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200.
『사라, 사라! 제발!!』
헌터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레굴루스를 보며 소리쳤다. 간절한 부름에도 레굴루스는 꿈쩍 않고 제단만 응시했다. 대신 뒤를 돌아본 성산하는 절박한 남자의 모습에서 저를 겹쳐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어. 다른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는 말이야. 어쩌면 네가 희생하지 않고도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아니. 이건 희생이 아니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이 일이 주어졌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
『…….』
『그리고 그거 아나?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해. 그날 이후 팔에서 떠나질 않던 타는 듯한 고통이 어느 순간부터 전혀 느껴지질 않거든. 마치….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레굴루스의 말에 멈칫한 성산하는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성좌가 된 느낌이 든다는 말인가?』
『맞아. 내가 모르는 세계지만 뭔가 다른 일이 시작되고 있군.』
『혹시 다른 힘도 사용할 수 있나? 시간을 멈춘다거나 이곳에 워프를 여는 것 같이.』
『이상한 소릴 하는군. 그런 스킬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 그렇지. ……있을 리가.』
슬쩍 뒤를 돌아 옛 연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레굴루스는 절규를 애써 못 들은 체하며 성산하에게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짤막한 감사를 뒤로하고 레굴루스는 자신의 두 발로 제단을 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사람들의 오열이 더해졌다. 슬픔이 가득한 마지막은 다른 나라들에서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스피카의 꽃, 주벤엘게누비의 다이아몬드, 아쿠벤스의 팔찌…….
여태껏 성좌의 힘을 지녀 제단에 바쳐졌던 것들과는 달리 레굴루스의 희생은 오롯이 사라 본인의 의지로 결정한 것이었다. 강의진처럼.
그래서인지 성산하는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보지 못했던 인간이 성좌가 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제단이 무너지고 플릭까진 잠시의 시간이 있어.
다른 성좌들과는 달리 레굴루스는 제 의문에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게 제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레굴루스가 제단의 위까지 다다르자 이집트의 헌터들이 무릎을 꿇어 그에게 예를 다했다. 하늘로 오르는 푸른 빛과 함께 제단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성산하는 단숨에 레굴루스가 있는 곳까지 뛰어올랐다. 무너지는 제단의 분진 사이에서 푸르게 반짝이는 빛에 감싸인 레굴루스가 보였다.
『레굴루스!!』
성산하의 부름에 레굴루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스틱?』
『대답해 줘!! 성좌가 되기 위해선 죽어야 하는 건가? 네 육신은 어디로 사라지는 거지?』
『그건…….』
레굴루스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눈으로 제 손과 하늘을 번갈아 보던 레굴루스는 순간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급히 말했다.
『아직 아니다. 우리는 이곳에…….』
그의 말이 채 말이 완성되기 전, 성산하는 던전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눈앞에는 레굴루스 대신 무너지고 있는 탑뿐이었다.
앞을 바라보는 성산하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
또 새로운 성좌가 왔다.
우리밖에 없는 이곳에서 뉴페이스의 등장은 언제나 환영이었기에 새로운 성좌의 징조가 보이자마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중앙으로 모였다.
[아쿠벤스] : 내가 일등이다!
[카스토르] : 이번엔 누구야?
[주벤엘게누비] : 레굴루스의 구역이군.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구역에 있어서 채팅창을 확인하며 달리는데 새로 올라온 성좌의 정체를 듣자마자 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주호현이 채팅을 못 보게 막고 싶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겠지만…….
“에이. 이번에도 아니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행방이 묘연한 구름이 때문에 류수윤을 마냥 환영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주호현 때문인지 새로운 성좌가 들어올 때면 차라리 류수윤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앙에 도착하자 이미 다들 모여 있었다. 그 사이에 보이는 얼굴에 눈을 크게 떴다. 예전에 녹스 본사에서 티브이로 본 적 있는 여자였다.
“어? 아, 맞다. 그때 그 사람이 레굴루스였지?”
당시에 전 세계로 생중계된 습격에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일면식이 없는데도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카스토르! 이리 와 봐. 레굴루스는 달라. 기억이 있대!”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한 아쿠벤스가 폴짝폴짝대며 손을 까딱였다. 그의 부름에 성좌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받던 레굴루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저자가 카스토르인가? ……한국의?”
“어! 맞아. 너도 의진 아는구나. 나는 처음에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우리 길드의 보스가…….”
