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93.
언뜻 스쳐봐도 끔찍한 꼴에 왈칵 표정이 구겨졌다.
“그니까 씨발 왜 따라와서…! 무모하게 거기서 왜 끼어드는데요!!”
태제헌이 이 정도로 크게 다친 것은 처음 본다. 뾰족한 목소리로 애써 당황을 숨겼다. 태제헌을 바르게 눕히는데 나를 빤히 바라보던 놈이 중얼거렸다.
“……기어코 성좌가 됐군. 기분은 어때.”
“죽을 때 됐어요? 웬 헛소린데.”
이 지경에 헛소리가 나오나. 욕을 짓씹으며 차갑게 대꾸하자 태제헌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개화하는 날만을 기다려 왔으니까.”
이해하지 못할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들었다. 태제헌은 웃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에 흠칫 손을 멈췄다.
‘폰투스.’
무언가 짚이는 게 있어 태제헌을 빤히 바라봤다.
“보육원에서 나만 데려왔던 게… 내가 성좌가 될 줄 알아서 그랬던 거예요?”
내 물음에 태제헌이 눈을 찡그렸다.
“웃기는 소리 하는군. 아니. 네가 열쇠라는 것을 안 건 나중이지.”
“그럼 왜…….”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강의진 넌 그냥 내게 올 운명이었던 거야.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매번 돌아오던 같은 대답이었다.
‘그래. 어련하시겠어.’
태제헌이 어떤 마음이었든 어떤 의도였든 이젠 내 알 바 아니다. 어서 치료나 하고 떠날 생각으로 태제헌의 옷을 벗기던 나는 피로 젖은 천 아래 드러난 상처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씨…발….”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가슴을 뚫고 튀어나온 촉수는 두 손으로 잡히지 않을 정도로 두터웠고 심장 가까이까지 검은 기운이 퍼져 있었다. 뼈와 살점이 헤집힌 관통상에 피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를 보고 경악해 소리쳤다.
“씹! 이 정도였으면 말을 했어야지!”
태제헌이 너무 멀쩡해 보여 이 지경이 되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의신의 손길을 사용하자, 역시나 보통 상처가 아니었다. 치명상이라 웬만한 포션으로는 어림도 없을 게 분명했다.
촉수를 먼저 녹이는데 피가 너무 많이 났다. 분수처럼 샘솟는 피에 태제헌의 옷은 물론이고 내 무릎까지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
“잠, 잠깐 기다려요. 포션 금방 줄……. 어디, 어딨지.”
목소리가 떨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가지고 있던 S급 포션이 분명 여기 있어야 하는데.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는 인벤토리인데도 마음이 급해 그런지 포션이 보이질 않았다. 두 손으로 내부를 휘젓는데 아까부터 태제헌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에 옆을 돌아보자 다행히 태제헌은 멀쩡한 얼굴로 바위에 상체를 기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를 눈빛으로 바라보던 태제헌이 물었다.
“내가 죽을까 봐 겁나?”
“헛소리.”
“그런데 왜 떨어.”
“떨긴 누가 떤다는…….”
태제헌의 말에 인벤토리를 뒤지던 손을 멈췄다. 시선을 내리자 덜덜 떨리는 두 손이 보였다. 제멋대로인 떨림은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감각이 없었다.
피식 비웃은 태제헌이 속삭였다.
“굴종은 못 숨기거든. 의진아.”
“……뭐?”
“네 뼈에 새겨지고 피에 흐르고 있어. 내가 네 주인이라는 것이. 그래서 겁먹은 거야. 내가 죽을까 봐.”
“너는 씨발 이 상황에서도……!”
태제헌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놈은 내 평생의 원수다. 내가 죽도록 증오하는 새끼였다.
“개소리하지 마요. 지금도 죽이고 싶은 거 참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죽게 놔둬.”
“너 이딴 걸로 안 죽잖아.”
태제헌이 죽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태제헌이 죽을 리가 없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죽이려고 노력했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살아나 날 엿 먹인 놈이다. 질기고 독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세상이 멸망해도 저 혼자만은 득달같이 살아날 놈이 바로 태제헌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살아날 거면서 괜히 날 떠보는 게 분명했다.
지금은 저딴 개소리 들어 줄 시간이 없다. 태제헌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인벤토리에 있던 것을 마구잡이로 꺼내 쏟으며 말했다.
“그래. 살아. 씨발, 내가 너 콩밥 먹고 무기징역으로 평생 감옥에서 썩는 거 두 눈 뜨고 지켜볼 테니까 살라고요.”
“강의진.”
“쉽게 죽을 생각 하지 마요. 넌 이딴 식으로 죽으면 안 돼. 지금까지 지은 죗값 다 치러야지.”
인벤토리 가장 아래에서 찾던 걸 발견했다. 스킬 재사용 쿨타임이 무려 500일. 게다가 아주 극소량만 만들 수 있는 S급 포션이었다. 값을 매기기 힘들어 팔지 못했던 건데 갖고 있길 잘했다. 이거라면 분명 태제헌을 치료할 수 있다.
한층 마음이 놓여 태제헌에게 다가가는데 놈이 내 손을 잡았다.
“필요 없어.”
“그냥 마셔요. 이게 얼마나 귀한 포션인데.”
