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94.
[긴급 속보입니다.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 현재 공방이 아닌 남산 탑에 있다는 소문이 헌터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천랑 길드장 성산하와 녹스 길드장 태제헌 역시 강의진과 함께 있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다음 제보 영상 보시겠습니다. 평화롭던 남산 던전 3층. 매서운 바람이 불더니 갑자기 허공이 찢어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다음 이어지는 스킬은 성산하 고유의 스킬로 유명한 ‘자비의 굴레’. 가까워지는 헌터들을 모두 밀어 냅니다. 비명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을 뒤로하고 성산하와 의문의 헌터가 사라집니다. 영상은 여기서 끝이 나지만 또 다른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비슷한 시각, 남산 던전 1층에서는 녹스 길드장 태제헌이 헌터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는 같은 방법으로 모습을 감췄다고 합니다.]
[하나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의진을 봤다는 증언은 없는 건가요?]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예 근거 없는 유언비어는 아닙니다. S급 각성자들이 성좌의 위치를 공유한다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바로 ‘성좌 지도’를 말하는 것인데요. 지금까지는 성좌 지도가 강의진 공방에만 표식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약 두 시간 전에 갑자기 남산 탑에도 표식이 생겼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된 거군요. 하지만 강의진이 남산 탑의 제물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스스로 탑을 들어간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요, 이에 대해 말해 줄 전문가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KQ소속 S급 헌터 서설원입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일은 강의진의 이기적인 반항으로 보입니다.]
“…….”
누군가 공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벨 소리가 났지만 연승연의 눈은 티브이에 고정되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일행과 함께 막 로비로 발을 들이던 윤하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왔다.
“승연 씨…….”
“아, 오셨습니까…? 아, 앉으세요. 제가 마실. 마실 거라도…….”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앉으세요. 승연 씨 쓰러질 것 같아……. 정혁아.”
“어, 어. 제가 할 테니까 승연 씨는 앉아 계세요.”
윤하얀과 백다인, 김진명이 어색하게 소파에 둘러앉았다. 자연히 시선은 연승연이 보고 있던 뉴스로 향했다.
[…강의진이 스스로 제물이 되러 간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하! 다들 강의진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만약 제 몸 바쳐 탑을 없앨 생각이 있었다면 그전까지는 왜 공방에 숨어 있었을까요? 심지어 남산 탑은 제주 탑과 달리 마지막 층이 공개되지 않은 곳입니다. 강의진이 희생한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제단까지 기꺼이 에스코트할 헌터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굳이 제 측근이나 다름없는 성산하와 태제헌을 데려갔죠.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감이 잡힐 듯 잡히지 않네요. 서설원 헌터께서는 강의진이 다른 목적이 있어서 남산에 들어갔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제단을 파괴하려는 속셈이라고 봅니다.]
“뭐 이런 걸 보고 있어?”
퉁명스러운 말투에 다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언제 들어온 건지 팔짱을 낀 임단이 문간에 기대서 있었다.
“서설원 저 새끼 찐따니까 귀담아들을 거 없어. 그보다, 강의진은? 아직 연락 없지?”
“……네.”
곧 기절할 것 같은 연승연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눈치 보느라 미처 묻지 못했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은 임단은 콧잔등을 찌푸리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양은 어디 있어?”
“…구, 구름이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 강의진이 청이한테 부탁했다는데, 청이가 남산에 가 봐야겠다고 나한테 넘겼어. 그래서, 어디 있는데?”
“아마, 이 층 사장님 방에…….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연승연의 눈에 담긴 묘한 경계심에 콧방귀 뀐 임단은 설렁설렁 승연의 뒤를 따라갔다.
***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강의진에 대한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미 강의진이 자기만 살기 위해 제단을 부수려 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엄청난 파란을 몰고 왔다. 뉴스는 온통 확인되지 않은 속보로 점칠되고 전국민의 입에서 강의진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수많은 원성을 낳았다.
그 사이에 중립을 겨우 지키는 방송사들이 소수 있을 뿐 이 상황에서 강의진이 그럴 리 없다며 감싸 주는 곳들은 감히 없었다.
[이건 세계적 충돌로 번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특히나 탑이 없는 국가의 경우 별다른 해결책도 없이 탑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저 하나 살자고! 소름 끼쳐요. 강의진 이기심에 대체 몇 명이 손해를 보는 건지 모르겠네요.]
[강의진의 엄청난 돌발 행동으로 인해 강의진의 공방 앞에 있던 시위대가 남산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분노한 국민들이 강의진의 이기심을 규탄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는데요….]
[헌터 협회와 에스퍼·가이드 센터가 이례적으로 손을 잡고 남산 탑에 비상 대응팀을 파견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첫째 강의진을 찾고 둘째로는…….]
“메에에에에.”
임단의 품에 안겨 아이템 재료를 먹던 구름이가 뉴스에 나온 강의진의 얼굴을 보고 씹던 열매도 놓은 채 애달프게 울었다. 임단이 복슬복슬한 털을 대충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주인 금방 올 거니까 걱정 말고 밥이나 먹어.”
