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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18화 (218/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18.

“……대체 이게 무슨 수작이야.”

경악한 한서진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자 언제 차에서 내린 건지 류수윤이 서 있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라 내린 이초가 류수윤을 신기한 눈으로 올려다봤다.

경계 태세를 풀지 않는 청이와 쓰러진 박무일을 툭툭 건드는 제로를 지나 류수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류수윤이 가까워지자 한서진이 겁먹은 듯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오랜만에 보니까 정말 반갑다, 그동안 잘 지냈지?”

“웃기지 마. 너 뭐야.”

“이젠 내 이름도 잊은 거야? 수윤이 형이잖아.”

“……그 사람 이미 죽었어.”

한껏 경계한 서진이의 말에 류수윤이 작게 설핏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맞아. 죽었지. 잠시 돌아왔을 뿐이야. 의진 씨처럼.”

류수윤의 말에 한서진이 흠칫 떨었다. 흔들리는 시선이 아직도 믿고 싶지 않아 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류수윤이 한 발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 쉴드를 벗어나는 몸체에 황급히 손을 뻗었다.

“류수윤! 잠깐……!”

“강의진.”

그 모습에 걱정됐는지 곧바로 성산하가 내게 달려왔다.

쉴드 바깥으로 나간 류수윤이 고개를 숙여 한서진에게 뭐라 작게 속삭이며 손을 내밀었다. 옆에 선 성산하가 무기를 쥐고 앞으로 나가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잡아 말렸다.

“잠깐 기다려.”

“의진아. 지금 처리하는 편이 나아. 게다가 혹시라도 하말을 빼앗기면…….”

“그런 게 아냐. 지금 류수윤은…….”

한서진이 천천히 류수윤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한서진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기억을 읽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기억을 읽고 있는 거지? 류수윤이 대체 무슨 기억을 보여 주는 걸까.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성산하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을 느꼈는지 성산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기나긴 시간 후, 결국 류수윤의 손을 잡은 한서진이 무너져 내렸다. 한서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본 나는 참지 못하고 달려 나갔다.

“……왜, 무…슨 얘기했는데?”

나를 바라보는 한서진의 눈이 전과 달랐다. 겨우 몇 분 지났을 뿐인데, 절망과 슬픔으로 뒤덮인 눈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뭐야,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당황해 바라보는데 류수윤이 부드러운 손길로 날 감싸 안고 뒤로 인도했다.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왜, 뭘 받아들이는데. 한서진이 네 기억 읽은 거지, 뭘 보여 준 거야?”

이끌려 가면서도 답답함에 참지 못하고 묻자 류수윤이 작게 웃었다.

“…호현이랑은 정말 다르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의진 씨가 더 이상 가이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줬을 뿐이에요. 서진이는 똑똑하니까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고.”

류수윤의 말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기울이는데 뒤에서 한서진이 나를 불렀다.

“형!”

“……어. 서진아.”

“내일은, 아니 오늘까진 있는 거죠. 갑자기 또 사라지는 거 아니지.”

한서진의 물음에 눈을 굴리다 슬쩍 성산하 눈치를 보고는 답했다.

“응. 아마도?”

“갈게요.”

***

[아쿠벤스] : 할배 빨리 고쳐 보라고!

[스피카] : 정말 답답해, 두 눈을 잃은 느낌이야.

[주벤엘게누비] : 도통 방법이 없다니까 그러네……. 본래도 시스템의 구멍을 엮어 틈을 벌린 건데 시스템이 완벽해졌을 뿐이야. 정상으로 돌아온 건데 고치고 말고 할 게 뭐 있냐는 말일세!

[사달멜리크] : 그렇다면 다시 부셔 봐.

[주벤엘게누비]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알게디] : 수리할 방법이 없다면…. 이젠 정말 카스토르에게 의지하는 방법뿐이네요.

[루크바트] : 하필이면…. 카스토르는 하루에 답장을 세 번이나 할까 말까 하지 않나.

[레굴루스] : 아래서 바쁘니 그럴 수 있지.

[아쿠벤스] : 카스토르!! 진짜 너무해-. 이제 드디어 하말을 만났는데 답장 좀 해 줄 수 있잖아.

[아쿠벤스] : 이봐- 카스토르! 알려 줘! 알려 줘!

[카스토르] : 하말은 멀쩡해. 탑에 가는 게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아.

[폴룩스] : 수윤이는 안전한 것 맞지?

[폴룩스] : 혹시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대?

[폴룩스] : 계속 물어봐서 미안. 불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기억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지?

[카스토르] : 류수윤 멀쩡함.

[카스토르] : 이상한 것 같으면 독약 먹여서라도 리셋시켜서 데려갈 테니까 걱정 말고 잠이나 자.

[카스토르] : 그럼 나 바빠서 이만.

[폴룩스] : 아 때리진 말…….

[폴룩스] : …의진아?

[폴룩스] : 의진아.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닌데 귀가 다 아팠다.

아주 양쪽에서 시끄러워 죽겠네.

귀를 털며 대충 답해 주곤 채팅창을 닫아 버린 나는 류수윤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뭐가요?”

“모르는 척 발뺌 말고! 네가 한 거 맞잖아. 에스퍼들 한 번에 쓰러트린 거!”

