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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27화 (22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27.

그림처럼 무너지는 제단 위로 금색의 찬란한 빛과 함께 류수윤의 모습이 흐릿해져 갔다. 이미 방송을 통해 공개된 적 있는 광경이었지만 다시 봐도 경이로워 모두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푸른 빛이 나비쳐 소용돌이치듯 금빛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처음 있는 일이었으나 제주 탑이 마지막이라 조금 더 특별한가 여길 뿐,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성산하만이 그 자리에 홀로 남아 푸르른 광휘의 뒤를 집요하게 쫓았다.

뒤이어 플릭이 일어났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밖으로 튕겨 나갔다. 머리 위를 가리고 있던 동굴이 사라지며 한순간 밝아진 하늘에 모두가 얼떨떨하게 위를 올려다보던 때,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탑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승리를 축하하며 달려왔다.

“와아아아아!! 드디어 승리했다!”

“마지막 탑이 사라졌다!”

“승리라…….”

쓰게 웃은 성산하는 복잡해지기 전 자리를 벗어나려 발을 옮겼다. 채 한 발을 떼기 전, 무언가 발끝에 차여 시선을 내렸다. 주인 잃은 라이라프스의 목줄이 땅을 구르고 있었다. 상체를 숙여 목줄을 줍는데 환성이 갑자기 비명으로 바뀌었다. 퍼뜩 고개를 든 성산하의 눈에도 확연한 이상이 포착됐다.

탑이 사라지며 빛이 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으나 지금은 하늘을 향해 이어진 빛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로드를 꺼낸 성산하가 급히 높은 지대로 뛰어올랐다.

모든 던전 게이트에서 빛이 방출되고 있었다. 그 빛은 주위의 다른 던전으로 전염되며 빠른 속도로 세를 넓혔다. 결국 산과 바다를 넘어 다른 나라의 던전과도 이어진 빛이 거미줄처럼 지구 전체를 뒤덮었다.

태양보다 환한 빛에 모두 눈을 찡그린 순간, 한 번에 팽창한 빛이 하늘로 퍼지며 푸른 하늘에 있던 밝은 별과 환한 성좌가 반짝 빛났다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계속 떠 있던 하늘 위 두 개의 행성도 함께 사라졌지만 충격적인 광경에 그를 인지한 것은 한참 뒤였다.

***

{ ZODIAC SYSTEM 재건 }

♈♉♊♋♌♍♎♏♐♑♒♓

류수윤의 말대로다. 결국 우리는 모든 조디악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남은 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아까부터 석판이 모인 장소에서 빛이 나며 심상찮은 기류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저기서 뭔 일이 벌어질 게 뻔하지만……. 몰라- 내 알 바냐. 류수윤과 주벤할배가 보러 갔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퀘스트 알림창을 휙 날려 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앞에선 성좌들이 퀘스트 성공 이후 반짝거리게 변한 몸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중이었다.

“이것 참, 신기한걸. 정말 성좌가 된 느낌이야.”

“……이렇게 눈에 띄어서야. 헌터 일은 영영 물 건너갔군”

“세상에나. 아직까지 헌터에 미련을 갖고 있었다는 게 신기한데.”

“으웩. 난 이거 싫다구! 설마 계속 이대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니겠지?”

“왜? 예쁘기만 한걸. 이것 좀 보렴. 아름답지 않니?”

성좌들이 노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곁에 누군가 앉았다. 보지 않아도 알았다. 주호현이다.

“류수윤이랑 놀지 왜 왔냐.”

“……의진아. 괜찮아?”

“당연하지. 퀘스트도 성공했고 ■■■■■도 죽어서 다 계획대로 됐는데, 안 괜찮을 게 뭐야.”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구겨진 주호현의 미간은 쉬이 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나도 시선을 땅으로 내렸다.

“…….”

물론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단 성산하의 말.

‘바보 같은 놈….’

기다리지 말라고 했어야 했는데. 얼떨결에 휩쓸려 헛된 희망만 준 게 아닌가 후회가 됐다. 모든 게 해결되면 그저 후련할 줄 알았는데 성산하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이 남아 그 크기를 불려 갔다.

성산하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주호현이 내 손을 잡았다.

“미안해.”

“……?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네가 왜.”

“그냥, 다…. 앞으로라도 의진이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다 책임질게.”

“뭔…. 헛소리할 거면 그냥 가라. 머리 아프다.”

뒤로 벌러덩 드러누우며 말했지만 주호현 이 고집 센 새끼는 입을 꾹 다문 채 엉덩이를 더 붙여 앉기나 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한숨 자고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였다. 나를 깨우는 손길에 눈을 뜨자 생긋 웃는 벨라 누나의 얼굴이 보였다.

“…누나?”

“의진. 일어나. 때가 됐어.”

“때가 됐다니, 무슨……. 아!”

“그래. 다들 벌써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고. 우리만 가면 돼.”

벨라 누나와 함께 중앙으로 가자 이미 모두 모여 있었다.

“카스토르 왔는가!”

