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213.
“잡았다. 우리 의진이.”
뭐야, 다 있는데 그렇게 불러도 돼?
승연이나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는 사이 성산하가 나를 침대로 데리고 갔다. 구름이가 있을 줄 알았던 침대에는 이불만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구름이는 어디 갔지?’
아직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성산하가 나를 침대에 눕혔다. 그러곤 내 위로 뭔가를 뿌리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무명천과 빛나는 가루, 정체 모를 마른 잎들과 낡은 책의 낱장들에 두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었다.
“웅, 아우, 왕!!”
뭐 하냐며 발버둥 쳤지만 배 전체를 누르고 있는 손 탓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흩뿌려진 것들을 정리하던 성산하가 청이 쪽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다음이 뭐지?”
“마법진을 따른 마나 운용과 주입. ……이걸 이용해서”
웬 썩은 책을 넘겨 보며 답하던 청이가 성산하에게 폰투스 교단의 펜던트를 건넸다. 그걸 본 내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저걸 왜 꺼내는 거지? 설마 나한테 쓴다고……?
이쯤 되자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흔들리던 꼬리도 움츠러든 채 두 발로 성산하의 손을 붙잡았다. 겁먹은 눈빛을 눈치챘는지 성산하가 생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간질였다.
“가만히 있어.”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공격해서라도 일단 벗어나야겠다 싶어 발톱에 힘을 주는 순간 성산하가 재빨리 내게 펜던트를 가져다 댔다. 빛이 터짐과 동시에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찌릿한 기운이 심장을 관통하듯 느껴지더니 연이어 혈류를 타고 온몸에 흘렀다. 역한 느낌에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큭, 이건 너무 기분이…….’
배 속 깊이 잠들어 있던 힘이 꿈틀댔다. 내게 침입한 더러운 감각을 견디다 못한 힘이 결국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씨브아아악!!”
“의, 의진 님!”
“사장님!”
“어어어? 어어! 나…!”
“강의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나의 목소리에 놀라기도 전에 성산하가 와락 달려들어 나를 껴안았다. 이불째로 나를 감싸 안은 놈의 품에 안겨 눈만 데구루루 굴리고 있는데 성산하가 삐딱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나가지?”
가장 앞에 선 청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뒤로는 펑펑 울고 있는 승연이와 경직된 표정의 이초……. 그들을 보자 머리가 비워진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좆… 됐다.’
반가움과 곤란함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청이는 입술을 달싹이다 꾸벅 고개 숙이고 방을 나갔다. 훌쩍이는 승연이마저 이초가 데리고 나가자 나는 문이 닫힌 방 안에 성산하와 둘만 남아 버렸다.
미친 듯한 빠르기로 올라오는 대화창을 차마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성산하는…… 씨발, 씨발!!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날 살린 건가? 아니면 소환? 젠장, 그때 일 물어보면 뭐라고 하지? 그보다, 내가 강의진이라는 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냐고!!’
아무 말 없이 놈에게 안긴 채 머리를 굴리는데 성산하가 천천히 나를 안은 팔을 푸는 것이 느껴졌다. 다급히 팔을 들어 놈을 바짝 껴안았다.
“의진아?”
“조금,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아직 니 새끼 얼굴 볼 자신이 없다고!
찔리는 게 많아서도 있지만 그보다 갑자기 성산하를 마주하자 아무리 애써도 감정이 쉽게 추슬러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봤던 얼굴인데 왜 갑자기……. 씨발, 심장이 터질 것 같잖아.’
몬스터일 때와 전혀 달랐다. 묶여 있던 감정들이 풀려난 것처럼 지금은 제멋대로 요동쳤다. 제어되지 않는 감정들에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자신 있었는데, 이러면 위험하다. 다른 성좌들 말대로…… 나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질지도 몰라.
성산하를 꼭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맞닿은 가슴에서 엇갈린 속도로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넘어왔다. 겨우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려는 순간 등을 쓰다듬던 성산하의 손이 목을 타고 올라와 뒤통수를 간질였다.
“그래.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안고 있어도 돼.”
“……나인 거 어떻게 알았는데.”
“세상에 강의진은 하나뿐인데 어떻게 몰라.”
흡족한 대답에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갈 때 성산하의 말이 이어졌다.
“세상에 어떤 몬스터가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조작하고 연승연 끼니를 챙기고 태블릿으로 LA던전을 검색해. 사료 대신 포션만 마시고. 응?”
“……씨발.”
어찌어찌 넘어간 줄 알았는데 사실 다 들켰다는 듯이 말하는 성산하의 목소리를 듣자 민망함에 삐질 땀이 흘렀다. 어깨에 이마를 박은 채 입술만 삐죽거리는데 성산하가 귓불을 만지작대며 속삭였다.
“얼굴은 안 보여 줄 거야? 나 안 보고 싶었어? 아, 너는 많이 봤겠군. 그래서 질렸으려나.”
“…….”
“나는 많이 보고 싶었는데.”
