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228.
내 팔을 잡은 주호현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안 돼. 의진아. 너 지금 잘못 생각하는 거야. 후회할 거야.”
“후회하고 말고는 내가 정해.”
손을 툭 쳐 내며 말했지만 주호현이 고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반대야.”
“카스토르. 나 역시도 반대야. 널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 않아.”
예상보다도 더 강경히 나오는 이들을 둘러보다 폭 한숨을 뱉었다.
“미안한데, 반대하든 말든 상관없어. 머릿수는 채워서 스킬 조건도 달성한 데다- 방법이 있다는 걸 안 이상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려갈 거거든.”
고개를 돌려 류수윤을 바라봤다.
“알아들었으면 빨리 시작해 줘.”
“수윤아! 안 된다고 해!”
주호현이 언성을 높이자 류수윤이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바짝 굳은 주호현의 어깨를 살살 쓸어 주다 그대로 밑으로 내려와 손을 마주 잡은 류수윤이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원하면 하지 않을게. 하지만……. 의진 씨가 이렇게까지 바라는 일인걸.”
“수윤아. 너 그렇게 위험한 걸 알면서도 어떻게…!”
애초에 말을 하지 말지, 란 말을 겨우 삼켜 낸 주호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류수윤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주호현을 안아 등을 쓰다듬었다.
“이제야, 이제야 만났…. 이제까지 그렇게 고생했는데, 그런 끔찍한 곳에 내 동생을 어떻게 보내…….”
“호현아….”
내가 원하고 권한을 가진 류수윤도 돕겠다는데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의진. 난 정말 걱정돼.”
“괜찮아. 나 무사히 내려가면 이탈리아 던전으로 누나 보러 갈게.”
“카스토르. 진짜 간다고? 너 명예랑 권력 좋아하지 않아? 어떻게 성좌가 될 기회를 뻥! 차 버릴 수가 있어?”
“아무리 카스토르 네가 유일한 포션 마스터였다지만, 그래 봤자 S급이고 성좌는 엑스트라 급이라고. 차원이 달라.”
“맞아! 이런 영광 다신 없어! 내려가 봤자 몇십 년밖에 살지 못할 텐데.”
내가 그런 거에 약한 건 어떻게 알고 살살 꼬드기는 아쿠벤스와 안타레스의 말에 잠깐 멈칫하긴 했다.
확실히 끌리는 명예긴 하다만…….
“그래도 난 역시 성산하랑 있을래. 성좌 일보다 포션 만드는 게 더 재밌거든.”
“에이. 재미없게.”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
스킬을 가동할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아까부터 말이 없던 주호현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러 다가가는데 류수윤이 나를 잡았다.
“의진 씨.”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자 류수윤이 한 발 옆으로 비켜섰다. 그 뒤에서 구름이가 훌쩍 뛰쳐나왔다.
“구름이?”
“메에에에.”
“데려가세요.”
“싫어! 미쳤냐? 나 혼자면 모를까 구름이를 거기 어떻게 데려가. 발견되지 않으면 몇백 년이고 의식만 남아 어둠 속을 떠다녀야 한다며.”
이 잔인한 새끼가? 감히 우리 구름이를…….
얼굴을 왕창 구기고 바라보자 류수윤이 작게 웃었다.
“이래 봬도 제 조각이에요. 정이 가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생각보다도 더……. 의진 씨를 믿고 따르는 듯해요. 같이 가고 싶다는 건 아이의 뜻인걸요.”
“하지만….”
“메에에에!”
구름이가 두고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발을 쾅쾅 굴렀다.
“제가 권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혼자 버티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구름이는 제힘을 일부 가지고 있으니까. 긴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그 말을 듣고도 계속 고집부릴 수가 없었다. 결국 구름이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뒤에서 기다리던 주호현이 내게 다가왔다.
“……던전에 오면 만날 수 있는 거 알지.”
“그래. 꼭 만나러 올게.”
“의진아 제발…….”
입술을 깨문 주호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류수윤이 주호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웃는 얼굴로 보내 줘야지. 호현아.”
“응…….”
류수윤을 시작으로 모두가 스킬 ‘별의 소원’을 사용했다. 내 영혼에 각인되어 있던 성좌의 굴레가 벗겨지며 그대로 주호현에게 옮겨 갔다.
더 이상 성좌가 아닌 나를 이곳에서 쫓아내려는지 발밑이 움푹 꺼지는 게 느껴졌다.
“나 간다!!”
주호현과 걱정스러운 얼굴의 성좌들을 뒤로하고, 그대로 구름이와 함께 아래로 몸을 던졌다.
가뿐한 기운을 넘어 추락한 몸이 진창에 처박히듯 한순간 무거워졌다. 누가 불을 끄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미 없는 깜빡임을 계속하다 다급히 구름이를 불렀다.
“구, 름아? …구름아!!”
“메에-.”
“하, 여기 있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구름이를 품에 껴안았다. 둘 다 육신을 잃은 채라 그런지 더 이상 온기 따윈 없었지만 구름이의 형체는 확실히 느껴졌다.
혼자 있을 땐 몰랐는데, 구름이와 닿자 내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내가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류수윤의 말이 맞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끝도 없고 어딘지도 모르는 암흑 속에서 혼자 버티다가는 미쳐 버릴 것이 분명했다.