“늦었잖아- 빨리 네 자리에 가서 서!”

아쿠벤스의 재촉에 서둘러 주호현 옆으로 다가가 섰다. 팔로 옆구리를 툭 치며 물었다.

“뭐냐. 그새 해결된 거야?”

“응. 수윤이에게 퀘스트창이 떴대.”

“류수윤한테?”

확실히 류수윤이 조디악의 리더긴 한가 보다. 첫 번째라 그런가.

흘깃 이쪽을 바라본 류수윤이 각자의 위치에 선 성좌들을 크게 훑더니 저도 석판 위로 발을 들였다.

“그럼 모두 왔으니, 시작하겠습니다.”

류수윤이 한 손을 올리자 우리가 밟고 있던 석판이 서서히 빛났다. 홈을 따라 흘러간 빛이 중앙에서 만났을 때, 허공에 무언가 일렁이기 시작이더니 오색 빛 반투명한 장막이 머리 위로 펼쳐졌다.

이제 가는 건가…. 위는 대체 어떨까? 분명 지루하고 재미없겠지.

빛의 장막은 서서히 그 크기를 늘리며 우리 주위를 에워쌌다. 그 사이로 처음 보는 장소들이 잇따라 잠깐씩 나타났다. 성좌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였다.

아름답고 신기한 공간임에도 전혀 설렘 없이 시큰둥하게 바라보는데 갑자기 류수윤이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흠칫 떨었다.

“허억…!”

“수, 수윤아!!”

“주호현. 움직이지 마.”

저도 모르게 달려 나가려던 주호현의 팔을 잡아 세웠다. 그 자리에 멈춘 류수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놈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의진 씨. 내려갈 방법이 있다면 어떡할래요?”

“뭐?”

다들 놀라 류수윤을 바라봤다.

“하말 너 제정신이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조디악은!!”

당황한 성좌들 사이 알레샤가 조용히 물었다.

“혹시 ‘별의 소원’을 말하는 건가?”

“알고 있네요?”

“성좌가 모두 모였으니까. ”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류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천구와 연결되며 일부 지식이 흡수됐어요. 알레샤의 말대로, 별의 소원을 사용한다면 호현…. 폴룩스가 카스토르의 역할을 대신하고 카스토르는 의무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류수윤의 말을 얼떨떨하게 들었다. 감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이 모든 걸 벗어던지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작은 희망이 피어나기도 전에 류수윤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추천한다곤 하지 못하겠어요. 위험한… 방법이거든요. 멀쩡한 상태로 내려갈 수도 없어요.”

“그럼 어떤 상태로 떨어지는 건데.”

“성좌들과 같아요. 의진 씨의 유지나 파편이 지구 어딘가에 생겨날 테고 그걸 누군가 발견해 줄 때까지 의진 씨는 의식으로만 존재한 채 어둠 속에서 기다려야 해요.”

류수윤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놀란 건 나뿐이 아니었다. 성좌들이 기겁해 소리쳤다.

“수, 수윤아. 왜 그런 소리를…….”

“미친 소리군! 그걸 방법이라고 하는 말인가? 그건 자살행위야!”

“카스토르, 설마 갈 생각은 아니지? 절대 안 돼!! 대체 누가 발견한단 말이야!”

“마, 맞아요…. 우리의 유지가 발견될 수 있었던 것도 특수 상황이라 조디악 시스템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지…. 카스토르는 그런 도움 받는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카스토르. 쓸데없는 희망 품지 마. 시일이 얼마나 걸릴 지 어떻게 알아. 수백, 수천 년이 걸릴 수도 있어. 그때가 되면 네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을 거야.”

“의진……. 혹시 아주 운이 좋아 몇 년 만에 발견된다 해도…. 미쳐 버릴 거야. 혼자 어둠 속에서 버틴다니.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모두의 말이 옳았다. 말도 안 되는 악조건에 희박한 가능성으로, 당장이라도 류수윤에게 누굴 좆 되게 하려는 거냐고. 화를 내도 될 상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류수윤이 옅은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방법을 말했을 뿐이에요.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성좌계에 오른 후에도 지금 우리의 던전과는 연결이 끊기지 않아요. 던전과 이어져서 방문객들을 지켜볼 수도, 어쩌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겠죠.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라요.”

“이게 훨씬 낫군! 방법을 찾아보자고!”

“맞아. 카스토르. 우리도 도와줄게. 저건 정말 개죽음이야.”

“보상이나 몬스터, 고어 등으로 힌트를 남겨 미스틱을 부르면 되잖아요. 끝이 아니에요. 만날 수 있어요.”

밝아진 성좌들의 목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뒤늦게 희망을 맛본 심장이 오랜만에 다시 뛰기 시작했다.

“던전에 갇혀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그건 싫어.”

“의진아!!”

주호현이 비명 지르듯 나를 붙잡았다.

게다가 성산하는 날 찾아낼 거다. 기다리겠다고 대답까지 했으니 남자답게 한 말은 지켜야지.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기다려. 반드시,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나, 내려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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