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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82화 (18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82.

구름이를 그곳에 데려갈 순 없다. 어쩔 도리도 없이 무력하게 구름이를 빼앗기던 감각이 아직도 손에 선명했다. 아무 대비도 하지 못한 채로 같은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단을 확인하긴 해야 하는데…….’

사실 고민할 필욘 없었다. 내겐 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었으니까.

감추듯이 주먹을 꾹 말아 쥔 채로 성산하에게 물었다.

“…나 궁금한 게 있어.”

“어떤 것?”

“성좌 지도 말이야. 어떤 식으로 보여?”

성산하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진득한 시선이 마치 속내를 읽으려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 놈을 마주 봤다.

‘보면 어쩔 건데. 한서진도 아닌 게.’

이미 난 결심 했다. 남산 탑에 들어가기로.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좆같은 성좌 지도 탓에 구름이와 떨어지는 즉시 성산하뿐 아니라 온 S급들이 내가 공방을 벗어났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염두에 두고 있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만전을 기하려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중요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성산하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뱉더니 입을 열었다.

“대충 구역만 알 수 있어. 어느 건물에 있는지, 주위 지형이 어떤지 정도.”

“구름이랑 내가 구분되어서 보여?”

“아니. 둘이 떨어지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아-. 알겠다. 고마워.”

하말과 카스토르가 나눠져 보인다면 곤란했을 건데, 듣던 중 다행이다.

‘포션으로 가능할까, 부족하면 아이템을 구해야…….’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방향을 잡지 못해 두서없는 생각들이 무수히 많이 튀어나왔다. 손가락을 까딱이며 머리를 굴리는데 성산하가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강의진.”

“어?”

“혼자 위험한 짓 하지 마.”

걱정이 담긴 성산하의 얼굴에 잠시 멈칫했다. 어쩌면 성산하에게만은…….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하려던 말을 삼켜 버리곤 대신 씨익 웃음 지었다.

“내가 애냐? 별 쓸데없는 걱정은.”

***

연기 사이로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렸다. 감정할 필요도 없다. 포션 마스터로서의 예민한 촉이 이번 제작이 대성공임을 알렸다. 냄비에서 황금빛 연기가 올라오자마자 쓰고 있던 안경을 집어 던졌다.

“됐다!”

장장 6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이건 내가 만든 것 중 가장 높은 등급의 무력화 포션으로, 웬만한 헌터들의 스킬을 잠글 수 있음은 물론이고 마나와 체력까지 일정 시간 동안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 사기적인 포션이다.

물론 급하게 만들려다 보니 밸런스 조절을 하지 못해 위력만큼 엄청난 단점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공복 10시간을 유지한 채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수한 포션을 그대로 마셔야 한다든가, 확실한 독으로 분류되어 해독 스킬이 있는 헌터들에겐 포션 알람이 간다든가 하는……. 아무튼 무력화 포션의 특성상 당사자 모르게 먹여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니 상용화는 어려운 포션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무엇보다 필요한 포션이다.

그대로 포션을 한 국자 퍼 마셨다. 해독하겠냐는 알람을 무시하고 눈을 감자 피부 겉에서부터 톡톡 튀는 듯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는 감각이 핏줄을 따라 흐르더니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으으, 기분 좆같네.”

상태창을 열어 보니 체력과 마나가 줄어들고 스킬이 모두 잠겨 있었다. 손바닥의 문양 역시 아주 흐릿해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

‘됐어. 이 상태면 지도도 문제없어.’

인벤토리가 열리는 것까지 확인하고 시계를 보자 오전 11시였다.

당장 오늘이 알렌이 말한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연구실 한쪽에 걸린 로브를 들고 계단을 세 칸씩 뛰어 올라갔다.

일 층에 올라가 슬쩍 로비를 들여다보니 재료를 다듬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승연이가 보였다. 안 자고 있으면 수면향을 썼어야 했는데 마침 잘됐다.

“승연아. 제대로 누워서 자.”

“으… 의진 님? 아닙니다. 마무리만 하고…….”

“아니야. 더 자.”

눈도 못 뜨고 헤롱대는 승연이를 소파에 바로 눕히고 위에 담요를 덮어 줬다. 그러자 구석에서 각자 놀던 루트와 구름이가 내게 쫄래쫄래 다가왔다.

“메에?”

“월. 월월.”

로브를 입은 게 신기한지 로브 자락을 물어 대는 통에 이리저리 피하며 품에서 커다란 뼈다귀를 두 개 꺼냈다.

“자, 이거나 갖고 놀고 있어!”

구름이에겐 ‘저주받은’ 미노타우로스의 뼈다귀를, 루트에게는 일반 미노타우로스의 뼈다귀를 던져 줬다. 다들 눈이 돌아가 뼈다귀에게 달려가는 사이 몰래 뒷문으로 향했다. 구름이와 루트 둘 다 내가 나가는 것을 알아챘지만 뼈다귀를 먹느라 차마 따라나오진 못했다.

뒷문으로 나가기 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단단히 끼고는 크게 심호흡했다.

“이게 뭐라고 존나 떨리네…….”

밝을 때 공방을 나서는 건 장장 몇십 일 만이었다. 뒷문을 넘어 공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확성기 소음이 귀를 때렸다.

