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10.
커다란 꽃에 가려 한발 늦게 알아챈 성산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두 손으로 반지 케이스를 내밀며 소리쳤다.
“성산하! 나랑 연애하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얼빠진 낯의 성산하가 앓듯이 중얼거렸다.
“강의진 너…….”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성산하의 표정을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모르겠다. 싫어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웃지도 않고……. 설마 거절하려는 건 아니겠지?
왈칵 불안한 마음이 들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잘해 줄게. 그리고…….”
더듬더듬 뱉던 말은 달려들듯 껴안는 성산하로 인해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나 소중히 들고 있던 꽃을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무릎 꿇은 성산하가 두 팔로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어찌나 힘껏 달려들던지 휘청이다 누워 버릴 뻔한 몸을 겨우 팔을 짚어 버텨 내야 했다.
귓가에 무섭도록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의진이 지금 형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한 거야?”
“……응?”
“형 없이는 못 살겠다고, 그러니 앞으로 평생 함께 하자고?”
목에 입술을 댄 채로 속삭이는 성산하의 말에 얼빠져 눈을 깜빡였다.
이 고백이, 그렇게 되는… 거였나? 그렇게 멀리까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내 옆에는 성산하가 항상 있을 테니까, 시간으로 세면 평생이 되는 거겠지. 심장이 간질거렸다.
“뭐, 그런 셈이지, 으어엇!”
고개를 끄덕이는데 성산하가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직 주지 못한 반지를 떨어트릴 뻔해 놀라 허우적대다 겨우 성산하의 팔을 붙잡았다. 나를 짐짝처럼 어깨에 걸쳐 멘 성산하는 버둥거리는 허벅지까지 한데 모아 잡고선 성큼성큼 걸어 거실을 가로질렀다.
벽에 붙은 줄 알았던 책장을 옆으로 밀자 문이 열리며 안에 숨겨진 방이 나왔다.
성산하는 날 침대에 내려놓기 무섭게 입을 맞췄다. 입을 벌려 내고 혀를 휘감아 빨면서 곧바로 우위를 점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키스에 숨이 달려 헥헥댔지만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세우는 통에 눈앞이 흐려졌다. 피가 몰려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난폭한 키스를 따라가기 벅찼다.
등이며 허리를 쓸어내리던 손이 어느 순간 품이 큰 반팔 티 안으로 파고들었다. 맨살에 뜨거운 손이 닿자 몸에 힘이 들어갔다. 골이 깊어진 근육 사이사이를 덧그리듯 쓰다듬는 손가락에 은근한 쾌감이 피어올랐다. 잡아먹을 것처럼 이어지는 키스 탓인지 이상하게 자극이 세게 느껴져 순식간에 흥분했다.
슬슬 기립하는 아래를 감추려 허리를 비트는데 등허리를 쓰다듬던 손이 미끄러지듯 가슴께로 올라왔다. 평소보다 더 위로 올라온 커다란 손바닥이 가슴을 모으듯 쓸어 올렸다. 남의 손이 닿을 일 없던 곳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해 고갤 돌렸다.
“흐읏. 야……. 아, 거긴…….”
스치는 손가락 사이로 유두가 튕기는 느낌이 이상해 몸을 뒤척이며 싫은 티를 냈지만 목덜미를 잡은 손과 하반신을 누르고 앉은 몸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느리게 입술을 뗀 성산하가 반팔 티를 훌러덩 벗겼다.
“깨끗이 씻었어?”
“뭐? 당연하지…….”
갑자기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성산하가 볼에 쪽 입 맞췄다. 장난 같은 입맞춤마저도 자극적이게 느껴져 눈가를 찡그렸다. 하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턱, 목을 따라 가벼운 입맞춤이 이어졌다.
촉촉하게 젖은 입술이 슬쩍 닿았다 떨어지는 감각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아랫배에 열이 올라 성산하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성산하가 쇄골을 이로 살짝 깨물며 눈웃음쳤다.
“정말이네. 샴페인 맛은 하나도 안 나고……. 하아…, 내 냄새만 나잖아. 네 온몸에서.”
내 복근 위에 손을 얹은 성산하가 입술로 피부를 스치듯 머금으며 점차 아래로 내렸다. 환한 불빛 아래 훤히 드러난 맨살을, 그 위에 몇 번이고 입 맞추는 성산하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진짜, 형이 보내 주려고 했는데.”
“형, 은 무슨…… 아!”
뜨거운 입술이 가슴을, 그것도 정점을 물었다. 몸을 파드득 떨었다. 명치를 꾹 누른 손바닥 때문에 몸을 일으키다 다시 눕혀졌다.
“네가 예쁜 짓만 하잖아. 참기 힘들게.”
“미쳤냐? 그런 데를 왜 빠는데, 변태 새끼야!”
“이거 가지고 변태 소리 듣긴 많이 억울한데.”
장난스레 웃은 성산하가 아프지 않게 이빨로 유두를 물었다. 이렇게 감각이 예민하게 느껴지는 곳인지 처음 알았다.
밀어 내면 되는 걸 아는데도 놈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껏 빨아 대던 입술이 떨어지자 유독 차게 느껴지는 공기에 몸을 움츠렸다.
다정한 손길로 늑골을 쓰다듬던 손이 젖은 끝을 잡아냈다. 손가락에 힘을 줘 잡아내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이상해 허리가 배배 꼬였다. 그사이 성산하가 반대쪽 가슴을 입에 물었다.
