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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02화 (20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02.

“너희 던전 35층이 마지막 아니야? 이제 겨우 두 층 남았어.”

“남은 곳들이라도 어서 몬스터를 채워 넣지 그래.”

다른 성좌들이 걱정스레 한마디씩 얹었다. 분노에 차 다급히 시스템창을 만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호현의 모습이 이상해 의아하게 고개를 들었다.

초조한 얼굴의 주호현은 몬스터를 배치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야, 왜 그래.”

의아하게 묻던 중 주호현이 보고 있는 곳이 35층, 우리 던전의 마지막 층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저긴…….’

마지막 층은 주호현이 류수윤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눈썹을 치켜올린 나는 주호현에게 다가가 몬스터를 선택하려는 손을 잡아 내렸다.

“마지막 층은 그냥 놔둬. 34층에서 최대한 막으면 돼. 그랬는데도 뚫리면 뭐……. 어차피 35층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의진아.”

“괜찮아. 새끼야. 자존심은 좀 상하지만 테스터라고 생각하지 뭐. 저 새끼들한테 뚫린 대로 보강하면 더 어려운 던전이 될 거다!”

주호현이 미안한 낯으로 고개를 떨궜다. 놈의 어깨를 두드리는데 사달멜리크가 다가와 물었다.

“카스토르. 너희 최종 보스는 넣었어?”

“아니. 아직. 강한 몬스터 해금되면 그때 넣으려고 했지.”

던전 등급이 모자라 아직 선택할 수 있는 보스 몬스터들의 등급이 낮았다. 좀 더 기다리다 최상급 라인이 열리면 그때 행복한 선택을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뚫릴 줄은 몰랐지.’

주호현이 몬스터를 고르게 둔 후 나는 지형을 변형해 진입하는 놈들을 막고 있는데 앞에서 구경하던 아쿠벤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던전이 다 뚫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조금만 기다려 보게. 우리 쌍둥이들이 손수 보여 주지 않겠나. 하하.”

“카스토르는 참 여러 방면에서 선구자네.”

“지금 뚫리라고 기도하는 거냐?”

발끈해 소리치자 벨라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다들 그만 놀려. 폴룩스를 봐. 곧 울 것 같다구.”

“…울지 않습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성좌들의 방해 공작에도 나와 주호현은 합심해 34층의 난이도를 올렸다.

내가 지형을 반 갈라 깊디깊은 절벽을 만들면 주호현이 하늘에 비행형 몬스터인 와이번을 깔았고, 절벽 사이 험한 물결이 흐르는 강을 만들면 온갖 종류의 수중 몬스터를 심었다.

“됐어.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어. 이제 남은 건…….”

“보스 몬스터만 고르면 돼.”

시스템창에서 손을 뗀 나는 우리 앞에서 마냥 구경 중이던 성좌들에게 말했다.

“보스 추천 좀.”

묻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다들 나서서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글쎄. 아무래도 부하 몬스터들을 소환하는 소환사 계열이 낫지 않을까? 리치라든가.”

“아니. 지형을 고려하면 키라칸이 제일 괜찮지. 공격력뿐 아니라 방어력도 뒤지지 않으니까.”

“에이-, 그것보단 로피머스가 낫죠. 저놈들을 봐요. 딱 봐도 근접계보다는 마법사가 많잖아요. 로피머스는 피부에 새겨진 룬 때문에 마법 저항력이 엄청나다고요.”

“다들 뭘 모르는군. 나머지는 서브일 뿐 이 파티의 중심은 제일 앞의 헌터다. 이건 그를 제압해야 끝나는 전투야.”

몬스터의 종류가 많은 만큼 고민이 깊었다. 주호현을 돌아보자 녀석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여태껏 조용히 지켜보던 레굴루스가 고민하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펄페더른은 어때.”

“펄페더른……? 그건 보스 몬스터가 아니잖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몬스터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위 몬스터인 페더른의 진액이 포션 재료로 자주 쓰여 알고 있는데, 놈들은 강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수장급 상위 몬스터인 펄페더른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다른 이들도 이상했는지 의아하게 물었다.

“무슨 소린가. 저놈들 꽤나 강해. 우리 던전에 와도 곧바로 클리어할 정도라고. 게다가 펄페더른은 식물계 아닌가. 놈들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네.”

“특유의 진액 덕에 화염에는 강하지만 그뿐이지.”

“맞아. 잠시 묶어 놓는 용도라면 모를까.”

다른 이들의 반박을 가만히 듣고 있던 레굴루스가 슬쩍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보스 몬스터는 뭐가 됐든 상관없어. 그 주변에 깔아 놓자는 얘기야.”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을 공존시키려면 펄페더른과 상성이 맞는 몬스터여야 한다는 거잖아. 그럼 제약이 많이 생겨.”

제가 추천한 ‘키라칸’이 선택되지 못할까 걱정됐는지 사달멜리크가 투덜거렸다. 그에 레굴루스가 쐐기를 박듯 한마디 했다.

“함부로 단정할 순 없지만. 본 적 있는 스킬 같아. 그것도 아주 최근에.”

“으음…….”

화면 속 헌터들은 벌써 절벽을 건너는 길을 발견한 상태였다. 더 고민할 시간이 없다. 결국 전투계열인 주벤할배와 루크바트, 레굴루스와 사달멜리크를 보며 물었다.

“근데 할배랑 루크, 레굴루스랑 사달이 중에 누가 제일 강해?”

