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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11화 (211/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11.

곁에 있던 온기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잠에서 깨 뒤척이자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 자.”

“…워우워웅.”

‘또 어디 가는데.’

문밖엔 이초가 와 있었다.

해외 스케줄인 건가? 이번에 가면 언제 올지 모르잖아.

몇 번 휘청이다 일어나 놈을 따라가자 눈도 다 뜨지 못한 내 모습을 본 성산하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되게 못생겼네……. 금방 돌아온다고는 약속 못하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이번이….”

자느라 헝클어진 털을 가볍게 쓸어내리던 성산하의 손이 멈췄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놈이 몸을 내려 작게 속삭였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웡?”

“돌아와서 보자. 의진아.”

그럴 리가 없는데, 꼭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멈칫한 사이 성산하는 이초의 재촉에 못 이겨 서둘러 방을 떠났다.

‘뭐. 내 착각이겠지.’

뒷발로 간질간질한 귀를 털었다. 이미 잠은 달아난 지 오래라 나도 이만 일어나려는데 저 멀리 구석에 밀어 놓은 채팅창 알람이 자기를 봐 달라는 듯 반짝거렸다. 대화방에 들어가자 내가 자는 사이 쌓인 대화들이 산더미였다.

‘또 무슨 말을 이렇게 많이 한 거람.’

들어가자마자 끝도 없이 올라가는 채팅들에 질려 그냥 넘겨 버리려는데 마지막에 보이는 말들에 멈칫했다.

[아쿠벤스] : 카스토르 똥멍청이.

[주벤엘게누비] : 카스토르는 위에 대화 내용을 절대 알 리 없겠지?

[스피카] : 당연하지. 의진은 쌓인 대화는 읽지 않아.

[아쿠벤스] : 우리가 카스토르 욕을 했단 사실은 영영 들키지 않겠네! 다행이다.

[루크바트] : 포션 메이커 순위에 대한 비공식 담론은 우리끼리의 비밀로 묻어 두기로 하지.

뭐? 내 욕을 했다고? 포션 메이커 순위라니 저건 또 무슨 소리야? 포션 마스터인 내가 여기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아, 죽었지 참.

‘이 자식들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가장 처음의 대화로 올라갔다. 그러나 막상 보인 내용들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스피카] : 의진!!! 호현이 성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야 해. 아마 너와 관련되어 있을 거야.

[알레샤] : 성좌의 힘으로 사념체가 되어 존재했던 우리와 폴룩스는 달라.

[레굴루스] : 잠깐, 설명을 먼저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갑자기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데.

[아쿠벤스] : 그보다 카스토르는 애초에 이걸 읽지도 않을걸.

[스피카] : ……부정할 수가 없네.

[주벤엘게누비] : 그럼 어찌한다…….

.

.

[아쿠벤스] : 카스토르 똥멍청이

애초에 성좌들이 나를 낚으려고 거짓말을 친 거란 사실조차 잊은 채 대화를 읽는 것에 집중했다.

‘주호현이 알파성이 아니라고….’

류수윤과 함께 구름이도 살릴 수 있단 소리였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주호현이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부터 알아내야 했다.

***

“아이 예뻐라. 정말 잘 먹네. 하나 더 줄까?”

하얀 누나가 스테이크를 먹는 나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봤다. 옆에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송아 누나가 수철이에게 물었다.

“저런 거 먹여도 돼요? 몬스터가 스테이크 먹는 건 또 처음 봤네.”

“포션 아니면 스테이크나 줘야 겨우 먹어서……. 몬스터들이 먹는 건 안 먹어요.”

“신기하네. 테이밍 몬스터라 다른 건가.”

모른 척 고기로 시선을 돌리는데 이층에서 승연이가 내려왔다. 누나들을 보고 인사하는 승연이의 모습에 수철이가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사장님! 점심 드세요!”

“어? 아, 아니……. 아니야. 난 입맛이 없어서…….”

“그러다 저녁도 안 드실 거잖아요.”

“그냥 나중에…….”

“월! 월월월!!”

여기 머물며 연승연이 밥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빨리 앉으라며 짖자 슬쩍 도망가려던 승연이가 놀라 흠칫 떨었다. 며칠 사이 몸과 함께 성장한 목청은 무시할 수 없는 정도였다. 누나들까지 합세해 밥을 먹으라고 권유하자 연승연이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승연 씨 힘든 거 아는데 “

“정말 입맛이 없어서 그런 건데요…….”

“크르르르…. 왕!!”

연승연이 군말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누나가 크게 썰어 주는 고기를 받아먹는데 사람들이 하는 대화들이 귀에 들어왔다.

“언니. 요즘 미국이랑 일본으로 지원 가는 헌터들이 있다는데 천랑에도 많죠?”

“그럼요. 비행기표 값은 천정부지로 솟았는데 웃돈을 주고서라도 가겠다니까. 그 호승심을 누가 말리겠어요.”

“하하하. 맞아요. 전 푯값 보고 바로 포기했어요. 그런데 아직 제물도 못 찾지 않았어요? 다들 가서 뭘 하는 건지 찾아봐도 아직 잘 나오진 않더라구요.”

“으음, 하긴, 아직 초반이니까. 다들 탑 오픈도 기다릴 겸 해서 미리 가 있는 거죠. 게다가 주변에서 테러랑 던전 브레이크도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갈 곳은 많다고 하더라고요.”