나를 바라보는 레굴루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당장은 새로운 성좌보다 주호현이 더 마음에 걸렸다. 벨라와 함께 있었던 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기억해 낸 나는 곧바로 다가가 물었다.
“누나. 주호현 어디 있어?”
“호현? 네게 돌아간 거 아니었니?”
“아니. 오는 길에 본 적 없는데.”
고개를 젓자 성좌들 중 그나마 상황을 제일 잘 아는 벨라가 걱정스런 낯으로 말했다.
“음, 같이 있다가 중앙에서 빛이 나는 걸 봤지. 같이 가자고 했더니 호현은 네게 간다고 했는걸. 그게 마지막이었어.”
“……새끼. 알았어. 고마워. 누나.”
이 새끼 또 어디 가서 땅굴 파고 있을 게 분명하다.
‘또 산으로 갔겠지? 자주 가는 곳이 세 군데니까…….’
일단 주호현을 꺼내오는 게 먼저다. 날 향해 다가오는 레굴루스가 보였지만 손을 흔들고 등을 돌렸다.
“당신 혹시 미스…….”
“안녕! 좀 이따 보자!”
***
스피카의 구역은 큰 지형의 변동 없이 얕은 관목이나 풀이 자라는 편이라면 아쿠벤스의 땅에는 저 멀리에 큰 바다가 있었다. 이처럼 성좌들의 구역은 각기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는데 그중 주호현과 내 땅에는 꽤나 높은 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산은 요즘 주호현이 틈만 나면 도망치는 대피처였다.
제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괴감에 벌벌 떠는 게 취미인가 본데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는 그 꼴 못 본다.
혼자 있고 싶은 건지 주호현은 산 깊은 곳에 이리저리 숨었는데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었다. 이 산은 이제는 열지 못하는 내 약산과 굉장히 닮아 있어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지만 길을 아는 것과 상관없이 직접 그곳까지 가야 하는 건 내 두 다리라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썅. 존나 꽁꽁 숨었네.”
주호현이 숨은 곳은 산 반대편의 골짜기였다. 졸졸 흐르는 시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주호현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헥, 헥. 삽질은 다 했냐?”
“…….”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옆을 돌아보자 고개를 푹 숙인 주호현이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야. 괜찮냐?”
“…….”
“남자 새끼가 울기는……. 응?”
씨이. 이게 아닌데.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울면 재수 털려서 될 일도 안 되는 거 몰라? 아직 끝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불안해해.”
“미안…하다.”
“미안하면 눈물이나 그치고 말하든지.”
“계속, 윽…. 계속 나와서……. 미안.”
울음을 흘리지 않으려는지 세게 깨문 입술과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쥔 주먹을 보고 혀를 찼다.
뭐라 위로도 하기 힘들고 쉽게 진정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주호현의 모습에 망설이다 시스템 창을 열었다.
“야. 이거 아직 할배랑 누나도 모르는 건데…….”
시스템창에 손을 깊게 집어넣었다 뺐다. 손에 작은 포션 병 하나가 잡혔다.
“빼내자마자 삼 초 안에 마시면 되거든? 수면 효과가 있는 안정제인데 이거라도 필요하면…….”
“부탁해. 차라리 잠들고 싶어. 수윤이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하고 싶은 말은 네 수윤이 이미 잘못돼서 죽지 않았냐는 물음이었지만 애써 꿀꺽 참아 삼켰다.
내가 권했지만 너무 바로 달라고 하니 외려 망설여졌다.
‘이미 성좌까지 됐는데. 뭐, 별일이야 있겠어?’
에라 모르겠다. 냅다 손을 뻗었다. 그를 받은 주호현이 곧바로 포션을 삼켰다.
“푹 자고 일어나면 될 거야. 너무 걱정 말… 하암……. 엥?”
길게 나오는 하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친 듯 잠이 쏟아졌다.
‘어라? 왜 내가…….’
옆을 보니 이미 주호현은 곯아떨어져 있었다.
“설마, 쌍둥이라고 연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
“의진, 의진 일어나! 의진!!”
포근한 잠에 빠져 있는 나를 누군가 거세게 흔들었다.
“물이라도 뿌릴까요.”
“폴룩스를 먼저 깨우는 건 어때.”
“으응…. 더 잘래.”
“카스토르! 일어나! 네 던전 다 뚫리고 있다고!!”
귓가에 들린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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