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15.
“응?”
“거기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요. 그제까지만 해도 보지 못했었는데…….”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내려다보는데 가빈 누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 장신구는 괜찮은데 저희 공식적으로 나갈 땐 반지 낀 위치를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웬만하면 지금 당장 바꾸시면 더 좋고요. 파파라치 컷에라도 걸리면 곤란하거든요. 연애 중인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어요.”
“맞는데?”
“네?”
“맞다고. 나 연애하는 거.”
손을 쫙 펼치며 말하자마자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수철이와 승연이가 뛰어 내려왔다.
“의, 의진 님! 그게 무슨,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말했잖아요! 역시. 커플링 맞다니까요!!”
얼빠져 있던 가빈 누나가 더듬더듬 물었다.
“이, 일단 축하드립니다만……. 상대가 누군지 물어도 될까요?”
“성산하.”
가빈 누나가 탄식과 함께 비틀거렸다.
***
“그랬어? 기가빈 많이 놀랐겠네. 그러잖아도 나도 이초에게 연락이 와서 혼났어. 바로 말 안 해 줬다고.”
“으읏…. 흐….”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몰, 몰라 씨발. 다른 소리 말고 빨리…….”
애먼 곳만 스치는 끝에 애가 타 등을 퍽퍽 치자 느긋하게 근처만 배회하던 손가락이 원하던 곳을 꾸욱 누르며 문질렸다. 퍼뜩 떨며 휘청이는 허리를 따듯한 손이 단단히 받쳐 안았다.
“응, 으응…….”
“의진아, 그렇게 좋아? 손 움직이는 것도 잊을 만큼?”
아프지 않게 엉덩이를 때리며 묻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어 고개를 내리자 흐린 시선에 잡힌 두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선액으로 범벅되어 움찔거리는 끝을 바라보다 다시 고쳐 잡고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잠시 멈췄던 성산하가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며 역시 안쪽 작게 부푼 부분을 짓누르며 자극했다.
“읏, 아우……. 좋, 아…….”
“하아……. 이러다 의진이 뒤에 안 만지고는 못, 가면 어떡해?”
“큿, 무슨……. 괜찮, 아. 원래도, 자위 잘 안 해…서, 흐아……!”
밖에 들릴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소리를 참지 못하자 성산하가 입술을 포개 입을 막았다. 마구 새어 나오는 신음을 참고 목 안쪽에서 웅얼대며 헐떡이다 허리를 들썩였다. 손가락이 강하게 내벽을 휘젓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극점만 자극하는 손끝에 큰 숨을 들이켰다.
전신에 힘이 들어가며 뒤에 들어온 손가락을 조였다. 귀두 끝이 움찔거리며 정액을 뱉었다. 시간을 끈 만큼 성산하 역시 머지않아 사정했다. 성산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뜨끈한 정액이 손을 타고 흐르는 걸 멍하니 바라보며 가쁜 숨을 골랐다.
볼에 쪽 입 맞춘 성산하가 몸을 일으켰다. 멍하니 바라보다 놈의 옷깃을 잡았다.
“더, 해도 되는데.”
작게 웃은 성산하가 내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 바빠서 무리하면 안 된다며.”
“그렇긴 한데…….”
은하나루 오픈이 당장 이 주 뒤다. 포션 연구도 진척이 느려 조급하고 공방 일들도 어마어마하게 밀려 있어 오늘 성산하를 보자마자 경고하듯 큰소리쳤기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같이 씻자는 성산하의 말에 함께 욕실에 들어왔다. 작은 크기가 아닌데도 장정 둘이 들어오니 꽉 차는 기분이었다.
욕조에 걸터앉아 머리를 감겨 주는 성산하의 손에 몸을 맡겼다. 야무진 손끝이 꽤 기분 좋았다. 위를 올려다보자 성산하가 급히 거품 묻은 손을 거뒀다.
“오늘 자고 가?”
“자는 거 보고 갈게. 7시 비행기라 새벽에 떠나야 해서.”
“맞다. 너 유럽 간댔지. 언제 오는데?”
“한 일주일 걸릴걸. 며칠 연락 못 받을지도 몰라. 던전에 들어갈 예정이라. ……눈 감아.”
성산하의 말에 눈을 감자 따듯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며 거품이 씻겨졌다. 물이 멎고 얼굴을 닦아 주는 손길에 젖은 속눈썹을 올리자 눈이 마주친 성산하가 작게 입을 벌렸다. 곧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진짜 잘생겼네…….”
“이제 알았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 성산하가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췄다. 양 볼을 잡고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곤 속삭였다.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
주위에 수많은 포션병이 굴러다녔다. 죄다 실패작들이었다.
“젠장……. 의신의 손길!”
<태제헌 - 헌터>
-속성 : 어둠
-상태 : 심정지
-■■■■■■
-?????????????
-치사율 : ?????
<치료법>
►응급 : ????
►완치 : ????
전과 똑같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태제헌의 상태창은 여전히 까맣게 죽어 있었고, 의신의 손길마저 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이상한 글자가 뜨는 걸 보면 ■■■■■와 관련된 일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주호현을 만나 봐야 하나.