“테러라면 폰투스 교단이요?”

폰투스 교단이 어느새 일반인들에게도 소문이 난 건지 수철이가 아는 체하며 끼어들었다. 송아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연이에게 물었다.

“그쵸. 승연 씨도 폰투스가 테러에서 자주 쓴다는 마나 작용제 해독제 만들 수 있지 않아요? 주문 많이 들어올 텐데?”

“아…. 의진 님 레시피예요. 아직 혼자서 그 정도 양을 소화할 정도도 아니고요.”

쓴웃음을 지은 승연이가 깨작거리던 수저를 아예 내려놓았다. 갑자기 언급된 내 이름에 다들 말을 잃고 조용해지는데 때마침 문이 열리며 이초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다들 계셨네요. 어라? 송아 누님 왜 여기 계십니까?”

“지원 사업 갱신건 때문에 왔죠. 이초 씨는?”

“저야 뭐. 길드장님 명으로…….”

이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챱챱대며 고기를 먹는 내 모습을 본 이초가 허탈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보나 마나 잘 지내고 있네요. 아, 앞에서 백다인 씨랑 김진명 씨도 만났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애들 올 때인가 보다.”

다혜와 하정이가 온다는 말에 하얀 누나의 품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버둥거렸다. 애들이 오기 전에 위층으로 올라가야겠다.

“왕! 우왕! 왕!”

허공을 향해 크게 짖자 잠시 후 룬과 루트가 귀찮다는 듯이 로비로 걸어 들어왔다.

『왜 부르나. 작은 주인.』

『애들 온대. 옥상 가자.』

루트가 투덜대며 내게 등을 내줬다 그 위에 올라타는 모습에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수군댔다.

“서로 다른 종인데도 싸우진 않네요. 같은 갯과라 그런가.”

“땅에 발을 디디기 싫어하나 봅니다.”

“아주 상전이네요.”

물론이다. 밑으로 가면 작아져서 싫은 기분이라고.

루트의 위에 올라타 나는 안전히 옥상으로 피신했다. 내가 혼자 남은 것을 봤는지 성좌들도 우르르 몰려와 말을 걸어 댔다. 따듯한 햇살 아래 시끌벅적한 소리를 배경 삼아 성좌들과 대화를 나눴다.

[주벤엘게누비] : 뭔가 짚이는 거라도 없나?

[알레샤] : 일반적인 영혼을 붙잡을 정도의 강한 성좌의 힘…….

[사달멜리크] : 따로 염원한 적도 없고?

[카스토르] : 응. 딱히 없는데? 주호현 넌 뭐 생각나는 거 없어?

[폴룩스] : 짚이는 게 없어. 그때는 의식이 띄엄띄엄 있어서 기억이 희미해…….

[카스토르] : 주호현 몸이었어서 그런 것 아닐까?

[스피카] : 정말 단순히 그거이려나…….

하아…….

깊은 한숨을 뱉었다. 룬과 루트가 무슨 일 있냐는 듯 귀를 쫑긋하다 곧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영혼을 붙잡을 정도로 강한 염원이라니. 그딴 게 있을 리 없잖아.

당시에는 내 일이 급했기에 딱히 주호현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카스토르] : 주호현 몸이라 그런 것 아닐까? 사실 주호현 영혼도 이 몸에 있던 거지.

[레굴루스] :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영혼……. 얼토당토않은 말은 아니야.

[스피카] : 흐음, 단순히 그거이려나…. 찝찝한데.

[루크바트] : 뭐든 말이 되긴 해. 카스토르가 폴룩스의 몸으로 들어가 그의 물건을 쓰고, 지인들과 마주쳤을 거 아니야?

[사달멜리크] : 폴룩스의 이름도 쓰고. 이름에는 힘이 담겨 있지.

[루크바트] : 내 말이 그 말이야.

[아쿠벤스] : 그러고 보니 우리 인도의 전설 중에…….

다른 길로 샌 성좌들의 대화창을 저 멀리 밀어 버리고 푸른 창공을 올려다봤다.

주호현의 이름, 주호현의 친구, 주호현의 물건……. 모두 내가 빌리긴 했지. 하지만 내 이름을 되찾은 지 꽤나 오래됐고 센터도 나온 지 오래라 딱히 주호현과의 연결고리라고는 없는데……. 한서진? 성좌랑은 상관없고. 정말 주호현의 몸인가?

눈을 감은 채 성좌가 될 때 기억을 차근히 되새겨 봤다. 그때 입었던 옷, 다친 상처, 공기와 습도, 냄새. 인벤토리까지. 주호현과 연관은커녕 가져간 아이템도 별로 없고 태제헌을 구한답시고 포션도 다 털어서 인벤토리는 텅 빈 상태였다.

그럼 그렇지. 고개를 저어 고민하던 것을 멈추려는 순간 기억 속 저편에 묻혀 있던 작은 물건 하나가 반짝하고 빛나며 자기주장을 했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반지.

저건……! 눈이 커다래졌다.

있었, 있었다!! 내가 가진 주호현의 물건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주호현을 불렀다.

[카스토르] : 주호현 네 반지!!

[폴룩스] : 반지?

[카스토르] : 너 류수윤이랑 맞췄던 커플링! 나 죽을 때 그거 가지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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