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17.
[다들 진정하시길 바랍니다. 저희 월계나루 경매장은 철저한 감정과 길드의 보증 시스템을 이용해 근 20년간 경매를 이끌어 왔습니다. 아무 자격 없는 사람의 근거 없는 낭설과 전문가로 이루어진 존문지회의 베테랑 팀이 감정한 자료, 둘 중 어떤 것이 더 신용이 높을지 하이랭크 경매에 참석하실 정도로 안목 높으신 귀빈들께선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정말이야! 저건 요정의 헌 집이 아니라니까!”
“긍으즌! 그믄히 즘 있으!!”
임단이 당장이라도 무대로 달려 올라갈 듯한 내 팔을 잡아 세웠다. 단상 위의 남자가 짜증을 숨기지 않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근거 있는 소리입니까? 요정의 헌 집 정도의 고등급 아이템도 몇 번 본 적 없어 보이는데…….]
기저에 무시가 깔린 목소리에 울컥해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임단의 팔을 뿌리치고 단상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가자 경비들이 달려왔다.
“요정의 헌 집은 나뭇가지에 페어리들의 날개 가루가 묻어서 무지갯빛으로 보이는 건데 저건 그 자체로 빛이 나잖아. 나뭇가지가 아니라 팬텀 케찰의 깃대야! 게다가 둥지의 구조도 다르다고! 페어리의 헌 집은 페어리들이 드나들 수 있게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려야 하는데 이건 새끼를 보호하려고 아래를 단단히…….”
“끌어 내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내려가세요!”
경비원들이 달려왔다. 끌어 내리라는 사회자의 말에 달려들어 제압하려는 손들 사이로 임단이 끼어들었다.
“얘한텐 손대지 않는 게 좋을걸.”
임단의 앞에 희미한 푸른 빛이 너울거렸다. 단순히 말뿐인 경고가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주춤하는 경비들 뒤로 몇몇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 이펙트는 분명히!”
“단이 누님??”
스쳐 지나간 이펙트만 보고도 임단임을 알아본 게 신기했다. 몰려오는 사람들을 본 임단이 어금니를 꽉 물고 말했다.
“강의진 너 돌아가면 각오해라…….”
머지않아 단상은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임단을 알아보고 온 사람들이 속이 다 보이는 얼굴로 우리 편에 서서 항의했다.
“저 사람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감정 한 번이면 되는 일을 왜.”
“하, 이건 S급 아이템입니다. 적어도 A급 이상의 감정 스킬을 가져야 가능한데 그런 사람 있습니까?”
“저요.”
“저 가능합니다.”
“나!!”
“나도 할 수 있어.”
이곳저곳에서 감정 스킬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자 사회자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바꿨다.
“우리 존문지회가 공인한 감정사가 올 때까지는 절대 안 됩니다!”
“언제적 존문지회냐! 데이지 스퀘어면 모를까.”
“뭐? 너 데이지 스퀘어 끄나풀이냐?”
경매장이 한순간에 개판이 됐다.
“넌 뭔데 나서냐.”
“니는 뭔데.”
“너 누군데.”
“니는 누군데.”
“내가 먼저 물었다. 너 뭐 되냐.”
“닌 뭐 되나. 나대지 말고 조용히 들어가라. 어?”
“미쳤네. 자신 있나 보네?”
“닌 자신 있나.”
싸울 듯 말 듯 서로 아오, 아오, 거리며 위협만 하는 헌터들의 모습에 어느새 주위 사람들이 구경꾼이 되어 몰려들었다.
“싸우려면 빨리 싸워!”
“싸워라! 싸워라!”
사람들 사이에 껴서 같이 소리치는데 임단이 팔을 뒤로 잡아끌었다.
“따라와, 이 틈에 나가자.”
“뭐? 안 돼. 저 새끼들 사기 쳤다는 거 밝혀야 한다고. 게다가 너도 들었잖아. 좆문지회 놈들이라고!”
“그건 얼굴 팔린 내가 어련히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좀 가자고! 너까지 들키면 나 혼자선 수습 못해.”
결국 재료를 껴안은 채 떨어지지 않는 발을 뗐다.
경매장 바깥까지 소문이 나 빠져나오기가 쉽진 않았지만 임단의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길을 뚫어 줘 그나마 수월히 나올 수 있었다.
공방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인 누나와 진명이가 찾아왔다. 임단에게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둘이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경비나 거기 관계자들, 당황하긴 했지만 가이드대로 움직였거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거지.”
“어떻게 경매장에서 그런 짓을…….”
“고마워요. 단 님. 사실 존문지회와 월계나루 사이의 결탁으로 의심 중인 사건들이 몇 있었는데 이번 일이 밝혀지면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보니까 경매장에 까탈스러운 애들도 몇 있더라. 이번 일은 빠져나가기 힘들 거야. 그러니까 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증거를 모아. 맞다, 강의진.”
임단이 날 부르는 목소리에 따로 챙겨 뒀던 것들을 둘에게 건넸다.
