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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29화 (22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에필로그 1.

씨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여기 싫다고, 다시 보육원으로 가고 싶다고 계속 말했는데 보내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들어줄 것 같아 그럼 잠깐 인사만 하고 오면 안 되냐고,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할 거라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려고 한 것일 뿐인데. 그렇다고 이런 감옥 같은 데에 가둬?

풀리지 않는 억울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형이 나한테 화를 낸 건 처음이다.

잘못했다고 말하면 봐주겠다고 했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절대 안 져. 나도 존나 화났다고. 형이 하라는 거 다 반대로 하고 절대, 절대 하나도 안 따를 거니까!!’

나는 삼 일간 벌을 받고 풀려났다.

해빈 아저씨나 지영 누나가 와서 형한테 빌라고 설득했지만 빌지 않았다.

뚜벅뚜벅하는 구둣발 소리가 내가 있는 곳에 가까워졌다. 문이 열리고 여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성은 좀 했니?”

말없이 돌아앉자 인상을 찌푸린 태제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등 보이지 말라고 했지.”

“뭐요.”

“삼 일이면 반성했을 줄 알았는데.”

“말했잖아요. 난 잘못한 거 없다고.”

“……그래.”

태제헌이 등 돌려 방을 나갔다.

나는 일주일간 벌을 받고 풀려났다.

돌아오니 해빈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식당 이모한테 물어보자 해빈 아저씨는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갔다고 했다.

벌을 받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형은 자기한테 대드는 걸 제일 싫어했다. 하지만 어떨 땐 봐주고 어떨 땐 바로 벌을 줘서 빡치는 기준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번엔 별일도 아니었다. 방에서 나오지 말란 말을 안 듣고 나가서 놀다가 형네 아빠랑 마주쳤다. 녹스 길드장이랬나. 조금 이상한 아저씨였지만 날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느껴져 태제헌의 무서운 눈짓을 못 본 체하고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게 다다!

진짜 억울했다. 방에서 나가는 일은 태제헌이 봐주는 행동 중 하나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빡쳤지?

-잘못했다고 빌어.

그렇게 화난 표정은 처음 봤다. 심상치 않다는 게 느껴졌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뭐, 어차피 일주일 있으면 풀어 줄 거면서. 지랄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 중얼거렸다. 머리 위 깜빡거리는 조명이 거슬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몰래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서 잘못했다고 굽히라며 설득하던 이모, 삼촌들도 보이지 않았고 태제헌도 오지 않았다. 매끼 밥을 갖다 주던 사람 역시도.

고장 난 전등이 깜빡이는 방에 홀로 갇히니 시간이 갈수록 고집스런 결심이 점점 흐려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아무도 오지 않으면 태제헌에게 용서를 빌 수도 없다는 것을. 갑자기 좁은 방 안이 무섭게 느껴졌다. 침대 구석으로 가 몸을 더 웅크렸다.

위태롭게 깜빡거리던 전등이 결국 꺼졌다. 새카만 방 안에서 눈을 꿈뻑이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급히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여기, 여기 불 꺼졌는데.”

“…….”

“내 방 불 고장 났어! 밖에 아무도 없냐고!! 야!!”

패닉 상태로 소리 지르며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그러다 순간 방이 살짝 밝아져 고개를 들었다. 문에 작게 난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누군가 와서 복도에 불이 켜진 거다.

뚜벅뚜벅하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핏발 선 눈으로 앞을 노려봤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것은 태제헌이었다.

작은 한숨 소리에 흠칫 놀라 시선을 떨궜다. 피가 난 손을 보고 혀를 차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놈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뭐. 어쩌자고.”

굴욕감에 입술을 깨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갈래요.”

차가운 시선이 내 얼굴을 훑고 표정을 읽어 내렸다. 곧바로 나가잔 말이 없어 불안한 마음에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궁지에 몰려 앞뒤 잴 것 없이 다급히 말했다.

“…잘, 못했어요. 이제 나가면 안 돼요?”

“아직 제정신인가 보네.”

“네……?”

“좀 더 반성하고 있어. 나중에 올 테니.”

귀찮다는 듯 다리를 털은 놈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놀라 무릎걸음으로 놈을 따라갔다.

“혀, 형! 태제헌!!”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며 두꺼운 철문이 닫혔다. 절망 가득한 눈으로 닫히는 문을 바라봤다.

“잘못했…다고, 했는데 왜…….”

***

삼 일 후, 태제헌이 다시 방을 찾았을 때, 강의진은 그 자리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착하게.

“잘못했어요, 여기, 여기 있기 싫어요. 나, 나 여기 싫…….”

“이제 좀 마음에 드네.”

태제헌은 몸을 굽혀 며칠 새 앙상해진 몸을 안아 들었다. 덜덜 떨리는 몸과 공포에 사로잡혀 불안한 눈빛이 전에 없이 마음에 들었다.

단단한 내면을 깨었으니 이제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차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내 것으로.