손을 쳐내고 태제헌의 입에 포션을 부었다. 양이 적어 먹이는 건 수월했다. 약효가 돌길 기다리며 상처를 살피는데 태제헌은 그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제단이 크게 흔들렸다. 혹시 촉수의 공격이 다시 올까 봐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바짝 긴장해 조심히 제단 아래로 내려가자 아랫단의 글자들이 푸른 빛으로 빛나는 게 보였다. 촉수나 보스가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존나 놀랐네.”
다시 제단을 달려 올라가자 태제헌은 머리를 젖힌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별일 아니야. 그 새끼는 확실히 죽인 것 같으니까…… 태제헌?”
답 없이 눈을 감고 있는 태제헌에게 다가갔다.
뭔가 이상하다. 아물어도 벌써 아물었어야 할 상처가 전혀 낫지 않았다. 태제헌의 낯빛 역시 좆같이 어두웠다.
하얗게 질려 다급히 태제헌을 진단했다. 예상대로 전혀 치료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내 포션이 들지 않을 리가?’
“야! 태제헌! 씨발, 자지 마. 눈떠!!”
씨발, 뺨을 때릴 수도 없고. 손을 움찔거리는데 태제헌이 가느스름하게 눈을 떴다. 눈을 뜬 걸 확인하자마자 옆으로 달려가 산더미같이 쌓인 포션들을 헤집었다.
“잠깐 기다려. 다른 포션으로…….”
등 뒤에서 냉소적인 음성이 들렸다.
“소용없어.”
“……웃기지 마. 너 이대론 못 죽어. 나를 구하다 죽게 내버려 둘 줄 알아? 넌 내 손으로 죽일 거야.”
바짝 약이 올라 포션을 한 아름 안고 다가가 태제헌에게 들이붓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들지 않았다.
“왜, 왜 안 되는 건데!!”
“이만 포기해.”
“……난 포기 같은 거 안 해.”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패닉에 빠진 나와 달리 태제헌은 마치 죽음을 예상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너 따위 힘으로 날 살리겠다고. 우습지도 않지.”
“씨발, 웃기지 마. 난 포션 마스터야!!”
반항하듯 소리쳤지만 태제헌의 말이 맞았다. 내 어떤 포션도 태제헌을 치료하지 못했다. 무력감에 전신이 떨렸다.
‘차라리 성산하라도 있었다면 달랐을까.’
내 생에 힐러를 찾기는 처음이다. 땅을 짚은 손 아래 바닥이 웅웅 소리 내며 느리게 진동했다. 탈력감에 휩싸인 내 귓가에 태제헌의 목소리가 닿았다. 여태껏 들어 본 적 없는 아주 느리고, 가쁜 음성이었다.
“내 죽음은 내가 선택해.”
천천히 태제헌을 바라봤다. 태제헌이 손을 까딱였다. 반사적으로 놈의 곁으로 다가갔다.
새카만 두 눈이 내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안 우네.”
“내가 씨발 왜 우는데요.”
“글쎄….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죽을 때가 되어서도 좆같이 재수 없는 얼굴이 미소 지었다. 울컥해 물었다.
“넌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데.”
“아주 오래전부터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으니까.”
“오늘이 어떤… 날, 인데요?”
“네 손에 죽는 날.”
“……뭐?”
태제헌의 말에 눈썹이 꿈틀했다. 내 손에 죽는 날이라니, 그게 무슨…….
“무슨, 무슨 말인데요.”
“…….”
“무슨 말이냐고!!”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태제헌은 눈을 감았다. 점점 옅어지는 숨소리에 태제헌이 죽어 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씹새끼야. 너 이대론 못 죽어. 눈 떠!! 눈 뜨라고!!”
태제헌을 붙잡고 소리쳤지만 손 아래 맥박이 점점 느려졌다.
“너 이런 걸론 안 죽잖아. 태제헌…….”
어떻게든 다시 워프를 열기 위해 애쓰던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해 방치되어 있던 시스템창들이 눈에 들어왔다.
퀘스트 성공!
[선산의 주인이 열렸습니다!]
[선산의 주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천지보감이 열렸습니다!]
[천지보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선산의 주인……. 맞아! 약산!!”
이공간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황급히 선산의 주인을 사용하자 눈앞에 황금빛 문이 생겨났다. 문을 열자 온갖 재료와 약초들로 가득한 험준한 산맥이 펼쳐졌다.
태제헌을 오두막이 있는 곳까지 질질 끌고 들어갔다.
“내가 씨발. 너. 못, 죽는다고……. 윽. 존나 무겁네.”
침대에 대충 눕혀 놓고 밖으로 나온 나는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작은 오두막을 감싼 울창한 숲. 신선한 공기. 존나 오랜만이다. 내 약산.
‘태제헌은 여기 두고 잠깐 밖으로 나가는 거야. 태제헌만 치료하고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딱 며칠이야. 아주 조금이면 되니까 주호현도 이해하겠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약산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문에서 걸어 나온 순간 불안함이 뇌리를 스쳤다. 황급히 약산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이란 창만 떠올랐다.
“선산의 주인!”
「보유하고 있지 않은 스킬입니다.」
“무슨 개소리야? 방금 전까지 있다 나왔는데! 선산의 주인!”
「보유하고 있지 않은 스킬입니다.」
발밑의 진동에 퍼뜩 아래를 내려다보니 제단이 붕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내 손이, 다리가. 몸 전체에서 푸른 빛이 퍼지며 동시에 내 육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안돼, 아직 안 돼! ……주호현!!”
외침과 함께 몸이 다른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메인 퀘스트 성공!
{ZODIAC SYSTEM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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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률 : 8.33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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