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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05화 (205/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05.

누나들의 품에 안긴 채 던전을 나왔다. 마지막 층까지 클리어한 상태라 워프만 통과하면 되어 번거로울 건 없었다. 검은 로브를 쓴 성산하와 천랑 길드원들은 남들 눈에 띄기 싫다는 듯 입구가 통제된 사이 조용히 던전 앞을 빠져나갔다. 마냥 편하게 안겨 있던 나는 저 멀리 반대편으로 가는 성산하를 보고 달려가려 버둥거렸다.

‘성산하! 성산하!! 썅! 공방 가야지 어디 가!!’

“끼잉, 낑…….”

“어어? 길드장님께 가고 싶어?”

나를 안은 누나가 성산하에게 다가갔다. 부름에 성산하가 뒤를 돌아봤다.

“길드장님. 아무래도 아가가 불안해하는 것 같아서요.”

“……이게?”

“길드장님이 주인이시잖아요. 몬스터마다 특성이 다르긴 하지만 어쩌면 각인되었을 수도 있다구요.”

“각인이라…….”

작게 중얼거린 성산하가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목뒤의 털이 쭈뼛 서고 발끝이 움츠러들었다. 제멋대로 움찔대는 발끝을 이상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드니 성산하의 얼굴이 가까워져 있었다.

잘생긴 얼굴을 보자 돌아왔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반가움에 붕붕 흔들리는 꼬리를 보자 심각했던 놈의 표정이 한순간에 풀렸다. 돌연 허탈히 웃은 성산하가 몸을 숙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겁먹지도 않고. ……이미 내 마음은 다른 강아지에게 줬는데 어쩌나.”

“우웡?”

데려가라는 듯이 두 팔을 뻗자 놈이 검지로 내 이마를 간질이며 씩 웃었다.

“싫어. 못난아.”

“아르르…… 앙! 크앙왕왕!!”

이 개새끼가!!

성산하에게 미친 듯 달려드는 나를 추슬러 안던 누나의 손에서 순간 힘이 빠졌다.

“아, 안 돼! 멍멍아!”

떨어지던 날 받은 건 성산하였다.

물을 각오로 짖어 대긴 했지만 갑자기 놈의 품에 안기자 입이 합 다물렸다. 빙글 웃는 얼굴이 재수 없었다.

“기세 좋게 짖더니?”

“……웡.”

성산하의 시선을 피해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떨어지지 않으려 놈의 옷깃을 잡은 발에 힘을 주었다. 결국 나를 떼어 놓는 데 실패한 성산하는 한 손에 나를 핫도그처럼 들고 발을 옮겼다.

열리는 차 문 사이로 이초가 보였다. 오랜만에 본 이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왕!”

나를 본 이초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곧 차에 올라타는 성산하에게 다가가 다급히 물었다.

“산하 님, 들고 계신 것 대체……. 갭니까 몬스텁니까?”

“뿔 보면 몰라.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나왔어.”

“보상으로 몬스터가요. 그럼 테이밍이 가능하겠네요?”

뿔이라니, 나 뿔도 있나?

성산하의 말에 짧은 발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으니 조그맣고 단단한 뭔가가 만져졌다. 신기한 느낌에 계속 만지작대는데 피식 웃은 성산하가 나를 시트에 내려놨다.

“이동장이라도 하나 구해야겠어.”

“네. 바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이 강아지…. 가 아니라 몬스터는 어디서 키울 생각이십니까? 테이밍장? 아니면 길드장님께서 직접…….”

“공방에 맡길 생각이야.”

“아, 아……. 네. 그것도 좋겠군요. 그럼 미리 연락해 준비시켜 두겠습니다. 도착하면 깨워 드리겠습니다. 잠시 눈 좀 붙이시죠.”

“그래.”

“크르르……. 왕! 왕왕!!”

‘이동장? 웃기지 마! 어디 나를 그딴 것에 가두려고!! 나 강의진이야. 강의진이라고!!’

있는 힘껏 내 의견을 피력했지만 성산하는 들리지 않는 듯 팔짱 낀 채 눈을 감았다.

아무도 듣는 사람도 없고 차 안에서 울리는 개 짖는 소리에 내 귀도 아파 오는 것 같아 짖는 걸 멈추자 자는 줄 알았던 성산하의 손이 다가와 잘했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펭 콧방귀 뀌고는 고개를 반대로 돌리자 휴대폰으로 나를 찍고 있는 이초와 눈이 마주쳤다.

“아르르르…….”

“큼큼, 민감하네. 나연이가 보면 좋아할 텐데….”

***

꾸벅꾸벅 졸던 고개가 허공에 뚝 떨어졌다. 졸린 눈도 다 뜨지 못하고 옆을 더듬대다 푹신한 베게 위로 기어 올라갔다. 하지만 베게는 기대와는 다르게 편안하지 않았다. 딱딱하기도 했고, 차의 움직임 탓에 몸이 미끄러지기도 했다. 어떻게든 편한 자세를 찾으려 꿈틀대다 결국 짜증 어린 신음을 흘리자 머리 위로 웃음기 섞인 작은 한숨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따듯한 손이 내 몸을 받쳐 안았다. 그제야 느껴지는 만족스러운 포근함에 나는 흡족한 입맛을 다시며 몸에 힘을 풀었다.

