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210.
발을 뾰족하게 세워 침착하게 보던 자료를 빠져나갔다. 섬뜩한 부름을 무시하고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데 다 됐다고 생각하던 찰나, 웹사이트의 우측 검색창이 최근 내가 ‘LA 성좌’를 검색했다며 친절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좆 됐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삐질 났다.
‘씨발! 이건 왜 안 없어져!! 빨리, 빨리…….’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최근 검색어를 지우다 여의치 않아 아무렇게나 뜨는 연관 검색어를 와다다 클릭하며 기록을 덮어 내리는데 순식간에 손에서 태블릿이 사라졌다.
“깽…!”
황급히 돌아보니 성산하가 미심쩍은 얼굴로 태블릿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화면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다.
“이게 무슨…….”
“웡! 끼잉, 낑. 아울.”
나도 화면 볼래! 나도 볼래!!
두 발로 일어나 앞발로 놈의 배를 긁자 힐긋 밑을 바라본 성산하가 한숨과 함께 나를 들어 올렸다. 위로 오르기가 무섭게 몸을 돌려 화면을 확인했다.
“웡…?”
눈앞에 펼쳐진 먹음직스러운 고기들의 향연에 입 밖으로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당황해 우측 검색창을 확인하자 내가 친 적 없던 단어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LA갈비」
「LA갈비 양념」
「백중원 LA갈비」
「LA갈비 레시피」
「LA갈비 맛집」
죄다 LA갈비로 바뀐 검색 이력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태블릿을 내려놓은 성산하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배가 고팠어? 사료는 먹지 않는다더니.”
대답할 힘도 없었다. 이제보니 성좌들은 미리부터 알고 있었는지 저 멀리 치워 놨던 채팅창에 아까부터 경고의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온몸의 힘이 풀렸다. 안긴 채로 축 늘어지자 성산하는 작게 웃으며 발을 옮겼다.
‘하…. 씨발. 존나 놀랐네. 어쨌든 걸리지 않았으니까 된 건가.’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
안을 때마다 느꼈지만 놀랄 정도로 가벼운 무게였다. 금세 잠에 든 몬스터를 침대에 눕힌 성산하는 저도 곁에 앉아 조심스러운 손길로 작은 몸체를 쓰다듬었다. 작게 들썩이는 가슴께에 손이 오래 머물렀다.
의진이 사라진 남산 던전에서 나온 전대미문의 생명체. 아무리 고등급이라 지능이 높다지만 몬스터가 리모컨을 조작하고 글자를 아는 것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이것이 몬스터가 맞긴 한 걸까.
이초와 제로를 포함한 모두가 이것은 성좌일 것이라 말했다. 하말의 이름을 가진 저 새끼 양처럼 이것 역시 ‘카스토르’일 거라고. 그렇다면 그 지능도 설명이 됐다.
하지만 사료를 거부하고 포션을 마시는 것 하며 누구에게도 겁을 먹지 않고 당당한 태도에 관심을 끄는 탁월한 능력은 단순히 ‘카스토르’라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았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강의진 하나뿐이었으니까.
“……너는 뭐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의진이와 같을 수가 있을까. 혹시 의진이의 지시를 받는 걸까? 어쩌면 어딘가에 있을 의진이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혹시 이것 자체가…….
아래를 바라보는 성산하의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쓰다듬던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짜증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몬스터의 모습에 성산하는 작은 몸 위에서 손을 거뒀다.
모든 게 제 망상이며 헛된 기대일 수도 있다. 몬스터는 하말과 같이 성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뭐가 됐든 상관없다. 이걸 이용해 강의진만 되찾을 수 있다면 무슨 수라도 쓸 테니.
천천히 주먹 쥐는 손 위로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금빛 기운이 흉포하게 일렁거렸다.
***
잠에 든 강의진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쓰다듬는 성산하를 본 벨라가 두 손을 모아 쥐고 노래하듯 말했다.
“세-상에. 너무 낭만적이야.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구나.”
“누군 지금 카스토르가 정체 들킬까 봐 쫄려 죽겠는데. 낭만은 무슨.”
아쿠벤스가 투덜댔다. 사달멜리크와 루크바트도 고개를 끄덕이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맞아. 혹시 천랑 길드장이 다른 마음이라도 먹어 카스토르를 억류하면 어떻게 해.”
“조디악 시스템이 완성되긴 위해선 카스토르 역시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해.”
“하아, 이미 한 번 죽었으면서 다들 왜 이렇게 걱정이 많아? 있는 그대로 즐기면 어때? 재미있잖아! 주벤엘게누비! 알레샤, 알게디!”
벨라가 도움을 요청하듯 바라봤지만 그 셋 역시도 마냥 동조하지는 못하는 표정이었다.
“카스토르와는 만나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카스토르 역시 아래서 머물고 싶어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런 점에 대해선 나만 고민해 본 거야?”
“설마…. 조디악이 완성되지 않으면 한국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험해질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다른 이들의 우려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닐세. 벨라 자네도 알다시피 카스토르는 누구보다 이곳의 생활을 지루해했지. 지금 아래서 훨씬 즐거워 보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아.”
