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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06화 (20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06.

룬이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렸다. 루트는 나와 보폭을 맞춰 걸으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작다. 정말 작다. 작은 주인 작다.』

『뒤질래? 닥쳐라.』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게 짜증 나 쫓아냈더니 이번엔 내 뒤로 와 꼬리 주위를 킁킁댔다. 참지 않고 달려들었지만 이 하찮은 숏다리로 산만 한 루트를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좆같은 몸뚱어리! S급이라면서 왜 스킬도 없는 건데!!’

분에 못 이겨 제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는 나를 룬과 루트가 이상하게 바라봤다.

『작은 주인 이상하다.』

『놔둬라. 원래 이상했다.』

구름이는 역시나 내 방에 있다고 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려올 때는 나름 쉬웠던 터라 도움 없이 낑낑대면서 계단을 기어올라 가는데 한 번에 계단을 서너 개씩 뛰어 올라가던 룬과 루트가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낑낑대며 계단 한 칸씩 기어올라 가는 내 모습을 본 놈들이 또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워우월, 키앵캥캥.”

“왕! 왕왕!!”

『썅! 죽는다!!』

제 자리에서 길길이 날뛰는데 한 번의 도약으로 훌쩍 뛰어내린 룬이 내게 다가왔다. 녀석이 고개를 숙이자 콧김이 닿아 머리가 뜨거워졌다. 뭐 하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룬이 덥석 내 목덜미를 물었다.

‘이 개새끼가!!’

곧바로 반항하려고 했으나 목덜미를 잡히자 이상하게 몸이 얼어붙었다.

“아르르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자 픽 하고 비웃는 듯한 코웃음을 뱉은 룬이 긴 다리로 훌쩍훌쩍 위로 계단을 뛰어올랐다. 대롱대롱 매달린 채 단숨에 이 층까지 오른 나는 모멸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르르…. 알! 알왈왈아랄왈!!!”

『죽는다! 다신 저딴 식으로 잡지 마!!』

『작은 주인이 작은데 어떡하냐.』

『이 방이다.』

나와는 달리 두 발로 서면 사람 키만 해지는 루트가 훌쩍 일어나 문고리를 내렸다. 문이 열리고 오랜만에 내 방이 보였다. 곧바로 방으로 달려들어 갔다.

“왈! 왈!!”

『구름아!!』

그러나 방에선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용한 방에는 토도도 하는 내 발소리만 울려 퍼졌다. 침대 뒤편에도 보이지 않는 구름이의 모습에 룬과 루트를 돌아보자 룬이 침대 위를 고갯짓했다. 따라서 올려다보자 루트가 다가와 물었다.

『작은 주인. 올려 줄까?』

『아니. 엎드려.』

루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닥에 엎드렸다. 애를 써 루트의 등으로 올라탄 후에 발로 툭툭 쳤다.

『이제 됐어. 일어나.』

루트가 투덜대며 몸을 일으켰다. 높아지는 시야로 침대에서 잠든 구름이가 보였다.

눈을 감은 채 잠든 구름이를 보자마자 심장이 철렁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에 황급히 침대로 뛰어들어 구름이에게 다가갔다.

『구름아…. 구름아! 나 왔어. 일어나 봐. 구름아!!』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는 구름이의 모습에 룬과 루트를 돌아봤다.

『어떻게 된 거야? 구름이에게 무슨 일 있었어? 왜 안 일어나는 건데!』

『모른다. 하얀 놈과 여기로 돌아왔을 때 이미 저랬다.』

『하얀 놈? ……성산하 말하는 거야?』

『맞다. 저 양은 잠만 엄청 잔다. 자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더니 이젠 일어나지도 않는다.』

『하얀 놈이 인간들을 불러 살피게 했지. 다들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룬과 루트의 말에 심각한 표정이 되어 구름이를 내려다봤다.

『돌아와서라면……. 나 때문인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몬스터의 몸을 빌린 상태라 전의 스킬들도 사용하지 못했다.

‘젠장. 의신의 손길이라도 쓸 수 있었다면…….’

침대에 턱을 얹은 룬이 말했다.

『양을 보여 줬으니 작은 주인도 이제 말해 줘야 한다. 주인님은 어디 있지?』

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애초에 길게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태제헌은…….』

이제는 나와 크기가 비슷해진 구름이의 머리 위에 앞발을 얹었다. 룬과 루트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태제헌이 죽었다고? 아니면 살아는 있지만 시간이 멈춘 공간에 영원히 갇혀 버렸다고?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구름이의 복슬복슬한 털을 쓰다듬던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작은 주인! 대답을…….』

『태제헌은 나랑 같이 안 왔어.』

뒤를 돌아보자 룬과 룬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 왔다니 무슨 소리인가. 주인님은…….』

『역시 살아 있다는 거지! 내가 말했지! 내가 맞았지!』

루트가 엉덩이를 씰룩대며 말했다. 룬이 발을 들어 루트의 머리를 내리눌러 진정시켰다.