“뭐?”

“넷 중 누가 제일 강하냐고. 그 사람 말 들을래.”

넷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곧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부끄럽군 당연히 세계 랭크 4위인 나지.”

“나는 태양의 전사다.”

“이런 새파랗게 어린 이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우습군. 당연히 나다.”

“웃기고 있네. 공격력으로 따지면 내가 제일 살상력이 높다. 내 손에 무기가 들려 있었다면 이 셋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뭐? 사달멜리크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이건 정정당당한 헌터들의 싸움이다. 암살자는 빠지시지.”

“…활을 부러트리면 아무 것도 못할 새끼가…….”

넷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곧 서로 마주 보고 엄청난 기세로 싸워 대는 넷의 모습에 벨라가 황당하다는 듯 손부채질을 했다.

“카스토르! 저 자존심 빼면 시체인 놈들한테 그런 걸 물어보면 어떻게 해!”

“왜? 그래도 제일 강한 사람은 있을 거 아니야. 나처럼.”

눈을 질끈 감은 벨라가 머리를 짚었다.

“그건……! 아휴….”

“그럼 어떻게 골라야 하는데. 누나라면 누구 말 들었을 거야?”

내심 궁금했는지 싸우던 넷도 이쪽을 바라봤다. 벨라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사달멜리크를 가리켰다.

“당연히 가장 아름다운 이의 말을 들어야지!”

“……싸우던 거 마저 싸워.”

***

스킬도 없는 성좌끼리 싸울 방법이야 하나밖에 없었다. 주먹 다툼.

결국 싸움에서 이긴 건 할배여도 손속을 두지 않고 멱살잡이를 한 레굴루스였다.

“모래에게 이 영광을.”

머리칼을 휘날리며 당당히 돌아온 레굴루스가 시선을 주자마자 초조해하던 주호현이 곧바로 펄페더른을 내보냈다. 보스 몬스터는 자연히 그와 상성이 맞는 그랜드골렘으로 정해졌다.

언제 싸웠냐는 듯 성좌들은 다들 우리 주위에 둘러앉아 귀추를 주목했다.

“과연 이 방법이 먹힐까……. ”

“레굴루스 말대로 저 앞에 놈만 제압한다면 괜찮을 것 같군.”

“카스토르. 타이밍이 중요하다. 펄페더른이 놈을 잡으면 곧바로 골렘을 깨워야 해. 그래야 골렘이 나머지 헌터들을 처리할 수 있을 거다.”

“응.”

마지막 층이 아닌 34층에서 보스 몬스터를 내보내는 거라 내가 직접 손을 써야 했다. 드디어 놈들이 도착했다. 화면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펄페더른은 다른 헌터들에게는 제힘을 다 쓰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리더로 보이는 헌터가 발돋움해 뛰어올랐고 그를 바짝 쫓아 붙은 펄페더른이 놈을 잡아챘다. 놈이 다급히 스킬을 썼지만 펄페더른엔 통하지 않았다.

“됐다! 됐어!!”

“레굴루스 말이 맞았어! 펄페더른에 취약하다니, 정말 웃기는군. 저 녀석 힐러라도 돼?”

주벤 할배가 킬킬대며 말했다. 그러나 이윽고 바람에 드러난 리더의 얼굴에 환호하던 우리는 모두 말을 잃고 화면을 바라봤다.

휘날리는 옅은 빛 머리카락에 살짝 찌푸린 얼굴은…….

“서, 성산하?”

미모에 감격한 벨라가 휘파람을 불었다. 레굴루스도 ‘역시…….’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저 자가 미스틱인가? 천랑의?”

“응. 예전에 협정에서 한 번 본 적 있는데. 그런데 저거 힐러 스킬이 아니지 않아?”

다른 이들이 떠드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면 속 작게 보이는 성산하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체 ■■■■■의 조각을 파괴하러 세계를 돌아다닌다던 성산하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반가움에 가슴이 뛰었다. 단전에서부터 벅차오르던 설렘은 사달멜리크의 고함에 더 이어지지 못했다.

“카스토르! 다른 몬스터들이!!”

“어, 어?”

당황한 사이 다른 놈들이 펄페더른을 베어 내고 넘어온 상태였다. 다급히 그랜드 골렘을 내보냈지만 이미 늦었다. 다른 헌터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성산하의 손에 처음 보는 칠흑색 로드가 생겨났다. 한 번의 회전에 그랜드골렘이 폭발해 산산히 부서졌다.

“씨… 발…….”

정적이 흘렀다.

“와, 와우.”

“음. 강하군…….”

“정말 강하네…. 미스틱이 원래 이렇게 강했나?”

“아니야, 뭔가 달라. 그 전엔 이런 수준이 아니었어.”

놈들은 워프를 통과해 35층에 도달했다. 시스템창에서 손을 뗀 나는 슬며시 주호현 눈치를 봤다.

[35층 고객의 소리 : 여긴 어디지? 정말 아름답다.]

“야……. 미안.”

“괜찮아. 의진이 네 덕에 망가지는 일은 피했잖아? 그보다 내가 미안하지. 중간층이 나 때문에 모조리 뚫려 버려서…….”

주호현의 웃음을 보자 긴장한 몸에 힘이 풀렸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 내 자존심을 짓밟은 저놈들 욕을 하려는데 주호현과 내 사이에 빛나는 상태창이 떠올랐다.

「던전 클리어 보상을 지급하세요.」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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