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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32화 (23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에필로그 4.

벌써 돌아온 지 이 주 가량이 지났다.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상처에 새살이 돋기 시작하고 나를 볼 때마다 울던 주변 사람들의 눈물샘이 마르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세상에 내가 돌아왔… 아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몇 달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 덕에 좋은 점이 있었는데 바로 얼굴을 가리거나 아무 아이템 없이 돌아다녀도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뒤에서 닮았다며 수군거리는 사람이 몇 있긴 했으나 내가 강의진 본인일 거라고는 차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져 괜히 얼굴을 가리는 아이템도 착용하지 않고 다니는 중이었다. 아이템이 무거운 것도 아닌데 괜히 답답하게 느껴진단 말이지.

물론 성산하나 승연이 외 기타 등등은 내가 맨얼굴로 밖을 나갈 때마다 안절부절못했지만 복귀 전까지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내 말에 어쩌지도 못했다.

“성산하 가자!”

“의진아, 제발. 형 반지 좀 받아 줄래?”

“싫어. 재미있단 말이야. 뭐 어때? 아무 문제 없잖아. 아무도 내가 강의진이란 거 몰라.”

“하아…. 의진아…….”

재오픈을 대비한 공방 리뉴얼 중이라 작업실도 사용하지 못해 이참에 몇 주는 푹 쉴 작정이었다. 밖을 돌아다니며 보통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것에도 맛 들어 최근에는 차를 타고 근교를 여행 가거나 유명하다는 맛집에 가서 밥을 먹는 경험도 해 봤다. 현재 백수인 성산하가 그 모든 일에 함께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너 그런데 승계 언제 받는다고 했지?”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입에 넣으며 묻자 성산하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답했다.

“날짜는 두 달 뒤지만 일은 그 전부터 시작할 거야.”

“지금 당장도 가능한 거 아냐? 굳이 왜 그때로 잡았어? 할배가 너 엄청 찾는데 일찍 좀 받아 주지 그러냐.”

“네 복귀 일정이랑 맞췄어. 바빠지기 전에 실컷 놀러 다녀야지.”

“아하.”

하긴, 나도 성산하가 있는 편이 더 놀기에 좋았다. 나보다 재밌는 것도 많이 알고 더 멀리 데려다주니까.

“맞아. 바빠지기 전에 실컷…….”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에 비친 우리 둘의 모습 너머로 반짝반짝한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아주 작게 보이는 차들과 고요한 내부 때문에 세상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새삼 그 모든 일이 끝났구나, 정말 쉬어도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줄지어 도로를 달리는 개미만 한 차들을 멍하니 구경하는데 성산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 뭐 재밌는 거라도 있어?”

고개를 돌리자 식기를 내려놓은 채 턱을 괴고 나를 보고 있는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성산하 역시 커다란 통창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너랑 나밖엔.”

“그냥 되게 평화롭다 싶어서.”

“갑자기?”

“응. 갑자기.”

내 말에 성산하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놈도 바깥 풍경이 재밌는지 한참을 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식어 버린 음식으로 눈길을 돌리다 저 멀리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인영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나 잠깐 화장실 좀.”

***

의진이 자리를 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있던 여자 둘이 주위를 둘러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중 한 사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같이 있던 일행분 먼저 가신 건가요?”

“무슨 일이시죠?”

“혹시 이거 전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여자가 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성산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렵겠는데요.”

“곤란하게 해서 죄송해요. 직접 드리고 싶은데 제가 지금 일어나야 해서요. 친구분 오시면 부탁드…….”

“친구가 아니라서요.”

“네? 그게 무슨……. 아…!”

그제야 깨달은 표정을 지은 여자가 숨을 들이켜며 입을 막았다.

“이런,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재차 사과한 여자가 자리를 떠나고 성산하는 그제야 겸연쩍게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궁색한 변명이 유치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러게 반지 좀 껴 달라니까.”

혼자 남은 자신만 비치는 유리창엔 더 이상 아무 흥미도 없었다. 누구에게 정신 팔려 입도 대지 못했던 술을 이제야 홀짝이는데 아까부터 모여서 수군대던 직원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뻔한 상황에 성산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미스틱 아니세요?”

“아닙니다.”