내게 대답을 종용하는 시선에 큼큼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성좌…. 우리만 갈 수 있는 다른 공간이 있어. 거기서 같이 살기로 했고. 그런데 실수로 나만 떨어진 거야. 이 꼴로.』

『재밌겠다. 나도 갈래!』

『안 돼. 우리가 갔던 탑이 사라지면서 생긴 특수한 상황이라 가능한 거지 너희는 못 가. 원래는 나도 못 내려오는 거였고.』

『이상하다. 작은 주인이 주인님이랑 같이 살기로 했다고?』

룬의 예리한 중얼거림에 뜨끔했다. 시선을 피하며 투덜댔다.

『뭐! 내 맘이다. 어쨌든 그렇게 됐다고.』

『작은 주인은 맨날 자기 마음대로군.』

『그럼 우리는 주인님을 다신 못 보는 거야?』

『작은 주인도 봤다고 할 수는 없다. 작은 주인처럼 안 생겼지 않나.』

『맞다. 우리랑 같은 몬스터가 되었으니까!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작은 주인.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라! 우리가 다 알려 준다.』

『그딴 거 없으니까 꺼져!』

『그럼 작은 주인은 언제 돌아가나? 주인님한테 우리 얘기도 해 줘라.』

『바보 같은 놈! 우리 얘기를 하면 안 되지. 하얀 놈에게 잡혀 하얀 놈이 주는 밥을 먹는 것을 알면 주인님이 화내실 거다!』

『헉……. 작은 주인! 말하면 안 된다. 숨겨 줘라!』

놈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진실을 숨겼지만 룬과 루트가 나누는 대화를 듣자 가슴이 아려 왔다.

‘썅, 저 놈들을 두고 먼저 가면 어떡해. 태제헌…….’

일그러지는 얼굴을 감추려 침대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

“이게 왜 여기 와 있지?”

“그러게요. 양털이 푹신했나……. 그런데 계속 ‘이거’, ‘저거’ 하고 부르실 겁니까? 이름은 안 지어 주십니까?”

“뭐, 굳이.”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나를 내려다보는 성산하와 이초가 보였다.

“엇? 깼네. 안녕.”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이초를 무시하고 옆을 보니 창밖이 환했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리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땐 노을이 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 내고는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뭐야, 설마 하루가 지난 거야? 잠을 그렇게 많이 잤다고?’

퍼뜩 몸을 일으키는데 몸이 데굴 앞으로 굴렀다. 피식 웃은 성산하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여긴 들어오면 안 돼.”

“워울…….”

구름이 옆에 더 있고 싶은데. 나를 번쩍 드는 성산하 손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아직 잠이 덜 깨어 그런가 몸이 나른했다. 뭐, 그래도 많이 자긴 했으니까. 일어날 때도 됐지.

침대에 눕는 걸 포기하고 단단하고 따뜻한 성산하 품으로 파고들자 성산하가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안아 준다는 말이 아니었는데…….”

“원래 몬스터들도 새끼 때는 이렇게 애교가 많습니까?”

“그럴 리가.”

둘의 대화를 듣다 갑자기 성산하 손이 보고 싶어 몸을 꿈틀댔다. 성산하가 의아하게 나를 고쳐 들었다.

“왜.”

“끼잉, 낑…….”

“…손?”

단 두 번의 발짓으로도 눈치 빠르게 알아챈 성산하가 여전히 의아한 낯으로 손을 들었다. 희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손이 내 머리를 간질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저주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정화가 잘 되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사실은 꼬리가 흔들리고 있는 거였다.-

반가움에 손을 깨물자 이초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갈이를 하나 보네요!”

“……그런가.”

잠시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성산하는 나를 안고 방 밖으로 나갔다. 성산하 품에 안겨 방 밖으로 나가니 아침이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이 났다. 로비로 내려가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청이랑 제로잖아!!’

오랜만에 보니 제로마저도 반가웠다. 둘을 보고 반응하는 내 모습에 이초가 서운한 듯이 중얼거렸다.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나만…….”

성산하가 나를 바닥에 내려 줬다. 곧바로 청이와 제로에게 달려갔다.

‘청아! 제로야!!’

“왕왕왕!!”

나를 내려다보는 청이의 눈빛이 차가웠다.

“웬 개가……. 아니, 몬스터인가.”

“호오. 이건 본 적 없는 몬스터인데. 설마 미공개종입니까?”

“한번 안아 보지 그래. 그렇게 좋아하는데.”

“월! 워웍.”

안을 필요까진 없는데!

하지만 내 항변에도 불구하고 번뜩이는 눈을 빛낸 제로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몸을 숙였다.

“후후후. 저도 아주 흥미가 있답니다. 마음 같아서는 확…! 데려가고 싶네요……. 이리 온?”

“크르르르……. 끼잉, 깽.”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에 후다닥 성산하에게 달려갔다. 빨리 안으라고 다리를 쳐 대자 성산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안아 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 부른 이유가 뭐지. 하말에 관련된 일인가.”

청이의 물음에 귀가 쫑긋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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