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13.
내 앞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 주는 성산하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좋았다.’
키스도 그렇게나 좋았는데 더 좋은 게 있을 줄 몰랐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다른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쾌감이었다.
성산하와의 섹스를 다시 생각하자 발끝이 옴찔거렸다.
“다됐다. 춥진 않지?”
고개를 끄덕였다. 수건을 말아 쥐는 성산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자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성산하가 작게 웃었다.
“내가 반지 끼고 있는 게 그렇게 좋아?”
“응. 진짜 좋아. 목줄 채워 놓은 것 같아.”
“큰일이네. 그러면 굉장히 좋다는 건데.”
자기 전, 성산하와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문득 드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혹시 사람들 많은 데서 하는 게 더 좋았을까?”
“어떤 걸?”
“고백 말이야. 원래 천랑 본사 앞에서 하려고 했거든. 서프라이즈로.”
머리를 쓰다듬던 성산하의 손이 멈칫했다.
“꽃도 천 송이 준비하고 밴드도 부르려고 했어. 가장 사람 많을 때 멋있는 옷 입고 고백해서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오늘은 꽃다발도 제대로 못 줬잖아.”
“그랬어?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했어.”
“송아 누나가 절대 하지 말랬어. 사람 많은 것보다 둘만 있는 게 더 좋다고 했거든. 그런데 혹시나 해서.”
성산하가 쿡쿡 웃더니 중얼거렸다.
“연봉 올려 줘야겠네…….”
“그래서 뭐가 더 좋냐고. 솔직히 말해 봐.”
솔직히 말하라곤 했지만 성산하가 군중 앞에서 고백받는 게 로망이었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몸을 돌려 놈을 바라보자 고민하는 척하던 성산하가 날 당겨 안으며 마구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히 지금이지. 바보야. 고백할 때 네 얼굴이 어땠는지 너는 모르지.”
성산하의 말에 무심코 얼굴을 더듬었다. 날 보며 다정히 웃는 눈에 담긴 애정을 읽을 수 있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성산하가 내 손을 가져가 반지 위에 입 맞췄다.
“누구라도 탐낼 얼굴이었으니까. 그건 나만 봐야 해.”
“뭐, 뭐래. 웃기는 소리.”
괜스레 간지러운 기분에 손을 거칠게 빼내다 하반신에 느껴지는 격통에 허리를 짚고 끙끙댔다. 성산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허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제는 힐 해도 되나?”
“포션 먹으면 되긴 하는데…… 지금은 없으니까 해 줘.”
은은한 빛과 함께 따스한 기운이 전신에 퍼졌다. 꽤 아팠던 만큼 힐의 효과도 극명했다. 단번에 사라진 고통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성산하가 머리칼을 넘겨 주며 물었다.
“아까는 왜 안 받겠다고 했어. 안 아파도 됐을 텐데.”
“그렇긴 한데, 좀 아깝잖아.”
“뭐가?”
“너랑 섹스하는데 제대로 다 느끼고 싶었다고. 아픈 것까지도.”
성산하가 잠시 말이 없어졌다. 돌아오지 않는 목소리에 의아하게 고개를 들자 말없이 바라보는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어둡게 반질거리는 눈동자에 선연한 욕망을 읽고는 움찔 상체를 일으켰다.
“너…… 야, 아니야, 아니라고! 나 진짜 피곤해! 자야 돼!”
도망가려는 내 허리를 잡고 주욱 당겨 낸 성산하가 생긋 웃었다.
“포션 마셔.”
“씨발, 야!!”
***
우리 둘 다 늦잠을 자 버렸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앞에 보이는 가슴팍에 얼마나 놀랐던지. 어제 대체 몇 시에 잤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졸린 걸 보면 어지간히 늦은 시간이었을 게 분명했다.
더듬대며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을 찾았다. 당연히 승연이의 전화일 줄 알았는데 막상 손에 잡힌 것은 성산하의 것이었다. 이초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성산…….”
성산하를 부르는 사이 전화가 끊겼다. 휴대폰을 보던 나는 수신 화면이 사라진 자리에 보이는 배경 화면에 멈칫했다.
‘언제 찍은 거지?’
꽃다발을 들고 있는 내 모습. 대체 언제 찍은 건지 기억을 더듬어 보고 있을 때 성산하가 잠에서 깨어났다.
“……의진아?”
“너 이초한테서 전화 왔어.”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건네며 물었다.
“그거 언제 찍은 거야?”
“무슨?”
게슴츠레한 눈으로 화면을 보던 성산하가 싱긋 웃었다.
“……아아. 잘 나왔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월계나루 홍보식 때.”
월계나루 홍보식? 그런 게 있었나.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걸 알아챘는지 성산하가 친절히 한 번 더 짚어 줬다.
“같이 꽃다발 사러 갔잖아.”
“아아! 네가 짭의진한테 속아서 꽃다발 사러 갔을 때잖아?”
“의심 중이었다니까, 자기야.”
성산하가 나를 와락 끌어안고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이마며 얼굴 이곳저곳에 입술을 내리며 잘 잤냐고 묻는 음성에 왜인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따스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성산하가 씻으러 간 사이 침대에 드러누워 밤사이 쌓인 연락을 훑었다. 대부분이 승연이와 진명이에게서 온 연락들이었다.
“흐아아암……. 가서 활력 포션 마셔야겠다.”
