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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98화 (198/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98.

주호현과 함께 석판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눈도 다 뜨지 못할 정도로 환해지는 빛에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저게 뭐지?”

“아마……. 아니야. 일단 가서 확인해 보자.”

우리가 도착했을 무렵, 환히 빛나던 빛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 여자가 몸을 길게 늘이며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사람이다! 새로 온 건가?”

“그런 것 같아. 나도 이곳에서 처음 깨어났거든.”

인기척을 느꼈는지 여자가 뒤를 돌아봤다. 윤이 나고 풍성한 은빛 머리칼이 흰 어깨를 지나 굽이쳐 흘러내렸다. 그 뒤로 인간 같지 않게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얼굴이 우리를 향했다.

저 얼굴, 알고 있었다. 예전에 뉴스에서 봤던…….

“……벨라?”

“예전의 내 이름을 알고 있니?”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이름에 설핏 웃은 벨라가 손을 내밀었다. 주호현이 황급히 다가가 손을 잡고 석판을 내려올 수 있게 도왔다.

“고마워. 깨어나자마자 받는 게 신사들의 에스코트라니,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아.”

벨라의 푸른 눈이 천천히 우리 둘을 훑었다.

“똑같이 생긴 얼굴. 너희는 카스토르와 폴룩스겠구나.”

“어떻게 알았어?”

오래전 죽었던 벨라가 카스토르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게 이상해 묻자 그 역시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러게? 내가 이걸 왜 알고 있을까.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져.”

“…….”

벨라는 다시 깨어난 기쁨을 만끽하듯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어색한지 바짝 굳어 삐걱대는 주호현 대신 내가 나서서 말했다.

“난 강의진이야. 옆은 주호현.”

“만나서 반가워 의…. 잠깐, 지금 강-의진 이라고 했어? 설마, 포션 마스터 강-의진?”

이름을 되뇌던 벨라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벨라가 달려와 두 팔 벌려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요요하게 반짝이는 푸른 눈이 나를 올려다봤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어! 강-의진! 정말 만나 보고 싶었는걸? 몇 번을 요청해도 얼굴 한번 보여 주지 않더니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건 사정이 있었어.”

“알지. 녹스의 제헌. 당신에게 집착이 심했잖아.”

“집착은 무슨……. 그냥 쓰레기라 그렇지 뭐.”

꼭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벨라의 친밀한 스킨십에 겨우 대답하다 뒤에서 충격적인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린 주호현과 눈이 마주쳤다. 머쓱하게 벨라의 품에서 벗어나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지? 죽었다는 뉴스를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당신도 성좌가 된 거야?”

“아아, 그랬었지……. 장례식은 성대했니? 내 마지막 사진은 아름다웠어?”

“응.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실물이 더 나은 것 같아.”

“후후. 귀엽긴.”

벨라가 작게 웃었다. 우리는 스피카의 공간으로 넘어가 아름다운 꽃밭에 앉아 벨라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스피카라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 날씨가 좋아 아끼던 와인을 마시며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맛이 쓰레기지 뭐야.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당장 농장에 사람을 보내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내 귀염둥이가 와인에 독을 탄 거였지. 울면서 미안하다고 비는데, 그 얼굴이 예뻐서 키스해 주지 않을 수 없었어.”

불명이라는 벨라의 사인이 독살이었다니. 벨라도 웬만큼 독에 내성이 있을 텐데 그런 그도 당할 정도라면 일반적인 독은 아닐 테다.

폰투스 놈들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는데 주호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엥?”

“뭐라고? 사랑이라고 했니? ……아하하!”

내 황당한 목소리와 벨라의 화통한 웃음에 주호현이 눈치를 봤다.

“당신에게 독을 먹였는데도 살려 보낸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 아닙니까?”

얼빵한 소리를 하는 주호현을 끌어당겨 급히 귓가에 속삭였다.

“야! 벨라는 애인이 오십 명이 넘는다고! 아까 말한 귀염둥이도 아마 서른세 번째 정도 될걸?”

“오, 오십 명……?”

넋 나간 주호현을 보며 한껏 웃던 벨라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물론 사랑했지. 예쁜 것들을 온 힘 다해 사랑해 주는 게 내 인생의 모토인걸? 하지만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살려 보내지 않았어.”

“예…?”

“물론 그 예쁜 얼굴을 망쳐야 했을 때는 조금 슬프긴 했지만, 나를 죽이려 한 남자를 왜 살려 두겠어.”

“아아. 네…….”

“그리고 의진? 그 애는 마흔네 번째였어. 젊고 아름다운 뉴 페이스였지.”

여유로운 벨라의 웃음에 우리 둘 다 얼빠진 채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존나 심심한 이곳에서 벨라라고 별수가 있을 리 없었다. 잠을 몰아 자다 심심하다며 우리 구역으로 찾아온 벨라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다들 뭐 하는 거야? 이건 시스템창이잖니?”

“네. 맞습니다. 던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랑 같이 던전 꾸밀래. 누나?”

“어머. 영광이지.”

