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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84화 (184/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84.

결국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천랑의 워프를 몇 개나 통과하며 급히 공방으로 향했다. 강의진 보호를 위해 미리부터 뚫어 놓은 워프 덕에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마지막 워프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공방으로 들어가는데 공방 뒷골목에 사람이 빼곡했다.

에스퍼들의 제복을 본 이초가 손을 들어 차를 멈췄다.

“뭐지? 차 세워. 여기부턴 걸어갈게.”

“네.”

골목 입구부터 시작된 폴리스 라인이 공방 주위를 빙 두르고 있었다.

“설마…. 의진 님이?”

혹시 하는 생각에 이초는 급히 달려갔다.

무슨 일인지 기웃대는 사람들과 그들을 막는 에스퍼들까지 뚫고 공방 뒷문 앞까지 다다르자 면식 있는 얼굴이 보였다.

“들어가시면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보내드려. 관계자야.”

“……한서진 에스퍼.”

까딱, 고개를 숙인 이초가 숨을 가다듬으며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곧장 강의진을 찾으러 공방으로 들어가려던 것을 멈춘 건 담벼락에 기대 쓰러진 세 명을 보고 나서였다. 게다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옷은 못 본 척 할래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 옷은 폰투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그쪽도 형 연락받고 온 거예요?”

이초는 다시금 성산하에게 전화를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진 에스퍼도……?”

“네.”

“의진 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한서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공방을 올려다봤다.

“……성좌 지도에는 공방만 나타나는데, 공방 안엔 없어요.”

“그럼 대체 어딜 가셨단……!”

“그건 이제부터 찾아봐야죠.”

애써 태연한 척하던 한서진이 결국 숨기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뱉었다. 이 급한 상황에도 제 상사는 아직도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이초는 답답한 속내를 숨기며 쓰러진 폰투스 교단에게 다가갔다.

그중 한 명의 머리 위엔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둘이 사이좋게 나눠 가져. 녹스는 주지 말고」

“의진 님. 대체 이게 무슨…….”

***

눈앞에 커다란 탑이 보였다. 케이블카 막차를 타고 겨우 위로 올라온 나는 하늘까지 쭉 뻗은 탑을 보며 숨을 골랐다.

“후, 최대한 빨리 돌아오면 돼. 할 수 있다. 강의진!”

주머니 속의 펜던트를 꾹 쥐며 다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아직 고층은 통제된 상태로 알고 있는데, 입구 앞에는 꽤나 많은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들어 가야 해.’

조용히 뒤로 물러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입구 앞 노점들이 문을 닫고 왕래하던 헌터들의 수도 부쩍 줄었다. 상황을 지켜보다 지금이란 생각이 들어 막 발을 내딛으려던 때였다.

띠링!

채 한 발을 떼기도 전에 코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응?”

선글라스 때문에 앞이 어두워 그런가, 이상한 글자가 보였다. 눈을 비비적대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뭐야, 갑자기. 시스템창 뜰 일 없는……. 으에엥?”

「주인님이 ‘이리 온’을 하셨습니다. 서둘러 주인님께 달려갑니다.」

당황할 새도 없이 발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이 꺼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우뚝 멈춘 나는 어두운 주위를 둘러봤다.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움찔 몸을 굳혔다.

“이상하네. 공방에 있어야 할 사람이….”

벽에 기대 있던 인영이 몸을 세웠다. 천천히 그림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얼굴에 입술을 깨물었다.

“……왜 여기서 보일까?”

“성산하.”

“응. 의진아.”

어떻게 온 거지? 완벽히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놀라 주춤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바닥에 딱 붙은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흔들리는 눈으로 성산하를 바라봤다. 놈은 혼자였다.

왜인지 가라앉아 보이는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보다 성산하가 남산까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가 중요했다.

“나 미행했냐?”

“미행이 아니라 예상이라고 해 주겠어?”

“그게 더 싫다고!! 성좌 지도에도 안 나왔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설마 엘프목이냐? 내 계획은 완벽했다고!”

“완벽이라니. 밤에 선글라스 쓴 수상쩍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앞은 보여?

다정한 척 묻는 말에 부아가 치밀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내던졌다.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을 씩씩대며 노려봤다.

“장난하자는 거 아니야. 네놈이 몰래 설치한 CCTV도 모두 끊어 버렸는데 어떻게…….”

“아, 왠지 안 보이더라니. 그래도 다 방법이 있지. 게다가….”

성산하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슬쩍 뒤를 돌아봤다.

“나 말고도 더 달고 왔으면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성산하가 바라보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벽 그림자가 짙어지더니 그 사이에서 돌연 반짝이는 두 개의 동공이 나타났다. 보자마자 혈압이 올랐다.

