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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9화 (24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9.

그러나 예상했던 고통 대신 느껴진 것은 얼굴과 가슴에 흩뿌려지는 차가운 거품이었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내 턱 바로 아래 꽉 쥔 성산하의 주먹이 보였다.

“하아, 하…….”

“서, 성산하.”

머리에서 뚝뚝 샴페인을 흘리는 성산하가 내 얼굴을 잡고 돌리며 걱정스레 물었다.

“너 괜찮아?”

“어어……. 존나, 무서운 거였네. 이거.”

그 찰나의 순간에 몸을 던져 코르크를 잡아낸 성산하 덕에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테이블 위의 접시며 잔이 죄다 떨어져 깨져 버리고 나랑 성산하는 샴페인에 홀딱 젖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주변과 반도 남지 않은 샴페인을 보다 중얼거렸다.

“……미안.”

“…풉, 아하하하.”

성산하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촉촉이 젖어 웃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성산하가 얼굴을 내려 내 입술을 핥았다.

“읏.”

“귀엽긴. 기죽어서는…….”

성산하는 입술뿐 아니라 턱 주변이며 볼까지, 샴페인이 묻은 모든 곳을 핥았다. 간지러움에 몸을 움츠리자 킥킥대며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맛있다. 의진아.”

“뭐, 하는 거야? 개새끼도 아니고….”

성산하는 말없이 고개 숙여 목에 입을 맞췄다. 목을 길게 핥다 혀에 걸린 울대를 머금고 빨아 올리는 느낌이 이상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리저리 피했지만 입술을 뗄 생각을 않는 놈 때문에 고민하다 키스하면 다른 곳은 못 핥겠지 하는 심산으로 양 볼을 잡았다. 머리를 당겨 입을 맞추자 성산하 역시 장난질은 그만할 생각인지 단숨에 입술을 집어삼켰다.

커다란 손이 머리를 헤집고 들어와 그대로 뒤통수를 받쳤다. 너른 등에 팔을 두르며 눈을 감자 내 위로 성산하의 몸이 겹쳐졌다. 성산하와 소파 사이에 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지만 그 무게감이 적당히 기분 좋아 밀어 내지 않았다.

술 한 잔 마시지 못했는데도 키스에서는 씁쓸한 술맛이 났다. 내 입속을 제집처럼 휘젓는 혀를 빨자 기다렸다는 듯 휘감아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얽었다. 기분 좋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뜨거운 혀가 맞닿아 비벼지는 게 좋았다. 이상하게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입천장을 단단한 혀끝이 스치며 꾹꾹 눌러 주는 것도 좋았다. 몇 번이고 섞이는 서로의 호흡이 합쳐지는 것도 좋았다.

움찔움찔 아랫배가 조여 오며 점점 성기에 힘이 몰렸다. 어느샌가 단단해진 성산하의 것도 내 허벅지에 문질러지고 있었다.

‘또 섹스하는 건가? 어제처럼?’

긴장감과 묘한 기대감에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러나 성산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떨어진 입술에 아쉬움을 흘리기도 전에 쪽 하고 재차 입 맞춘 성산하가 귓가에 속삭였다.

“이만 씻어야겠다.”

“씻, 어?”

이대로 그만하는 거야? 당황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외려 성산하는 담백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씻고 나서 마시면 되니까. 코너 돌면 욕실 있어. 밑에 유리 조심하고. 응?”

꼬맹이들 대하듯 어르는 성산하를 멀뚱히 올려다봤다.

물론 푹 젖어 찝찝한 탓에 씻긴 해야 했지만……. 이유 모를 불만에 입술이 퉁명스레 삐져나왔다. 엉덩이를 두드리며 재촉하는 탓에 결국 몸을 일으키며 성산하를 돌아봤다.

“너는?”

“여기 정리하고 위층 가서 씻을게.”

“……알았어.”

젠장. 안 그래도 젖은 바지가 팽팽해져 굉장히 불편했다. 어기적거리며 걷자 뒤에서 큭큭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

부르르 떨며 아직도 샴페인 향이 나는 머리에 샴푸를 문질렀다. 거품을 내자마자 욕실을 가득 채우는 성산하 냄새에 애써 가라앉힌 아래에 다시 피가 몰렸다.

“……씹, 민트 가져올걸.”

저번에 성산하에게 들킨 뒤 괜한 민망함에 서랍 안쪽에 처박아 두었던 것이 이제 와 후회됐다. 역시 서리 민트는 필수품이다.

다행히 조금 차가울 정도의 물을 맞자 흥분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지금 몇 시지?’

성산하가 다시 술을 마시자고 하긴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 갈 거라면 일찍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내일 일정도 있고 성산하의 집에서 더 할 일도 없으니…… 까, 어라? 잠깐.

거품을 씻어 내리며 생각하던 나는 문득 이 큰 집에 오직 성산하와 나 둘뿐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우리 둘뿐이라면 그건 바로…….

“고백 타이밍!”

나도 모르게 소리 내 말해 버리곤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쏴- 하고 쏟아지는 물줄기가 정적을 채웠다.

