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파업 선언-225화 (228/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25.

고개를 끄덕인 성산하는 그대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져 귀가 빨개졌다. 결국 버둥거리며 성산하의 가슴팍을 쳤다.

“놔. 내 두 발로 갈 수 있어.”

“위험하잖아. 아니면 전처럼 목줄로 컨트롤해 줄 수도 있는데.”

“윽, 그건…….”

라이라프스의 목줄에 이끌려 개같이 끌려가는 건 기분이 별로기도 했지만 그보다 몸이 존나 힘들었다.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기억에 망설이자 머리 위로 웃음이 떨어졌다. 성산하는 놀리는 대신 나를 더 단단히 추슬렀다.

『■■■■■■! ■■■■!!』

제게 붙어 수족을 묶은 헌터들이 성가셨는지 몸부림치던 ■■■■■가 위를 보며 포효했다. 그러자 놈이 처음 나타날 때와 같이 우주의 그늘 속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구체들이 생겨나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왔다. 그것들은 땅에 닿자마자 이리저리 움직이며 팽창하더니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로 변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검은 물체들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미친……. 대체 저게 다 어디서 나오는 거야?”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겠어. 더 불러내기 전에 해결해야겠는걸.”

“뭘 망설여? 빨리 가자!”

이리저리 날아오는 구체와 난무하는 스킬들을 피해 달리던 성산하가 방향을 틀더니 에스퍼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성산하와 나를 본 박무일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혀, 형님?”

빨리 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지만, 왜 이렇게 쪽팔린지 모르겠다. 수군대는 에스퍼들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소리쳤다.

“무일아! 에스퍼들 데리고 저기 류수윤 좀 데려와!”

“류수윤 가이드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뒤쪽이 훨씬 안전할 텐데요.”

“아직 저 새끼한테 유효타 넣은 거 없지.”

“예? 예……. 자꾸 재생되는데다 묘하게 힘을 튕겨 내는 느낌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박무일에게 내 검을 보여 주며 말했다.

“성좌의 무기로 죽여야 해. 류수윤도 가지고 있으니까 저 새끼 머리까지 책임지고 데려다 놔라.”

“예? 그럼 형님이, 아니 류수윤 가이드는…….”

“잔말 말고 빨리 가!”

성산하에게 안긴 채만 아니라면 한 대 걷어차 줬을 텐데. 칼을 든 손을 휘두르며 소리치자,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표정의 박무일이 에스퍼 몇을 데리고 류수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순간 시야가 붕 떴다. 성산하가 더 기다리지 않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급히 놈의 목에 팔을 감았다. 몇 번의 도약으로 순식간에 ■■■■■의 발치까지 다다른 성산하는 그대로 위로 올라가려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림자에 급히 한 발 후퇴했다. 간발의 차이로 촉수 다발이 쉴드를 스치고 지나갔다. 직접적으로 닿지 않았는데도 충격파에 몸이 그대로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쉽지 않겠는데.”

중얼거리는 성산하를 본 나는 백옥 같은 볼에 난 붉은 실선을 보고 놀라 손을 뻗었다.

“성산하! 너 상처…!”

아무 생각 없이 포션을 꺼내려던 나는 허공에 헛손질을 하고 난 뒤에야 성좌들에겐 인벤토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사이 의아하게 볼을 만지던 성산하의 손에서 밝은 빛이 나며 상처가 눈 깜짝할 새 아물었다.

‘맞다. 성산하 힐러지. 참.’

언제 다쳤냐는 듯 깨끗해진 볼을 바라보는데 위에서 누군가 떨어졌다.

“뭐야. 강의진은 왜 데려왔어? 어쩌자는 건데.”

벅찬 숨을 고르는 임단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 와중에도 아래서 자라나는 작은 몬스터들을 퍽퍽 밟아 죽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는지 청이와 제로까지 뒤이어 달려왔다. 역시 헌터들이라 그런지 내 무기를 보자마자 눈을 빛냈다.

“사장님 그건…….”

“호오, 처음 보는 무기네요. 예사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 특별하고도 독특한 무기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요?”

“멋있지? 내 거야.”

단검을 돌리며 하늘 높이 솟은 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저 새끼 면상에 박아 넣을 거야.”

내 말에 눈을 가느다랗게 뜬 임단이 거리를 가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어. 저기까지 길을 뚫어 주면 된다는 거지? 내가 청이랑 갈게.”

“뒤는 제가 맡죠.”

임단과 청이가 먼저 앞장섰다. 임단이 순식간에 만들어 낸 빙벽에 찬 바람이 밀려왔다.

“꽉 잡아. 의진아.”

성산하의 말에 서둘러 놈의 목에 팔을 감았다. 한 손으로 나를 안은 성산하는 로드를 크게 휘두르며 땅을 박찼다.