바위에 걸터앉은 벨라에게 ‘D.I.Y 나만의 던전 만들기♥’를 여는 방법을 알려 줬다. 튜토리얼 창이 떴지만 벨라 역시 망설임 없이 스킵해 버렸다.

“누나도 튜토리얼 안 봐?”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

혹시나 보지 못했던 튜토리얼을 볼 수 있을까 기웃대던 주호현의 어깨가 축 처졌다. 이쯤 되니 제가 이상한 건가 의심하는 눈치였다.

“처음 보는 던전이네.”

“탑은 누나가 죽은 이후에 생겼어. 그나저나 얘네들은 성좌를 어떻게 올려 보낸 거지?”

무덤에서 시체라도 파 왔나. 섬뜩한 생각을 하는데 벨라가 슬며시 웃으며 시스템창에 손을 뻗었다.

“내가 남긴 유지를 찾아냈더라고. 똑똑하게 말이야.”

“유지? 뭐였는데?”

“후후. 그런 게 있어.”

잠시 시스템창에 적응하던 벨라는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주호현이 만드는 던전은 정석 그 자체라면 벨라의 것은 예술작품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들마다 꽃이 만발했으며 못생긴 몬스터는 등장하지도 않았다.

“이거 정말 마음에 든다! 아름답지 않은 몬스터가 항상 불만이었는데 이젠 내 이상적인 던전을 만들 수 있겠어!”

벨라는 던전의 층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42층이나 되던 것을 13층으로 줄여 버렸다. 파격적인 조정이 아닐 수 없었다.

벨라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던전들을 구경하다 나는 포션을 만들기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도구가 없어서 큰일이네. 만들 수도 없고…….”

생산직을 위한 장비 아이템도 분명 찾아보면 있을 텐데. 아직 던전 인기도가 낮아서 그런가 그런 것까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솥 대신 둥그런 방패를, 가위 대신 단도를. 주걱 대신 얇은 스태프를 이용해 포션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낑낑대는 사이 마지막 층을 만들며 유독 아름다운 던전에 꽂힌 주호현은 홀린 듯 벨라 곁으로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 댔다.

“강을 연못으로 활용할 생각은 못 해 봤습니다.”

“고여 있는 것은 잔잔해서 좋지만 역시 흐르는 물이 가장 최고지.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잖니? 호현은 의진과 달리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구나?”

“누군가와 어울리는 장소를 만들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서요.”

“애인?”

“그, 그게……!”

얼굴이 시뻘게진 주호현이 당황했다. 놈을 보며 입을 삐죽댔다.

‘또 류수윤 얘기겠지. 그렇게 좋나? 이젠 만나지도 못하는데……. 아니 잠깐.’

순간 든 생각에 재료를 썰던 손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주호현과 대화를 하는 벨라를 쳐다봤다. 벨라도 이미 죽었는데 다시 나타났다. 그렇다면 류수윤도 여기로 올 수 있단 말이었다.

막연히 하말의 탑이 사라지면 구름이를 볼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만약 류수윤이 온다면…….

‘그럼 우리 구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

“으아아앗!”

쉴드로 몸을 감싼 여자가 깊디깊은 수렁 사이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중앙의 구멍에서 환한 빛이 퍼져 나왔다. 온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초 같은 머리카락은 빛이 닿자 순식간에 말라붙어 파스스 부서졌다.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는 머리카락에 묶여 꼼짝도 하지 못하던 헌터들은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어.』

『그러게. 그대로 녹는 줄 알았다니까. ……저기 에이미가 나온다!』

수렁으로 몸을 던졌던 여자가 어둠 속에서 씩씩한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가 쥐어져 있었다.

『에이미! 무사한 거야?』

『물론이지. 미스틱은 어디 있어?』

에이미는 한쪽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헌터들을 빼내고 있던 성산하에게 다가갔다.

『미스틱, 쉴드 고마웠어! 이것 봐. 장비가 모두 녹아 버렸지 뭐야. 네 쉴드가 아니었다면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인걸. 하지만 쉴드가 없었어도 네가 다치는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에이미?』

목에 걸린 작은 목걸이를 눈짓하며 말하는 성산하에 에이미가 눈을 흘겼다.

『눈치 빠르긴……. 다른 놈들한텐 비밀이야.』

『물론이지. 결혼 축하해.』

『고마워. 이제 제물을 바칠 때지?』

성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를 필두로 한 일행이 제단으로 향했다. 에밀리가 제단에 올라 다이아몬드를 내려놓자 발밑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붕괴에 성산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피곤하군…….’

붕괴 후 이어질 플릭을 기다리던 때, 청량한 효과음이 귓가를 울렸다.

띠링!

성산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황금빛 퀘스트창이 보였다.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

특수 조건을 충족하여 퀘스트가 해금됩니다.

{ 메인 퀘스트 }

■■■■■의 힘으로부터 생명을 수호하라.

진행도 : 30%

난이도 : SS

보상 : 레저렉션(EX)

성산하가 믿기 힘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레저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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