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 같네.”

“꼭 그런 게 있어야만 하나? 그냥 갑자기 가 보고 싶을 뿐이야. 가만히 공방에 갇혀 있어 줬는데 뭐 해결된 것도 없잖아.”

“가서 대체 뭘 하려고.”

“뭐든. ……마지막 층에 가면 뭐라도 알 수 있겠지.”

“그래서, 겨우 그것 때문에 하말을 탑에 데려가겠다고?”

성산하의 물음에 오만상을 지었다.

“미쳤냐? 그 미친 촉수 괴물이 구름이 노리는 거 뻔히 아는데 구름이를 거기에 왜 데려가? 나는 단지 제단을 읽으려고….”

“제단? 갑자기 제단은 왜.”

“그냥, 촉수 괴물이 거기서 나왔으니까…….”

씨발, 귀도 밝네.

어영부영 말을 돌리는데 성산하가 한숨 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죽어도 말 안 하겠다니 일단은 넘어가겠지만, 의진아. 제주 탑에 갈 때 하말은 두고 가겠다고?”

“구름이는 절대 거기 안 데려가.”

“그럼 20층엔 어떻게 들어가려고.”

“……?”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눈살을 찌푸리다 뒤늦게 입이 떡 벌어졌다.

“아, 젠장…….”

“마지막 층에 들어가려면 하말의 문양이 필요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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