임단의 매서운 공격과 청이의 단단한 방어로 전보다 ■■■■■의 얼굴에 빠르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막상 마주한 놈의 얼굴은 아래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거대하게 느껴졌다. 움푹 파인 틈 사이로 신비로운 빛깔의 유기체가 보였다. 작은 우주를 담아 놓은 듯, 찬란한 색으로 빛나는 수억 개의 별들이 어두운 코어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보자마자 이게 놈의 에너지원이자 약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들의 은하가 뒤엉키며 이쪽을 향했다. 놈이 나를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압도적인 위압감에 잠시 넋을 놓던 순간, 눈앞을 스치는 놈의 공격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성산하, 저기가 놈의 코어야! 조금만 더 가까이 가 봐!!”

“정면으로 접근하기엔 너무 위험해. 게다가 네 무기는 사정거리가 너무 짧아서 너까지 위험해져.”

“던져서라도 공격해야지! 어차피 내 힘으로 만들어 낸 거라 회수 가능해.”

내 말에 입술을 깨문 성산하가 주위를 살피다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뿔 위라면 가능하겠어?”

“해 볼게.”

날아드는 공격을 피한 성산하가 놈의 견갑 위에 난 뿔을 향해 달렸다. 헌터들의 엄호로 겨우 다다라 단검을 날렸지만 거리가 멀어 그런지 공격은 너무 쉽게 막혔다.

파스스 사라지는 단검을 아쉽게 바라보는데 성산하가 서둘러 뒤로 몸을 물렸다.

“더 가까이 가야겠는데.”

“더 이상 가면 위험해. 이미 너를 인지한 상태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를 인지한 상태라면…….”

마침 아래에 류수윤을 데리고 온 에스퍼들이 도착했다. 놈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성산하. 그럼 이건 어때?”

***

『■■■■■■!』

난생처음 보는 스킬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낙뢰처럼 내려친 힘에 임단이 쓰러졌고 횡으로 그어진 궤적에 청이가 나가떨어졌다. 제로는 이미 눈에 안 보일 만큼 멀리로 날아간 지 오래고 그 외에 수많은 헌터들이 전투력을 상실했다.

“젠장!! 저 새끼는 대체 스킬이 몇 개야?”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듯 닿지 않는 놈의 코어에 약이 바짝 올랐다. 나는 날 수가 없어 발이 묶였고 성산하는 나를 안고 움직이려니 몸이 둔해져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개같은 비행 스킬!!’

답답함에 몸부림치자 성산하가 달래듯 얼굴을 가까이했다.

“침착해. 얼마 안 남았어.”

쓰러진 이들을 돌아볼 수도 없었다. 그들이 뚫어 준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 앞으로 가야만 했다.

겨우 얼굴에 다다라 ■■■■■의 몸체에 발을 디뎠다. 아까부터 줄기차게 나만 따라오던 놈의 눈이 좁아 들더니 입을 벌렸다. 사람 몸통보다도 긴 혀가 날아와 쉴드를 내려쳤다. 성산하가 급히 나를 쉴드 바깥으로 밀어 냈다.

“크윽….”

“성산하!!”

아래로 떨어지는 성산하를 향해 손을 뻗다 이어지는 공격에 나도 미끄러졌다. 그때 제로의 그리폰이 날아와 미끄러지는 내 어깨를 잡아챘다.

아래로 떨어진 성산하 주위로 헌터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다시 소환한 쌍검을 손에 쥐고 어깨를 툭툭 치자 그리폰이 나를 ■■■■■의 견갑 위로 내려 줬다.

“고마워”

“삐이.”

슬쩍 위를 바라봤다. 조용히 놈의 등을 타고 오르는 류수윤과 에스퍼들이 보였다. 류수윤이 다다르기 전까지 놈의 이목을 잡아 둬야 한다. 어차피, 지금 여기선 도망칠 곳도 없지만.

‘젠장, 젠장, 젠장!!’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촉수를 피해 달리며 놈의 얼굴을 타고 올랐다. 마침 류수윤도 박무일의 손을 잡고 내려오고 있었다. 류수윤에게 손을 뻗는데 그 뒤로 ■■■■■가 휘두르는 발톱이 보였다.

“야! 류수윤!!”

급히 등을 돌려 단검을 교차해 막았다. 내 미간과 일 센티도 떨어지지 않은 발톱을 바라보자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애초에 막는 것이 불가능한 힘이었다. 성좌의 힘이 담긴 단검이라 이 정도라도 막을 수 있었던 게 분명하다. 단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류수윤 빨리!!”

“네……!”

류수윤이 머리 위로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그리고 ■■■■■의 얼굴에 난 홈을 향해 그대로 내리꽂았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얀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

“아윽!”

견디기 힘든 소음에 귀를 막았다. 엄청난 빛과 함께 ■■■■■의 몸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에스퍼들이 류수윤을 데리고 뛰어내리는 것을 보며 나도 그리폰의 발을 잡고 추락하는 몸에서 벗어났다.

드디어 놈이 쓰러졌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던 어둠과 은하, 별과 성운이 서서히 걷히며 마지막 층의 지형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와아아아아!! 놈이 쓰러졌다!!”

“보스를 죽였다! 우리가 해치웠어!!”

정말…… 끝난 건가?

멍하니 사람들의 환호성을 듣는데 류수윤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곤 따듯한 손길로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기다릴게요. 인사하고 와요.”

“뭘? 아…….”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뒤를 돌자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22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