“루트!! 너 이 새끼…….”

“웡!”

낮게 짖은 루트가 성산하를 주시한 채 그림자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더니 거리를 벌려 내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젠장. 분명 자는 거 확인하고 왔는데.”

혼자 던전에 들어간다는 내 완벽한 계획이 모두 무너졌다. 애초에 성산하에게 걸리기 전에 던전에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젠…. 라이라프스의 목줄이 있는 이상 공방에 끌려가는 일뿐이었다.

무력화 포션 만드느라 좆 빠지게 고생했는데 씨발…….

빨리 다른 대책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허탈함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마구 쓸어내리다 푹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다시 공방으로 데려갈 거야?”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대답을 대신했다. 바짝 굳은 어깨 위로 풀썩하고 묵직한 무게감이 내려앉았다.

의아하게 눈을 뜨자 씁쓸한 웃음을 지은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안에 눈 내려. 그렇게 입고 가게?”

“아….”

어깨에 걸쳐진 건 두꺼운 털이 달린 겨울 망토였다. 예상 밖의 행동에 놀란 눈으로 성산하를 바라봤다. 가로등의 불빛에 짙게 드리운 음영 탓에 표정을 읽기 힘들었다. 깊은 한숨 뒤로 체념해 허탈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넌 항상 그랬지. 한번 결정한 건 무르는 법이 없고, 겁도 없어.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고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지. 그리고 나는…….”

“…….”

“널 막을 수가 없어.”

성산하가 손을 들어 내 얼굴을 감쌌다.

“해 달라는 건 다 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막아.”

“…….”

아무 말 없이 성산하를 바라봤다. 누군가와 함께 들어갈 생각 따위 없었지만 성산하의 눈을 보자 이 새끼는 어떤 말을 하든 무조건 따라올 거라는 걸 알았다.

“마지막 층까지 갈 거야. 위험할 수도 있어.”

“상관없어.”

“……내가 상관 있다고.”

망토에 달린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뒤를 돌았다. 루트도 일어나 쫄래쫄래 우리 뒤를 따라왔다.

입구로 다가가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관리인이 벌떡 일어났다.

“C급 두 명이요.”

성산하가 가짜 신분증을 내밀었다. 대충 확인한 관리인은 기계에 신분증을 읽힌 후 다시 우리에게 넘기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지금 고층 통제 중인 건 알죠? 17층까지만 진입 가능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먼저 안으로 발을 들였다. 뒤이어 성산하까지 게이트를 통과했다.

뒤에 남아 있던 루트는 킁킁대며 주위를 수색했다.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크게 하울링했다.

“아우우우우!!”

보통 개와는 다른 엄청난 공명에 꾸벅 졸고 있던 관리인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뭐, 뭐야? ……으아악! 개잖아?”

커다란 루트의 체구에 놀란 관리인이 헐레벌떡 뒷걸음질해 전화기를 드는 사이 루트는 게이트의 파동 안으로 훌쩍 점프했다.

“여보세요? 네, 여기 남산 탑 입구입니다. 게이트에 어, 엄-청나게 큰 개가……. 어? 어디 갔지 분명 여기 있었는데…….”

***

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왔다.

“읏, 추워!”

성산하의 말대로 던전 내부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망토를 여미고 벌벌 떠는 사이 입고 있는 장비들에 한발 늦게 보온 효과가 들어왔다.

“생산직답다. 사전 조사도 없이 들어오다니.”

성산하가 망토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 씌웠다. 순식간에 언 볼이 녹아 어색하게 얼굴을 풀며 주위를 둘러봤다. 첫 번째 층이라 그런지 곳곳에 사냥 중인 헌터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몇 층까지 뚫렸어?”

“34층. 아직 입구는 발견 못했어. 둘만 들어왔으니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불청객이 없다면 말이지.”

성산하가 차가운 눈으로 뒤늦게 들어오는 루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루트도 추운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느새 매끈하던 루트의 털이 조금 부풀어 폭신폭신해졌다.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던 펜던트를 꺼내자 성산하가 놀란 눈을 했다.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지?”

“알레……. 폰투스 놈한테 뺏었어.”

놈들의 이름을 듣자 성산하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 갔다.

“그건 또 언제 알아냈는지. 우리 멍멍이는 비밀이 많다니까.”

“씹.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릴. 몰래 따라온 게 누군데.”

투덜대며 펜던트를 살폈다.

“놈들이 성좌는 이걸로 길을 열 수 있다고 했어.”

“그걸 믿고 혼자 들어온 거군…….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성산하가 헛웃음을 흘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갈까.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

성산하가 앞장섰다. 어느새 저 멀리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는 루트에게 손짓했다.

“야! 루트! 놓고 간다? 빨리 와!!”

“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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