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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16화 (24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16.

“뭐 사야 하는데.”

“존나 많아. 일단 경매장 목표는 요정의 헌 집이야. 무려 S등급 페어리 퀸이 자연 소멸하는 그 30분 사이에만 구할 수 있는 거라고. 매물이 일 년에 다섯 개도 안 나와. 폴리펠의 깃털과 투명 슬라임의 진액도 구해야 해. 잔틱스 도적의 주머니 가방이나 발록의 기운을 먹고 자란 저주받은 정령초는 급하진 않은데 있으면 사야 하고, 꽃달팽이의 더듬이는 꼭 필요해. 왁토스의 뿔은 구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반도 못 알아듣겠네. 잔틱스 가방이나 저주받은 정령초는 나도 들어봤어. 드랍률 극악이라 구하기 힘든 거 아냐? 어지간히 어려운 것만 구하네.”

“그래서 이 포션 마스터께서 친히 경매장까지 가는 거 아니겠냐.”

“대체 뭘 만들길래 그런 게 필요해?”

“뭐, 여러 가지. 저주받은 정령초는 승연이 저주 푸는 용으로 필요해.”

“걔 저주 걸렸냐? 뭔데?”

“포션을 하급으로 만드는 저주.”

“별… 거지 같은 것에도 걸렸네.”

어깨를 으쓱였다. 그 외에 태제헌을 살리는 포션에 들어갈 것들도 있었지만 그건 말할 수 없으니까.

임단과 잡담하며 월계나루로 향했다. 상가 초입에 다다랐을 무렵 어느 건물 앞에 서서 대화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에 눈을 크게 떴다.

“야! 어디 가?”

“잠깐만. 아는 사람들이야.”

반가운 마음에 후다닥 달려가자 임단이 머리를 짚으며 따라왔다.

“하, 이래서 혼자 못 보내겠다고…… 야! 같이 가!”

“이 상가로 말할 것 같으면, 구축이지만 튼튼한 데다 앞마당은 없지만 그 대신 일 층 밑에 반지하가 있어. 요즘 반지하 구하려고 해도 허가도 안 나는 거 알지? 뭐, 근처에 운석이 떨어진 적이 있긴 한데, 우리 중개소에서 들어 놓은 보험도 빵빵하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사겠다는 사람이 열 손가락을 넘는데 신생 길드라길래 내가 특별히 아껴 둔 매물 빼 준 거야.”

“으음, 마음은 감사하지만……. 여긴 공용 공간이 너무 좁은데요. 길드 거점으로 쓰려고 하는 거라서요.”

“이 가격에 월계나루랑 이만큼 가까운 곳 구하기도 힘들어잇! 조금 불편하더라도 응? 젊어서 하는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건데.”

“도토리 누나! 여기서 뭐 해?”

불쑥 다가가 후드를 걷으며 인사하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던 효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 의진 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내 공방도 근처잖아.”

이제 보니 효영 옆의 얼굴들도 익숙했다. 이재아랑…… 어라?

“아저씨. 오랜만.”

“가, 가가, 강의진……!”

“우리 공방 이름 정해져서 간판 달아 달라고 연락하려고 했는데, 아저씨 건물 천랑에 팔았다면서?”

시큰둥하게 말하자 중개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크윽……. 내 수수료…….”

“그런데 다들 여기 모여서 뭐 해? 집 사려고?”

뒤의 협소한 건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효영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뒤에서 임단이 세찬 손길로 내 후드를 잡아끌었다.

“야, 죽을래?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아! 놔라.”

“세상에, 임단 헌터님…!”

효영과 이재아의 눈에 경애가 어렸다. 임단도 그를 알아챘는지 평소와 달리 새침한 표정으로도 대꾸를 해 줬다.

“강의진이랑 아는 사이인가 봐요?”

“저희가 의진 님께 큰 도움 받았죠. 저, 예전에 제주 던전 때도 함께 동행했었어요.”

“아아, 그때라면……. 누구 때문에 고생 많-이 했겠네요.”

임단이 나를 흘겨보며 씩 미소 지었다. 그러곤 일정이 바빠 먼저 가야겠다 덧붙이자 효영과 이재아는 밸도 없는지 어서 데려가시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는 건 맞기에 하는 수 없이 떠날 준비를 하며 말했다.

“이왕 건물 살 거면 여기 말고 동쪽으로 잡지?”

“월계나루 동쪽 말씀이세요?”

“응. 이제 이 강의진이 있을 은하나루가 대세가 될 테니까!”

으하하, 허리에 손을 얹고 웃는데 임단이 다가와 머리를 퍽 때리며 모자를 눌러 씌웠다.

“야,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어? 조용히 다녀오겠다며.”

“은하나루라니, 이름은 처음 들어요.”

“아직 공개 안 됐거든. 난 이만 간다! 나중에 공방 놀러 와. 그리고…….”

뒤에서 뻘쭘하게 서 있는 아저씨랑도 눈이 마주쳤다. 은근슬쩍 눈을 피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왜인지 의기소침해 보여 나만 믿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 아저씨가 예전에 우리가 가계약한 공방도 몰래 팔아 버리고 수수료 숫자도 까먹고 계약서에 올려 쓰긴 했는데 그건 실수 연발인 직원을 데리고 있어서지 아저씨는 착해. 좋은 아저씨니까 계약도 잘해 줄 거야!”

