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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2화 (235/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2.

하긴, 기선 제압이라면 바로 나! 세계 유일의 포션 마스터 강의진만 한 사람이 없지. 다른 거면 모를까 그런 이유라면 꼭 가 줘야겠다.

새삼스레 투지를 불태우며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뒤에서 뻗어진 팔이 나를 붙잡았다.

“의진아, 잠깐.”

의아하게 멈춰 서자 성산하가 차근히 내 옷차림을 정리해 줬다. 바지 밖으로 삐죽 빠져나온 옷자락부터 언제 풀었는지 모를 셔츠 단추까지.

‘뭐야, 언제 이렇게…….’

성산하가 옷매무새를 하나하나 꼼꼼히 정리하는 모습을 보다 이게 왜 풀렸는지에까지 생각이 닿자 얼굴이 붉어졌다.

“됐어. 어차피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갈 거야.”

“입혀 달라고?”

“지랄. 꺼지라고.”

가슴팍에 있던 손을 툭 쳐 내며 말했다. 씩 웃은 성산하는 마지막으로 내 어깨를 털어 주고서야 손을 거뒀다.

“차에서 기다릴게. 준비하고 내려와.”

성산하가 나가자마자 급하게 문을 닫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이 쿵쾅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닫힌 문에 등을 기댄 채 한숨과 함께 마른 얼굴을 쓸었다.

“씨발, 별 이상한 손버릇이 들어서.”

키스야 셀 수 없이 많이 해 봐서 괜찮았지만, 얼마 전부터 짙어진 놈의 스킨십이 문제였다.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처음 겪는 낯선 감각이 기분 좋으면서도 부쩍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은 맨살을 만진 것도 모자라 그 새끼가 내 좆까지…!

씨발, 다시 생각하니 아래에 또 힘이 몰렸다.

“……젠장, 젠장!”

일단 성산하는 변태가 맞는 것 같은데, 이래서야 나도 할 말이 없다.

난감한 상황에 입술을 깨문 나는 잠시 고민하다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계단을 네 칸씩 뛰어 내려가자 일 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의진 님, 나오셨어요?”

“너 약속 까먹었다며? 우리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 강의진! 너 어디 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그들을 모두 지나쳐 지하실로 내려간 나는 첫 번째 창고로 들어가 수많은 서랍 칸을 뒤졌다. 구석에서 비쩍 말린 서리 민트를 찾아내 한 움큼 입에 가져갔다. 으적으적 씹자 차가울 정도로 시린 기운이 돌며 아랫배를 간질이던 열기가 순식간에 잠재워졌다.

“휴우…. 살았다.”

드디어 되찾은 평화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손에 반쯤 남은 서리 민트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앞으로 자주 필요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디서나 섭취할 수 있게 가공해 볼까? 쉽게 복용 가능하도록 알약 형태가 좋겠고. 서리 민트만으로도 효능은 충분하니 제조법은 간단하겠네.’

이왕 만드는 김에 공방에서도 팔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내저었다. 상품화를 하려면 승연이도 설득해야 하는데 갑자기 이걸 왜 만들게 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나만 먹자.

다행히 서리 민트는 구하기 힘든 재료가 아니라서 콜렉터나 용병도 필요 없었다.

‘진명이에게 열 박스 정도만 떼 와 달라고 해야지.’

서리 민트만 있다면 갑작스러운 스킨십에도 크게 난감할 일이 없을 테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남은 서리 민트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위로 올라갔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임단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말도 없이 갑자기 뭔데?”

“미안, 미안. 급한 일이 생각나서.”

“의진 님. 저를 부르시지……!”

울상이 되어 다가오던 승연이가 내 근처에 서더니 멈칫하며 갸우뚱한 표정으로 킁킁댔다.

“이, 건… 이 냄새는…… 혹시 서리 민트인가요? 그걸 왜……, 아! 설마 새로운 심상이 떠오르신 겁니까? 새로운 레시피인가요?”

……눈치 빠른 새끼. 알약 형태로 가공할 땐 향이 나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겠다.

눈을 빛내며 묻는 승연이에게 손을 내젓곤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돌렸다.

“그냥 재료 정리 좀 했을 뿐이야. 그보다 성산하는?”

“차 준비하느라 먼저 나갔습니다. 저희도 이제 슬슬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가자. 늦겠다.”

복귀 기자 회견 이후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이거나 작은 인터뷰조차도 응하지 않아서 그런지 약이 바짝 오른 기자들과 대중들은 매일같이 공방에 몰려들었다. 그 덕에 정문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지만 오 년 사이 공방 아래에 다른 저택과 이어지는 통로를 따로 만들어 두었기에 운신에 어려움은 없었다. 이리저리 퍼져 있는 통로 중 한 곳으로 나가자 약속이라도 한 듯 바로 앞에 성산하의 차가 보였다.