[…을 밝혀야 합니다! 다른 나라가 발전하는 사이! 우리는 강의진과 대형 길드들에게 발목잡혀…….]

인상을 찌푸리고 서둘러 큰길가로 발을 옮겼다. 시위하러 모인 사람들이 많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낀 모습을 수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 놓고 택시를 잡으러 가는데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저기요!”

“으엥? 나?”

흠칫 놀라 떨며 뒤돌아봤다. ‘강의진 타도’라는 두건을 쓴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여자가 내게 부채를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시위 나가면 덥거든요.”

부채에는 뿔과 수염이 난 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심지어 사진은 원본도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사진을 만졌길래 이렇게 못생겼지?

입을 삐죽대다 부채를 다시 밀었다.

“이거 싫어. 필요 없어.”

“아, 당신 혹시…….”

여자의 눈에 적개심이 흘렀다. 그때 뒤에서 다른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꺼져! 왜 이쪽에서 행패야?”

“이거 받으세요. 역시 우리 쪽일 줄 알았어요. 부채랑 배지, 물이랑 응원 스틱이랑 야광봉이에요!”

내 품에 한아름 쥐어 주는 물건들을 받았다. 이번엔 ‘I ♡ 의진’이나 ‘세계제일포션마스터강의진’ 등의 문구가 적힌 데다 사진도 실물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마음에 들었다. 마스크 뒤의 입꼬리가 씰룩댔다.

“이건 괜찮네. S급이란 글자가 없는 게 조금 흠이긴 하지만.”

“뒤를 보세요.”

“아……!”

「누가 S급인데 마스터이기까지 하다고? 바로 강의진!」

그제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시위대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응원 스틱은 시끄러워서 금지라고요!”

“흥! 너희 쪽 확성기나 끄시지!”

시끄러워질 것 같아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눈에 띄어선 안 되기에 받은 물건들은 길거리에 놓아두고 택시에 올라탔다.

“어서 오십쇼. 어디로 가십니까?”

“작은 까마귀의 둥지로.”

작은 까마귀의 둥지는 상급 아이템을 취급하는 전문 쇼룸이다. 남산 던전에 가기 전 급히 구해야 할 장비가 몇 개 더 있어 전에 이초가 보내 줬던 목록 중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음침한 상점을 선택한 것이다. 전에 갔던 VIP 쇼룸이 아이템의 품질은 더 좋겠지만 거길 갔다간 성산하한테 바로 들킬 게 뻔했다.

작은 까마귀의 둥지는 아주 구석진 곳에 있었다. 어두운 골목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자 조그만 검정 문이 나왔다.

‘뭐 이딴 데에 있냐…….’

불만을 삼키고 가게 내부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여자에게 하얀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본 여자가 짝 손뼉을 쳤다.

“아! 산하 님이 보내셔서 오셨군요! 잠시만요. 금방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여자는 곧바로 카운터 뒤편으로 들어가 버렸다.

‘말도 안 했는데 대체 뭘 가지고 나온다는 거야?’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간 모습에 의구심이 들 무렵 여자가 박스 여러 개를 들고 나왔다.

“예정 일보다 빨리 오셨네요. 저희가 미리 물건 준비해 둔 걸 어떻게 알고……. 하하. 자 여기, 목록이요. 여기 첫 번째 상자는 오누이의 밧줄이 들어 있습니다. 여는 즉시 속박되니 열 때 주의하세요. 켄탈루의 수갑과 어둠으로 점칠된 눈물의 족쇄는 이쪽 상자에 들어 있고요…….”

여자가 설명하는 물건들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모두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아이템들이었다.

‘이게 다 뭐야? 성산하가 주문했다고?’

뭐 몬스터라도 기르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마침 여자도 아쉬운 표정을 하며 말했다

“몬스터 사육용 철창은 아직 제작 중이에요. 시일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에 말씀하셨듯 그 어떤 독이나 포션에도 녹지 않게 주문을 넣어 제작 중이니 품질은 믿으셔도 됩니다.”

“아니, 아니. 난……. 이걸 다 성산하가, 천랑 길드장이 주문했다고?”

“이번에 처음 오셨나 봐요? 분기별로 주문하시잖아요. 그러다 모조리 반품하시고, 또 주문하고를 몇 번이나 반복하시는데 아직 가둘 만한 몬스터를 찾지 못했나 봐요. 항상 멀쩡한 걸 반품…….”

설명하던 여자가 미동도 없는 내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는지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 …발. 물건을 받으러 온 게 아니시구나.”

“응…….”

“세상에, 세상에!! 나 좀 봐, 미쳤지. 미쳤어! 죄송해요!! 저는 천랑에서 오셨길래 당연히 산하 님이 보내신 줄 알고…….”

여자가 급하게 상자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왠지 음침해 손대기가 꺼려져 지켜보고만 있는데 다 치운 여자가 땀을 닦으며 손을 털었다.

“어휴, 당황해서 심장 떨어질 뻔했네. 그럼 천랑, 간부이신 건가요?”

“응. 아이템 몇 개 필요해서.”

“정말 죄송해요. 일반 헌터님들은 잘 오질 않으셔서. 저희는 저거 전문이거든요.”

안쪽을 고갯짓하며 씩 웃는 여자를 따라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품에서 종이를 꺼내 건넸다.

“이것들. 지금 당장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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