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1.
#고백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입가를 스치다가도 따라가려 하면 멀찍이 도망가 눈 밑을 꾹 누르고, 애타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면 그제야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핥아 달랬다.
조급한 나에 비해 한껏 여유로운 태도에 안달이 나 허리를 비틀자 뱀처럼 파고든 손이 허리를 감싸 가까이 끌어안았다. 계속되는 장난질에 바짝 약이 올라 결국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아당겼다. 작게 웃은 성산하는 그제야 깊게 입 맞췄다.
뜨거운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익숙한 감각에 바짝 굳어 있던 몸에 힘이 풀렸다. 성산하의 목에 팔을 두르고 단단히 등을 받친 손에 몸을 기댔다. 말캉한 혀끼리 맞닿는 느낌이 기분 좋아 발끝에 옴찔옴찔 힘이 들어갔다.
귀를 통해 들리는 가쁜 숨과 타액이 섞이며 나는 질척이는 소리, 스치는 송곳니의 날카로움마저도 짜릿하게 느껴져 배 아래쪽이 간질거렸다. 그 느낌을 견디지 못한 몸이 배배 꼬였다.
“으응…….”
참지 못하고 새 나간 신음에 맞닿은 입술에서 잔떨림이 느껴졌다. 성산하가 아랫입술을 살짝 빨며 떨어졌다.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웃음기를 가득 담은 채로 내려다보는 얼굴이 보였다. 성산하가 다정한 손길로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속삭였다.
“귀여운 소리 자꾸 낼 거야? 응?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떻게 해. 의진아.”
“씹, 그거야…. 성산하 네가, 네 놈이…….”
무작정 반박하다 반짝이는 놈의 입술을 보곤 할 말을 잃곤 멍해졌다. 촉촉이 젖어 살짝 부은 입술을 보자 홀린 듯 머릿속의 생각이 날아가고 당장 입을 맞추고 싶단 생각만 가득해졌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자 재수 없는 성산하는 다 안다는 듯 웃으며 턱을 잡아 끌어당겼다. 다시 닿는 입술에 눈을 감았다.
‘진짜…… 존나 좋아.’
기분 좋은 키스에 마냥 심취했을 때, 다정히 어깨를 쓰다듬던 손이 느릿하게 등을 쓸며 내려오더니 순식간에 티셔츠 틈으로 파고들었다.
“으읏, ……성산하!”
“응. 의진아.”
맨살에 닿는 차가운 감각에 움찔 놀라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성산하가 빤히 바라보며 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무서워?”
“헛소, 리. 무섭긴 누가…. 읏, 그냥 차갑다고.”
손 때문에 올라간 티셔츠 사이로 찬 바람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보다도 평소 맨살이 맞닿을 일 없던 등에 닿은 감촉이 영 어색해 견디기 힘들었다. 기분도 이상하고. 깊이 들어와 날개뼈부터 광배를 살살 쓸어내리는 커다란 손바닥을 피해 몸을 뒤척였지만 도망갈 곳이라고는 성산하의 품뿐이라 완전히 진퇴양난이었다.
이도 저도 못 하는 사이 성산하의 손은 옷 속을 제집처럼 파고들어 내 탄탄한 등판을 조몰락거리는 중이었다. 쪽쪽거리며 얼굴에 내려앉는 가벼운 입맞춤이 싫지 않아 차마 밀어 내지 못했다. 내치지 못한 손길에 조금 익숙해지나 싶을 무렵 다리에 뭔가 딱딱한 게 느껴졌다.
‘미친, 또…….’
목뒤가 후끈 달아올랐다. 확실한 욕정의 증거에 당황해 시선을 올려 놈을 바라봤지만 내가 눈치챈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끈한 얼굴은 그저 여유롭기만 했다. 모른 척 슬금슬금 허리를 뒤로 빼는데 성산하가 내 다리 사이로 허벅지를 깊게 집어넣었다. 중심에 바로 맞닿는 거대한 부피감에 기겁해 펄쩍 뛰었다.
“미친! 너 이거 왜…. 변태 새끼도 아니고!!”
“네가 세워 놓고 그런 소리 하면 서운해? 게다가…….”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린 성산하가 한 곳만 힘주어 쓰다듬었다.
“이쪽도 그닥 여유로운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언제 그랬…. 으아……. 놔!!”
언제 이렇게 됐는지, 내 것도 반쯤 부풀어 있었다. 바지 위로 내 소중한 성기를 쥐어 내는 손을 보며 헛숨을 들이켜는 순간, 저 멀리서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승연 삼촌이 사무실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사장님 방에 있나 봐. 설마 주무시나?”
“그러게. 여기 다 조용해서……. 일단 가 보자. 어쩌면 옥상에 있을지도 몰라.”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머리가 하얘졌다. 다급히 성산하의 가슴팍을 밀치고 손등으로 젖은 입술을 훔치기가 무섭게 기막힌 타이밍으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여기 있어요?”
“…….”
“사장님?”
“어, 어어! 나 여기 있는데. 왜?”
문이 열리고 다혜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샐쭉하게 가느다래지던 눈이 성산하를 보고는 동그랗게 떠졌다.
“자는 줄 알았네. 여기서 뭐 해요?”
“성산하랑 따로 할 얘기…, 가 있어서. 뭐, 왜.”