다혜와 하정이를 먼저 태운 후 성산하 옆에 철퍼덕 앉았다.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데 옆에 앉은 성산하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내 목에 코끝을 댄 채 깊은숨을 들이쉰 성산하가 중얼거렸다.

“하아……. 뭐야? 향기 좋은데.”

“…으아읏.”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숨에 소름이 끼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움찔 몸을 만 나는 급하게 주머니를 뒤졌다.

씨발, 민트. 민트!!

***

차가 멈춘 곳은 서울 외곽의 한식당이었다. 공방 사람들과 이렇게 멀리 나와 만난 것이 처음이라 의아했지만 마냥 기분 좋은 채로 차에서 내렸다. 대문을 지나 내부로 발을 들이자 겨울인데도 푸른 잔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와아! 언니 저기 연못도 있어!”

“진짜 예쁘다. 가서 사진 찍을래?”

“응!”

다혜와 하정이가 연못을 향해 달려갔다. 난간은 보이지 않고 자연석으로만 이뤄진 연못이 조금 위험해 보여 손을 뻗는데 성산하가 타이밍 좋게 둘을 따라갔다.

내가 없던 동안 꽤 친해진 듯한 셋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은근히 착하다니까. 저럴 때 보면 사나랑 똑같은데.’

정원을 가로질러 난 길을 따라 설렁설렁 걷는데 모퉁이 뒤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서로 웃고 떠들다 나와 마주치자 급히 한쪽으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맞춰 입은 한복이 보기 좋아 우리 공방도 유니폼이나 제작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는데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등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 맞지? 강… 진……!”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내 이름만은 똑똑히 들렸다. 오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인지도에 마냥 만족스러워하던 중 말소리가 이어졌다.

“……하랑 같이 왔잖아.”

“둘이 정말 사귀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맞다니까!”

“대박…. 어느 룸이지? 지훈이 불러서…….”

귀를 의심하며 뒤를 돌아보자 나와 눈이 마주친 이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치듯 사라졌다. 순식간에 혼자 남은 나는 멍청히 서서 직원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성산하랑 뭐가 어째?”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내가 이상했는지 성산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의진아?”

내 볼을 감싸 들어 올리곤 눈을 맞추며 무슨 일이냐 묻는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성산하랑 내가?’

아무 말 없이 멀끔한 얼굴을 보며 골몰하자 성산하의 미간이 좁혀졌다. 곧 직원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경 쓰여서 그래? 사람 보낼게.”

“…됐어. 그런 거 아냐.”

“정말 괜찮아? 이상한데.”

성산하의 손에서 얼굴을 빼내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별일 아니라고. 너 바쁘다며. 안 가 봐도 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성산하는 한숨과 함께 잡은 손을 놓았다.

“들어가. 나중에 연락할게.”

성산하가 먼저 돌아가고, 나는 다혜와 하정이를 데리고 본관으로 향했다. 안내받은 커다란 방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던 진명이와 다인 누나가 일어나 우리를 반겼다.

“의진 님. 오셨어요?”

“언니!!”

“응. 다혜야. 하정이랑 이리 와서 앉아. 의진 님께선 이쪽으로 앉으시구요. 산하 님도 같이 오시는 거 아니었나요?”

“성산하는 먼저 갔어. 바쁘대.”

승연이 옆의 빈자리에 털썩 앉으며 답했다.

우리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들이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의진 님. 이것도 드셔 보세요.”

“사장님. 여기 이것도 맛있어요.”

“아저씨 이거 먹어 봤어요? 엄청 맛있는데. 빨리 먹어 봐요.”

사방에서 날아드는 반찬들을 받아먹고, 밥도 두 공기나 비우고 나서야 더는 먹지 못할 것 같아 수저를 내려놓았다.

‘맛있다. 성산하도 잘 먹었을 텐데.’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을 때 다인 누나가 우리에게 각자의 이름이 적힌 새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내 이름이 쓰인 봉투를 의아하게 받아 들었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이 좋았다.

“이게 뭐야? 백다인… 하트, 김진명? 어어어?”

아무 생각 없이 펼친 봉투에는 ‘백다인 ♥ 김진명’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히 웃고 있는 누나와 따스한 눈빛으로 마주 보고 있는 진명이의 사진이 보였다.

「우리 결혼합니다.」

사진 아래 적힌 문장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든 의문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 나갔다.

“둘이 왜 결혼해?”

“네?”

“의, 의진 님…!”

“우와……. 청첩장 받고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처음 봅니다. 사장님.”

묻자마자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웃음이 터진 하얀 누나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돌아보는 승연이. 임단은 혀를 차며 휴지를 던졌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나는 청첩장 사진을 한 번, 맞은 편에 나란히 함께 앉은 다인 누나와 진명이를 다시 한 번 봤다.

“둘이…. 누나랑 진명이랑 사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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