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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30화 (230/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에필로그 2.

망가진 재료를 겨우 살려 누나가 내 준 숙제를 했다. 재미도 없고 쉬운 포션이었지만 만들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어느새 어둑해진 창밖으로 태제헌 차가 들어오는 걸 보곤 후다닥 침대로 들어가 자는 척을 했다.

얼마 후 방문이 열렸다. 제 방처럼 막힘없이 들어오는 꼴을 보니 역시나 태제헌이었다. 곧바로 나를 보러 올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는 게 이상해 슬그머니 실눈을 뜨자 내가 제작 중이던 테이블에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태제헌이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던 종이 중 하나를 가져갔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태제헌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나한테 등 보이지 말라고 했지.”

“…….”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

여기서 더 버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 나오지도 않는 하품을 짜내며 느적느적 몸을 일으켰다.

“흐아아암. 진짜 방금 일어났다고요.”

억지로 하품을 하느라 입을 크게 벌리자 아까 맞은 왼쪽 얼굴이 무지하게 아팠다. 신음을 흘리다 아차 싶어 이불을 뒤집어쓰자 태제헌이 미간을 좁혔다.

“강의진. 이리 와 봐.”

“나 자다 일어나서 졸린데. 더 자면 안 돼요?”

“두 번 말 안 해.”

서릿발 같은 음성에 결국 머리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한 걸음 떼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온 태제헌이 턱을 쥐어 들어 올렸다. 무서운 표정에 움찔 어깨를 굳혔다.

“누가 이랬어.”

“아아…….”

아픔에 신음하자 턱을 쥔 손이 약해졌다.

“말해. 누구야.”

“……몰라요.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태제헌은 말없이 바라보다 내팽개치듯 얼굴을 놓았다.

“힐러 부를 테니 자지 말고 기다려.”

태제헌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힐러가 들어와 맞은 쪽 볼을 치료해 줬다.

씨발 걱정하는 척은 씹…….

“끄아아악!! 도, 도련님. 제발!! 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저택이 얼마나 넓은데 씨발 굳이 내 방 창문 아래서 저 지랄을 하는 이유는 뻔했다.

‘개자식…….’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비명에 이불을 머리 위로 더 깊게 눌러썼다.

***

“의진아. 오늘 제헌 님 돌아오시는 거 알잖아. 이번엔 따로 언질까지 하셔서 성과 보이지 않으면…….”

“싫다고요.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성년이 된 태제헌은 길드 일이라며 제 아버지와 함께 외국을 자주 나다녔다. 태제헌이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땐 말할 것도 없이 즐거웠고 복귀할 땐 한국에서 나지 않는 희귀한 재료들을 구해다 줘서 요즘엔 나도 모르게 놈이 돌아오길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만들어 봤자 뭐 해요. 또 길드원들이 처먹고 나쁜 짓이나 하고 다닐 텐데.”

태제헌 새끼가 날 속인 거다!!

여태껏 내가 개발한 포션으로 어떤 미친 짓들을 했는지 뽐내듯 말하는 길드원 놈들에게 모조리 들었다.

“의진아…….”

진희 누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안절부절못했지만 내 마음을 돌릴 순 없었다.

***

“왜 아무것도 없지?”

“만들기 싫어서 안 만들었어요.”

“왜.”

태제헌의 물음에 답하기 싫단 의미로 앞에 놓인 음식을 와구와구 입에 집어넣었다. 테이블에서 더럽게 구는 꼴을 두 눈 뜨고 못 보는 놈답게 곧바로 표정이 구겨졌다.

“하아…. 하루빨리 능력 길러 놓으라고 했을 텐데. 내가.”

“내가 알아서 해요.”

“……강의진.”

태제헌의 입술이 비뚤게 올라갔다.

벌을 받을 줄 알고 반항한 거였지만 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끌려간 곳은 예전 그곳이 아니었다.

녹스 사유지 구석의 조그만 별관, 나갈 수 없도록 창과 문이 막힌 것을 제외하면 멀쩡한 침대와 소파, 내가 포션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된 작업대까지 있었으니까.

‘뭐지? 이번엔 봐주는 건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운 태제헌이 소파에 앉아 손짓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수십 개의 포션병과 각종 재료들을 쏟아부었다.

“이게 뭐예요?”

“말했잖아. 하루빨리 네 가치를 증명해 내야 한다고.”

눈에 초리민트, 데미케찰코아틀의 깃, 졸리가지와 나머지 잡다한 재료들이 들어왔다. 분명 타란툴라 퀸의 해독약에 들어가는 재료들이다.

“뭔데요. 이거.”

“해독제 만들어.”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거예요.”