인벤토리에 꽃과 반지도 있고, 송아 누나가 몇 번이고 강조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 없이 조용한 곳에 성산하랑 나 둘만 있잖아! 지금이 송아 누나가 가르쳐 준, 삼박자가 다 갖춰진 고백하기 좋은 적기였다. 언제든 고백할 수 있게 꽃과 반지를 부러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아이템들로만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역시 난 철두철미하다니까.

성산하가 다 씻기 전에 먼저 나가서 준비를 해야 한다. 초조한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후다닥 샤워를 마쳤다.

문 앞에 개어진 하얀 반팔 티와 면바지를 꿰입으며 거실로 나가자 그새 정리를 마쳤는지 아까의 난리통이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다. 기회다 싶어 눈을 빛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인벤토리에서 꽃 한 아름과 반지를 꺼냈다. 일부러 모양과 색이 예쁜 것으로만 골라 주문한 보람이 있게 은은하게 반짝이는 아우라를 풍기는 꽃들을 보자 기분이 좋았다. 성산하가 받으면 분명 잘 어울릴 테다.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꽃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머릿속으로 고백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다.

‘성산하가 내려오면 꽃을 보고 놀라겠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은 녀석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안겨 주는 거야. 그리고 반지를 꺼내 한쪽 무릎을 꿇고……. 잠깐, 어느 쪽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민하다 손에 든 꽃들을 소파에 내려놓고 직접 무릎을 꿇어 봤다. 반지를 주는 척 팔을 뻗어 보며 이렇게 저렇게 해 보다 왼쪽 무릎을 꿇기로 결정했다. 후련한 마음으로 일어나 옆을 돌아보는데 꽃들로 가득한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소파 위에 널브러진 수십 송이의 꽃들. 너저분한 꼴을 멍청하게 내려다봤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꽃 무더기지 꽃다발이 아니라는 것을.

인벤토리에 넣기 위해 재료 그대로를 준비하느라 묶거나 포장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당황해 빈손을 쥐었다 폈다.

“씨발, 이래서야 꽃다발을 줄 수가 없잖아…….”

이대로라면 고백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 꽃다발은 일차적으로 성산하를 당황하게 만들어 무력화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선봉장이자 송아 누나가 강조한 필수 준비물이다. 그런 꽃다발 없이는 고백을 성공할 수 없었다!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가 찬장을 열어 보고 선반을 기웃거렸지만 밀폐 용기나 종이 봉투 따위만 나왔지 꽃을 포장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소득 없이 거실로 돌아온 나는 쓸데없이 예쁜 꽃들을 보며 머리를 헤집었다.

“……젠장, 젠장!”

이런 실수를 하다니. 공방이었다면 무슨 수라도 썼을 텐데 성산하 집이라 당장 어떻게 할 방법도 없고.

고백은 처음이었지만 이대로 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랬다간 ‘거절’을 당할 수도 있다. 내가 찾아본 정보에 의하며 첫 번째 고백이 실패했을 때, 그다음 시도부터는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C급 퀘스트가 2회차부터는 A급으로 변모하는 거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린 이미 섹스까지 한 사이라서 고백을 거절당하면 최악의 경우, 연인이 아닌 ‘섹스 파트너’라는 좆같이 문란한 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단 말이다. 그럼 파국이다!

‘씨발, 거절은 절대 당하면 안 돼. ……아깝지만 고백은 다음에 하는 수밖에.’

한껏 기대하고 있다가 포기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꽃을 받고 웃는 성산하의 얼굴도 보고 싶었는데.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기 위해 소파에 펼쳐진 꽃들을 한데 모아 들어 올렸다. 훅 풍기는 달콤한 향기에 아쉬운 한숨을 흘리며 인벤토리를 여는데 뒤에서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들렸다.

“웬 꽃이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가벼운 옷차림의 성산하가 계단 옆에 서 있었다. 놈의 시선이 내 품 안의 꽃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응? 의진아.”

성산하가 날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어, 어?”

씨발, 망했다. 망했다!! 꽃을 들켰으니 나중에 꽃다발을 주더라도 놀라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재차 묻는 놈의 말에 시선을 피하며 어색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아냐, 아무것도. 그냥 재룐데 정리를……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니긴.”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려던 손목을 홱 낚아챈 성산하가 얄미울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가 봐도 내 건데.”

“읏…….”

이렇게 허접한 걸 줘선 안 된다. 당장 반박하고 손을 뿌리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날 보며 둥글게 휘는 눈매가, 확신에 가득 찬 눈동자가. 꽃들의 아우라가 은은하게 드리워 빛나는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럴 수가 없었다.

스르르 힘이 풀린 손에서 꽃을 죄다 모아 가져간 성산하가 한가운데 얼굴을 묻고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이건 포장도 못, 했고, 꽃다발도 아닌데.”

“상관없어.”

“……나중에 더 좋은 거 줄 수 있는데.”

중얼거리며 손끝을 꿈지럭댔다.

행복하게 웃는 성산하의 얼굴을 보자 여태껏 궁리했던 완벽함을 꾀하던 계획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긴장한 손을 쥐었다 폈다. 애송이처럼 손에 땀이 났다.

성산하가 내 앞에 있고, 웃고 있고.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냅다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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