졸린 눈으로 승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승연아. 물건 왔어? …응 맞아. 청이가 보낸다고 한 거야. 던전에서 나왔나 봐. 청이랑 제로도 곧 오겠다. 일단 지금 바로 가열 시작해. 온도는 5단계면 될 거야. 나머진 내가 가서 정리할게. 나? 응, 금방 갈 거야.”
전화를 끊고 가빈 누나 연락에 답장을 하는데 씻고 나온 성산하가 반팔을 꿰입으며 다가왔다.
“전화하는 소리 들리던데. 연승연?”
“응. 공방 일 때문에.”
“바빠?”
“조금. 공방 오픈 때문에 가빈 누나가 시간이 없대. 청이랑 제로 복귀하면 다시 연구 시작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 훤히 드러난 성산하의 상체에 잠시 눈길을 뺏겼다. 멋스럽게 두툼한 흉근에 눈이 뾰족해졌다.
‘힐러들은 죄다 비실비실하던데. 진짜 운동 따로 하나? 몰래 좋은 거 챙겨 먹는 거 아니야?’
시선을 느낀 성산하가 피식 웃더니 건성으로 제 가슴팍을 가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침부터 그런 눈이면 부끄러운데.”
“지랄.”
“준비해. 데려다줄게.”
성산하의 말에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났다. 어제 잠들기 전 속옷만 겨우 챙겨입은 터라 갑자기 느껴지는 찬 공기에 살짝 몸을 떠는데 침음을 흘린 성산하가 묘한 표정으로 다가와 볼을 감쌌다.
“의진아, 어디 아픈 덴.”
“있겠냐? 어제 썅, 네놈이 힐을 몇 번이나…….”
밤중의 기억에 괜스레 민망해져 말끝을 흐리는데 성산하가 볼을 쓰다듬던 그대로 손을 늘어트려 힐을 사용했다. 차갑던 살갗 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나 아픈 데 없는데.”
“자국이 너무 많이 남아서.”
고개 숙여 상체를 내려다봤지만 빛이 사라진 자리는 매끈하기만 했다. 성산하는 손을 떼지 않고 자국이 사라진 곳을 매만지며 물었다.
“진짜 형 집으로 안 들어올래?”
“안 된다니까. 포션 만드는 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공방 옆에 집 하나 살 테니까 네가 거기 들어와 살아.”
“그래도 좋고. 방음은 좀 신경 써야겠네?”
“방음은 왜…… 흐으.”
은근히 아래를 쓰다듬는 손길에 허리를 굽히자 성산하가 킥킥댔다.
“이렇게 못 참는데 의진이 귀여운 소리 밖에 다 들리면 어떻게 해.”
“썅, 뒤질래?”
욱하는 마음에 나도 손을 뻗어 놈의 중심을 붙잡았다. 난 단지, 그냥 가볍게 되갚아 줄 생각일 뿐이었는데, 손에 잡힌 단단한 양감에 헛숨을 삼켰다. 성산하가 느긋한 한숨을 뱉었다.
“하아…. 의진아.”
“너, 이거 왜… 뭘 했다고 섰냐…….”
한 발짝 다가온 성산하가 허리를 둘러 안았다. 눈가와 볼, 입꼬리에 입술을 가볍게 내려 연거푸 쪽쪽대던 것이 점점 진득해졌다. 고개를 돌리자 입술이 부딪혔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벌린 입이 맞으며 혀를 섞었다.
계속 몸을 붙이는 성산하에게 밀려 한 발 두 발 뒷걸음질 치다 보니 어느새 다리에 침대가 닿았다. 등허리를 타고 내려온 손이 속옷 안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당황해 놈의 팔을 붙잡았다.
“읏, 성산하……. 너 가야, 가야 한다며!”
“미뤘어.”
“언제?”
“방금.”
다시 달라붙는 몸을 겨우 밀어 냈다. 내가 밀었으면서도 떨어지는 입술에 아쉬움이 든 건 왜인지 모르겠다.
“나…는 못 미뤄. 가야 한다고. 냄비에 재료 올려 놨어.”
“이대로 갈 수 있어?”
바짝 선 중심을 쓸어내리며 속삭이는 목소리에 순간 혹했지만 어제의 끈질기고 집요하던 놈이 떠올라 겨우 고개를 저었다.
“읏, 진짜 안 돼. 너 싸…는 데 오래 걸리잖아.”
성산하가 웃는지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가볍게 입 맞춘 성산하가 나를 침대에 밀어 앉히곤 천천히 무릎을 굽히며 나를 올려다봤다.
“빨리할게.”
“뭐?”
의문보다도 먼저 걸쳐져 있던 속옷이 끄집어 내려졌다. 기다렸다는 듯 튕겨 나오는 성기가 민망해 입술을 깨무는데 성산하가 양손으로 무릎을 잡아 벌리며 중얼거렸다.
“의진이는 다 작네. 골반도 좁고, 엉덩이도 작고.”
“씹, 고추는 크거든.”
“으응. 자지는 크지.”
“씨발 변태 새끼야!!”
이 새끼는 수치도 없나! 얼굴에 화르륵 열이 올랐다.
정말 하려는 건가? 지금이라도 승연이에게 전화해서 가열을 멈추라고 연락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성산하와 섹스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없다는 건 애써 모른 척하며 휴대폰을 찾으려 손을 뒤로 하는데 이상하게 성산하가 일어나지 않고 무릎 꿇은 채로 몸을 가까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