“그래? 내 생각엔 그게 지금일 것 같은데.”

의아함도 잠시, 태제헌이 옆의 비서에게 눈짓하자 밖으로 나가 축 늘어진 뭔가를 끌고 왔다. 더럽혀진 흰 가운과 부러진 안경, 헝클어진 머리. 내 눈을 의심했다.

“진희 누, …박사님!”

놀라 달려갔지만 발목의 족쇄 탓에 한 걸음을 남기고 닿지 못했다. 혈색이 사라져 새파랗게 질린 입술과 피부 군데군데 생긴 타원형의 반점. 타란툴라 퀸의 독에 중독된 상태였다. 태제헌이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좀 만들 생각이 들까.”

시간제한은 없었다.

차게 식어 가는 진희 누나의 피부가, 스러져 가는 생기가 그를 대신했으니까.

“흐아, 윽. 으허어엉. 잘못 했,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제발요.”

“그걸 왜 나한테 빌지.”

“형, 혀엉. 제발요. 진짜 말 잘 들을게요. 한 번만요. 한 번만. 진짜 만들 수 있어요. 진짜 그 , 끄흡, 그러니까 조금만요. 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혼비백산해 빌었다. 그게 나의 또 다른 약점을 내어 주는 것인 줄 알면서도 태제헌에게 울면서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태제헌은 굳은 얼굴로 내가 비는 꼴을 가만히 바라보다 겨우 한 번의 손짓으로 힐러를 불러 줬다. 당장의 시간은 벌었대도 완전한 회복을 위해선 해독 포션이 필요했기에 나는 죽어 가는 누나의 몸을 앞에 두고 만들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녹스를 위한 포션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단 사흘 만에 포션을 완성했다.

태제헌은 선생님을 바꾸지 않았다. 포션 교습의 담당은 그대로 진희 박사님이었다. 그게 선의가 아니라 내게 하는 경고라는 것을 알았다.

박사님은 이후로 단 한 번도 내게 의진아, 하고 불러 주지 않았다.

2.

“으아악! 씨발!”

팔을 버둥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눈앞에 보이는 평화로운 정원의 모습에 얼떨떨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머리 위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그제야 내가 엘프목의 해먹 위에서 낮잠을 자던 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 지금 공방이지.

“의진 님!!”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데 승연이와 수철이가 놀라 달려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비명 소리 같은 게 들려서…….”

“사장님. 괜찮으세요? 혹시 해먹이 떨어진 건 아니죠?”

“그런 거 아니야. 뭔……. 개, 좆같은 꿈을 꿔서.”

갑자기 어릴 때 꿈을 왜 꿨지? 재수 없게.

머리를 털며 해먹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몸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승연이를 돌아봤다.

“나 얼마나 잤어? 지금 몇 시야? 성산하는?”

“오래되지 않았어요. 이제 곧 네 시긴 한데 길드장님은 아직…….”

승연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산하가 정문을 열고 들어왔다.

“성산하!”

“기다리고 있었어? 나름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응. 미리 준비 다 해 놨어. 바로 갈까?”

미리 싸 둔 가방을 둘러메며 말하자 성산하가 손을 까딱였다.

“그래. 가자.”

***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바로 성산하와 남산 던전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남산 던전은 다른 탑들과는 달리 오 년 동안 닫혀 진입이 불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틀 전, 드디어 던전이 헌터들의 진입을 허락한 것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던전이 열렸단 속보를 보고는 곧바로 성산하에게 전화해 던전에 가자고 졸랐고, 승낙을 받았다.

무릎 위에 앉은 구름이를 쓰다듬으며 근본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성산하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신나?”

“응. 가서 자랑해야 한다고. 주호현이 엄청 걱정했거든.”

마지막까지 걱정하던 주호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어서 만나서 내가 말했지 않느냐고, 그러게 형 말을 믿지 울긴 왜 우냐고 보란 듯 말해 줘야 하는데.

“미리 말하지만 오늘 마지막 층까지 가긴 무리야. 알고 있지?”

“으응.”

던전의 난이도를 모르니 길드원들을 먼저 보내 길을 뚫자는 말에도 당장 가고 싶다고 던전행을 강행한 건 나였다. 마지막 층까지 가는 건 나도 무리라는 걸 알고 있어 그저 고개를 주억이자 성산하가 달래듯 손을 잡았다.

“던전 열리자마자 공략 팀 진입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최대한 빨리 갈 수 있게 해 줄게.”

“응…… 뭐, 그래도 괜찮아. 나는 주호현을 못 만나도 놈은 날 볼 수 있을 테니까. 멀리서 인사하는 셈 치지 뭐. 재료나 잔뜩 채집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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