“오늘 내가 경매장에서 산 건데, 감정해 보니까 도록과 다른 재료들이 몇 개 있었어. 큰 차이는 아니고 사소한 것들이라 나 정도 감정 스킬 아니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거야. 모르고 산 사람들 많을걸. 한번 털어 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번에야말로 꼭 존문지회와 끝을 봐야겠어요. 두 분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얼굴 팔린 거 사실 데이지 스퀘어랑 손잡고 잠입했던 거라고 기사 낼 거야. 내가 둘 이용하는 거니까 감사해할 필요 없어.”
임단이 툴툴대며 둘의 부담을 덜어 줬다.
***
“진명이한테 연락 왔어?”
“왁토스의 뿔은 가진 게 있어서 바로 보내겠다고 했고요, 나머지는 구해 보겠답니다.”
“알겠어. 꽃달팽이의 더듬이는 말리고 정령초는 네가 맡아서 손질해 봐. 네 저주 풀 포션은 네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게 할 생각이니까. 너 처음 각성했다는 던전 좌표 여기 맞지? 여기 보스 몬스터가 두억시니였나?”
“네.”
저주 계열에다가 A급. 게이트 첫 생성으로 더 강력했을 것을 감안하면 디버프로…….
고민하다 종이에 레시피를 수정해 건넸다.
“여기. 원료 다 준비되면 나 불러.”
“네…. 네!”
테이블 위에 펼쳐진 재료 중 필요한 걸 챙기는데 머뭇거리던 승연이가 물었다.
“저, 의진 님. 오늘도 선산에 가시나요? 요즘 선산에만 많이 가시는 것 같아서요.”
“거기서 연구할 게 있어서. 왜, 공방에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냥,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면 옆에서 돕고 싶기도 하고…….”
머뭇머뭇하며 말을 잇는 승연이를 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개인적으로 할 게 있어서 그래. 나중에 같이 하자. 너 저주 풀리면 연구할 거 많아.”
“……네.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곤 재료를 챙겨 선산으로 들어갔다.
구름이를 선산에 풀어놓고 나는 오두막에 박혀 연구를 계속했다. 단순 계량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할 때면 조수의 필요성이 간절해졌지만 연승연은 태제헌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절할 게 뻔해 데려올 순 없었다.
간만에 모든 과정이 술술 풀리고 집중이 잘되는 날이다. 이상하게 휴대폰이 계속 울려 성산하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전원을 꺼 구석에 던져뒀다.
“다음 단계가…… 슬라임이랑 은꽃세이지 가루를 반죽해 넣고…….”
솥 안의 내용물이 불규칙하게 보글거리며 거품을 터트렸다. 기분 좋은 향긋한 내음과 점차 투명하게 변하는 색까지, 예감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제로와 청이가 먼저 보내 준 에우리알레의 독샘을 쭉 짜냈다. 잼처럼 찐득한 독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투명한 액체에 새까만 독이 닿은 순간 오로라 같이 반짝이는 입자가 생겨나 빛을 냈다. 그를 보자마자 성공을 직감했다.
“됐다……!”
띠링!
퀘스트 성공!
진행률(1/7)
{메인 퀘스트}
Born to be Star!
별의 힘을 지니고 태어난 당신 안에는 엄청난 힘이 내제되어 있다.
숨겨진 힘을 찾아 기나긴 여정을 떠나자.
난이도 : SSS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EX급 스탯, EX급 칭호, EX급 스킬
진행률 : 15%
(히든) 신화급 포션 레시피 발견!
(1/7)
세상에 감춰진 신화 속 포션 레시피를 찾아냈습니다.
약산의 약초꾼들이 입을 모아 당신을 칭송합니다.
신화급 포션에 관한 정보가 세상에 흘러나갑니다.
.
.
.
˚
명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숙련도가 소폭 증가합니다.
.
.
.
˚
(히든)포션은 제작 횟수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제작하시겠습니까?
(0/3)
몇 개나 되는 상태창이 눈앞에 우르르 떠올랐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포션이니 혹시나 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메인 퀘스트와 관련이 있을 줄은 몰랐다. 신화급 포션이라니. 심지어 이것 말고도 이 정도로 특별한 포션이 세상에 6개나 더 있을 거라니!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새로운 정보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평온하던 일상에 생겨난 핵폭탄급 이벤트에 흥분해 머리까지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당연하지. 포션 마스터인 내가 아니면 7개나 되는 신화급 포션을 누가 찾겠어?
“당연하지. 제작!”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강의진.”
이름을 등록하자 솥에서 환한 빛이 뿜어지며 포션이 완성되었다. 한 솥 가득 차 있던 액체가 딱 한 국자 정도로 줄어 있었다. 곧바로 포션병에 옮겨 담아 감정했다.
<부활의 포션>
(히든)
등급 : EX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일곱 가지 포션 중 하나.
충만한 자연의 힘으로 한 번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
-사망한 지 하루가 지난 상태의 대상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오지 않았다.
“부활의 포션이라고……. 으하하.”