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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08화 (208/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08.

“……다른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의진아.”

문틈 사이로 들려온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

방 안에 다른 누군가 있나 들여다봤지만 역시 성산하 혼자였다. 주위를 킁킁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흐아악! 씨발, 깜짝이야.’

어느새 뒤를 돈 성산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 보듯 차가운 시선에 놀라기도 잠시, 눈꼬리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워, 워엉?”

‘서, 성산하? 너…… 우냐?’

당황해 앞발만 까딱이며 놈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성산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안아 달라 손을 뻗었지만 면전에서 문이 쾅 닫혔다.

“웡?”

멍청하게 바라보다 두 다리로 일어나 문을 세게 두드렸다. 지금 난 성산하에게 모르는 몬스터일 뿐이라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이미 지워진 상태였다.

“왕! 왕왕! 아우우울! 왕!!”

‘야! 문 열어! 성산하!! 야!!’

문을 긁고 짖어 대는 소리에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룬과 루트였다.

『작은 주인? 뭐 하고 있는 건가?』

『또 문을 못 열어서 그런 거다. 작아서 힘들다.』

킬킬대는 놈들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문을 퍽퍽 쳤다. 존나 작아 두드리는 소리도 나지 않던 발에 순간 힘이 담기며 푸른빛이 번쩍였다. 빛의 잔상이 지나간 대로 문이 두 동강 났다.

『헉. 작은 주인 강하다. 작지만 강하다.』

『……내가 말했잖아.』

룬과 루트가 꼬리를 말고 멀찌감치 떨어졌다. 소란에 복도로 뛰어나온 연승연이 문 바로 앞에 있는 개들을 보고 소리 지르는 것에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당당히 앞만 바라봤다. 끼익 하며 뒤로 넘어가는 문 뒤로 황당한 낯의 성산하가 보였다.

“너…….”

“월! 워울월! 워월월!!”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문 열어야지. 새끼야!!’

당당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연승연이 다가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성산하는 나를 안아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 일 없어. 애가 아직 힘 조절을 하지 못해서. 문은 미안하군. 사람 보내어 수리해 두도록 하지.”

“아…. 네.”

떨떠름한 얼굴로 나가려던 승연이가 아, 하더니 멈춰서 물었다.

“그 몬…스터 밥은 뭘 줘야 하나요?”

“밥?”

연승연의 물음에 성산하가 깨달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날 이후 여태껏 굶주렸겠군……. 그래서 짜증이 많았던 건가.”

밥이라니, 어떤 걸 줄지 뻔했다. 밥 따위 필요 없다고 불만스러운 목소릴 내는데 성산하가 내 머리를 간질이더니 연승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조금 알아봐야겠는걸. 룬이랑 루트 사료 여기 있지?”

“네. 옆방에…….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해도 돼. 자다 깼을 텐데 마저 가서 자도록 해.”

고개를 끄덕인 연승연이 등을 돌렸다. 산산조각 난 문을 보고 흠칫 놀라더니 재빨리 사라졌다.

나는 성산하의 옷을 타고 올라가 놈의 얼굴을 보려 애썼다. 성산하의 어깨에 몸을 걸치고 얼굴에 발을 뻗어 눈가를 샅샅이 살폈다. 그사이 말라 버렸는지 성산하에게선 눈물이라곤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잘못 본 거라면 좋을 텐데.’

그러기엔 지금 내 몸의 시력이 너무 좋았다. 왜인지 속이 쓰려 멋쩍은 입맛을 다시다 성산하의 눈가에 발을 올렸다.

지금까지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성산하가 피식 웃으며 나를 번쩍 들었다. 마주한 눈이 나를 꿰뚫어 보듯 짙어졌다.

“뭘 알고 이러는 건지. 응? 못난아.”

“크르르르….”

“인간 말도 알아듣는 것 같고.”

멸칭에 으르렁대던 나는 예리한 지적에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젠장, 개 사료에 이어 멍청한 척까지 해야 하는 건가?

구름이와 제주 던전이 돌아가는 양상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왠지 그 여정이 험난할 것 같았다.

“……같은 던전이라 그런가. 닮았군.”

“웡?”

뭐랑 닮았다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성산하가 웃으며 나를 안은 채 방을 나섰다.

“일단 밥부터 먹자.”

***

푸르르, 어이없는 한숨을 뱉으며 앞에 놓인 밥그릇을 퍽 내리쳤다. 데구루루 굴러가는 그릇에 연승연이 탄식을 흘렸다.

“앗, 아앗……!”

그릇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몬스터용 사료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신이 난 루트가 달려가 주워 먹으려는 것을 룬이 더럽다고 후려쳐 말렸다.

수철이가 나름대로 혼내려는 건지 허리에 손을 얹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밥을 잘 먹어야지, 밥그릇을 엎으면 어떡…!”

“크르르…… 월!”

이를 드러내며 짖자 수철이의 목소리가 단박에 사그라들었다. 슬그머니 소파 뒤로 몸을 숨긴 수철이가 승연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사, 사장님 어떡해요? 절대 안 먹을 기세인데요.”

“그러게……. 커서 안 먹는 건가 싶어 잘라 주기까지 했는데. 이상하네.”

그거야 네놈들이 개 사료를 주니까!!

내 앞에 있는 사료는 한 알도 보기 싫어 손으로 멀리 쳐 버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인간의 밥이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몬스터용 사료나 룬이나 루트가 좋아하는 몬스터 생고기에 더 눈길이 가긴 했지만 차마 제정신으로는 먹지 못할 것 같았다.