장장 수십에 달하는 에스퍼들이었다. 그런데 아무 무기도, 매복도 없이 놈들을 순식간에 모조리 재워 버리다니? 아까 주위를 살폈지만 딱히 독약이나 수면 향 등 포션 계열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흥분한 내 물음에 작게 웃은 류수윤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잠깐 재운 거예요. 하말의 능력으로…….”

하말의 능력? 고개를 기울이는데 성산하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넌 다른 성좌들과는 다르군. 의진이도 그렇지만 레굴루스도 그런 능력은 보인 적이 없어.”

“다른 분들은 성좌의 힘을 사용할 수 없었나요? 그렇더라도 의진 씨는 이젠 성좌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텐데요.”

“물론 스킬이 생기긴 했지만……. 내 던전에서만 쓸 수 있었고 지금은 전혀 쓸 수 없어.”

“그래요?”

빈손을 쥐었다 펴며 답하자 류수윤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왜, 너는 언제부터 쓸 수 있었는데? 무슨 능력인데?”

“꿈과 잠에 관련된 스킬이에요. 약간의 예지와 함께. 처음 제가 하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쓸 수 있었죠.”

류수윤의 입에서 뱉어진 말에 차 안의 모두가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신기하네요. 예지라니…… 꼭 고서에서 나오는 전설 같습니다.”

“예지라니. 그래서 놀라지 않은 거였군. 설마 우리가 찾으러 올 줄도 알고 있던 건가.”

“의진 씨가 찾으러 올 줄은 알았죠.”

“그럼 죽기 전부터 나를 미리 알고 있던 거야?”

“그렇게 닮았는데 당연히 조사해 봤죠. 호현이의 가족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그 얘기를 듣자 여유롭고 느긋한 류수윤의 태도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다만 내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왜 주호현에겐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건지 의문이 생겼지만 이제 와 뭐가 중요할까 싶어 머리에서 지워 버렸다.

‘예지라니, 존나 멋있잖아!’

혹시 몰라 나도 스킬창을 뒤져 봤지만 그다지 특별한 스킬은 보이지 않았다.

“쳇, 나는 별 건 없네. 왜 너만 다른 거야?”

“그러게요. 아마도 제가 조디악 중 첫 번째라서 그런 것 아닐까요.”

겸손히 웃는 모습에 입술을 삐죽거렸다.

알파성이 아닌 주호현이 성좌와 함께 있는 것을 류수윤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공방으로 향했다.

***

리무진이 공방 뒷문에 멈췄다. 류수윤에게도 내 공방을 자랑할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는데 공방으로 들어가기 전, 사건이 생겼다.

“꺄아아아악! 귀, 귀귀, 귀신이다!!”

“누, 누나! 이리 오세요!”

나를 보고 소리 지르는 백다인이 품에 안은 종이 봉투를 떨어트렸다. 데구루루 굴러떨어지는 과일들 사이로 후다닥 달려간 김진명이 백다인을 제 뒤로 숨겼다. 겁먹어 글썽이는 두 눈망울을 보자 머리가 죄일 듯 아파 왔다.

‘썅. 좆 됐다…….’

어떡하냐고 성산하를 노려보는데 놈도 곤란한 낯이었다. 기겁한 이초가 분명 주변 정리를 해 뒀는데…, 하며 태블릿을 들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설상가상으로 백다혜까지 함께였는지,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백다혜 역시 나를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짓고 손가락질했다.

“언니 저거 몬스터야!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얼굴 흉내 내는 도플갱어라고!”

“모, 몬스터가 왜 여기에?”

“몬스터는 각성자한테 맡기고 오빠는 언니랑 뒤로 피해! 다른 사람들 올 때까지 내가 막을게! 이야앗!”

“다혜야 안 돼! 위험해!!”

주먹에 푸른 마나를 두른 다혜가 와다다 달려와 내게 팔을 휘둘렀다. 물론 내게 닿기도 전에 성산하의 쉴드에 막혀 접근도 하지 못했지만. 조금 컸다고 그새 헌터 몫을 하려는 꼴에 헛웃음이 나왔다.

“큭, 강하다!”

“……야 꼬맹이. 누가 알지도 못하는 몬스터한테 그렇게 함부로 덤비냐. 어?”

“우리 아저씨 따라 하지 마! 이 몬스터 새끼야!”

“새애끼? 이게 어디서 그런 나쁜 말만 배워서.”

“아저씨가 할 소리는 아니잖아요!!”

“너, 너…!”

백다혜의 말에 얼굴에 화르륵 열이 올라 말을 돌렸다.

“꼬맹이. 도플갱어 유형이 뭐야.”

“고, 고스트형.”

“맞아. 그런데 누가 고스트형한테 주먹 쥐고 덤벼. 어? 쥐콩만 한 게.”

“아 하지 말라고요!”

“이제 보니 그새 키 좀 컸네?”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우리 아저씨 따라 하지, 킁, 헝, 말라고오. 이거 뭐야. 몬스, 몬스터가 왜…….”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다혜가 결국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나를 보고 혼비백산하다 그제야 성산하를 발견한 백다인이 슬그머니 다가와 백다혜를 안아 들었다.

“길드장님.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죠? 옆은 대체 뭐….”

“일단, 들어가서 얘기할까.”

성산하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공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어깨가 축 처진 이초가 죄인처럼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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