***

『새끼라서 자는 건가.』

『나는 새끼 때 많이 자지 않았는데.』

『많이 잤다.』

『깨워 볼까?』

『아니. 손대지 마. 강한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데?』

뭔가가 툭 나를 건드렸다. 가벼운 몸이 발라당 뒤집혔다.

『건들지 말라니까!』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온 줄도 모르고 자고 있……. 깼다.』

『으아아…! 악? 어엉?』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괴물들의 얼굴에 네 발을 허둥대며 비명 지르던 나는 이상한 기시감에 멈칫하다 고개를 갸웃거리곤 몸을 바로 세웠다.

괴물의 정체는 바로 룬과 루트였다. 내 기억 속에서보다 수십 배는 커진 모습에 잠시 놀라긴 했으나 그야 내가 작아졌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게 됐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둘의 대화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같은 몬스터라 이건가? 이해가 되네.’

몸을 바로 세우고 선 나는 앞의 놈들을 훑어봤다.

『눈빛이 맹랑하군.』

『이봐. 넌 누구지? 어디서 온 거냐.』

『야.』

내 부름에 룬과 루트가 캥캥댔다. 예전엔 몰랐지만 지금은 그게 배를 잡고 웃는 거란 게 느껴졌다.

『지금 저 조막만 한 게 뭐라고 하는 거냐.』

『아직 어려서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아, 재밌네……. 룬, 루트. 오랜만이다?』

『우리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잠깐, 그런데 저 말투 꼭…….』

높게 올라가 있던 룬과 루트의 꼬리가 서서히 내려갔다. 그러곤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는…데.』

『나야, 나. 강의진!』

펄쩍 뛰며 달려가자 룬과 루트가 꼬리를 말고 도망갔다. 둘을 따라가며 짖었다.

“왕! 왕왕!!”

『룬! 루트!! 어디 가!!』

둘을 따라가며 짖는데 바로 앞의 문이 열려 급히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나온 건 바로 연승연이었다. 눈높이가 달라져 바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연승연의 방문 앞을 지나는 중이었다.

연승연의 얼굴을 보자 반가움에 두 발로 몸을 일으켰다.

“왈! 왈왈!!”

‘승연아- 나다!!’

두발로 서서 다가가자 연승연이 흠칫 놀랐다. 빠르게 몸을 피하는 연승연 때문에 디딜 곳을 잃은 나는 털썩 쓰러져 다시 사족보행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납작한 시야가 아무래도 불편해 나를 들으라고 손짓하는데 연승연은 아무래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왕!”

“어, 어어. 일어났구나. 연락드려야……. 밥은 좀 이따가 챙겨 줄게!!”

연승연은 도망치듯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고개를 갸웃하다 머쓱하게 뒷발차기를 했다. 성산하도 나를 못 알아보는 판에 승연이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대놓고 피하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뭐, 승연이는 워낙 몬스터를 무서워하니까. ……됐다, 구름이나 찾으러 가야지.’

구름이를 볼 생각 하자 다시 꼬리가 자동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름이가 어디 있을까. 짐작이 가는 곳들은 많았지만 한 가지 내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개, 아니 몬스터의 몸으로는 닫힌 문을 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닫힌 방문을 열어보는 것은 포기하고 내 몸만 한 계단을 한 칸씩 미끄러지듯 굴러 내려가 로비에 도착했다.

‘헥헥, 연구실에는 혼자선 절대 못 가겠네. 룬이랑 루트 이 새끼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열려 있는 뒷문을 통해 나간 나는 꿍얼대며 정원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엘프목이 보였다. 엘프목은 전에 봤을 때와 달리 삐쩍 말라 낙엽이 지고 있었다.

‘어? 엘프목 왜 저러지?’

엘프목은 마치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가지를 흔들며 파스스거리는 소리를 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룬과 루트는 엘프목 아래에 태평하게 늘어져 있었다.

“왈! 왈왈!”

『룬! 루트!! 도망가면 죽는다!!』

나를 발견한 룬과 루트가 꼬리를 말고 안절부절못했다. 이를 드러내고 놈들에게 달려가던 나는 드러난 정원의 모습에 놀라 발을 멈췄다.

잔디 위로 하얀 국화와 편지들이 빼곡했다. 밖에서 던진 건지 담장 주변은 산을 이룰 정도로 쌓인 상태였다.

「강의진님께.」

「세계 제일의 포션 마스터 강의진 앞.」

「To. 의진」

대충 훑어도 모두 내게 온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편지에 국화까지. 이렇게 실감 나게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방법도 없을 테다.

정원 전체가 나를 위한 추모 공간이었다. 그를 깨닫자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말없이 발밑의 편지를 바라보는 내게 룬과 루트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어떻게 돌아오게 된 거야? 죽었다고 들었는데.』

『주인님도 같이 온 건가? 설마 주인님도 몬스터가…….』

『아니. 태제헌은 안 와.』

『하지만 작은 주인은 돌아왔잖아.』

‘작은 주인이라니 그딴 식으로 부르고 있었냐…….’

속으로 투덜대던 나는 놈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 말 해 줄게. 그 전에, 구름이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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