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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6화 (23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6.

내 공방이 있는 동쪽 거리는 예전 그날부터 발전하기 시작해 이제는 기라성 같은 유명 공방들이 모인 집결지가 되었고, 얼마 전 새로운 거리 이름도 은하나루로 결정 난 상태였다. 은하나루 공개와 동시에 우리 공방의 재오픈도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대기업 회장님 할래, 조그만 구멍가게 사장 할래, 하는 성산하의 도발에 넘어가 우리는 정식으로 업무 협약을 맺고 천랑의 파트너 공방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성산하가 미리부터 준비해 둔 부지에 공방을 확장하며 직원도 몇십 명이 늘어났고, 공방 전반의 운영 방향과 마케팅을 담당해 줄 새로운 디렉터 가빈 누나와도 함께하게 됐다.

누나는 오자마자 포션을 이용한 디저트 개발과 수강생 모집, 세계 각국과 협약을 맺은 조디악 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했다. 별 해괴한 짓을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기념관의 일 년 치 표가 모두 매진되었단 말을 듣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방으로 확장되는 포션 사업과 내 밑에서 일하고 싶다고 줄을 지은 포션 메이커들. 그만큼의 재료 수급을 위해 모집할 콜렉터와 용병, 다른 일들을 맡을 직원까지 생기다 보니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인장을 찍어 대도 끝나지 않는 서류의 향연에 나는 이 산더미 같은 일에서 발을 빼기로 결심했다. 바로 이 자리에 아주 적당하고 믿음직스러운 다람쥐를 이용하는 거다.

내가 없는 5년간 공방의 비어 있던 이름부터 작은 집기까지 그대로 둔 채 충실하게 자리를 지킨 승연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마땅히 그럴 만한 자격도 있었고. 결심한 나는 곧바로 승연이를 사장으로 승진시켜 버렸다. 승연이의 눈물 젖은 반항이 있었지만 순탄히 도장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럴 때면, 정말 승연이에게 경영 일체를 넘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어제도 포션 잡을 새 없이 일을 처리했는데 왜 오늘 일이 더 많아진 거냐고.

넌더리 내며 손을 내저었다.

“최종 면접자는 안 봐도 돼. 네가 어련히 잘했겠지.”

“그, 그치만….”

“나는 너 믿어.”

“의진 님!!”

그렁그렁한 눈이 되어 바라보는 다람쥐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발소리가 서둘러 뒤를 따랐다.

사무실로 올라가 창밖을 내다보자 담 너머로 바글바글한 기자들이 보였다.

“은하나루 오픈하면 저것들도 좀 덜해지겠지? 손님은 아무도 없어?”

“네. 그럴 겁니다. 주변 공방들도 은하나루 오픈 일에 맞추려고 모두 문을 닫았거든요. 관계자가 아니라면 사람이 올 일은 없습니다.”

은하나루가 열리면 공방도 운영을 시작한다. 그때 미뤄 왔던 인터뷰들도 진행한다고 했으니까 지금보단 관심도 덜해지겠지.

하루빨리 손님들을 만나 볼 생각에 신이 났다. 그 전에 새로운 포션도 개발하고 싶은데…….

“의진 님. 여기, 오늘 보셔야 할 프로젝트입니다.”

어마어마한 두께의 서류들에 혀를 내두르며 책상에 털썩 앉았다. 마법 인장을 쾅쾅 찍거나 쓸모없는 것들은 파쇄기에 갈아 버리며 다인 누나의 의뢰로 만들 포션에 관해 의논했다.

“다인 누나 결혼식이니까 특별한 포션이 필요하겠지? 뭐로 하면 재미있을까?”

“재미요? 으음…. 버프 효능을 올리는 건 어떠신…? 하하, 재미없겠죠……. 죄송합니다. 도무지 재미있는 포션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하고 재미있는 거! 예를 들면, 머리 색이 랜덤으로 바뀌는 거야. 아니면 등급에 따라 이펙트가 생겨나는 건 어때. S급은 황금색, A급은 붉은색…. 이런 식으로 말야.”

기발한 생각에 눈을 빛내며 물어보자 승연이가 입술을 달싹이다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정말 재, 재치 있지만, 너무 놀라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지……. 하객의 반절은 일반인이라고 하니까요.”

“맞다. 그럼 일반인에게도 먹히는 포션을 만들어 볼까? 작은 스킬 같은 걸 사용할 수 있도록 일회성 버프 포션을 만드는 거야!”

“이, 일반인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도록요? 그게 가, 가능한 일인가요? 애초에 비각성자들에게는 포션 자체가 통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더 재밌지 않을까? 뭐, 비각성자들은 마나가 없으니 스킬을 쓸 수 없겠지만 포션의 작용으로 비슷한 효과를 이끌어 내는 거야. 음……. 저주가 해독될 때 생기는 이펙트를 이용하는 건 어때? 시간차로 디버프를 걸었다 해제시키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몰라.”

“확실히 특별하긴 합니다. 다만 포션 자체가 들지가 문제인데……. 만약 비각성자에게도 통하는 포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발견이 될…….”

홀린 듯 중얼거리던 승연이가 파드득 떨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안 됩니다. 의진 님. 비각성자들에게 너무 자극적이에요. 진명이 조부모님께서도 오실 텐데.”

“……쳇.”

