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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88화 (188/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88.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푸르른 대양이었다. 그러니까,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망망대해란 말이다.

“으아아아악!!”

“강의진!”

“의진아!!”

내 이름을 부른 놈들이 동시에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서더니 돌연 무기를 빼 들고 서로를 공격하는 게 아닌가!

“가까이 오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어딜 감히…….”

겨우 몇 센티 차이로 나를 빗겨 가는 스킬들과 귀 옆에서 터지는 파공음에 기겁해 소리쳤다.

“이 씨발놈들아! 나부터 구해!!”

몸이 수면에 닿기 전 아슬아슬하게 성산하의 쉴드가 나를 감쌌다. 몸을 받친 무형의 힘 아래로 찰랑거리는 물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어느새 성산하가 내 곁으로 와 멈춰 섰다.

“이건…….”

수면을 보는 성산하의 눈이 가느스름해지더니 발끝으로 툭 수면을 건드렸다. 그러곤 아예 그 위에 완전히 발을 디디고 섰다.

“너, 너… 그런 스킬도 있어? 아니면 아이템이야?”

눈이 휘둥그레진 채 놀라 묻자 성산하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몸을 받치고 있던 쉴드가 단숨에 사라졌다.

“지금 뭐 하는! ……어라?”

물에 빠질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았던 나는 몸에 닿는 묘한 감각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물 위에 떠 있잖아?”

“지형이 특이하군.”

손에 닿는 촉감은 분명 물인데. 힘주어 눌러도 안으로 빠지지 않는 감각이 요상하면서도 신기했다. 안전히 착지한 루트와 룬도 신기한지 물 위를 뛰놀고 있었다.

주먹으로 쿵 내리치자 크게 출렁이는 수면에 나와 성산하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게 재미있어 양손으로 옆을 내리치며 웃었다.

“으하하, 성산하. 이거 봐 봐! 엄청 신기해! 이렇게 치면, 출렁출…….”

쿠쿠쿠궁.

내 손이 짝 하고 수면을 치는 순간 아득한 지하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지진이 일어났다. 엄청난 진동에 당황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 어라…? 이게 아닌데.”

잘은 진동이 파도가 되어 우리를 흔들었다.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센 파고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태풍 속 조각배처럼 무력하게 흔들리는 나를 성산하가 잡아 일으켰다.

“이, 이러려고 한 게 아닌…….”

“저기 봐. 제단이야.”

굉음과 함께 바다 한가운데서 제단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 필요도 없이 파도에 몸을 맡기자 우리는 순식간에 제단 앞까지 다다랐다. 그건 태제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코앞에 우뚝 선 제단을 올려다봤다. 제주 탑에서 봤던 것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벽돌 하나하나에 적힌 고어들. 나도 모르게 뻗을 뻔한 손을 다시 거뒀다.

‘아차차. 닿으면 안 되지.’

내가 제단에 닿자마자 또 그 미친 촉수들이 튀어나올 테니 실수로라도 닿지 않게 아주아주 조심해야 한다.

고갤 돌려 태제헌을 바라봤다. 놈은 내가 뭘 하는지 지켜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팔짱 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슬쩍 태제헌의 눈치를 보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내 손에 쥐인 조그만 오페라 글라스를 본 성산하의 눈썹이 꿈틀했다.

“잠깐, 너 그거……. 설마 작은 까마귀의 둥지에 갔어?”

“어? 어떻게 알았냐?”

이 쌍안경은 탑에 오기 전, 작은 까마귀의 둥지에서 덤으로 같이 산 탐험 아이템이다. 폰투스 놈들을 묶어 둘 아이템을 구입하면서 혹시 고어를 해석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냐고 별 기대 없이 물었는데 직원이 하나 공짜로 줬다.

등급이 높은 것도 아니고 겉보기에도 평범한 일반적인 아이템일 뿐인데 곧바로 알아맞힌 것이 신기해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성산하가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짚었다.

“하아, 네가 거길 왜…….”

“전에 이초가 천랑이랑 연결된 상점들 목록 줬어.”

“그 많은 목록 중 왜 하필 거길…… 뭐 이상한 소리 들은 건 없지?”

그야 너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제일 구석진 거리에 있는 곳을 선택했으니까 그렇지.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별로.”

“그렇다면 다행이…….”

“그런데 너 몬스터 테이밍 하기라도 하려고?”

멈칫한 성산하의 입꼬리가 파들 떨렸다.

“그건 왜?”

“아니, 어쩌다 네가 주문했다는 거 들었는데. 수갑에 사슬에 사육장에……. 아주 살벌하던데.”

“…….”

성산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어깨를 으쓱하곤 쌍안경을 들어 고어를 판독하기 시작했다.

“으음……. 이것도 해독 안 되네. 패스.”

머리를 긁적이며 다음 블록으로 넘어가는데 룬과 루트가 나 보란 듯이 입을 쩍쩍 벌리며 하품을 해 댔다. 바보 개들을 노려보다 다시 아이템에 눈을 가져다 댔다.

그래도 나름 계획이랄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실은 너무도 보잘것없었다. 애초에 나부터가 탐험 아이템을 이용해 본 적 없는 초짜라 그런가. 제단도 혼자 살피기엔 너무 넓었다.