“미에에에.”
“돌아오면 그때가 진짜 문제니까…….”
채널을 돌릴 때마다 다채롭고 새로운 강의진의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가장 소식을 빨리 들을 수 있는 곳 역시 뉴스라 차마 끄지도 못하고 그나마 중립적인 방송사에 채널을 고정한 채 멍하니 각자의 일들을 했다.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없기에 남산 탑 실황을 비추던 카메라에 갑자기 이변이 잡혔다. 현장에 나가 있던 기자보다도 먼저 이상함을 눈치챈 건 임단이었다.
“잠깐, 소리 좀 높여 봐.”
“네? 아, 네……!”
음량을 최대로 높이자 무언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화면 안의 기자도 다급히 마이크를 잡았다.
[네. 저는 지금 남산 탑 입구에 나와 있는데요. 방금 전부터 발아래 지면에서 진동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짧게 진동하다 멈추고 다시 진동을 반복하는 주기가 일정해 자연적인 지진으로는 보이지 않……. 아!! 탑이, 저길 보십시오! 탑에서 빛이 나고 있습니다! 입구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도망치며 한 순간에 아수라장이 펼쳐졌습니다.]
무기력하게 시선만 고정하고 있던 연승연이 몸을 벌떡 세웠다. 모두들 긴장해 화면을 바라봤다. 하늘까지 이어진 검은 기둥 전체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옅던 것이 점점 환하게 빛이 났다.
[이런 현상은 앞서 던전을 제거했던 미국과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던 현상입니다. 새로운 기현상에 현장에 있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현장을 중계하던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임단이 중얼거렸다.
“……플릭이다.”
“네? 플릭이요? 그걸 어떻게 알…….”
윤하얀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 갑자기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방금 전 드리웠던 음영은 그들의 그림자였다.
[플릭입니다! 남산 탑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튕겨져 나왔습니다. 마지막 층에 다다른 걸까요? 김선영 기자, 현장 상황 부탁합니다. 플릭된 사람들 중 강의진도 있습니까?]
[지금 현장은 아비규환입니다. 집회와 시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찬 곳에 헌터들이 플릭되며 사방에서 크고 작은 충돌 사고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플릭된 사람 중 강의진이 있는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네. 이해했습니다. 빠른 파악 후 상황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채널 돌려 봐! 어디라도 강의진 나온 곳 있는지 찾아봐!”
[플릭이 되었다는 건 마지막 층을 찾았다는…….]
[강의진이 제물이라면 플릭이 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혹시 강의진이 제물이 아닐 가능성…….]
[강의진은 보이지 않지만 성산…….]
[남산 던전의 플릭이 일어났다는 건 어쩌면…….]
“잠깐! 다시 뒤로 돌려요!”
연승연이 소리쳤다. 전 채널로 돌아가자 화면 가득히 성산하의 뒷모습이 보였다.
“찾았다! 천랑 길드장님이에요!”
“됐어! 성산하다!”
“어, 그런데…… 왜 혼자 계실까요?”
백다인의 중얼거림에 다들 멈칫했다. 멀리서 줌을 당긴 건지 카메라는 성산하의 뒷모습밖에 담지 못했지만 대충 봐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현재 성산하의 주위 접근이 불가한 상황입니다. 성산하 곁에는 강의진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상 밖의 상황인데요…….]
우뚝 선 성산하는 빛나는 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는 순간, 밝게 빛나던 탑이 한순간에 모래처럼 흩어졌다.
충격적인 광경에 앵커마저 탄식을 흘렸다.
[아…. 이게 무슨…….]
폭발하듯 분자 단위로 쪼개져 허공에 퍼진 빛들이 다시 뭉쳐 천천히 결을 그렸다. 여러 색으로 빛나는 빛들이 모여 흐르며 탑이 있단 자리를 둥글게 감싸며 올라갔다.
[이런, 모습은 처음 봅니다. 우리나라, 남산에서 유례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답네요. 꼭…… 은하수 같아요.]
모든 각성자의 앞에 같은 시스템 창이 떴다.
메인 퀘스트 성공!
{ZODIAC SYSTEM 재건}
□□♊□□□□□□□□□
진행률 : 8.3333333%
윤하얀이 신음을 삼켰다. 충격받은 눈으로 앞을 바라보던 백다인이 입을 틀어막았다.
“흐윽……!”
“…젠장.”
구름이를 내려놓은 임단이 벌떡 일어나 공방을 뛰쳐나갔다. 크게 홉뜬 연승연의 눈에 빠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 아니야…….”
[새로운 소식 전해 드립니다. 탑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한국의 모든 각성자들이 퀘스트를 성공했다는 알람을 받았습니다.]
한쪽에 앉아 있던 서설원을 흘깃 바라본 앵커는 몸을 돌려 그를 완전히 등지곤 말했다.
[강의진은 도망친 게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몸을 바쳐 탑을 제거한 겁니다. 항상 그랬듯, 완벽하게 말입니다.]
눈이 시뻘게진 승연이 고개를 떨궜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