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5.
한참 눈을 감고 안락한 기분을 만끽하다, 슬며시 눈을 떴다. 나를 보고 있던 성산하와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잠이 안 와?”
잠이 다 깬 지가 언젠데. 그게 누구 때문인데.
아직 술기운이 남아 몽롱했지만 앞에 성산하를 두고 있자니 아까부터 나를 괴롭히던 고민거리가 다시 슬며시 떠올랐다.
한식당에서부터 자기 전까지 머릿속을 점거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생각. 혼자 끙끙 앓기만 하는 것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앞에 해답지가 뻔히 놓여 있는데 나 혼자 고민할 필요가 있나?
망설임은 짧았다. 성산하를 올려다본 채로 떠보듯 물었다.
“성산하. 우린…… 친구지?”
넌지시 꺼낸 말에 다정하던 성산하의 표정이 굳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내 의중을 가늠하듯 바라보던 놈의 입술이 비뚤어졌다.
“갑자기 그딴 생각은 왜 들었을까.”
작게 중얼거린 성산하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강의진. 네가 보기엔 어떤데. 우리가 친구야?”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그야 당연히 친…….”
“대답 잘하는 게 좋을걸.”
내 입을 막으려는 듯 입술을 겹쳐 왔다.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라기도 잠시, 술기운에 둥둥 뜨는 나른함과 입술을 벌려 내고, 혀를 감싸는 키스가 기분이 좋아 손을 들어 놈의 목을 잡아당겼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오자마자 성산하는 몸을 물렸다. 천천히 입술을 떼며 멀어지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자 촉촉이 젖은 입술이 씩 웃으며 호선을 그렸다.
“응? 의진아. 대답해야지. 너랑 내가 친구냐고?”
얼굴은 웃고 있지만 차가운 목소리에 움찔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성산하가 손을 뻗어 가슴을 밀며 다시 눕히고는 대충 꿰어 놨던 잠옷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가, 갑자기 왜 그러냐.”
“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 주려고. 그러니까 친구 같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지.”
이쯤 되자 모를 수가 없었다. 성산하 개빡쳤다. 하지만 대체 어떤 점이 놈의 심기를 건드린 건지 모르겠다.
어느새 훤히 드러난 가슴팍에 단추를 푸는 손을 제지하려 했지만 놈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당황해 다급히 소리쳤다.
“난 그냥 궁금해서…, 썅! 왜 화내는데?”
“화를 내? 내가?”
“그래. 씨발. 지금…. 지금 나한테 화내고 있잖아!”
입 밖으로 내뱉자 더 억울해졌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가슴팍을 누른 손을 잡은 채 노려보자 멈칫한 성산하는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 곧 다시 다물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감정을 갈무리한 성산하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강압적으로 누르고 있던 명치에서 손을 떼고 내 볼을 쓰다듬었다.
“미안.”
“…….”
“그러니까 선 긋지 마. 서운하잖아.”
볼에서부터 따듯한 기운이 감돌더니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술기운이 단숨에 사라졌다. 곧이어 가슴 위에 성산하의 손이 닿자 방금 전 억눌러 둔탁하게 느껴지던 통증마저 사라졌다.
“이만 자. 재워 줄게.”
스킬을 쓰려는 성산하의 손을 다급히 잡아챘다.
“내가 그딴 걸 언제 그었는데.”
“……응?”
“난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우리가 무슨 사인지.”
벌떡 몸을 일으켜 얼빠진 표정으로 앞에 있는 성산하의 얼굴을 마주 봤다.
“그래서……. 친구 다음은 뭔데?”
***
상의를 파고드는 손길에 피하듯 허리를 비틀었다. 가슴팍을 퍽 치자 작은 웃음이 맞닿은 입술을 타고 전해졌다. 커다랗고 부드러운 손이 등허리를 쓸고 올라와 등 전체를 감싸 안았다.
기분 좋은 키스와 함께 맨살에 닿는 감각이 너무 자극적이라 아래에 잔뜩 열이 올랐다. 무릎을 세워 성산하의 몸과 내 사이에 약간의 틈이라도 벌리려 했지만 크라켄 빨판처럼 달라붙는 성산하를 떼 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발기했다는 것을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젠장, 서리 민트를 먹어야…….’
온 힘을 다해 성산하를 밀어 냈다.
“성, 산하…! 비켜 봐, 아읏. 나 잠깐 어디 좀…….”
“으응. 왜. 어딜 가게.”
“작업실에…. 놓고 온 게 있……. 야!!”
“쉿, 애들 들을라.”
성산하를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손을 내린 놈이 내…, 내 민감하고 사적인 곳을 덥썩 잡아 쥔 것이다!
“지금 뭐, 뭐 하는 짓… 큭, 놔!”
성산하가 귓불을 살짝 깨물며 속삭였다.
“놔주면, 또 민트 먹으러 가게?”
“씨…팔, 너 다 알고…. 으아… 읏.”