수 분이 지나도록 내가 해석한 것이 ‘제물’, ‘성좌’, ‘봉인’ 세 단어에 그치자 태제헌의 인내가 바닥이 났다.

“언제까지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야. 헛짓거리 그만두고 촉수 소환해.”

“……뭐라고요?”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귀를 의심하며 눈에 대고 있던 글라스를 내리자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태제헌이 제단을 고갯짓하며 말했다.

“촉수를 소환하라고. 그걸 죽여야 하니까.”

“미쳤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태제헌이 무표정한 얼굴로 성산하를 돌아봤다.

“너보다는 많이 알고 있지.”

“어련하시겠어. 너 역시 폰투스 교단의 신도일 텐데. 안 그래?”

“뭐야, 무슨 소릴…….”

이미 예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는지 성산하의 말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놀라 태제헌을 바라봤지만 놈은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았다.

태제헌이 폰투스 교단의 신도였다고? 그럴 리가 없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그랬다면 내가 알았어야…….”

“처음부터 태제헌이 네게 숨기고 있던 거야. 애초에 녹스의 창립부터가 폰투스 교단의 지시로 시작된 것이었으니까. 월영 보육원의 실험도 마찬가지야. 끔찍한 실험을 통과한 각성자들, 지금 교단에 있지 않아?”

성산하의 말에 태제헌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성산하를 보는 태제헌의 눈이 돌변했다.

“…아아, 누군가 했더니. 천랑의 개가 우리 보육원 출신일 줄은 차마 몰랐군. 심지어 거슬리던 애새끼일 줄이야.”

“딱히 숨기지도 않았는데 이제야 알았다니. 녹스가 무너지긴 하고 있나 봐.”

“버릇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믿기 힘든 소리에 제대로 인식이 되지 않아 입만 뻐끔대던 나는 태제헌을 보며 겨우 말을 이었다.

“저 말들, 다 진짜예요?”

“…….”

“진짜냐고!! 맞다 아니다 말 좀 해 봐요!”

“진짜면. 그게 중요한가?”

태제헌의 고압적인 시선에 한심함이 스쳤다.

“사실이 뭐든지 간에 변하는 건 없어. 강의진 넌 내가 선택해 기른, 내 소유니까.”

“씨발, 개소리 그만하고 대체 여기 왜 왔는지나 말해!”

분에 못 이겨 소리치자 태제헌의 입꼬리가 비뚤게 올라갔다.

“멍청한 널 살리러 왔지.”

그 순간 하늘의 문이 열렸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검붉은 신관복을 입은 놈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성산하가 내 손목을 잡아 제 뒤에 감췄다.

“쯧, 시간 낭비하지 말라니까. ……룬, 루트.”

태제헌의 손짓에 룬과 루트가 달려 나갔다. 수면 위를 뛰어다니며 사이비들이 떨어지는 족족 물어뜯는 개들을 뒤로한 채 태제헌이 성산하에게 말했다.

“탑은 저주가 아니다. 신의 강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마지막 수단이지. 촉수는 수단일 뿐, 그 아래 있는 것이 진짜야. 신의 힘을 가진 조각 중 하나지. 그걸 파괴해야 해.”

“지금 신, 이라고 했나?”

태제헌이 재수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네 저주의 주인이지.”

“…….”

혀를 찬 태제헌이 사이비들이 쏟아져 내리는 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끝없이 몰려올 거다. 뿌리를 잘라 버려야 해. 촉수에 연결된 순간엔 놈들도 건들지 못할 테니, 그때 한 번에 처리해야 해.”

“촉수에 연결되면 죽는 거잖아요!”

“성좌의 힘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순 있어. ……이론상.”

덧붙인 말에 얼굴을 파삭 구겼다.

이론상 이 지랄 하네 씨발! 이론상으론 너도 나한테 수백 번은 뒈졌어. 개새끼야!

“절대 안 돼. 스크롤로 의진이만 대피시키면,”

“탑은 그대로겠지. 언젠간 다시 들어오게 될 거야. 교단도 다신 틈을 내어 주지 않을 거고. 조각을 파괴하려면 기회는 오늘뿐이야.”

“…….”

“다른 수가 있나?”

비아냥대는 시선이 나를 향했다. 놈과 눈이 마주치자 알 수 있었다. 저건 내게 하는 말이다.

나는 제단을 봤는데도 방법을 찾지 못했고 폰투스 교단 놈들은 우릴 따라왔다. 태제헌의 말대로 다른 수가 없었다.

‘성산하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태제헌 개새끼.

놈을 노려보다 등을 돌려 제단으로 달려갔다

별을 올려보내시겠습니까?

“좆-까- 개새끼야!”

제단을 활성화시키자마자 곧바로 뛰어내려 반대편으로 달렸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 볼 속셈이었다.

「별을 올려보내시겠습니까?」

「별을 올려보내시겠습니까?」

이번에도 붉은색으로 깜빡이는 시스템창이 나를 따라왔다. 그땐 당황해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시스템창도 존나 수상하다.

‘이 새끼 시스템 맞아?’

하늘 위로 솟구친 촉수들이 내 뒤를 바짝 붙어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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