다혜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없던 오 년 사이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건 다름 아닌 다혜였다. 조그맣던 키는 몇십 센티나 큰 데다 젖살이 쪽 빠져, 갸름한 얼굴에선 이젠 언뜻 다인 누나의 모습도 비쳐 보였다. 다시 만났을 때 나를 보고 울면서 달려오는 모습을 못 알아보고 누구냐고 물었다가 밉보여 한동안 피곤해졌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비밀이지만 전과 별 차이가 없는 성산하나 승연이와는 달리 훌쩍 커 버린 다혜를 볼 때마다 내게만 비어 있는 시간의 공백이 또렷이 느껴져 아직 전처럼 편히 대하기 어려웠다.
“길드장님 안녕하세요.”
성산하를 보고 꾸벅 인사하는 다혜는 상하의가 세트로 된 파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은 옷 뭐냐.”
“잘 어울리죠?”
뽐내듯 어깨를 펴는 다혜 뒤로 쫄래쫄래 따라 들어온 하정이가 더 신이 나 말했다.
“헌터고 교복인데요, 올해부터 석청 부티크에서 맡아서 디자인했대요. 교복 입고도 전투 현장에 나갈 수 있도록요!”
“교복이라니, 교복이라고? 그게?”
“네.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한다고 했잖아요.”
윽. 백다혜가 고등학교라니.
영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미간을 좁히며 손을 까딱이자 다혜가 다가왔다. 목에 달린 빨간 왕리본이 비뚤어진 채로 흔들렸다.
“그거 달고 전투하냐?”
“이게 뭐요. 저도 짜증 나거든요.”
많이 크긴 했다만 그래도 나보다 한참이나 작군. 조그만 머리통의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다 비뚤어진 리본을 고쳐 당기는데 상의 주머니에 달린 요정 모양의 브로치가 반짝 빛이 났다. 손끝으로 툭 치며 말했다.
“누가 줬는지 몰라도 존나 멋있다?”
“치. 완전 재수 없는 소리.”
“이게 어른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그래서, 교복 자랑하러 온 거야?”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하정이가 옆에서 티 나게 다혜의 팔을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언니. 빨리 물어봐……!”
“왜. 뭔데?”
우물쭈물하던 다혜가 말했다.
“그, 저 입학식 말이에요. 다다음 주에 하는데…… 사장님 와 줄 수 있냐고요.”
“입학식? 내가 거길 왜 가.”
의아하게 묻자 다혜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 새빨개졌다.
“아저씨는 저 중학교 입학식 할 때도 안 왔잖아요. 원래, 원래 이런 데에 다 오는 거거든요!”
“야 그건, 그땐 내가 뒈졌……. 이씨, 누가 아저씨야?”
“……그러니까 중학교 입학식은 안 와도 되니까 헌터고 입학식에만 와 주시면 안 돼요?”
입학식이 별거 있나? 학교를 다녀 보지 않아 잘은 몰라도 축제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차피 공방 재오픈까지는 삼 주가량 남았으니까 시간은 될 거고…….’
길어지는 침묵에 다혜의 얼굴이 울상이 되는 것도 모르고 일정을 고민하는데 뒤에서 성산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같이 가도 되는 자리인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멀쩡히 코트까지 걸친 성산하가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다혜가 더듬더듬 물었다.
“네, 네? 길드장님도 오시게요?”
“초대만 해 준다면 기꺼이.”
“다, 당연히 초대하죠! 길드장님인데! 바쁘실 줄 알았어요.”
“우와, 언니 좋겠다…….”
다정히 웃는 성산하와 기쁨이 차오르는 다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어이없어 소리쳤다.
“뭐야, 나도 엄청 바쁜 몸이거든? 백다혜 너. 나 초대하러 온 거 아냐? 나로는 부족하다 이거야?”
“그래서 아저씨한테 먼저 물어보러 왔잖아요. 근데 안 된다고 했으면서.”
“누가 안 된대? 나도 갈 거야. 언제라고?”
“삼월 이 일이요. 정말 올 거죠. 사장님? 약속한 거예요!!”
허락했다고 곧바로 호칭이 아저씨에서 사장님으로 승격했다. 신이 나 방방 뛰던 다혜가 뭔가가 생각났는지 멈춰서 말했다.
“맞다, 승연 삼촌이 빨리 내려오래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저녁? 난 패스. 먼저 먹으라고 해.”
“네? 오늘 우리 언니가 밥 사 준다고 해서 나가서 먹기로 했잖아요. 사장님 안 가요?”
“그거 내일 아니었나?”
“오늘이거든요! 빨리 내려와요. 단이 언니도 도착했다고요. 언니들한테 다 일러야지-. 사장님 약속 까먹었다고.”
“야! 백다혜!! ……저게 진짜.”
혀를 쏙 내민 다혜가 하정이의 손을 잡고 복도로 도망쳤다. 그 모습에 머리를 짚다 성산하를 돌아보고 말했다.
“오늘 다인 누나가 밥 사 준다고 했는데. 같이 가자.”
“아쉽지만 일이 있어서.”
권하긴 했지만 길드장이 된 이후로 무지하게 바빠진 것을 알아 못 갈 줄 알았다. 고개를 주억이자 성산하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약속 장소까진 데려다줄게.”
“응. ……근데 정말 다혜 입학식 가려고? 입학식이 대체 뭐길래 그래.”
“글쎄.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헌터고에서 뒷배가 필요하다는 뜻 같던걸.”
성산하의 말을 듣자 그제야 이해가 가 손뼉을 짝 쳤다.
“아! 라이벌들한테 초장부터 기선 제압을 하려고? 이야, 백다혜 똑똑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