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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01화 (201/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01.

흐린 시야에 옹기종기 모여 날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그게 무, 하아아암……. 무슨 소리야.”

말하던 중 나오는 긴 하품에 눈꼬리를 늘였다. 고인 눈물을 닦아 내며 몸을 일으켰다. 주호현을 찾으러 산에 들어가선 잠이라도 자라고 포션을 줬던 기억은 나는데……. 맞다, 주호현이 그거 마시니까 나도 같이 쓰러졌지.

퍼뜩 옆을 확인하자 다행히 주호현은 내 옆에 누워 아직 잠들어 있었다.

“여긴 어디야?”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처음 보는 장소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묻자 아쿠벤스가 말했다.

“여기 레굴루스의 땅이야. 오류가 내 땅까지 침범해서 여기로 데려왔어.”

“오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게냐?”

주벤 할배가 혀를 차며 물었다. 나보고 묻는 거냐며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자 벨라가 제 시스템창을 보여 줬다.

“이걸 봐. 의진.”

벨라의 시스템창이 이상했다. 스피카의 던전을 보여 주고 있는 창은 지직거리며 색이 변하더니 자꾸 다른 이상한 화면으로 바뀌기를 반복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이래. 그리고 이거, 카스토르의 던전 아니야?”

깜빡깜빡하며 보였다 사라지는 장면이 뭔가 익숙하다 싶더니만 벨라의 말대로 정말 우리 던전이었다!

“갑자기 네 던전이 보이니까 뭔가 이상해서 연락해 봤지. 그런데 너희 둘 모두 대답이 없는 거야. 직접 너희 구역으로 와 보니까 어디에도 없더라.”

“산으로 찾으러 갔다가 길을 잃을 뻔했어.”

“레굴루스가 너희를 찾아서 데려온 거야.”

“그런 일이…….”

양심이 찔렸다. 성좌들의 시스템창에 뜬 오류가 뭔진 몰라도 나 때문일 게 분명하다. 나를 향한 시선들을 머쓱하게 받아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사실 포션을 강제로 꺼내서 먹었거든.”

“이놈! 그럴 줄 알았다!”

“휴……. 설마설마했는데. 그런데 무슨 포션? 나도 주면 안 돼?”

“아쿠벤스. 지금 그런 소리 할 때냐?”

“아 장난이잖아, 장난. 할배. 루크바트가 저 때려요.”

원인을 알아내 긴장이 풀렸는지 서로 웃으며 떠드는 성좌들을 바라보는데 그중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왜? 아아, 우리 데려온 게 너라고 했지? 고마…….”

“고맙다.”

레굴루스가 툭 뱉은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슬그머니 내 곁에 앉은 사달멜리크가 말했다.

“레굴루스도 카스토르 너처럼 산 채로 성좌가 된 거래.”

“뭐? 정말?”

레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진. 네가 앞서 희생한 덕에 탑에 숨겨진 보스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그것을 물리칠 수 있었다. 나의 이집트 역시 마찬가지고. 모두를 대신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럼 너, 탑에 들어가서 직접 제단에 오른 거야? 방금 전까지 살, 살아 있던 거네?”

레굴루스의 말에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궁금한 게 무척이나 많았다. 어떤 얘기를 먼저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루크바트랑 장난치던 아쿠벤스가 다가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서라, 레굴루스 아는 거 하나-도 없어. 다들 자기 나라가 어떻게 됐는지 물었는데 하나도 대답 못 했어.”

“아아…….”

“그나저나, 폴룩스는 저대로 둘 거야? 우리 시스템창도 어떻게 좀 해결해야지. 레굴루스한테 알려 주는 사이에 오류 생긴 거라 쟨 아직 던전에 손도 못 댔어.”

아쿠벤스의 투덜거림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물 먹여야 하는데. 여기 물 없나?”

“있어. 내가 안내하지.”

레굴루스와 함께 언덕 너머의 냇가에 가서 물을 떠왔다. A급 아이템인 축복의 성배에 물을 담아 돌아오는데 저 멀리 있는 성좌들을 보며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다른 나라들은 탑을 어떻게 없앤 거야? 그러니까……. ■■■■■의 조각을 없애고도 제단에 성좌를 바쳐야 하잖아. 뭘 바친 거야?”

“■■■■■? 탑에 있던 보스 몬스터의 이름인가.”

“비슷해. 설명하자면 길어.”

고개를 끄덕인 레굴루스가 답했다.

“성좌의 유지를 간직한 것들이 있다. 꽃이나 보석, 무기……. 그것들을 찾아 올렸지.”

“성좌의 유지……. 그렇구나.”

성좌의 유지라면, 역시 류수윤을 올려 보내는 제물은 구름이가 맞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레굴루스에게 확인 사살을 당하니 입안이 썼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것은, 왜 류수윤이 아직까지 올라오지 않았느냐는 거다. 이미 제주 탑은 마지막 층까지 길도 뚫려 있는 데다 성산하는 구름이가 공방에 있다는 걸 아는데. 원한다면 가장 먼저 없앨 수 있는 것이 제주 탑이었다.

“폰투스 놈들은 어때. 개지랄 안 떨어?”

“탑이 사라질수록 입지가 줄어들어서인지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특히 탑이 남아 있는 곳들은 매일같이 이유 모를 테러가 벌어지지. 대부분이 놈들이 벌인 일들이다. 나도 제단에 오르기 전, 놈들을 스물여덟 명 베어 냈지.”

“미친 그렇게 많이?”