“벌써 밥을 안 먹은 지 일주일째인데……. 길드장님한테라도 연락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도 안 돌아오셨대요?”

“이초 님께 듣기론 며칠은 더 연락 안 될 거라고 하던데.”

성산하는 또 무슨 일이 있다고 해외로 가 버렸다. 탑을 없애러 간 건 아닌 것 같던데 어딜 갔을까……. 그나저나 수철이 말대로 밥을 먹지 않은 지 일주일쯤 되자 슬슬 기력이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저녁엔 꼬맹이들도 온다고 했지.’

꼬맹이들을 상대하기엔 힘이 많이 고갈되긴 했다. 슬슬 뭘 먹긴 해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난 나는 루트를 불러 등에 올라탔다.

“왕! 왕왕!”

“워우어우월! 월!”

“아르르르. 크왕!”

“……워웅.”

“둘이 뭐라고 하는 걸까요?”

“글쎄…….”

신기하게 지켜보는 둘을 뒤로하고 포션 진열장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태어난 지 일주일이 지나자 이제 소근육들을 내 맘대로 쓸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포션들 냄새를 맡으며 지나다니자 연승연이 놀라 나를 잡으러 달려왔지만 잡히기 전, 하나를 물고 폴짝 뛰어내렸다. 내가 바닥에 닿기 전 내 목덜미를 잡아챈 룬이 다시 나를 소파 위에 올려놨다.

“지금……. 포션을 물고 온 겁…니까?”

“월!”

빨리 까라며 손짓하자 수철이가 멍청한 표정으로 승연이를 돌아봤다. 다가와 포션을 감정해 본 승연이가 제 손에 들린 병과 나를 번갈아 봤다.

“머, 먹어도 되는 거긴 한데 대체 이걸 어떻…….”

“냄새를 맡았나 보죠! 이야, 몬스터야! 알려 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찾아온 거야? 대단한데?”

영 꺼림칙한 표정의 승연이와 달리 수철이는 매우 신기해하며 그릇에 포션을 부어 줬다. 한 번 핥자 몸에 기력이 도는 게 느껴졌다.

‘크으. 바로 이 맛이지!’

뭐 하러 개 사료 먹냐. 포션 한 그릇이면 해결인데!

편하게 드러누운 나는 포션을 할짝이며 옆에 있는 리모콘을 딸깍댔다. 버튼을 눌러 자주 보는 뉴스가 나오는 채널을 고정했다.

“저, 저 몬스터가 뭐 하는……. 저거 사람 아닙니까?”

“S급이라 지능이…. 높은가 봐. 아무래도 수철이 널 보고 배웠나 봐.”

뒤에서 입을 벌리고 쳐다보는 수철이와 승연이는 이미 관심 밖이었다.

[여덟 번째로 사라진 골드코스트의 탑에 이어 캐나다 몬트리올의 탑 역시 순조롭게 처리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은 총 77층으로, 중간에 이탈한 팀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원정대는 72층에 도달했을 것으로…….]

화면 아래 대문짝만한 글씨로 남은 탑은 제주와 교토, LA 세 군데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잘못된 방법으로 성좌를 잃어버린 두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탑이 가장 가능성이 높죠.]

[아무래도 그렇죠. 하지만 성좌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S급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직까지 성좌지도는 강의진의 공방을 비추고 있다고 하니까요.]

[일본과 미국도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데요. 지표를 따라 성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지표라……. 성좌의 유지가 사라졌어도 새로운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어쩌면 구름이를 구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포션을 할짝였다.

***

몬스터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심심하진 않았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은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보는 것도 좋았고 날이 갈수록 힘이 생기는 육체에도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밤이면 찾아오는 성산하가 기다려졌다. 해외 일정이 있을 때면 며칠씩 자리를 비우는 놈이 짜증 나 몰래 여권을 찢어 버리려 주머니를 뒤졌을 정도였다. 결국 들켜서 실패했지만.

구름이 옆에 엎드리면 성산하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이것저것을 말해 줬다. 하루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아직 엠바고가 걸려 있지만, 방금 전 캐나다의 탑까지 사라졌어. 열두 개 중 어느덧 세 개만 남았군.”

“웡워우엉웡.”

‘흥. 이미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다. 네가 돌아왔잖아.’

“마지막 탑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하말을 대체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못 찾았네. ……한심하지. 의진아.”

두 발 위에 턱을 괸 채로 성산하를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놈은 나를 의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과한 반응을 하면 나라는 것을 들킬까 봐 가만히 있던 게 결국 허락을 해 버린 꼴이 되었다.

나는 죽었는데, 다른 것에서 나를 보는 게 성산하에겐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싫어하는 티를 낼까 싶다가도 나를 의진이라 부르며 쓰다듬는 손길이 좋아 하루만, 하루만 더 하고 버틴 지 벌써 여러 날이다.

“아,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스킬을 얻었어. 네가 알았다면 분명 좋아했을 텐데.”

“워엉? 웡.”

‘무슨 스킬? 또 치료 계열이냐?’

“조만간 남산 던전에 다시 들어가 볼 생각이야. 뭄바이의 던전에서 드랍된 아이템 중 아디티 싱의 보석과 비슷하다는 것이 나왔거든. 남산 던전도……. 포션 말고도 다른 것이 나올지 모르니까.”

“월! 워우룰. 아우우우!”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아쿠벤스 놈 취향이라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유물 같은 게 아니야.’

성산하를 말렸지만 놈은 웃으며 나를 더 강하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래. 너는 조금만 더 크면 같이 가자. 이대로라면 세 달이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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