“아읏……! 서, 성산하! 이상하다니까!!”
성산하는 일부러 무시하듯 혀를 내어 넓은 면으로 짓누르듯 핥았다. 안으로 집어넣기라도 하려는 듯 혀끝으로 후벼 파는 짓에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손을 뻗었다. 성산하의 양 볼을 붙잡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씨발, 놈은 던전 민달팽이처럼 가슴에 찰싹 붙어선 눈썹만 치켜올렸다. 와중에도 이빨로 잘근 씹는 행태에 몸을 뒤틀며 소리쳤다.
“너 아직 내 고백에 대답 안 했잖아!”
그제야 성산하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반질거리는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길어졌다.
“아아, 대답할 기회도 주는 거였어?”
“뭐라고?”
“난 또. 워낙 터프하게 고백하길래 무조건 승낙해야 하는 줄 알았지.”
입술이 떨어진 것에 안도하기도 잠시, 이어진 성산하의 말에 놀라 놈의 팔을 잡았다.
“무, 무슨 소리야.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설마……. 거절할 거냐?”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묘한 웃음을 지은 성산하는 뭔가를 찾듯 주위를 살피더니 침대 한쪽으로 굴러간 반지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씨발, 거절은 안 돼, 섹스 파트너는 안 되는데!!’
긴장해 바짝 굳은 채 성산하를 바라봤다. 반지를 꺼낸 성산하는 빙글 돌려 보더니 내 손을 잡아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착용자에 맞춰 줄어드는 반지를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다 다른 하나 역시 내게 내밀었다.
“그걸 왜 나한테…….”
설마 이런 식으로 거절하려는 건가 심장이 철렁했다. 동요해 떨리는 눈으로 말없이 시위하자 작게 웃은 성산하가 내 입술 위로 반지를 꾹 눌렀다.
물어. 작은 속삭임에 나도 모르게 반지 끄트머리가 닿은 입술에 힘을 줬다. 성산하가 만족스러운 눈으로 내 얼굴을 훑었다.
“거절은 무슨.”
다정한 손길로 볼을 쓰다듬던 성산하가 반지 사이로 깊숙이 약지를 집어넣으며 그대로 내 얼굴을 한 손에 잡아냈다.
“서로 반지도 끼워 줬으니까, 우리 이제 절대 못 헤어져. 자기야.”
성산하가 고개 숙여 깊게 입을 맞췄다.
희고 고운 네 번째 손가락에 낀 반지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보고 싶던 광경에 흡족하다가도 흉근을 어루만지며 자극하는 통에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바지 위로 느껴지는 자극에 달뜬 숨을 뱉었다.
“읏, 성산, 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꽃들이 어떤 꽃들인지, 반지가 가지고 있는 효능과 송아 누나가 해 줬던 조언. 완벽한 고백을 위해 내가 고민했던 것 같은 일들 말이다. 하지만 입술이 마를 새가 없이 키스를 퍼붓는 성산하 탓에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다. 겨우 꺼낸 말은 혼란스러운 질문뿐이었다.
“원…래 고백이 이게 맞, 아? 나 잘한 거 맞아?”
“응. 당연하지.”
성산하는 작게 웃으며 연거푸 볼에 쪽쪽 입 맞췄다.
“최고였어. 의진아. 이렇게 멋지고 감동적인 고백은 없을걸. 형도 너무 놀라서 그대로 …뻔했잖아.”
“으아읏. …뭐? 방금 뭐라고…….”
“울 뻔했다고.”
성산하가 또다시 입술을 맞대 왔다. 마주 안은 채로 키스하니 틈 없이 부딪히는 중심부가 꽤 신경 쓰였다. 성산하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바지 위로 만지던 손가락을 허리춤에 걸며 속삭였다.
“오늘은 형 못 참아. 무서우면 지금 말해.”
“……참긴 언제 참았다고. 문란한 새끼.”
“너 정말…….”
웃는 성산하를 빤히 바라봤다. 나 역시 할 말이 많았다. 사귀기도 전에 섹스를 먼저 해 버린 탓에 내가 고백을 거절당하고 섹스 파트너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하게 된 거 아니냐고. 그런데도 참았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듣긴 많이 억울했다.
“원래 다른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게 고백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키스도 섹스도 먼저 했으니까…….”
“뭐?”
기가 차다는 듯 웃은 성산하가 내 코끝을 깨물었다.
“아!!”
“강의진. 우리가 섹스를 언제 했어.”
성산하의 물음에 배신당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이 자식…! 설마 모른 척할 셈이냐? 뻔뻔한 행태에 분노하기도 잠시, 정말 기막혀 보이는 성산하를 보자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같이 없던 일인 척하자는 모종의 신호인가?
놈의 의중이 파악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띄엄띄엄 입술을 뗐다.
“했잖아. 어제. 그리고 지, 지금도…….”
서로 맞닿은 아래를 바라보며 말하자 갑자기 성산하가 날 끌어안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목에 얼굴을 파묻고 끅끅대며 웃는 모습에 이쯤 되자 나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산하는 실컷 웃고서야 엉덩이를 당겨 안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우리 의진이 정말 대단하네. 닿지도 않고 섹스를 하고. 혹시 팬티 안에 워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