바지 위로 은근하게 쓸어 올리는 손에 숨을 삼켰다. 약점이 잡힌 사람처럼 그대로 얼어붙어 놈의 옷자락을 잡은 손에만 힘을 주자 성산하가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네 일인데 그럼. 다 알고 있지.”
“비열한 새끼. 놔, 놓으란…….”
순간 떨어진 손에 안도의 한숨을 느끼기도 전에, 몸을 내게 바짝 붙인 성산하가 양손으로 허리와 엉덩이를 잡아당겼다. 허벅지 위로 뜨겁고 부피감 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무시할 수 없는 열감에 눈을 크게 떴다. 곧 서로의 것이 얇은 천 쪼가리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비벼졌다. 다급히 성산하의 옷자락을 잡았다. 너무 자극적이라 버틸 수가 없었다.
성산하가 살살 허리 짓 하며 물었다.
“하지 마?”
“큭…….”
“대답이 없네… 해도 돼?”
이 개자식……. 얄미워서 밀어 버리고 싶었지만 기분이 좋은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자 성산하가 속삭였다.
“의진아 친구 다음이면, 훨씬 더 가까워져도 되는 관계잖아.”
“…윽……. 그게 뭔, 데 새끼야.”
“아직도 모르면 곤란한데.”
“몰라. 모른다고. 씹….”
성산하가 더 힘을 줘 비볐다. 팬티 안에 갇힌 성기가 답답해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해 뒤스르다 세게 빗겨져 맞붙은 성기가 강렬하게 압박되자 눈앞에 별이 튀었다.
“하윽…!”
“모르면 알아내. 네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으니까.”
바지 틈으로 파고들어 엉덩이를 잡는 손에 당황해 성산하의 소매를 잡았다. 다정히 웃은 성산하가 내 팔을 잡아 제 몸을 두르게 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세워 밀어 내려 했지만 외려 성산하가 오금을 잡아 그대로 밀어 올렸다. 우스운 꼴에 몸을 버둥거렸지만 단단히 잡은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활짝 벌려진 다리 사이로 더 가까이 몸을 붙인 성산하가 입을 맞췄다.
“윽, 아윽.”
거센 허리 짓에 가누지 못한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직물이 비벼지는 소리와 귓가에 스치는 성산하의 거친 숨소리가 머리를 가득 메웠다. 몸이 점점 위로 밀렸다.
흥분한 곳에 가해지는 마찰과 답답한 구속, 더운 공기까지. 쾌감에 머리가 번뜩였다. 그 모든 것이 극에 달했을 때, 아프도록 구속하고 있던 바지가 끌어 내려졌다.
선뜩한 찬 공기에 놀라기도 전에 뜨겁고 커다란 손이 내 성기를 덥석 잡았다. 익숙지 않은 감각에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자비 없이 잡고 흔드는 손길에 허리가 뒤틀렸다. 성산하가 뒤로 한껏 젖혀져 드러난 목덜미를 콰득 물자 동시에 놈의 손으로 사정했다. 탈력감에 몸이 축 늘어졌다.
“빠르네. 의진이.”
“…개…새끼야!”
주먹을 말아 쥐고, 놈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
타닥타닥 타는 나무 위로 일렁이는 불길을 멍하니 바라봤다. 재료가 들어가 하얗게 이는 불길이 왠지 성산하 같다는 생각이 멍하니 들었다. 뜨겁고, 새하얗던 어제의 기억과 꼭 닮아 있었다.
밤에 있었던 일이 꼭 꿈같았다. 그러니까, 성산하와 한 섹스 말이다.
새 스킬을 배운 것처럼, 신기하고 한층 더 성장한 기분이었다.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라고 하면…….
“의, 의진 님! 재료가 탑니다!”
“아.”
화들짝 놀란 승연이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후다닥 달려와 화력을 줄인 승연이가 나를 걱정스레 돌아봤다.
“의진 님.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없어. …미안.”
“정말 아무 일도 없으신 것 맞나요? 피곤하시면 스케줄 조정을…….”
“괜찮다니까. 잠깐 다른 생각을 했을 뿐이야. 신경 쓰지 마.”
안절부절못하는 다람쥐의 머리를 푹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재료 준비는 이쯤 하면 됐고. 이제 남은 게 뭐더라?”
“네. 가장 급하게는 점심 전에 결재해서 넘길 프로젝트들이 네 개 있고, 서브 공방들 준비가 완료되어 작업실에 최종 합격한 작업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틀 후부터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 오늘 한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또 다인 씨가 주문한 답례품 품목도 정해야 합니다. 아, 이초 님과 가빈 씨께서 저녁에 오신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곧 있을 은하나루 개막을 위한 인터뷰와 이미지 상담 같은데요.”
“윽…….”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 나오는 일정은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평생 양껏 포션 제작만 하게 해 주겠다며 꼬신 성산하에게 낚인 게 잘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