“누가 태제헌 아니랄까 봐 존나 까탈스럽게 구네…….”
진이 빠져 뒤로 풀썩 드러누웠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자 슬금슬금 동물들이 내 주위로 몰려왔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종들이나 누가 봐도 일반적이지 않은, 몬스터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 동물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새로 발견된 동굴도 그렇고…… 선산이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후우…….”
그래도 아직 죽은 건 아니니 희망은 있어.
내가 태제헌을 데리고 있다는 건 아직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성산하마저도.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쿡쿡 양심이 찔렸지만 죄책감은 훗날로 미뤄 둔 채였다. 포션을 완성하고 나서, 그때 고민해도 되니까…….
동물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구름이와 한참을 놀아 줬다. 나갈 시간이 됐는지 미리 맞춰 둔 알람 소리가 울려 퍼져 동물들이 후다닥 도망가자 구름이가 발을 굴렀다.
“메에.”
“구름아. 가자. 곧 청이 올 거야.”
“메에에에에!!”
“너도 청이 좋아하잖아. 선산은 내일 또 오면 되니까…….”
구름이를 달래며 휴대폰 알람을 끄는데 성산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성산하 : 도착했어.」
「성산하 : (사진)」
외국 느낌이 물씬 나는 사진에 미소 짓다 나도 주위를 둘러보곤 성난 채 올려다보는 구름이를 찰칵 찍었다. 구름이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나 : 나는 선산 옴」
「나 : (사진)」
잠시 고민하다 잘 다녀오라는 말도 덧붙여 보낸 후에야 문을 열었다.
백양과와 호문쿨루스의 갈비뼈를 구하느라 지구 반대편의 무인도까지 갔다가 몇 주 만에 복귀하는 제로와 청이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해외 출장이 미안하기도 했고 청이가 오랜만에 요청한 포션도 다 완성해 놓은 터라 그걸 전해 줄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났다.
문을 넘어 사무실에 발을 딛자마자 바깥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도착했구나 싶어 후다닥 로비로 달려갔다.
“청아, 제로! 고생했…… 엥, 왜 네가 있냐? 청이랑 제로는?”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은 보고 싶던 내 용병들이 아닌 뚱한 표정의 임단이었다. 당황한 나를 대수롭지 않게 흘겨본 임단이 케이크를 먹으며 말했다.
“우리 청이 어쩔 거야. 너 때문에 제로 자식이랑 사이좋게 공항에 잡혔잖아.”
“잡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승연이가 놀라지 말라며 다급히 손을 저었다.
“소지한 아이템 등급이 높아 심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천랑에서 연락해 해결 중이에요. 심사받는 동안 잠시 발만 묶인 거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어디 있는데?”
“공항에서 잡힌 거라 아직 부에노스아이레스입니다.”
“씨이…….”
나름대로 입출국 절차들을 모두 확인하고 보낸 건데도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했다. 벌써부터 놀리는 제로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돌아오면 휴가 줘야겠네. 더 필요한 재료들은 진명이랑 다인 누나한테 부탁하고…….’
백양과와 호문쿨루스의 갈비뼈는 아직이지만 다른 재료들은 먼저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머릿속으로 바쁘게 계획을 수정하는데 임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결국 성산하랑 사귄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임단이 놀리듯 말했다.
“상, 생? 관…계? 뭐 그런 거라고 하지 않았냐?”
“읏…….”
“친구 이야기라면서요-. 키스는 안 사귀어도 할 수 있다면서요-.”
“야! 그 입 안 다물어? 죽을래?”
“푸하하! 물주먹 제작계면서. 한 대라도 쳐 봐!”
“사, 사장님…. 임단 헌터……! 싸우지 마세요!!”
이상하다, 별일 아닌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민망한지 모르겠다. 씩씩대다 짓궂은 얼굴로 놀리는 임단에게 소리쳤다.
“대체 왜 왔는데? 할 일 없냐?”
“누군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나도 청이 부탁 아니었음 올 일 없거든. 내가 얼마나 바쁜데.”
“청이가 부탁을 했다고?”
“너 오늘 경매인가 뭔가 때문에 공방 나가야 한다며. 경호할 사람 없을 거라면서 청이가 부탁하던데.”
“경매? 그거 오늘 아닌데. 살 재료가 있긴 한데, 등급이 높아서 첫날부터 나올 리가 없…을걸? ……승연아, 설마 올라왔냐?”
후다닥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한 승연이가 고갤 끄덕였다.
“엇, 네! 네, 리스트에 있습니다. 오늘 14번째 순서예요!”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경매 날 중 왜 하필 오늘…….
앞에서 거보라며 포크를 까딱이는 임단을 바라봤다.
얼굴을 가리긴 할 테지만 사람이 몰리는 경매장 특성상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용병이 있긴 해야 한다. 이제 와 다른 용병을 구하는 것보다야 임단이 같이 가 준다면 말이 새 나갈 걱정도 없고 실력도 누구보다 확실할 테니 더할 나위 없긴 하지만…… 쳇.
“어쩔 수 없지. 네가 청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하아, 진짜 짜증 난다니까.”
임단이 헛웃음 치며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