하긴, 생각해 보면 성산하와 태제헌도 둘이서 그 배는 넘는 수의 인간들을 처리했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깨달아 고개를 주억이는데 돌연 레굴루스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미스틱과 각별한 사이인가?”

“미스티… 성산하 말하는 거야? 성산하랑 만났어?”

“물론. 지금까지 파훼된 모든 탑들에 그가 함께했는걸.”

“그럼 제단에 오르기 전까지……. 방금 전까지 만났다는 거네? 성산하는 지금 어때? 다친 덴 없어? 손은 봤어? 멀쩡해?”

우다다 질문을 쏟아 내자 레굴루스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그가 입을 열려던 순간, 어느새 가까워진 아쿠벤스가 어서 오라 손짓했다.

“카스토르!! 뭐- 해-! 어서 와!!”

“어! 지금 가!”

일단 주호현부터 깨우고 시스템 오류부터 해결해야겠다. 나중에 다들 돌아가면 레굴루스에게 따로 찾아가 들어야지.

성배에 담긴 물이 흐르지 않게 쥐고 발을 떼는데 레굴루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보단……. 널 아주 많이 그리워하더군.”

“어?”

“아니야. 어서 가지.”

성좌들이 모인 곳에 도착한 나는 눈을 감은 주호현의 입에 천천히 물을 흘려 넣었다. 차라리 쉬라며 준 포션이었는데 이렇게 바로 깨우게 되어 면목이 없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주호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나를 보고 커다래지는 눈동자에 혹여나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봐 급히 말했다.

“너 잔 지 얼마 안 됐어. 문제가 생겨서 깨웠어.”

“아……. 문제라니, 무슨……?”

역시나 류수윤이 왔단 소식을 기대했는지 주호현이 풀 죽어 몸을 일으켰다. 다들 모여 있자 의아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무슨 일이길래 다들 모여서…….”

“마시면 안 되는 포션을 마셔서 그런지 몰라도 모두의 시스템창에 오류가 떴대. 그것 때문에 깨운 거야. 벨라 누나. 지금은 어때?”

“정말 폴룩스가 일어나니까 감쪽같이 멀쩡해졌어. 신기해라.”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엇.”

제가 나서서 사과하려는 주호현을 퍽 쳐서 멈추고 말했다.

“내 실수야.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 뭐……. 이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으니까 됐지?”

후련하게 말하는데 성좌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상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주벤 할배가 대표로 나와 물었다.

“카스토르……. 우리가 자넬 왜 깨웠는지는 알고 있지?”

“응. 시스템창에 뜬 오류 때문이잖아. 괜찮아졌다며.”

의아하게 묻자 벨라가 황당하다는 듯 두 팔을 들었다.

“세상에……. 의진!”

“이럴 줄 알았지. 왠지 이상하게 태평하더라.”

“왜. 뭔데 그래.”

“카스토르 네 던전 다 뚫리고 있다고!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에엥?”

그런 말 들은 기억 없는데? 황당해 얼어붙은 내 대신 겨우 정신 차린 주호현이 서둘러 시스템창을 열었다.

이윽고 보여진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미, 미친. 뭐야 이거?”

“어떻게 이럴 수가…….”

전부터 눈엣가시였던 검은 로브를 쓴 무리였다. 놈들은 벌써 33층에 다다라 있었다.

12층 용의 둥지에서 몇 달간 고전하던 놈들이다. 그뿐 아니라 13층에는 덩굴 식물로 된 미로까지 만들어 놔서 몇 달은 더 걱정 없겠다 싶었는데 어떻게 그 사이에 이렇게 깊게 진입할 수가 있지?

“우, 우리 잔 지 얼마나 지났어?”

“사흘 정도.”

“이거, 이거 뭐 오류 난 거 아니야?”

시스템창을 퍽퍽 쳐 댔다. 옆에서 주호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 탓이야. 던전 생태를 만드느라 20층부터 29층까지 잠깐 몬스터들 재생을 멈춰 놨어…….”

“씨발. 그럼 그냥 산책한 거네. 치사하게 10층을 날로 먹어?”

씩씩대다 온갖 강한 몬스터들과 함정들을 놈들 앞에 펼쳐 줬다. 옆에서 지켜보던 성좌들이 말릴 정도였다.

“헌터들이 보는 데서 바꿔도 돼?”

“카스토르! 우리가 만지고 있다는 거 들키면 어떻게 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마지막 층까지 뚫릴 테다. 마지막 층은 주호현이 류수윤을 생각하며 만든 공간이라 헌터들이 들어갔다간 그대로 망가져 버릴 것라고. 지금도 멘탈이 약해서 빡치는데 그 꼴은 못 본다.

“의, 진아….”

“야. 징징대지 말고 몬스터나 더 찾아봐.”

“아직 던전 등급이 부족해서 한계가…….”

주호현이 빠르게 몬스터를 찾아 내보냈다. 하지만 헌터 무리는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 더욱 빠르게 진격했다.

우리를 빙 둘러싸고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성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앞에 있는 쟤가 강하네.”

“카스토르. 너희 등급으론 못 막겠는데?”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인기도를 올리는 데엔 미학이 중요하다고.”

“씨발 닥쳐!!”

하지만 급하게 퍼부은 내 방해물과 주호현의 몬스터들은 모두 뚫려 버리고 놈들은 순식간에 다음 층으로 진입했다.

[34층 고객의 소리 : “쉽네.”]

“이 개새끼가!! 가만 안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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