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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83화 (183/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83.

일련의 사건 탓에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어차피 내가 구하려던 것도 비슷한 유형의 아이템이었다. 앉아서 조금 기다리자 여자가 아이템을 들고 나왔다.

“어때, 다 있어?”

만일 없다면 다른 아이템 상점도 들러야 했기에 조금 조급히 묻자 여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하죠. 덫이나 트랩 관련해선 다루지 않는 것이 없다구요. 다만 마지막 것 말이에요, 완전히 똑같은 건 없고 비슷한 효능인 건데 제대로 사용하려면…….”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데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말하던 여자가 양손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미안.”

“먼저 받고 오세요.”

누구지…. 설마 승연이가 깬 건 아니겠지.

전화 올 곳이야 많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가게 밖으로 나와 휴대폰을 확인하자 뜻밖에도 성산하의 이름이 있었다.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씨발. 왜 하필 지금 전화하고 지랄이야…….”

혹시나 싶어 상태창을 확인해 봤지만 무력화 포션은 제대로 효과가 남아 있었다. 라이라프스의 목줄 역시도 나를 찾아올 수 있게 하는 거지 내 위치를 알리는 게 아니라서 성산하가 알 방법은 없을 텐데?

큼큼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늦게 받네. 연구 중이었어?]

“어어. 왜 전화했는데.”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우리 멍멍이 뭐 하나 싶어서.]

“별 쓸데없는……. 바쁘니까 끊어.”

[……의진아.]

반대편에서 나를 부르는 성산하의 목소리에 다시 휴대폰에 귀를 가져다 댔다.

“응.”

[무슨 일 있으면 나 부르고. 어디에 있든지 연락받을 테니까.]

“……그러든가. 끊는다.”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러지?

전화를 끊은 휴대폰을 이상하게 내려다보다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8시 30분. 사이비들이 오기까지 삼십 분 남은 시점에 나는 사무실에 홀로 앉아 하얗게 빈 종이를 내려다봤다.

“으음…….”

남산 던전에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몰라 승연이에게 쪽지를 남기려는데 대체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혹시 잘못될 걸 대비해 유서라도 써야 하는 건가?

지하 연구실에서 포션 공장을 돌리는 중인 승연이를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다 대충 글씨를 휘갈겼다.

「승연아 나 잠깐 나갔다 온다. 그동안 구름이 꼭 지켜줘. 문제 있으면 성산하한테 전화해서 도와 달라고 해.」

이 정도면 됐고…….

서랍에서 새로운 종이를 한 장 더 꺼냈다.

「성산하에게.

저주 정화제야. 거의 다 만들었으니까 천랑에서 제일 실력 좋은 포션 메이커에게 마지막 검수받아서 완성시켜. 뒤에 레시피 첨부한다. 석상에도 꼭 써야 해.」

시간이 없어 정화제를 미완성으로 두고 나가는 게 영 마음이 불편했다. 제주 탑에서 나온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갈아 만든 정화제를 역시 메모 위에 올려놓은 뒤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문으로 가자 역시나 전과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화단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왔냐.”

“오랜만입니다. 카스토르. 결정은 하셨습니까.”

카스토르는 무슨……. 전에는 그래도 의진 님 하던 놈들이 이제는 아예 성좌로 칭하고 있었다.

‘이 씹새끼들이 사람을 완전히 제물로 보고 있네.’

두 블럭 뒤 골목에서 사람 형태가 나타났고 인원은 전과 같이 셋……. 손을 내젓자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작은 까마귀에서 구입한 아이템이 착실히 작동하고 있었다. 트랩을 활성화하자 제한 시간이 떴다.

「10:00:00」

“씹…. 존나 기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이제 대답해 주시죠. 카스토르.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십 분은 끌어야 한다. 그리고 십 분 안에 어떻게든…….

한숨 쉬고 담벼락에 머리를 박고 별 지랄을 해 대며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하아……. 결정 내릴 게 뭐 있어. 다른 방법도 없었잖아.”

“저희 교단의 뜻에 함께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뭐어. 그런 셈이지.”

씨발, 죽을 때 죽어도 너희들이랑은 같이 안 간다. 또라이들아.

속으로 빈정대며 물었다.

“탑엔 언제 가야 하는 거야?”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폰타나 교단과 함께하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폰투스입니다.”

“어어. 맞다. 폰투스. 여하튼, 너네도 알겠지만 제주 탑의 마지막 층을 가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어. 그렇게 오랜 시간 허비하고 싶진 않아. 심지어 나를 죽이려는 놈들과 동행까지 해야 하잖아?”

알렌의 흡족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에 말씀드렸듯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남산 탑의 주인인 카스토르…….”

“어어. 성좌한테 길이 열린다고 했던 거. 기억은 하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믿냐고. 제주 탑에 갔을 땐 열리지 않았던 게 남산에선 왜 열리냐고. 혹시나 구라 칠 생각 하지 마라. 그때 하말도 같이 있었거든.”

“그건…….”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하말은 살려 준다는 말도 거짓일지 어떻게 알아.”

