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220.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뜬 성산하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거라면……,”
“거짓말 아니야.”
“……강의진.”
“알잖아. 녹스에서 탈출하려면 다른 수가 없었어.”
말을 잃은 성산하가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야 밝히는 해묵은 진실은 내 마음까지 불편하게 해 차마 똑바로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제로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일 년 전 녹스에서 일어났던 연쇄 던전 브레이크가 의진 님 작품이었습니까?”
“당연하지! 태제헌 뒤통수치고 죽는 게 내 평생 소원이었다고.”
“후후후. 의진 님이었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되네요. 내부의 소행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규모의 피해였잖습니까. 관련자들이 모두 사망해 어떻게 된 일인지 여태껏 베일에 가려져 있었는데 이렇게 알게되다니…….”
흥분해 떠드는 제로의 옆구리를 쳐 눈치를 준 청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쌍둥이의 몸으로 들어갈 줄 이미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아니.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나도 몰라.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눈 떠 보니 주호현 몸이었어. 심지어 놈도 음독해서 거의 죽은 상태였는데 내가 들어와서 살아났다고 들었고.”
“그렇다면 세간에 알려진 장례식 이후부터는 계속….”
“응. 주호현 몸이었어. 남산 탑에서 역시도.”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성산하가 중얼거렸다.
“카스토르와 폴룩스…… 성좌의 힘이야.”
“뭐라고?”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쌍둥이지만, 신화에 따르면 오직 폴룩스만이 불사의 힘을 지녔다고 전해지지. 너와 주호현 둘 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는데도 주호현만 살아난 것이 이거랑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머뭇댔다. 방금 성산하가 말한 신화는 나도 예전에 성좌에 관해 찾아봤을 때 언뜻 본 적 있던 거다. 하지만 성산하의 말대로 주호현이, 폴룩스가 불사라면……. 그걸 살았다고 할 수 있나?
주호현은 그날 확실히 죽었다. 이제는 성좌가 되었고, 오히려 그 몸을 빌어 살아난 건 나인데.
“그럼 내가 주호현 몸에 들어간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답해 줄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군.”
답을 바라고 물은 게 아닌데도 성산하는 어느 한 곳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성산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살짝 열린 문가에 기대선 류수윤이 보였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류수윤…?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지.”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살포시 웃은 류수윤이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제가 하말임을 각성한 것은 삼 년 전으로……. 그날부터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미래에 관한 꿈을 꾸었어요. 제가 죽는 꿈도, 의진 씨가 죽는 꿈도 있었죠. 미래는 한 가지가 아니었어요. 어떤 날은 손 쓸 도리 없이 순식간에 무너지던 사람들은 어느 날에는 나름대로 버텨 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에는 승기를 잡기도 했죠. 조디악이 사라지고 ■■■■■이 탄생해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나마 조디악 시스템 재건에 성공하기도 했어요.”
“…….”
“매일 밤마다 수천만 명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할 수 있는 없었어요. 당연하죠. 아직까지 ■■■■■도, 성좌들에 관해서도 밝혀진 게 없는데 수억 명이 죽을 거라는 제 말을 믿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요.”
고저 없이 이어지는 목소리는 언뜻 다정하게 느껴졌으나 정작 말하는 내용은 죽음과 절망에 관한 것이라 그 간극에 외려 소름이 돋았다.
“사람들의 죽음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매일 밤 보다 보니 결국 무뎌졌어요.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견딜 수 없이 저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꿈꾸는 미래 그 어디에도 호현이가 제 곁에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하는데.”
“야! 무슨 개소리야?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주호현을 끌어들여?”
듣자 듣자 하니까 이 새끼가?
발끈해 소리치는데 성산하가 내 팔을 잡아 말렸다.
“놔 봐! 저 새끼. 처음부터 이상했다니까? 당장 주호현한테 다 말하겠어!!”
“그래서, 주호현을 성좌로 만든 게 네 짓이란 말인가?”
당장 채팅창을 열려던 나는 성산하의 말에 멈칫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류수윤을 돌아봤다. 류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힘을 반으로 갈라 호현이에게 넘겨준 후, 죽기 전 시스템을 속여 하말의 유지를 호현이의 꿈속에 숨겼어요. 그 덕에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죽게 되었지만…. 계획대로 호현이의 영혼은 그대로 반지에 잡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고 시스템은 제 유지를 구하기 위해 비어 버린 호현이의 몸에 의진 씨를 보낼 수밖에 없었으니까 잘 해결된 일이죠.”
“자, 잠깐. 그럼 힘을 반으로 갈랐다는 게 설마 그 커플링이냐?”
그 대충 생긴 반지의 정체가 그런 무시무시한 거였다니!! 놀라 묻는데 류수윤이 외려 역으로 물어 왔다.
“원래라면 의진 씨도 그날 유지를 남기고 죽었을 거예요. 이렇게 된 게 의진 씨에게도 더 낫지 않나요?”
