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204.
뒤를 돌았더니 살랑거리는 꼬리가 보였다.
‘으엥? 엥? 에에엥?’
[카스토르] : 미친 이게 뭐야. 나 개가 된 거야???
[아쿠벤스] : 정확히는 몬스터 새끼가 된 건데.
[폴룩스] : 의진아. 너 몸은 괜찮아?
[사달멜리크] : (사진)
사달멜리크가 보낸 사진은 시스템 창에 보이는 35층 전경을 캡쳐한 것이었다. 헌터들 사이에 좆만, 아니 조그만 먼지 뭉텅이 하나가 보였다.
‘이게 나라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제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 보기도 하고 눈에 거슬리는 꼬리를 잡아 뜯으려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사족보행을 하는 내 모습이 어색해 이리저리 뒤뚱대다 머리가 따가워 고개를 들자 녹을 듯한 표정으로 헤실대며 웃고 있는 헌터들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씨발, 구경났어?’
“왕! 왕왕!!”
“꺄아아악! 너무 귀여워!”
“심장에 무리가 온다. 얘를 어떡하지.”
“쓰다듬으면 안 되겠죠?”
이를 드러내고 위협해 봐도 귀엽다며 손을 휘젓는 헌터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큭, 이 자식들이…….’
헌터들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위협적이지 않았음에도 내게 고정된 시선들과 거대한 손길에 위압감이 느껴져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틈이 생기자마자 후다닥 성산하에게 달려갔다.
“아앗. 멍멍아! 길드장님은……!”
성산하에게 달려간 나는 애타게 놈을 불렀다. 쓸데없이 키만 커서는, 다리를 잡고 두 발로 일어났는데도 얼굴이 저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성산하! 성산하!! 나야 나, 강의진이라고!!’
“왕왕! 왕!”
“…….”
바지 밑단을 긁으며 내가 강의진이라는 것을 어필했지만 성산하의 차가운 시선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를 보자 얕은 인내심이 동났다. 애타게 부르던 것도 잠시, 울컥해 이빨을 드러내고 놈의 발목을 냅다 물었다.
“크르르르……. 월! 워우우웅!”
‘이 개새끼야! 나 강의진이라고! 왜 못 알아봐!’
“하아… 귀찮게.”
“왕왕! 으르르… 왕!”
‘이 멍청아! 나 좋아한다며! 그런데 왜 못 알아봐!’
[아쿠벤스] : 헉!! :-0
[스피카] : 어머 이미 주인 있는 장미였네.
[사달멜리크] : 카스토르…….
[레굴루스] : …그래서였군.
[주벤엘게누비] : 커흠흠, 요즘 애들은 참…….
[폴룩스] : …의진아 이쪽에는 네 목소리만 아주 잘 들려…….
‘돌대가리 새끼야!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
성좌들의 메시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돌아 성산하의 바짓단을 박박 긁으며 매달리는데 놈이 귀찮다는 듯이 다리를 털었다. 가벼운 발짓 한 번에 내 몸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끼애앵! 깽, 깽!”
“세상에! 애기야!!”
“길드장님! 아직 새끼잖아요!!”
헌터들이 혼비백산 달려와 데굴데굴 굴러가던 나를 잡아 세웠다. 눈앞이 핑핑 돌아 비틀대는데 성산하는 눈길 한번 안 주고 말했다.
“귀엽게 생겼어도 S급 몬스터야. 방심하지 마.”
“그렇긴 하지만…….”
망설이던 헌터가 나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귀여운데요! 이 조그만 발 좀 보세요! 분홍 젤리랑 이쑤시개보다 얇은 발톱 좀 보시라구요!”
[스피카] : ♥
[주벤엘게누비] :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아 보이는군.
[아쿠벤스] : 나도 만지고 싶어!! 카스토르, 다시 돌아오면 우리도 만지게 해 주는 거다?
[폴룩스] : 무슨 말씀이십니까. 의진이가 다시 인간의…. 성좌의 몸으로 돌아오길 바라야죠.
내 손, 아니 발바닥의 중앙을 꾹꾹 누르는 여자의 손짓에 따라 얇은 발톱이 자라난 발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상한 느낌에 발을 움츠리자 헌터들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이게 뭐가 귀엽다고.’
이미 나를 알아보지도 못한 데다 발로 뻥 차 버리기까지 한 성산하에게 아주 실망해 기분이 좆같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놈의 꼬리는 왜 계속 흔들리는 거야?
“새끼 치곤 발이 큰데.”
“그러게요. 나중에 성장하면 몸집이 어마어마해지겠습니다.”
길드원의 어필에도 성산하는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대신 다른 중년인이 날 안은 여자에게 다가와 실실댔다.
“아직 힘을 숨겨서 그렇지, 공격당하면 귀엽단 소리 안 나올걸? 이리 줘 봐.”
“아르르르…….”
“어이쿠! 사나운 것 봐라.”
놈이 내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치욕스러운 꼴에 거세게 반항했으나 짧은 다리로는 놈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놔! 놔라!! 이 씨발 새끼가!!’
“왕! 왕왕!! 크르르….”
“어이구우, 가만히 있어. 예쁘게 보여야 한단 말이다. 요새 예민하셔서 말이지…….”
“크아앙!!”
나를 잡은 놈이 어딘가로 향했다. 뒷덜미를 잡힌 채 축 늘어져 둥실둥실 움직이는 건 의외로 편안했다. 하지만 나 강의진, 감히 이딴 취급을 당하는 건 용납 못한다. 네 다리를 휘저으며 어떻게든 한 방 먹이려 애쓰는데 남자의 발이 우뚝 멈췄다. 내 앞에는 성산하가 있었다.
“그건 또 왜.”