“성산하…….”
씨발, 빨리 찾아 달라고.
눈을 질끈 감았다.
***
“안녕히 가세요.”
꾸벅 인사하며 손님을 배웅한 연승연은 펼쳐 놓은 책자를 정리하다 피곤한 듯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또 이러네….’
사람들과 함께 있다 혼자 남으면 찾아오는 깊은 상실감과 허무함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 년 전. 의진 님이 돌아가신 후 제로와 임청 헌터는 곧바로 용병 일을 그만뒀다. 그나마 함께 일하던 수철이마저 작년에 드디어 헌터 실적을 채워 길드에 들어가게 됐다며 공방 일을 그만둬 저 혼자 남은 지 오래였다.
더 이상 의진 님이 있을 때만큼 시끄럽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공방은 혼자 지내기엔 너무 넓었다.
의진 님이 제게 남겨 주신 레시피로 큰돈을 벌었기에 이사 갈 돈도 충분했고, 주변에서도 관리가 쉬운 좀 더 작은 곳은 어떠냐고 권유를 했지만…. 글쎄, 의진 님의 흔적을 지우는 것 같아 영 내키질 않았다.
잡생각이 드는 걸 보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 계단을 올라가던 승연은 이어지는 도어 벨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안으로 들어오는 이초의 모습을 보고 놀라 서둘러 로비로 달려 나갔다.
“이초 님? 어쩐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승연 님. 혹시 바쁘신가요? 계약서 갱신 건 때문에 왔는데요.”
“바쁘진 않은데, 계약서 갱신이라니 대체 무슨……?”
“월계나루 개발로 공방 근처에 빈 땅이 좀 생기지 않았습니까. 확장하시는 건 어떨까 해서요.”
“갑자기요?”
의아한 승연의 얼굴에 이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설레발일지도 모르지만, 미리 대비해 두는 게 제 일이라서요. 조만간 넓힐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길드장님 뜻인가요…? 지금 어디 계세요?”
“음… 산하 님은 지금…….”
이초가 곤란한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
번쩍이는 빛과 함께 마지막 무리들이 쓰러졌다. 앞으로 나가 확인 사살을 하던 임단이 번뜩이는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대충 다 처리한 것 같은데?”
“이런 이런…. 숨겨진 녹스 부지에 폰투스 잔당들이 숨어 있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태제헌도 죽었으니 여기가 제격이었겠지.”
툴툴대던 임단은 안쪽에서 들려오는 청이의 신호에 발을 옮겼다. 가장 구석진 방은 온통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임청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뭔가를 마주하고 있었다.
찾았다는 직감에 성산하가 급히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 여기 있었군.”
수조 속에 잠긴 시체는 제가 꿈에도 그리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태는 생각보다도 더 좋지 않았지만.
성산하는 그대로 로드를 들어 수조를 깼다. 쏟아지는 물과 유리 조각 사이로 몸이 다치지 않게 쉴드를 둘러 소중히 건져 냈다.
사지가 성하지 않은 모습에 임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친, 꼴이 왜 이래. 짜증 나게….”
“듣기로는 폭약 자살을 했다더군요.”
“역시 독한 놈. 대단하다니까.”
성산하가 강의진의 시체를 널따란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를 지켜보던 제로가 물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면 어쩔 겁니까?”
“레저렉션이면 신체도 재생돼.”
“몸이 아니라 여기가요. 길드장님을 기억 못할 수도 있잖습니까.”
머리를 툭툭 친 제로의 얄미운 물음에도 성산하는 외려 웃음을 지었다.
“상관없어. ……레저렉션”
순간 시력을 잃을 정도로 찬란한 광휘가 작은 방 안을 뒤덮었다. 서서히 빛이 잦아들 때, 누워 있던 인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성산…하?”
“찾아내겠다고 했잖아.”
“왜 이렇게 늦었어. 새끼야…….”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성산하가 그대로 입을 맞췄다.
***
드디어 내 상태창도 ‘주호현’이나 ‘카스토르’가 아닌, 세계 유일의 S급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 되어 있었다.
모든 성좌의 흔적이 사라진 것이다. 발목에 남은, 구름이가 숨어 있는 하말의 문양만 제외하고.
내 조각은 과연 뭘지, 어둠 속에서도 굉장히 궁금했는데 태제헌이 갖고 있던 시체라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태워 버리라니까 개새끼가…….
다시 사용 가능한 선산의 주인을 써서 이공간 들어가자 태제헌이 마지막 모습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한 대 때려 주려다가 꼴이 처참해 그냥 나왔다.
오 년이나 지났다는 말을 듣고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구름이가 없었더라면 미쳤을 게 분명하다.
“오, 오 년이라고? 그럼, 너 대체 몇 살이야.”
“서르-.”
“썅! 닥쳐!!
{ 메인 퀘스트 }
퀘스트창이었다. 그것도 황금색.
기뻐야 할 일인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삐딱한 웃음을 지으며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 메인 퀘스트 }
Born to be Star!
별의 힘을 지니고 태어난 당신 안에는 엄청난 힘이 내제되어 있다.
숨겨진 힘을 찾아 기나긴 여정을 떠나자.
난이도 : SSS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EX급 스탯, EX급 칭호, EX급 스킬
“씨발- 안 해!!”
『 엑스트라 파업 선언 마침 』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