“들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카스토르부터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단 말이네요.”
알게디의 말에 침묵이 찾아왔다. 벨라가 발끈해 손가락질하려는 순간 레굴루스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카스토르를 탓할 수 없다.”
“탓하자는 게 아니야. 다만…….”
“다들 오랜 죽음 후 성좌로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지. 하지만 의진은 다르다. 죽은 적 없던 젊은 청년이 졸지에 모든 것을 잃고 이곳으로 오게 된 거야.”
“그건 레굴루스 너도 마찬가지잖아! ……뭐, 젊진 않지만.”
아쿠벤스가 소리치자 레굴루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르다. 나는 선택권이 있었지만 카스토르는 아니었지. 그는 다른 선택권 없이 성좌가 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의 희생 위에 존재한다.”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조디악을 망쳐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 레굴루스 당신이야 선택이었겠지만 우리들 역시 선택권이 없었다. 모두가 성좌이기 때문에 폰투스 놈들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잊은 건가?”
“솔직히 말해서, 여기 자신이 왜 성좌인지. 왜 성좌가 되어야만 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 있어?”
점차 언성이 높아졌다. 작은 언쟁이 성좌들의 첫 싸움으로 번지려 하자 머리를 헤집은 벨라가 땅으로 떨어진 나무 열매들을 주워 입을 연 성좌들의 안면에 던져 버렸다.
“앗!”
“아야야….”
“모두 입 다물도록 해! 애초에 의진은 모든 걸 내팽개치고 조디악을 버릴 사람도 아닐뿐더러- 정말 조디악을 걱정한다면 의진이 아닌 아직까지 올라오지 않은 하말과 아예 망해 버린 알데바란, 안타레스를 어떻게 되살릴지, 그것부터 걱정해야지. 안 그래?”
“맞는 말이군.”
“……스피카 말이 옳아. 미안하군. 레굴루스.”
“하긴, 카스토르는 그럴 놈이 아니지.”
성좌들이 말귀를 못 알아 처먹으면 이번엔 돌을 던지려 했던 벨라는 화해하는 이들의 모습에 몰래 쥐고 있던 돌을 버리고 밝게 웃었다.
“다행히, 의진 덕에 우리도 실마리를 얻었잖아? 아까, 그……. 뭐였지, 알레샤?”
“성좌가 죽으면 유지가 남고, 그 유지가 사라지면 파편이 존재해 조디악의 명맥을 잇는단 말이었지.”
“우리는 모두 유지를 제물 삼아 올라온 거고? 유지를 ■■■■■에게 잘못 바친 알데바란과 안타레스는 파편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네.”
주벤엘게누비가 걱정하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아래의 헌터들이 잘해 주길 바랄 뿐이지. 다만 문제는, 하말일세. 하말의 유지, 그러니까 새끼 양을 바쳐야 한다는 건데…….”
“카스토르는 새끼 양을 살리고 싶어 하지.”
“말이 돼? 유지를 안 바치고 하말을 어떻게 살리냐?”
“이 바보야. 그러니까 한번 고민해 보자는 거잖아.”
성좌들이 고민에 빠졌다. 한참의 침묵 후 아쿠벤스가 못 견디겠는지 털썩 주저앉으며 툴툴댔다.
“말이 돼? 그 양을 바치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잖아.”
“죽이다니 그건 무슨 말인가. 아쿠벤스.”
“할배. 이해가 안 가? 성좌가 죽으면 다른 것으로 대체되잖아. 카스토르처럼 우리가 바쳐져야 했을 게 우리가 죽어서 유지로 대체된 거고, 유지가 죽으면 파편이 되는 거겠지. 그러니 하말을 죽이면 파편이 생기겠지 뭐.”
“그건 해결 방법이 아니잖아!”
“그럼 뭐 어떻게 해.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라니까. 이거. 우리 모두 대체제가 있었잖아. 그래서 죽었지만 성좌가 될 수 있었던 거고.”
그때 아쿠벤스의 말을 곱씹던 사달멜리크가 구석에서 중얼거렸다.
“대체…. 대체라. ……아니야. 대체제가 없는 것도 있어. 폴룩스.”
“응? 뭐라고?”
“폴룩스는 대체제가 될 만한 제물도 없었는데 성좌가 되었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사달멜리크의 물음에 다들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야 쌍둥이자리니까 당연히…….”
그때 알게디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폴룩스는 다른 이들처럼 알파성이 아닙니다. 쌍둥이자리지만 알파성은 하나, 카스토르뿐이니까요. 카스토르만으로도 조디악 시스템은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럼 폴룩스가 성좌가 된 것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단 말이야?”
“그건…. 폴룩스나 카스토르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헤헤 웃으며 말하는 알게디의 모습에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스토르, 카스토르 어디 있어!”
“의진이 지금 자고 있잖아. 호현에게 먼저 가 보자고.”
“폴룩스는 아마 또 하말 석판 근처에 있을 겁니다!”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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