***

어느 날 태제헌이 불러온 한 할머니가 나를 ‘진단’했다. 그리고 내가 포션 메이커로 각성하게 될 거라 말했다.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됐는데 각성이라니? 코웃음 쳤지만 태제헌은 그날로 내게 포션 제작 수업을 듣게 했다. 자극을 줘서 각성을 촉진해야 한다나 뭐라나.

태제헌이 시키는 건 하나도 들어주기 싫었다. 하지만 포션 제작은 녹스로 와서 한 것 중에 제일 재미있었고 태제헌의 말대로 나는 열세 살 가을에 포션 메이커로 각성했다.

“이딴 걸 왜 배우라고 하는 거야.”

포션을 만들 때면 가슴 벅찬 행복에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도 태제헌이 준 것이기에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태제헌의 허락 아래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네. 이거 말고는 할 게 없어서 그런 거야, 그렇다고 내가 저놈들이랑 축구하고 놀 순 없는 거니까. 그렇게 합리화하며 포션 교습을 들었다.

포션 교습을 함께 하는 사람은 진희 누나였다. A급 포션 메이커로, S급인 나를 가르칠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직 잠겨 있는 S급 스킬 해금을 위한 노가다를 도와주는 중이었다.

누나가 내게 두꺼운 파일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내일까지 이거 연구하고 샘플 만들어 봐요.”

“안 하면 안 돼요? 벌써 몇 번이나 만들어 봐서 재미도 없는데. 그러지 말고 누나 저번에 연구하던 신제품 개발 나도 같이 하면 좋겠다.”

“쉬운 거 알지만, 잠긴 스킬 풀려면 해야죠. 그리고 누나라고 부르면 안 된댔지.”

“으으. 또 뭐라고 한다.”

“내일까지 리스트에 적힌 거 만들어 오는 거예요? 알았죠, 의진아?”

“……진짜 하기 싫은데. 재미도 없고 귀찮은데.”

툴툴대자 싱긋 웃은 누나가 리스트 위에 뭔가를 적더니 내게 건넸다.

「(예비) 포션 마스터 강의진 파이팅!」

“이러면 누가 해 올 줄 알고……. 내일 봐요.”

“응. 조심히 가요.”

필요한 재료를 챙겨 방으로 돌아가는데 녹스 길드원들이 로비의 티브이 앞에 몰려 떠들고 있는 게 보였다. 태제헌의 부하들이 녹스에 머물면서도 녹스에 섞이지 못하는 나를 아니꼽게 생각하는 것을 알아 그다지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앞만 보고 걸었다. 놈들은 한창 뉴스를 보고 있었는지 티브이를 보며 한마디씩 얹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연소 S급 정신계 에스퍼가 탄생했습니다. 경원 집행 위원장의 손자로…….]

“아으, 노헌 새끼들 또 존나 뻐기겠고만.”

“안 그래도 노헌 놈들 던전에서 만나면 능력 조옷같은데. 정신계 능력자는 또 뭐래냐.”

“S급이면 뭐 해, 저런 능력은 줘도 안 가진다. 피 주머니나 대롱대롱 달고 다녀야 하고.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잖냐.”

“에이, 그래도 저는 한번 먹어 보고 싶긴 합니다. 힘들 때 먹으면 마약 수준이라던데요.”

시시껄렁하게 떠드는 길드원들을 지나쳐 계단을 오르는데 여지없이 불러 세워졌다.

“어이, 꼬마! 이리 와 봐.”

“……왜.”

“뭐? 하하, 이 새끼 싸가지 보소? 어른이 부르는데 왜? 왜?”

“야야! 참아, 참아 새끼야. 도련님이 시킨 거잖아.”

“확씨, 저걸 팰 수도 없고. 저 새끼 전부터 맘에 안 들었어. 야, 이리 와. 빨리 안 와?”

빡빡이 돼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무시하고 가고 싶었으나 따라올 것 같아 작게 한숨을 쉬고 놈 앞으로 갔다.

“왜. 나 바빠.”

“눈 똑바로 안 떠? 어디서 어른한테 말끝은 다 잘라먹고 눈을 그따위로 떠? 눈 깔아, 안 깔아? 어?”

“……와도 지랄이야.”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진짜!!”

빠악!

커다란 손이 뺨을 후려쳤다. 옆통수 전체를 가격당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가방에 들어 있던 병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재료 다 못 쓰겠네. 누나가 챙겨 준 건데.

“앞으로 태도 똑바로 해. 어? 도련님이 아껴 준다고 씨바 기세등등해서는! 좆도 아닌 게…….”

말없이 일어나 가방을 고쳐 매고 등을 돌렸다. 눈뿌리가 뜨거웠지만 빡빡이 돼지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입술을 꾹 깨물고 계단을 올랐다.

[……리나라에선 유일한 정신계 능력자로 한서진 군은 열두 살의 나이로 각성하며 최연소 S급 에스퍼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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