“그, 지금 얼굴이요. 미스틱 템 중 하나라고 소문났는데……. 사진 좀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

가장한 외형이 일반인에게까지 퍼질 정도라니. 평화로운 건지, 안일했던 건지. 산하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제 강아지를 찾으러 갈 때였다.

***

“역시 너였구나. 한서진.”

로비 복도를 지나쳐 가던 남자가 내 말에 우뚝 발을 멈췄다. 5년 새 꽤나 컸다지만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이 자식이 싸가지 없이 나 봤으면서 쌩까고 그냥 나가냐? 형님을 봤으면 인사를 하러 와야지.”

내 말에 한서진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형……이 맞나? 좀 애매하지 않아요, 우리?”

“뭐, 뭐어? 썅! 당연히 내가 형이지! 개수작 부리지 마라. 한국은 무조건 출생년도 기준이야 인마. 억울하면 일찍 태어나든가.”

비어 버린 5년의 시간 탓에 그간 수많은 하극상을 겪은 내가 서둘러 선을 그었다. 피식 웃은 한서진이 투덜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 피해 준 건데 왜 따라 나와요.”

“피해? 왜.”

“5년 지났다고 그새 잊어버렸어요? 내가 형 좋아하는 거?”

생각지도 못한 말에 움찔했다. 그저 반가워서 따라왔을 뿐이라 그것까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눈만 데굴 굴리며 입술을 삐죽이자 한서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 표정 봐. 또 나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지. 남자한테도 먹히는 얼굴인가. 이딴 생각 하고 있죠. 지금.”

“그사이에 진화했냐? 이젠 닿지도 않고 읽네. ……너 해외 파병 갔었다며. 그것 때문에 인사도 못 한 거, 여기서 봐서 반가웠는데 네가 무시하고 튀었잖아.”

투덜대자 한서진이 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돌아온 지는 좀 됐어요.”

“그런데 왜 만나러 안 왔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요.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됐네.”

한서진은 감회가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형 지금 보니까 되게 어렸네요. ……는 진짜 개새끼고.”

“겨우 5년 가지고 유세 부리지 말라고!”

“응. 알겠어요.”

쿡쿡 웃던 한서진이 문득 생각났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형 돌아왔다는 건 나중에 알릴 생각인 것 같던데. 거리 오픈이랑 함께 밝히려는 거 맞죠?”

“응. 공방 준비도 덜 됐고, 급할 건 없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돌아다녀도 돼요?”

우려 섞인 한서진의 말에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당연하지. 절대 몰라. 며칠 돌아다녔는데도 아무도 모르던데? 지금 거의 투명 인간이야.”

“아무리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어. 절대, 절대 몰라. 다들 나 죽은 줄 알잖아. 이참에 편하게 돌아다니는 거지 뭐.”

내 말에도 한서진의 얼굴에 어린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아, 형 어차피 한가하면 수요일에 잠깐 시간 좀 내요. 놀러 가자.”

“내일모레? 놀러 가자고?”

“응. 복귀 전에 그때밖에 시간이……. 아,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정말 반가워서 그런 거니까.”

“수요일? 수요일이라……. 잠깐만.”

요즘 일정에 대한 고민 없이 살아 그런가 수요일에 무슨 일이 있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는데 마주 보고 있던 한서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를 돌아보자 벽에 기댄 성산하가 성의 없이 고개를 까딱했다.

“오랜만이네. 내가 재회를 방해한 건가? 별로 미안하진 않지만.”

“성산하! 왜 벌써 나왔어? 아예 나온 거야?”

“늦길래. 이상한 거 주워 먹을까 봐 빨리 나왔지…….”

생긋 웃으며 저를 바라보는 성산하의 모습에 한서진이 기막힌 얼굴로 헛숨을 뱉었다.

“여전하시네요.”

“그쪽도. 밖에서 일행 기다리던데, 나가 보지?”

내게 시선을 준 한서진이 등을 홱 돌렸다.

[공방 놀러 갈게요.]

“응. 다음에 보자! ……헙,”

한서진의 스킬이라는 걸 잊고 답하던 나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

[잡담] 오늘 강의진이랑 존나 닮은사람 봄


(사진)

순간 설렘 번호딸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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