“그, 그건…… 의진 님!!”

사장의 절규를 뒤로 하고 등을 돌렸다. 뒤에서 계약서 좀 다시 보자는 효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

경매 중간 쉬는 시간, 품에 안은 봉투를 보며 머릿속으로 재료 정리를 했다.

투명 슬라임의 진액이랑 발록의 기운을 먹고 자란 저주받은 정령초, 꽃달팽이의 더듬이는 구했고 폴리펠의 깃털과 왁토스의 뿔은 아무래도 진명이에게 부탁해야겠다. 예상외로 잔틱스 도적의 주머니 가방이 보이질 않는다. 그다지 희귀한 아이템은 아니라 무조건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경매장에 오면서 사들인 재료와 먼젓번 차례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재료들이 한가득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임단이 턱짓하며 물었다.

“그걸 바리바리 다 들고 가게? 인벤토리 빌려줘?”

“넣어야 할 건 다 넣었어. 인벤토리에 넣으면 숙성이 안 되잖아. 일분일초가 아쉽다고. 돌아가자마자 제작 들어가려면 지금부터 숙성 시작해야 해.”

재료가 담긴 봉투를 추스르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재료들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은데, 따로 노리시는 게 있나요? 리바이어던 뿔? 배구에니아의 향긋한 배설물? 아니면 혹시…….”

흘깃 뒤를 돌아보자 주위에 앉은 모두가 아닌 척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드도 쓰고, 경매장에서 배포하는 가면도 쓴 채인데 또 비범함이 겉으로 티가 났나 보다. 임단의 눈치를 보다 답했다.

“요정의 헌 집.”

짤막한 대답에 근처에 앉아 있던 이들이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아, 역시 그거군.”

“하긴 요정의 헌 집이라면 경매장이 아니고서야 구하기 힘들죠.”

“요정의 헌 집은 희귀도에 비해 활용 범위가 좁지 않나요?”

“상관없어. 요정의 헌 집은 무조건 내가 가져갈 테니 포기하라고.”

선전 포고를 하고 뿌듯하게 몸을 돌리자 임단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머지않아 2부가 재개되었다. 끌리는 물건들이 나올 때마다 앞의 저울에 코인을 올려 사들였다. 청이나 제로를 보내기엔 아쉽고, 진명이가 구하기엔 무리라 번거로운 재료들을 꽤 많이 구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발끝을 까딱이며 기다리는데 드디어 고등급 재료가 나오는 3부가 시작됐다. 경매사가 바뀌고 무대 장식과 조명까지 어둡게 바뀌었다.

[이번 시즌 첫 번째 하이랭크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보여 드릴 아이템은 바로……. 요정의 헌 집!]

어둡던 무대에 불이 들어오며 중앙의 쇼케이스를 비췄다. 투명한 유리 안에 무지갯빛 화려하게 빛나는 새 둥지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잠깐, 저건…….’

누군가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경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코인이 마구 올라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임단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의아한 얼굴로 내 팔을 흔들었다.

“야, 뭐 해? 응찰 안 해?”

[S급 페어리 퀸이 부활을 준비하며 자연 소멸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만 획득할 수 있다는 요정의 헌 집은 특유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마력으로 유명하죠. 이 정도로 괜찮은 매물을 구하려면 최소 일 년, 평균 삼 년은 기다리셔야 합니다.]

받은 후 한쪽에 던져 놨던 도록을 꺼내 살폈다. 콜렉터는 존문지회의 김우정이고 보증 길드는…… 에이, 씨발. 테란이잖아?

‘그럼 그렇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

주섬주섬 바닥에 내려놓은 봉투들을 챙겨 일어났다.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임단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가자.”

“뭐? 나가자고? 너 저거 필요하다며. 요정의 헌 집 구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저거 요정의 헌 집 아니야.”

임단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빠져나가려던 때, 어떤 사람이 다급히 내 옷깃을 붙잡……으려다 임단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뭐야?”

서슬 퍼런 임단의 눈빛에 움츠러든 남자가 웅얼댔다.

“요정의 헌 집이 아니라니 무슨…… 말인가 해서, 요. 아이템이 잘못됐다는 말인가요?”

“그래. 저건 요정의 헌 집이 아니라 팬텀 케찰의 둥지니까.”

사람들이 술렁였다.

“요정의 헌 집이 아니라고?”

“팬텀 케찰의 둥지는 겨우 B급 아이템이잖아?”

크게 말한 것도 아닌데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지는 소란에 결국 경매가 중지됐다. 사람들의 항의에 경매사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경매장 규칙상 구매 후 합법적으로 물건을 인도받기 전까지는 감정이 불가합니다.]

“그러다 요정의 헌 집이 아니면 어떡할 겁니까?”

[현재 저희 소속 감정 평가사가 오고 있으니 감정 후 경매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관심 없고! 리바이어던 뿔은 언제 나옵니까?”

“난 당장 배구에니아의 향긋한 배설물을 사야 한다고! 감정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만약 정말로 팬텀 케찰의 둥지라면 후폭풍은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아이템 보증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건데요.”

그때 관계자석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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