“뭐, 그렇긴 한데…….”
머리를 긁적이는데 류수윤이 옅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제게는 호현이가 가장 우선이긴 하지만, 호현이를 빼고서도 지금은 제가 꿈꿨던 그 어떤 미래보다도 사람들의 피해가 적고 안전해요. 무사한 성좌들의 수야 말할 것도 없고요. 의진 씨의 덕인 것 같아 감사하고 있어요.”
“흠, 흠흠.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성좌가 되어서도 잘 부탁해요. 힘들겠지만…….”
“뭐, 어려울 거야 있겠어. 이미 몇 번 죽어 본 몸이라….”
찰싹-.
매서운 손길이 나와 맞잡고 있던 류수윤의 손을 쳐 냈다. 류수윤과의 대화에 빠져 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 나는 비뚜름한 얼굴로 웃고 있는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알겠고…….”
“성산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겠다. 이젠.”
***
“야! 성산하!!”
씨발. 갇혔다.
그것도 공방이 아니라 처음 보는 장소에 끌려와 갇혔다. 특별한 처리를 해 둔 건지 소화기로 때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유리문을 두드리다 진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숨을 고르다 털레털레 복도를 걸어 류수윤이 있는 방으로 갔다.
“메에에-.”
“응. 그랬어? 좋았겠다.”
문가에 서서 구름이랑 노닥거리는 놈을 불만스레 노려보자 류수윤이 나를 발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안 열려. 빠져나갈 길도 없어.”
“큰일이네요…. 그렇잖아도 내 힘도 써지지 않던 참이거든요.”
“그걸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 일이냐고!!”
당연히 류수윤도 같이 감금됐다. 류수윤이 제단에 오르면 나까지 1+1으로 딸려 올라가니 당연한 조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연락할 방법도 없어 답답한 마음에 발끝으로 바닥을 치는데 류수윤이 이리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 찾아봐요. 날이 밝으면 누군가 드나드는 사람은 있을 테니…….”
“썅. 성산하는 어딜 가서 안 오는 거야.”
투덜대며 류수윤의 맞은편에 주저앉았다.
“호현이는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빨리도 물어본다. 주호현 지금 너 때문에 지금 땅굴 파고 잠적한 상태거든.”
“아아…, 귀여워. 빨리 죽어서 보고 싶다…….”
“미친 새끼….”
구겨지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서둘러 구름이를 빼앗듯 안아 들었다.
“너 썅, 이러려고 못 보게 가린 거지.”
“호현이에게 쓸데없는 말은 말아요.”
“지랄. 다 말할 거야. 내가…….”
말한다고 그 새끼가 믿을지나 모르겠는데. 괜스레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아아. 머리 아파. 대체 계획이 어그러지면 어쩌려고 그딴 짓을 벌였냐?”
“실패가 무섭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요.”
“그 반지,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버릴 뻔했다고. 지금 생각해도 존나 아찔하네. 원래는 쳐다도 보지 않는 건데……. 차라리 엄청나게 화려하게 만들지 그랬어? S급 아이템이었으면 내가 차기라도 했을 텐데.”
“고려해 봤는데 이상하게 꿈속에서 의진 씨가 반지를 끼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뺏기더라고요.”
“……뭐?”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평범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어요. 너무 소박해서 호현이에게 미안했다구요.”
류수윤이 만난 후 처음으로 내비친 서운한 기색에 할 말을 잃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 미안하게 됐다.”
***
대자로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몸 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뜨끈한 온기가 기분 좋아 파고들자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으응…….”
“더 자.”
가슴팍을 쓰다듬는 손길에 천천히 수마에 잠기다 귓가에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더 자라니까.”
“이 새끼…….”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몸을 뒤집어 놈을 덮쳤다. 얼굴 옆에 짚은 손을 흘깃 바라본 성산하가 피식 웃었다.
“의진아. 갑자기 이러면 형 너무 떨리는데.”
“씨발. 헛소리할래? 말도 없이 사람 가둬 놓고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성산하가 말없이 손을 들어 허리를 감쌌다. 그대로 몸을 옭아매듯 등을 감싸 안는 두 팔에 풀썩 놈의 품에 안겼다. 다리를 버둥대자 놈은 오히려 더 힘주어 안아왔다.
“장난하는 거 아니라고! ”
“류수윤의 납골당에 가기로 한 약속 들어줬잖아.”
“그게 끝이 아니잖아! 하말을 찾았으니 당연히 올려 보내야지, 아니면 어쩔 건데? 연승연 말대로 훼방 놓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다른 방법 찾으면 돼.”
“류수윤 말 들었잖아. 난 이미 죽어서…! 성좌가 되거나 아예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
성산하가 답 없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맞닿은 놈의 체온이 너무 따듯해 괜히 내 마음도 울렁거렸다. 어깨가 젖는 게 느껴져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한참 후에 성산하가 푹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보내.”
“야, 성산하.”
“……사랑해, 강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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