의심에 가득 찬 목소리만 줄줄이 내뱉자 뒤에서 여자가 버럭 소리 질렀다.

“멍청하긴! 폰투스 교단의 증표와 성좌의 힘이 합쳐져 길이 열리는 것이다!”

“증표? 그게 뭔데?”

“신앙심이 깊은 자들만 받을 수 있는 그분의 펜던트가……!”

“스칼렛 사도님.”

“…죄송합니다. 알렌 님.”

알렌의 질책에 스칼렛이라 불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담벼락 뒤에 숨은 나는 숨죽여 쾌재를 불렀다.

‘분명 펜던트라고 했지?’

더 이상 놈들과 말을 섞을 필요도 없었다. 마침 시간도 되어 설정해 둔 범위의 속박이 활성화됐다.

“당장 출발하실 수 있습니까.”

“안 돼. 마무리가 아직 덜 끝났어. 미리 연락하려고 했는데 방법이 없었잖아.”

담장 바깥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 알렌이 말했다.

“내일 새벽 5시에 뵙겠습니다.”

“쪼잔하게……. 뭐, 일단 알겠어.”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뭐, 뭐지? 길이 사라졌습니다!”

“다들 이리로!”

“워프가 되지 않습니다! 아예 활성화가…….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놈들이 당황한 소리가 들렸다.

‘으음, 시간이 별로 없는데.’

시간을 확인하며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뒤로 휙 던졌다. 시위대들이 던지는 모든 물건을 막아 주던 엘프목의 실드가 내게만은 활짝 열려 바깥으로 병을 통과시켰다.

“큭, 당했다! 함정이야!”

“연기를 들이마시면 안 돼!”

“알렌 님!!”

병이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패닉에 빠진 사이비 놈들의 비명을 들으며 천천히 초를 셌다.

“피해 봤자 소용이 없어요. 이미 중독됐거든……. 넷, 다섯….”

일주일 전 헤어질 때 해독제라고 건네주긴 했지만 사실 그건 잠시의 독만 잠재울 뿐 또 다른 마비제가 섞여 있었다. 놈들은 일주일 전부터 독에 중독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그러게 모르는 포션 마스터가 주는 거 넙죽넙죽 받아먹으면 안 되지.

“…아홉, 열. 됐다.”

초를 다 세자 밖은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용했다. 무력화 포션을 꺼내 꿀꺽 삼키고 뒷문을 열고 나갔다. 공방 뒷골목에 무질서하게 쓰러진 세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놈들을 하나씩 끌어 벽에 기대 눕혔다. 무력화되어 체력과 스탯이 하락한 상태였지만 셋 정도는 무리 없었다.

팔짱 낀 채 작은 까마귀 사장이 준 사슬로 줄줄이 묶인 폰투스 교단 놈들을 내려다봤다.

“펜던트, 펜던트라…….”

인벤토리에 있으면 곤란한데. 물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깨워서 환각제를 먹여 스스로 열게 만들면 되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여기서 튀어야 했기에 시간이 없었다.

“일단 뒤지자.”

알렌의 로브를 벗겨 탈탈 털었다. 로브 아래로는 존나 사이비 같은 검붉은 신관복을 입고 있었는데 워낙 겹겹이 입은 탓에 뒤지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참을 뒤적거리며 알렌의 상반신을 다 벗긴 뒤에야 알렌의 목에 걸린 작은 금화 하나를 발견했다.

“아 뭐야, 목걸이였어? ……플라멜의 현안!”

< ■■■■■의 선택받은 신도의 징표 >

■■■■■의 힘이 극미량 담겨 있는 금화.

극미량으로도 엄청난 힘이 담겨 ■■■■■ 본체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를 숭배하는 소수의 신도들에게만 주어지는 징표.

숭배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버프가 걸린다.

펜던트를 감정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본 적 있는, 아니 ‘저주받은’ 재료들을 정화하며 수백 수천 번 봤던 익숙한 글자들이 펜던트에서도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왜 폰투스 교단 놈들에게……. 설마 둘이 관련 있는 건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태창과 손안의 금화를 응시하는데 저 멀리 골목에서 소음과 함께 번쩍이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젠장, 벌써……!”

몰라. 일단 가 보면 알겠지.

주머니에 팬던트를 쑤셔 넣고 로브를 뒤집어썼다. 떠나기 전, 발아래 반라가 된 알렌을 내려다봤다.

목걸이인 줄 알았다면 이렇게 다 벗길 필요도 없었을 텐데…….

“미안. 다시 입혀 줄 시간이 없다.”

대충 로브만 덮어 주곤 서둘러 빛이 있는 반대편으로 튀었다.

***

“산하 님. 왜 전화를 안 받으십니까…….”

이초가 초조한 얼굴로 휴대폰을 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강의진에게 지금 당장 공방으로 와 달라는 문자를 받은 지 벌써 이십 분이 지났다. 옷을 입기도 전에 성산하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지만 이상하게 제 상사는 긴급 표시를 띄웠음에도 연락이 전혀 되지 않았다. 강의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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