“데려가실 거죠?”
남자의 물음에 성산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뜩잖은 심정을 느꼈는지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건 지금까지 등장한 적 없던 몬스터입니다. 던전 보상으로 나온 만큼 테이밍도 가능할 것으로 보이고요.”
“…….”
“길드장님에게 엄청난 전력이 될 겁니다. 꼭 데려가야 합니다.”
남자가 나를 들어 보였다. 성산하의 무미건조한 눈길이 내게 꽂혔다.
“귀엽긴 하군. ……하지만 이런 것에까지 신경 쓸 여력 없어. 두고 가고 나중에 성체가 되었을 때 사냥하는 게 낫지.”
“그래도……. 어억!”
남자가 방심한 틈을 타 반동으로 몸을 돌린 나는 놈의 손을 물어뜯고선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게 조심하래도.”
“허허…. 역시 등급은 무시 못하나 봅니다. 저 녀석…….”
다시 만나 반가웠는데.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모두 허상이었다.
‘넌 이제 끝이다. 성산하. 꺼져 버려!’
말도 안 통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이 꼴로 뭘 할 수도 없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떠드는 둘을 뒤로한 채 씩씩대며 워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건 시스템 오류로 잠시 벌어진 헤프닝일 뿐, 나는 이미 죽은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자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헤어지려면 힘들 테니까…….’
입을 삐죽대며 워프로 훌쩍 뛰어 올라갔다. 땅에 코를 박은 채 이리저리 둘러보고 발바닥으로 땅을 퍽퍽 치며 어떻게 위로 올라가는 건지 알아보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목덜미가 잡혔다.
붕 떠올라 대롱대롱 매달린 나를 바라보는 성산하의 얼굴에 자동으로 으르렁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르르르…….”
“안산 천랑 부지의 테이밍장이 있습니다. 나가자마자 준비시켜 두겠습니다.”
‘꺼져, 개새꺄!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는 멍청한 새끼! 이미 늦었다!’
“왕! 왕!!”
반항하는 내 눈앞에 주호현이 보낸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뭐야, 개인 메시지? 이런 기능도 돼?’
[폴룩스] : 정말 갈 거야, 의진아?
[폴룩스] : 네가 가기 싫다면 막아 볼게.
얜 또 무슨 개소리야? 가긴 어딜 간다는…….
“강의진.”
귓가에 들린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내 귀를 의심하며 성산하를 올려다보는데 역시나 잘못 들은 게 맞는지 성산하의 표정은 전과 같았다.
“강아지잖아. 아직 어리니 같은 개들과 있는 편이 좋겠지.”
“태제헌의 몬스터들 말입니까. 그렇다면…….”
“응. 조금 클 때까진 의진이 공방에 둬야겠어. 그편이 내가 보러 가기에도 편할 테니.”
“웡…? 우워웡!!”
내 공방? 지금 내 공방이라고 했지?!! 룬이랑 루트도 걱정했는데 성산하가 데리고 있었나보다.
‘다시 가 볼 수 있는 건가? 이 상태로 던전을 나갈 수 있을까?’
“어이구 이 녀석, 꼬리 흔드는 것 봐라. 얘를 누가 몬스터라고 생각할까요.”
“자, 받아.”
성산하가 남자에게 나를 건넸다. 곧바로 발톱을 세우고 놈의 팔을 할퀴었다.
‘꺼져!’
“크와앙!”
“어이쿠! 이놈, 다루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내 발톱이 지난 자리에 남은 푸른 잔상을 바라보던 성산하가 다시 나를 거뒀다.
“재워서 데려가야겠군. 안정제 가진 거 있으면 줘 봐.”
[주벤엘게누비] : 빨리 벗어나게! 그러다 정말 끌려가겠어.
[아쿠벤스] : 확 물어 버려 카스토르!!
[레굴루스] :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지는 다들 알고 하는 말인가.
[아쿠벤스] : ……그건 모르지.
난리가 난 대화창을 뒤로 하고 주호현에게 물었다.
[카스토르] : 나 가도 돼? 가지 말라고 막을 줄 알았는데.
[폴룩스] :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잖아.
[카스토르] : ……어떻게 알았냐?
어느새 나를 품에 안은 성산하가 코 아래 작은 유리병을 댔다. 약하게 맡아지는 향기에 킁킁대며 코를 씰룩였다.
‘뭐야 이거? 졸린 가지에 액티베이터……. 그리고 슬라임이면……. 이거 내 레시피인데?’
신기하게도 코로 냄새를 맡자 전보다 훨씬 첨예한 감각이 느껴져 무슨 재료인지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올랐다.
“워우…. 워울?”
뭐 하냐는 듯이 올려다보자 성산하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안 통하나 본데.”
“역시 고등급 몬스터라 다른가 봅니다. 이리 주십쇼. 일단 제가 이동장이라도…….”
“크르릉…….”
내게 뻗어지는 남자의 손을 보며 이를 딱딱대는데 여태껏 뒤에서 지켜보던 다른 헌터들이 앞다퉈 달려와 손을 뻗었다.
“길드장님! 제가 맡을게요!”
“아직 어린 개체라 너무 독한 약을 쓰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저희가 안전히 데려가겠습니다.”
“위험할 텐데.”
[카스토르] : 나 갔다 온다.
[사달멜리크] : 카스토르!!
[주벤엘게누비] : 그러다 잘못될 수도 있어!
<카스토르>가 방을 나갔습니다.
아저씨 대신 누나들이 나를 받아 안았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기분 좋았다.
“그르릉…….”
“어머 얌전해라.”
“남자가 무서운가 봐요. 이게 다 상철 헌터님이 무섭게 생기셔서 그래요.”
“내가 뭘 어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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