생각할수록 어렵다. 데이지 상가 노부부도, 일반인들도 놀라지 않으면서 특별한 포션이라니.

“…그렇고 그런 힐링 포션은 싫다고. 이미 다들 하는 거라며.”

작게 투덜대자 연승연이 고민하듯 제안했다.

“그렇다면 포션을 두 개 넣으면 되니까, 2구짜리 상자에 하나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힐링 포션을 넣고 다른 하나는 조금, 아주 조금만 특별한 것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아직 몇 달 기한이 있으니 조금 더 고민해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어렵네. 아, 승연아. 의진환? 이게 뭐냐.”

“아 그거……. 이번에 가빈 디렉터님이 새로 제안하신 건데, 포션을 벗어나 환단 형태로 제조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공진단, 청심환, 이런 것처럼요.”

“그러니까, 포션을 고체 형식으로 만들잔 말이지?”

“고체화된 포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 포션에 비해 효능이 떨어지는데……. 효능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씀은 드렸는데 다시 제안하신 것 같습니다.”

“음. 괜찮네. 한번 해 볼게. 이거 승인.”

“너, 너무 까다롭지 않을까요?”

“가능한 종류들이 있을지 몰라. 한번 연구해 보지 뭐.”

쾅. 마법 인장을 찍었다. 마지막 서류까지 끝낸 후 손을 털고 일어났다.

“서류 끝났고 답례품도 일단은 연기고. 직원들은 네가 보기로 했고. 이제 저녁까지만 돌아오면 되는 거지?”

“네……. 선산 가시나요?”

“응.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니요. 없……. 아, 은꽃세이지랑 아스브모라의 뿌리 30그램이면 될 것 같습니다.”

가져오겠다 답하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복도에 빼꼼 얼굴을 내민 채 구름이를 크게 불렀다.

“구름아! 산 가자! 구름이 산!!”

“…….”

“안 오면 나 혼자 간다!”

“메에에에!!”

어디서 놀고 있던 건지 저 멀리서 작게 구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각거리는 잰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문이 열리고 구름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걸 봤는지 총총총 달려와 애교 부리듯 다리에 이마를 박았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네…! 다녀오세요.”

‘선산의 주인’ 스킬을 사용하자 허공에 황금빛 문이 그려졌다. 승연이를 뒤로 하고 발을 들이자 구름이도 자연스레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쾌청한 하늘을 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켰다.

“후아, 공기 좋고……. 이제 일 하러 갈까?”

“메에.”

흐뭇하게 웃으며 온갖 재료들이 자라나는 내 약산을 천천히 걷고 있는데 신이 난 구름이가 앞질러 달려갔다. 마법 재료들을 섭취하는 구름이에게 선산은 뷔페나 다름없었다. 풀숲에 박혀 씰룩이는 하얀 엉덩이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그래. 많이 먹어라.”

“메에에에.”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그때그때 채집하며 오두막으로 향했다. 산어귀 아늑한 곳에 숨겨진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꺼지지 않는 불로 오랜 기간 끓이는 약초 향이 나를 반겼다. 겉옷을 벗고 작업대로 다가가려는데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징 울렸다.

「성산하 : 오늘 저녁에 데이트 할까?」

별생각 없이 확인한 문자의 발신인이 성산하라는 것을 알자마자 평온하던 심장이 요동쳤다. 성산하가 데이트 운운하던 게 처음도 아닌데, 평소라면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 오늘따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대체 어쩌자는 건데.”

성산하가 바라는 게 대체 뭐지? 혼자서 고민하는 건 직성에 맞지 않았지만 직접 물어봤다가 그 사달이 났으니 다른 수가 없었다.

‘그 새끼는 날 좋아하는 거야, 아닌 거야.’

애인이라는 거, 고민할수록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관계였지만 한번 물꼬를 트니 욕심이 났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그 타이틀을 가질 수 있냐는 건데.

결국 재료들을 치워 둔 채 휴대폰을 들었다. 인터넷을 누르자마자 뜨는 사이트에 들어가 ‘친구 다음 관계’를 검색하자 세 번째 게시글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제목 : 다시 친구할 수 있나요? 친구가 아니면 어떡해 되는지 아시는분????

친구가 소문내서 좋아하는애한테 제가 좋아한다는거 들켯어요ㅠㅜㅠ 옛날에 손은 잡긴 했는데 이 다음은 어떻해해야하나요?

답변 : 감정이 있다는 걸 알게된 이상 둘은 절대 전처럼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다시 제대로 고백해야죠. 친구 같은 소리 하면서 어물쩡 넘어가는거 극혐입니다. 남자답게 정식으로 고백하고 결과를 기다리세요. 사귀던가 차이던가. 그리고 남자답게 승복하세요.

댓글 (2)

-저 여잔데요.

└ 아 ㅈㅅ

“정식으로 고백…….”

고백하는 방법을 검색하자 여러 방법이 줄줄이 나왔다. 중간중간 장난스러운 것들도 섞여 있어 어느 것이 진짜인지 판별하기가 힘들었다. 누구는 무조건 값지고 비싼 선물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누구는 초장부터 너무 비싼 선물을 주면 부담스러워서 거절할 수도 있다고 했다.

거절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절대 거절당하지 않아야지. 스크롤을 쭉쭉 내리며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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