질리다니 무슨 개소리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듣다못해 결국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자 애써 웃음 짓고 있는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눈꼬리에 반짝이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야, 너…….”
참고 있던 건지, 시선이 닿자마자 오롯이 나만을 향한 성산하의 두 눈 위로 격정적인 파도가 밀려왔다. 그것이 넘쳐흘러 결국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을 때 나는 아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성산하의 목뒤를 잡아 내려 입을 맞췄다.
거칠게 맞닿은 입술은 빗겨 나가는 듯했으나 잠시 멈칫한 성산하가 다른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완전히 맞물렸다. 틈 없이 얽히는 뜨거운 혀와 닿자 등줄기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흐르는 눈물에 내 볼까지 젖는 게 느껴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달은 숨을 삼키며 반쯤 뜨고 있던 눈을 완전히 감고 입맞춤에 열중했다.
***
“세상에!”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군.”
화면 속의 둘이 입을 맞추는 순간 모두 당황해 눈을 돌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호현이 벌떡 일어나 어떻게든 화면을 끄려고 애썼다.
“이, 이건 사생활 침해입니다!”
“큼, 큼… 동의하네만.”
“호현, 우리도 보려고 본 게 아니야. 물론 봐서 즐거웠냐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하겠지만…….”
“벨라!!”
“앗, 흠흠…….”
기함하는 호현의 모습에 루크바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카스토르가 들켜서 우리도 놀랐다고. 지금은 다른 의미로 놀랐지만.”
“화면을 끄는 방법을 모르니 어쩌겠나.”
“맞아. 폴룩스 네가 거기 서 있어. 설마 저기서 뭘 더 하진 않겠…….”
“아쿠벤스-!!”
벨라가 돌을 집어 던지자 아쿠벤스가 아프다며 엄살을 부렸다. 그때 한쪽에서 가만히 화면을 노려보던 사달멜리크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나 버렸다.
“……엥? 사달멜리크 쟨 또 왜 저래?”
누가 봐도 성질 난 뒷모습을 다들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호현은 의진과의 채팅창 들어가 애타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폴룩스] : 의진아 다 보여.
[폴룩스] : 의진아 제발 확인 좀…….
[폴룩스] : 의진아 너 옷도 안 입고 있잖아…….
[폴룩스] : 의진아…….
***
“씨발.”
주호현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난 후에야 나는 왜 성산하가 나를 보자마자 이불을 덮어씌웠는지, 왜 청이가 곤란한 표정으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나갔는지. 성산하와 키스할 때 왜…. 왜 그렇게 놈의 손길이 민감하게 느껴졌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썅. 변태 새끼야. 옷을 안 입었으면 말을 해 줬어야 할 거 아니야!!”
승연이가 가지런히 문 앞에 두고 간 옷을 껴입으며 짜증을 냈지만 언제 울었냐는 듯 평온한 성산하의 얼굴은 그저 재수 없기만 했다. 오히려 ‘벗은 것도 너고, 덮친 것도 너인데 어떤 말을 해 줬어야 하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여 더 열이 올랐다.
씨발! 위에서 내 알몸 다 본 거 아니야? 운동 못 해서 복근 희미해졌는데, 하필이면 이럴 때!
몬스터일 때는 옷을 입지 않기 때문에 알몸인 상태로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나저나, 현재 내 상태가 이상했다. 몸에서는 아주 옅게 푸르스름한 광채가 나는 상태였고 살결 역시 묘하게 인간의 것과 달랐다. 내가 봐도 이상한데 성산하라고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상태창도…….’
< 카스토르♊ >
황도 12궁 중 하나로 ZODIAC SYSTEM의 셋째 성좌
- 레벨 : 측정 불가
- 계열 : 복합계
- 등급 : EX
- 스킬 : 별의 정화 (EX), 별의 충돌(EX), 별의 자장가(EX)…….
- 특수 : 별의 소원(EX)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의아했는데 역시, 이미 죽은 내가 살아났을 리 없다.
아무래도 성산하가 성좌인 상태의 나를 불러낸 모양인데……. 대체 성산하는 무슨 생각이지?
하지만 동시에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몸이 생겼으니 류수윤의 납골당에 가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이건 굳이 숨길 필요 없으니 성산하의 도움을 받아도 될 테고. 여차하면 남산 던전으로 돌아가기도 쉬울 테다. 뭐야, 정말 좋잖아?
일단은 류수윤 일이 먼저라는 생각에 성산하를 부르려 고개를 들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바로 앞까지 와 있는 놈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다정한 웃음을 지은 성산하가 내게 손을 뻗었다.
“성산하. 나….”
철컥
「新라이라프스의 목줄을 착용했습니다.」
「근처에 주인님이 있습니다. 키워드 명령에 거부할 수 없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채워진 목줄에 멍청하게 눈을 깜빡였다. 다정히 웃고 있는 성산하의 얼굴이 눈앞에 가득 찼다.
“또 놓치면 바보인 거잖아. 그렇지?”
“너…….”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